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의 사례에서도 구조조정 속도의 중요성은 확인된다. 그해 1월 한보철강이 5조원의 금융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데 이어 상반기에만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등이 부도를 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정권 말기 ‘레임덕’으로 인해 구조조정 시기를 놓쳤다. 특히 기아자동차가 부실로 위기에 몰렸을 때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 기업으로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정부는 시장불개입 원칙을 내세웠다. 기아차 구조조정 지연은 결국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외환위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외환위기는 1999년 대우그룹 해체로까지 이어지며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자본이 이탈하고 다른 기업으로 부실이 확산할 우려가 있다. 이미 중견기업인 STX조선해양이 쓰러졌고, 대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이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며 “1997년과 매우 유사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김성태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률이 높아질 경우에도 성장세가 둔화하겠지만, 구조조정이 지연돼 나타나는 영향보다는 작을 것”이라며 “구조조정을 하기로 했다면 속전속결로 하는 편이 낫다”고 설명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지난달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구조개혁 지연으로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잠재성장률이란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물가상승 등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적 성장률이다. 현재 3%대 초반인 잠재성장률이 더 하락한다는 것은 저성장이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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