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전에 '인간 이순신'의 고뇌…몸짓으로 펼치다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신작 '순신'
'난중일기' 속 이순신의 꿈 무대로
뮤지컬·무용·판소리 엮어 이색 볼거리
이지나 연출 "이순신의 '추상화' 같은 작품"
  • 등록 2023-11-16 오전 6:00:00

    수정 2023-11-16 오전 6:00: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꿈을 꾸었다. 새벽 꿈에 어떤 곳에 이르니 시체들이 즐비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신작 ‘순신’의 한 장면.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이순신의 꿈 이야기가 독백으로 나온다. 무대에 오른 이순신은 조금만 힘을 줘도 바스러질 것처럼 앙상한 모습이다. 전쟁 속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백성들의 모습에 이순신은 끊임없이 고뇌한다. 나약한 육신으로 펼쳐 보이는 고통스러운 몸짓은 이순신이 겪어야 했을 심적인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이순신 하면 흔히 떠오르는 모습을 기대했다면 ‘순신’은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다. 용맹한 영웅으로서의 이순신은 ‘순신’에 없다. 거북선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전쟁과 정쟁(政爭)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백성과 가족만을 생각했던 한 사람이다. 이순신은 대사도 거의 없다. 대신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몸짓으로 펼쳐질 뿐이다. 우리가 몰랐던 이순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서울예술단 ‘순신’의 한 장면. (사진=서울예술단)
‘순신’은 공연계 대표 연출가 이지나가 연출과 극작을 맡았다. 소리꾼 이자람, 그리고 작가 김선미가 공동 극작으로 함께 했다.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이순신의 꿈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건과 교차 편집했다. 용맹한 장수이자 충직한 신하이며, 효심 깊은 아들이자 가슴 아픈 아버지인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했다. 서울예술단은 그동안 무용과 음악, 연기가 하나로 어우러진 ‘창작가무극’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순신’은 여기에 판소리와 미디어아트까지 활용해 창작가무극의 진화를 보여준다.

이지나 연출은 ‘순신’을 “이순신의 ‘초상화’가 아닌 ‘추상화’와 같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지나 연출은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와 고통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뮤지컬 파트는 스토리텔링과 드라마, 무용 파트는 비주얼과 미장센, 판소리 파트는 전쟁 장면을 나누어 맡았다”며 “각 장르의 호흡을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고 연출 주안점을 설명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동굴 같은 무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20m 깊이의 구조물이 무대 양옆에 배치돼 웅장하면서도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미디어아트에서 자주 활용하는 프로젝션 매핑(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이뤄진 영상을 투사하는 기술)을 이용해 볼거리를 선사한다.

서울예술단 ‘순신’의 한 장면. (사진=서울예술단)
‘순신’의 백미는 전쟁 장면을 표현한 판소리다. 판소리는 정적인 분위기의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관객을 한층 더 극에 빠져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자람이 판소리를 작창(作唱, 소리를 짓는 작업)했다. 또한 극의 화자 역할인 ‘무인’ 역으로도 직접 무대에 올라 전쟁의 스펙터클을 구성진 판소리로 선보인다. 이자람은 “전쟁 장면을 작창하는 내내 울컥했다”며 “역사에 반응하고 진동한 셈인데 그 감정이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전했다.

뮤지컬, 판소리, 무용 등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복합장르라는 점, 그리고 ‘기승전결’을 갖춘 일반적인 서사 구조를 갖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낯선 형식의 공연이기도 하다. 이순신의 꿈을 다큐멘터리처럼 접근해 다양한 장르로 풀어낸 작품으로 본다면 공연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서울예술단 단원 형남희가 이순신 역을 맡았다. 단원 윤제원이 이자람과 함께 ‘무인’ 역으로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오는 26일까지 이어진다.

서울예술단 ‘순신’의 한 장면. (사진=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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