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더이상 '닭대가리'라 부르지 말라

못 날아도 가장 멀리 이동한 새 '닭'
족적으로 살핀 세계인류문명사
동남아 야생닭 적색야계부터
연간 닭고기 1억톤·달걀 1조개 소비
종교상징·욕망수단·치킨으로 변신한 과정
………………………………………………
치킨로드
앤드루 롤러|480쪽|책과함께
  • 등록 2015-11-11 오전 6:41:27

    수정 2015-11-11 오전 6:41:27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닭이라는 새에 대해 아는가. 누구는 당장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닭이 새라고? 그래 이해한다. 의문이 당연하다. 닭은 닭이었다. 어떤 생물로 대체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물세계에서의 존재감이 아니다. 인간세계에서 감히 빛을 내는 존재감이다. 닭이 바빌로니아 전차를 끌었다는 얘기를 들어봤는가. 중국에서 비단을 가져왔다는 소리는? 문자를 발명하고 산업혁명을 이뤘다는 얘기는? 이 전부에 ‘완전 해당 없음’에도 불구하고 닭은 인류문명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어째서냐고? 닭은 신들의 정령, 다목적 치료약, 부활의 상징, 노름의 도구, 정력의 주역, 용기의 화신, 유용한 실험수단, 잡다한 농담 속 주인공, 그리고 치킨이니까.

개나 고양이, 돌고래가 당장 사라진다면 인간은 깊은 슬픔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경제나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다지 없을 터. 그런데 어느 날 닭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재앙은 즉각 나타나게 돼 있다. 왜냐고? 닭은 이미 은근하지만 가차없이 인간 삶 깊숙한 곳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2012년으로 잠시 가보자. 멕시코에서 닭 수백만마리가 살처분됐던 그때. 달걀값이 폭등하자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행진을 벌였다. 같은 해 이란에선 닭고기값이 세배 이상 뛰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소식을 접한 이란경찰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방송국에 ‘닭 먹는 화면’을 내보내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닭고기 사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이 행여 폭동이라도 일으킬까봐 ‘알아서’ 조치한 거다.

지난달 한국의 통계청도 의미심장한 집계를 냈다. 2013년 기준 전국의 치킨집 수(3만 6000곳)가 세계의 맥도날드 매장 수(3만 5000곳)를 훌쩍 넘겼다는 것. 삼계탕에다가 닭볶음탕, 닭갈비도 있지만 한국인의 유별난 닭사랑은 치킨집 수와 정비례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일일까. 아니다. 세계선 해마다 1억t의 닭고기와 1조개의 달걀을 소비한다. 시간당 닭고기 1만 1500t과 달걀 1억 1500만개가 사라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양으로도 닭이 명멸하지 않는 건 인간의 세배가 넘는 200억마리가 살고 있는 덕이다. 지구에서 닭이 없는 곳은 한 나라와 한 대륙뿐인데, 바티칸과 남극이다. 바티칸에는 닭장이 없어서고 남극은 닭바이러스로부터 펭귄을 보호하기 위해 아예 들이질 않아서란다.

이쯤 되면 새삼 궁금증이 피어오를 만한데 아마 이런 걸 거다. “대체 치킨이 뭐길래 우린 이 새를 이토록 많이 먹고 있는 건가.” 과학·테크놀로지 분야 전문기자로 활약하는 저자가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 덤벼들었다. 그런데 캐면 캘수록 내용이 불어났다. 그저 식용이나 식품코너가 품을 치킨이 아니었던 거다. 심리·종교·산업·생물·유전·고고학이 녀석을 잡자고 따라붙었다.

▲“닭을 따라가서 세상을 발견하라”

시작은 현대 닭의 조상 종인 ‘적색야계’부터다. 풀어내면 붉은색 야생닭이다. 이때의 닭은 ‘길들일 수 없는 표범’ 같았단다. 태어난 곳은 동남아시아 밀림인데 이상하게도 날지도 못하는 이 새가 끊임없이 이동해 중동을 가로지르고 태평양을 횡단하더란 거다. 태국을 거쳐 인도를 지나 메소포타미아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간다. 이어 멜라네시아에서 원주민의 작은 배를 타고 바다 위 작은 섬을 차례로 콕콕 찍으며 하와이군도와 이스터섬으로 퍼져 나갔다. 이어 중국 남부로 들어간 뒤엔 한국과 일본에 정착. 사실상 17세기에는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대륙에 들어선다.

덕분에 닭은 가장 광범위한 이동영역을 자랑하는 철새란 타이틀도 꿰차는데, 애처롭지만 부위별로는 가히 지구상의 끝과 끝에 이른다. 닭발은 중국에, 다리는 러시아에, 날개는 스페인에, 내장은 터키에, 뼈는 네덜란드에, 가슴살은 미국과 영국에. 그러니 이런 말도 무리가 아닐 수밖에. “닭을 따라가서 세상을 발견하라.”

▲그대를 ‘맥가이버 칼’이라 부르리라

그렇다면 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뭔가. 저자는 ‘지구의 단백질’로 압축했다. 하지만 인류문명사에서 닭의 행적은 그 이상의 함의가 있다. 왕실 동물농장의 스타가 됐는가 하면, 미래를 예측하는 포천테일러가 되기도, 빛과 부활의 성스러운 메신저로도 변신하며, 죽을 때까지 싸우면서 인간의 투기심을 자극하는 오락거리로, 그러다가 전천후 만병통치약으로 산화하기도 했다.

이뿐인가. 고대 이집트에선 희귀하고 높은 신분으로 종교행사에 등장했지만, 필리핀 마날라의 투계산업장에선 정·재계 검은돈을 결탁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저자가 깃털 달린 ‘맥가이버 칼’로 닭을 명명한 건 썩 적절했다. 격상하자면 ‘능력조’인 거고 격하하자면 ‘다목적새’인 거다.

▲영원한 치킨로드를 허하라

그럼에도 저자가 볼 때 닭의 미래는 암울하다. 효율적 생산력을 위한 희생이 너무 큰 탓이다. 인간에게 치킨을 공급하느라 살만 불린 닭은 이제 다리까지 망가져 날기는커녕 걷지도 못할 지경이다. 닭의 불안정한 미래가 못내 걱정되는지 저자는 한때 인간에게 기쁨과 경외, 치유를 제공했던 ‘귀한 존재가치’를 자꾸 부각한다. 인간을 닭에 빗댄 건 저자가 즐겨 쓴 표현이다. 수탉처럼 뻐기다가도 병아리처럼 겁을 먹는 것이 인간이란다. 아이디어를 부화하고 벼슬을 세우고 홰를 치고 알을 품고 꼬끼오 울어제치는 것도 비슷하다. 결정적으론 하늘을 날고 싶지만 두 발이 땅에 묶여 있는 것이고.

그러니 이젠 누구에게도 ‘닭대가리’라는 억측을 씌우지 말 일이다. 여전히 ‘3초 기억력’으로 발을 떼곤 앞으로 가려 했는지 뒤로 가려 했는지조차 헷갈린다지만. 그 걸음으로 인류여정만큼 길고 복잡한 ‘치킨로드’를 열어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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