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백남준 이후 이 남자를 택했다

뉴욕현대미술관이 ''간택''한 정연두
탑골공원 노인들 꿈을 현실로 만드는 전시회
  • 등록 2008-10-14 오전 8:40:00

    수정 2008-10-14 오전 8:40:00

▲ 미디어아티스트 정연두씨. /정연두씨 제공
[조선일보 제공]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39)씨는 지난 여름을 탑골공원에서 보냈다. 그는 노인들에게 물었다.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이 뭔가요?"

그는 40명을 심층 인터뷰한 뒤 6명을 따로 만나 작업을 시작했다. 옛 사랑, 긴 가난, 회한과 허장성세가 엇갈리는 여섯 노인의 기억과 희망을 섬세한 영상으로 재현했다.

17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정씨의 《핸드메이드 메모리즈(Handmade Memories) 전》이 개막한다. 출품작 〈영과 육의 갈림길에서〉는 TV 두 대에 각기 다른 영상이 돌아가는 작품이다. 왼쪽 TV에선 아랫니가 몇 개 안 남은 할아버지가 첫사랑을 회고한다. 한평생 소주를 장복(長服)한 사람의 촉촉한 말투다.

"군에 가기 전에 하숙집 딸을 좋아했어. 그 애가 나만 밥을 듬뿍 떠줬지. 둘이 철길을 걷는데 그 애가 말했어. '오빠, 나 배신하지 마.' 근데 내가 입대하니까 자기가 배신하더라고. 섬으로 시집갔거든."

오른쪽 TV 속은 영화촬영장이다. 빨간 작업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레일을 깔고, 초여름 철길을 찍은 대형 사진을 가져다 레일 상하좌우에 세운다. 노인의 눈동자에 물기가 괼 때 레일에 얹힌 철길 사진이 관람객 쪽으로 천천히 밀려온다. '가짜'라는 걸 알고 봐도 '진짜 그 시절 철길'이라고 믿고 싶어질 만큼 이 영상은 서정적이다.

정씨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이 꼽은 '올해의 작가'였다. 사진작가로선 처음이자, 역대 최연소였다. 지난 6월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그의 영상작품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를 구입했다. 이런 일은 백남준 이후 처음이다. 그는 스스로를 "포레스트 검프"라고 했다.

"검프가 무슨 거창한 야망이 있었겠어요. 달리고 싶고,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달렸겠지요. 그는 그냥 달리는데 사람들이 전설도 만들고 동참도 했을 거예요."

▲ 《핸드메이드 메모리즈 연작》중 한 편인〈제주도 낙타〉의 마지막 장면. 평생 남편에게 구박받고 산 할머니가 노년에“탑골공원에서 제일 훤칠한 여든네살 사나이”와 사귄다는 내용이다. 할머니는“남자친구와 제주도에 가서 낙타를 타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정연두씨 제공

남해안의 한 도시에서 한약방 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집안 사정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서른 번쯤 이사를 다녔다고 했다. 항상 '전학생'이었던 10대의 경험은 주변을 깊게 관찰하는 습성을 키워줬는지 모른다.

정씨는 "나는 어딜 가건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 인생을 관찰하기에 편리하다"라고 했다. 그는 관찰을 사색으로, 사색을 작품으로 이어간다. 《핸드메이드 메모리즈 연작》 작업은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를 지켜본 경험에서 시작됐다. 오래 전 세상을 뜬 남편과 함께 외출을 했다는 할머니를 보며, 그는 "기억이란 무엇인가" 깊이 생각했다고 한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02)735-8449

미디어아트

직역하면 '매체예술'이다. 미디어아트는 신문·잡지·만화·포스터·음반·사진·영화·라디오·텔레비전·비디오·컴퓨터 등 쉽게 복제되고 널리 전파되는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것이다. 초창기인 60, 70년대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컴퓨터그래픽·레이저광선·홀로그램 같은 다양한 테크놀로지까지 이용한다.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아트도 미디어아트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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