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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폐업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왔으나 오히려 코로나19가 닥친 작년엔 오히려 증가세가 주춤해졌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가 있을 때마다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경제위기로 자영업자들이 위태로워지면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동원해 버틸 수 있도록 돕는데다 폐업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탓에 개점휴업 상태로 버티는 사장님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장에서 내몰린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불황형 창업’ 늘면서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자영업 경쟁이 더 격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난해에도 폐업보다 개업이 더 많아 자영업자 수는 3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자영업자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경우 실물경제 타격은 물론 금융시장마저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외환위기 때인 1997년엔 폐업은 줄고 자영업자 수가 전년보다 3만5000명 증가했으나 이듬해는 폐업 건수는 무려 64만6300건으로 2배 가량 증가하면서 자영업자 수는 13만8000명이나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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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지자체 인·허가를 받는 업종 중 휴·폐업 사업장 수는 작년 24만4800개로 1년 전(28만6700개)보다 15% 가량 감소했다. 폐업 건수는 과거 위기 때도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사업자등록증 말소를 기준으로 하는 국세청의 폐업 건수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 때는 34만700건으로 전년보다 5700건이 줄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84만4200건으로 5만600건이 감소했다.
폐업을 하려면 수천만워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권리금을 포기해야 할 뿐더러 인테리어 철거 비용 부담도 만만찮다. 가게 문을 닫으면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철회해 은행 돈도 갚아야 한다. 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지원하는 돈은 많아야 몇백만원 수준이다.
학원은 김 모씨는 “100평짜리 학원을 정리하는 데 철거비만 2000만원이 넘는다”며 “50만원은 별 의미없는 돈”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직원을 모두 내보내고 버티는 ‘나홀로 사장’이 작년 12만6000명(11월까지 기준) 늘어나는 등 2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버티기’도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헬스장, 학원, 목욕탕, 미용실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2019년 12월 마지막주 100만원을 벌었다면 작년 마지막 주엔 고작 44만원을 버는데 그쳤다. 헬스장은 이마저도 못 벌어 15만원, 노래방은 3만원 버는 수준이었다.
한국은행이 코로나19가 올해 내내 지속될 경우를 전제로 분석한 결과 자영업자 10명 중 1명은 올 연말 저축, 펀드, 주식 등을 다 팔고 보험까지 해지(70% 해지환급률 적용)하더라도 매출 감소에 따른 가계 적자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됐다. 정부가 대출 원리금 상환을 3월까지 유예해놨는데 이를 연장하더라도 8.5%는 유동성 위기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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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영업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개업이 휴·폐업보다 더 늘어났다. 지자체 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누적으로 37만9800곳이 개업했다. 전년동기보다 14% 가량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휴·폐업 건수가 19만3300건이란 점을 고려하면 개업이 두 배 가까이 더 많다. 전형적인 불황형 창업이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한 후 자영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났고 휴업 상태에서 생계형 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 수는 2018년 이후 감소해왔는데 작년에는 11월 기준 552만3000명으로 2019년 12월 대비 3만8000명이 증가했다. 반면 상용근로자는 같은 기간 145만2800명으로 4만7000명이 줄었다.
이태석 연구위원은 “지금은 경쟁력이 없어도 자영업에서 안 나가고 버티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나타난 일시적 부진인지 여부가 구분이 안되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폐업률이 껑충 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