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TMI]원유 ETN만 4.2억주 풀렸는데…괴리율 왜 못 잡나

4.2억주 중 3분의 2 소진…괴리율 커지면 LP도 소용 없어
삼성증권, 27일 2억주 상장하되.."LP물량 풀지는 않을 것"
  • 등록 2020-04-25 오전 9:00:00

    수정 2020-04-25 오전 9:00:00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여의도 증권가는 돈 벌기 위한 정보 싸움이 치열한 곳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쪽지와 지라시가 도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인 곳입니다. 너무 정보가 많아서 굳이 알고 싶지 않거나 달갑지 않은 내용까지 알게 되는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도 있는데요. TMI일 수도 있지만 돈이 될 수도 있는 정보, [여의도 TMI]로 풀어봅니다.

요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등 원유에 투자하는 상장지수증권(ETN) 만큼 핫한 상품은 없을 것입니다. 75원 짜리가 650원에 팔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넘치는 탓에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팔려는 자보다 사려는 자가 많아지면서 ETN이 추종하는 지표 가치보다 ETN 거래가격이 무지막지하게 높게 거래됩니다. 이를 괴리율이라고 하는데 올해 5개 증권사가 괴리율을 좁히기 위해 추가 상장한 원유 ETN만 4억2000만주에 달합니다. 이중 2억9379만주가 소진됐습니다. 그럼에도 괴리율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수 억주를 쏟아부어도 괴리율은 잡히지 않고 유가는 급등락을 반복해 ETN 투자자 그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투자자를 위한 길일까요.

◇ 추가 상장해도 눈 녹듯 사라지고 괴리율은 커져


ETN은 증권사가 발행사이자 동시에 유동성 공급자(LP)가 됩니다. A증권사가 ETN을 발행한다고 하면 A증권사는 발행사이자 동시에 단일 LP입니다. 1억주(액면가액은 1주당 1만원)를 발행한다고 하면 발행사 겸 LP는 이 1억주에 대해 매도 호가를 내고 ETN 투자자들이 이를 매수하면서 LP가 보유한 물량이 시장에 풀리게 됩니다.

이때 ETN은 얼마에 거래될까요. 특히 요즘처럼 괴리율이 높을 때는 가격이 얼마에 형성됐는지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LP는 지표가치의 ±6% 내에서 매도호가를 냅니다.

예컨대 지표가치가 1000원이고 ETN 거래가격이 1300원(직전 체결가)이라 괴리율이 30% 차이가 난다고 치죠. LP는 940~1060원 사이에서 매도 호가를 칠 것입니다. 그런데 ETN을 사려는 투자자들은 1250원, 1200원, 1150원에 매수 호가를 냅니다. 그렇다면 1250원에 매수 호가를 낸 투자자부터 순차적으로 거래가 체결되면서 가격이 하향 조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그런데 LP는 100만주를 갖고 1000원에 매도호가를 내는데 1250원에 1000만주를 사겠다는 투자자들이 벌떼처럼 있는 상황입니다.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 보면 1250원이 아니라 1300원, 1350원에 사겠다는 사람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니 LP공급에도 매수호가는 올라갈 것입니다.

괴리율 너무 커져…LP “매도 호가 내고 싶어도 못 내”

괴리율이 벌어져 LP가 매도 호가를 내고 싶어도 못 낸 날까지 생기게 됐습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WTI 6월물이 43% 급락했던 다음 날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의 괴리율은 무려 771.31%나 됐습니다. 주당 74.60원짜리가 650원에 거래됐다는 얘기입니다. 지표가치의 1배를 추종하는 ‘신한 WTI원유 선물 ETN’도 42.52%의 괴리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괴리율이 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LP는 매도호가를 내고 싶어도 못 내게 됩니다. 지표가치가 1000원이고, ETN 가격이 8700원으로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과 비슷한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LP는 940~1060원 사이에서 매도 호가를 낼 것입니다. 그런데 ±60%의 레버리지 ETN 가격 제한폭을 고려하면 하한가는 3480원이 됩니다. LP가 낼 수 있는 매도호가가 하한가 밑에 있어 이날 LP는 아무런 역할을 못 했습니다. 지표가치 1배를 추종하는 신한 WTI원유 선물 ETN도 마찬가지입니다. 괴리율이 40%일 때도 하한가 아래에서 LP의 매도 호가가 형성됩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날은 2배 짜리인 레버리지는 물론 1배 짜리도 LP가 매도호가를 낼 수 없었다”며 “괴리율이 커지면서 LP만 돈을 번다는 비판도 나와 이날은 LP가 역할을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ETN이 추가 상장되고 있음에도 괴리율이 점점 커지니 LP만 돈을 벌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LP가 ETN을 상장하고 매도호가를 낼 때 지표가치에 가깝게 내지만 실제 거래되는 것은 지표가치보다 훨씬 높게 거래되기 때문입니다. 싼 물건을 투자자가 비싸게 사주니 LP는 본의 아니게 돈을 벌게 됩니다. 어차피 괴리율도 잡지 못하니 LP보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면 `사자`는 사람만 가득해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투자하지 않는 게 답”..ETN은 중도상환 가능

반대로 LP보고 무한정 ETN 공급을 늘리라고 해야 할까요? ETN은 증권사가 자기신용으로 발행하는 것입니다. ETN으로 돈을 벌었다고 해도 발행한 증권사가 파산하면 투자자는 한 푼도 돈을 못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 위해선 증권사도 리스크 관리가 필요합니다. 기껏해야 자기자본이 4조원인 증권사보고 원유 ETN만 더 발행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추가 상장 자체가 별 의미가 없게 됩니다. 삼성증권은 23일 2억주 규모의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을 상장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가 다시 27일 거래 재개와 함께 2억주 물량을 상장키로 했으나 이를 시장에 매도하진 않기로 했습니다. 문만 열어두고 투자자들이 매도하는 물량만 받아주기로 한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상장폐지로 가는 게 맞을까요? 아마 투자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상 유가가 50% 하락하면 레버리지 ETN은 지표가치가 0이 되면서 상장 폐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큽니다. 1배짜리 ETN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밤새 100% 하락하면 지표가치가 0이 됩니다. 뉴욕에서 거래되는 원유에는 상하한가가 없습니다. 20일 5월물처럼 300% 하락하는 날도 있었으니까요. 지표가치가 0이면 상장 폐지된다는 규정은 없으나 투자자들이 가져갈 몫도 0이 됩니다. 이런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 싶다면 투자자들이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발행사에 풋옵션(팔 수 있는 권리, 중도 환매)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 며칠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유가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습니다. ETN은 복잡하고 어렵고 까다로운 상품입니다. 공부하고 투자한다고 해도, 굳이 이 상품에 목을 맬 이유는 없습니다. 이왕 주식 투자를 시작한 것이라면 다른 종목을 찾아보는 게 훨씬 이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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