[목멱칼럼]퇴계가 매화를 사랑하듯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등록 2020-03-17 오전 5:00:00

    수정 2020-03-17 오전 5:00:00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철 날씨가 으스스할 때 자주 회자되는 글귀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의 확산 때문에 새 봄이 다가옴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경황이 없다. 지역사회 감염이 여기저기 나타나니 마스크를 하더라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불편은 전후 세대에게는 처음 겪는 고통이다. 어찌하면 좋을까.

이럴 때 현명한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급선무는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그래도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면역능력을 길러 대비해야 한다. 이번에도 면역능력이 약한 기저질환자나 고령자의 희생이 크다.

면역능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육체적 능력이다. 충분한 수면과 고른 영양, 적당한 운동이 몸에 배야 한다. 다른 하나는 편안한 마음가짐이다. 필자는 이것을 강조하고 싶다. 동양고전인 ‘대학’에서는 ‘마음이 너그러워지면 몸도 편안해진다’고 했다. 퇴계선생도 선조에게 ‘성학십도’를 올리며 ‘마음이 몸을 통솔한다’고 하여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면 좋은 마음을 갖는 지름길은 없을까. 필자는 퇴계선생이 매우 사랑한 매화를 가까이 하길 권하고 싶다. 퇴계가 오랫동안 존경받는 까닭은 실천적 삶 때문인데, 그 중심에는 늘 매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에게 매화는 하나의 완상용 식물이 아니고 인격을 갖춘 존재였다. 매화를 ‘매형(梅兄)’, ‘매선(梅仙)’이라 부르며 누구보다 자신을 속 깊이 이해하고 가치관을 공유하는 존재로 여긴 것이다.

작고하기 2년 전 퇴계가 17세 임금 선조의 간곡한 부름을 받고 마지막 서울 생활을 할 때 김취려라는 제자가 스승께 분매(매화분)를 드렸다. 이듬해 봄, 퇴계는 만류하는 임금에게 간청하여 고향에 다녀오라는 허락을 받는다. 그러자 동행을 할 수 없는 것이 미안하여 한양을 떠나기 전날 그 분매와 시를 주고받는다.

퇴계가 분매에게 주다

갑자기 보내온 매화 신선이 쓸쓸한 나의 짝이 되어

나그네 집 산뜻해지고 꿈길마저 향기로웠네

귀향길 그대와 함께 못 가 한이 되니

서울 티끌 속에서 예쁜 모습 잘 간직하게나

분매가 답하다

듣건대 도산의 신선 우리같이 쓸쓸하게 지내다가

공이 돌아오거든 자연스런 향기 피우려 한다네

원컨대 공과 서로 마주하는 곳이나 서로 그리워하는 곳에서나

옥설 같은 맑고 참됨 함께 고이 간직하기를

서울에 남겨진 분매는 고향에 간 퇴계와 그곳 도산의 매화 그리고 자기가 함께 ‘옥설 같은 맑고 참됨(玉雪淸眞)’을 간직하기를 바랐다.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분매를 의인화하여 다짐한 것이다. 스승의 뜻을 잘 아는 김취려는 귀향 이듬해 이 분매를 보낸다. 퇴계는 반가워하는 마음을 이렇게 남겼다.

일만 겹의 붉은 먼지를 깨끗이 벗어나

세상 밖으로 찾아와 늙은이와 짝 되었네

일 좋아하는 그대가 나를 생각지 않았다면

해마다 빙설 같은 이 모습을 어찌 보리오

해마다 빙설(氷雪)같은 모습을 대하게 되었다면서 기뻐한 퇴계는 그 해 12월 눈을 감는다. 그날 아침 마지막 말이 “분매에 물을 주어라”였다. 퇴계와 매화의 관계를 극명하게 느끼게 한다.

힘들지만 창문을 활짝 열고 봄기운을 맡자. 조용히 봄 길을 걸어보자. 봄꽃 속에 수줍은 듯 피어나는 매화를 찾아 눈길을 맞추자. 아마 매화도 퇴계와 나누던 맑고 참됨을 우리와도 나누려 할 것이다. 퇴계가 매화와 맑고 참됨을 나누며 배려와 존중을 실천하였듯이, 우리도 매화에 다가가며 다시 추스르고 일어나 봉사와 헌신하는 분들과 한마음이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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