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팔아 평생 모은 6억원 기부한 할머니…"그는 성자였다"

  • 등록 2022-01-03 오전 8:46:11

    수정 2022-01-03 오전 11:09:35

[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평생 남한산성 앞에서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지난달 3월 아동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청와대에 초청받았다는 남궁 교수는 이 자리에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고액 기부자로 참석한 박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2021 기부·나눔단체 초청행사’에 참석, 성금 전달을 마친 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고액 후원자인 박춘자 할머니 등 참석자들과 간담회장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남궁 교수에 따르면 이 행사는 연말연시를 맞아 이웃을 살피고 돕는 국내 주요 기부단체와 기부자 등을 초청해 격려하는 자리로 구세군, 월드비전, 적십자, 유니세프 등의 이사장과 TV에서 보는 유명 연예인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 남궁 교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로 구순이 넘은 박 할머니였다. 남한산성 길목에서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 6억 5000만 원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에 기부한 기부자로 소개된 박 할머니는 영부인의 손을 잡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온전히 남을 위해 살아온 박 할머니는 “저는 가난했다.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다. 아버지와 근근이 힘든 삶을 살았다”며 빈곤했던 어린 시절을 먼저 언급했다.

이어 박 할머니는 “열 살 때부터 경성역에서 순사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았다. 돈이 생겨 먹을 걸 사먹었는데 너무 행복했다”며 “그게 너무나 좋아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이 행복을 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박 할머니는 “그 뒤로는 돈만 생기면 남에게 다 줬다.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다”며 “그렇게 구십이 넘게 다 주면서 살다가 팔자에 없는 청와대 초청을 받았다. 이런 일이 있나 싶다. 그런데 방금 내밀어 주시는 손을 잡으니, 갑자기 어린 시절 제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의 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귀한 분들 앞에서 울고 말았다”고 했다.

박 할머니는 평생 모은 돈을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40년 전부터 길에 버려진 발달 장애인을 가족처럼 돌봤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2021 기부·나눔단체 초청행사’에 참석,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기부자인 박춘자 할머니와 성금을 기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남궁 교수는 “고령이 되자 남은 것은 거동이 불편한 몸과 셋방의 보증금 뿐이었다. 할머니는 셋방을 뺀 보증금 2000만 원마저 기부하고 거처를 옮겨, 예전 당신이 기부해 복지 시설이 된 집에서 평생 돌보던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며 “그러니까, 성자였다”고 했다.

이어 그는 “할머니가 청와대에 초청받아 영부인의 손을 붙들고 우는 장면은 어느 드라마 같았지만, 현실이었다. 지극한 현실이라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며 “팔십 년 전의 따뜻한 손을 기억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할머니, 그 손 때문에 모든 것을 남에게 내어주신 할머니, 옆자리의 영부인이 가장 크게 울고 계셨다. 그것은 압도적인 감각이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남궁 교수는 “그 자리의 많은 사람들 또한 치열한 선의로 살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여전히 ‘높은’ 무엇인가가 있었고, 앞으로도 일정 지위의 삶을 영위할 것이 분명했다”며 “하지만 할머니는 그 따뜻한 손을 나눠주기 위해 자신이 얻은 모든 일생을 조용히 헐어서 베풀었다. 구순이 넘는 육신과 이미 모든 것을 기부했다는 사실만큼 당신을 완벽히 증명하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끝으로 남궁 교수는 “그 패배가 너무 명료해 ‘봉사’라는 명목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떤 한 생은 지독하고도 무한히 이타적이라 무섭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것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직면했을 때 경험하는 경배일 것이다”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청와대에서 조우한 것은 화려한 건물이나 높은 사람들도 번듯한 회의도 아니었다. 범인으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영혼이 펼쳐놓는 한 세계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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