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룡의 한방라운지)기생충

  • 등록 2006-05-19 오후 12:20:20

    수정 2006-05-19 오후 12:20:20

[이데일리 이해룡 칼럼니스트] “애들은 가라.”
60-70년대 하교 길에 공터에 사람이 모여 있어서 기웃거리면 어김없이 약장수들이 기생충약을 팔고 있었다. 약장수는 징그러운 기생충이 잔뜩 들어있는 유리로 된 표본을 가리키며 지금 기생충 약을 먹지 않으면 큰 일을 당할 것처럼 떠들어댔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생충이 뱃속에 들어있는 것에 아주 기겁을 한다는 약장수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검사를 하면 대부분 회충 등 기생충이 없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볼거리가 별로 없었던 시절이라 약장수들의 공연에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기생충에 광범위하게 감염돼 있던지라 정부에서는 기생충박멸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고, 학생들에게는 봄가을에 실시하던 기생충검사가 고역이었다. 변을 담아오는 채변봉투를 버리고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도 많았다. 검사 후 선생님의 호명을 받은 아이는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약을 먹고 확인을 받았으니 채변검사를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한의학에서도 회충을 비롯한 기생충은 큰 골치거리였다. 지금처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대부분 인분을 비롯한 동물성 자연비료를 사용했으니 먹거리에 기생충이 득실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고, 그래서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이 많았다.

동의보감에서도 충(蟲)이라는 단원을 따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기생충에 대한 치료를 중시했다.

기생충이 몸 안에 있을 때는 뱃속에서 바깥쪽으로 덩어리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가 손으로 누르면 사라지고, 다시 단단하게 뭉친 것이 뱃속을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휘저어 놓는 바람에 통증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동의보감의 설명이다. 특히 충의 활동이 심해지는 새벽이나 밤에 증상이 더욱 심해서 통증으로 이를 악무는 통에 입이 펴지지를 않고 나중에는 맑은 물을 토하게 된다고 했다.

얼굴에서는 눈가와 코 아래 부분이 푸른색이나 검은 색을 띠고 얼굴도 누렇게 뜰 뿐 아니라 광대뼈에서는 실핏줄이 퍼져나가게 된다. 어린아이가 충에 걸리게 되면 뱃속에서 먹은 것을 다 빼앗기게 되니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게 된다.

의서에 적힌 충병 가운데 가장 자주 보이는 것은 회충으로 인한 회궐이다. 이병은 가슴앓이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회충을 토해내게 되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회충은 찬 것에 민감하기 때문에 충이 뱃속에 있을 때는 성질이 차가운 약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의학에서는 사군자나 비자나무의 열매 등을 구충제로 사용해왔다. 사군자는 회충으로 인한 복통에 효과가 있다. 사군자를 볶으면 냄새가 향긋할 뿐만 아니라 맛도 좋아서 주로 어린애들에게 다용하던 구충제다. 하지만 많이 먹으면 어지럼증 등 약간의 부작용도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비자나무 열매도 성질이 비교적 온화하여 비위 등 소화기에 부담을 주지 않아서 구충제로 애용하던 약재다.

기생충에 영양가를 빼앗겨 사람이 쇠약해졌을 때는 경옥고를 먹여 원기를 회복시키는 치료법을 썼다. 충을 없애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만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충으로 인해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보약을 먹여 체력을 올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동의보감의 설명이다.

한 알이면 모든 기생충을 잡을 수 있는 요즘 세상에도 기생충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지난해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되었다고 해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고 이 난리 통에 문을 닫은 김치업체도 속출했다. 얼마 전 정부당국에서는 기생충 알이 발견되면 김치판매를 금지한다고 뒤늦게 위생기준을 강화했다. 기생충 파동을 딛고 우리 대표식품 김치가 세계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예지당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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