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간 국물의 복국, 들이켤수록 혀에 감겨오고

오태진 기자의 ''이 맛''
  • 등록 2007-11-02 오전 10:31:10

    수정 2007-11-02 오전 10:31:10

[조선일보 제공]
 


>> 통영 분소식당 ‘쫄복국’

바다낚시꾼들에게 ‘쫄복’은 여간 천덕꾸러기가 아니다. 떼로 몰려다니며 미끼를 따먹을 뿐 아니라 여차하면 목줄까지 끊어 놓고 달아난다. 낚시에 물려 올라온 놈이 심통 내듯 온몸을 부풀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갈면서 붉은 눈자위에 녹색 눈으로 쳐다보면 강태공들은 그만 어이가 없다. 잘해야 10㎝밖에 안 되지만 맹독을 품고 있어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다. 숱한 쫄복들이 갯바위에 패대기질을 당한다. 표준 명칭은 복섬이지만 흔히 쫄복이나 복쟁이로 불린다.

몸집 작아 먹을 것 없을 쫄복이어도 복국으로 끓여 놓으면 결코 알량하지 않다. 경남 통영 특유의 쫄복국이다. 여객선터미널 앞 분소식당은 40년 가까이 쫄복국(8000원·사진)을 차려낸다. 말간 국물은 첫맛이 슴슴 밋밋한 듯하다 들이켤수록 혀에 감겨온다. 목을 시원하게 타고 넘어가 이내 속을 가라앉힌다. 끝맛은 달큰하기까지 해서 한 방울 남김없이 비우게 된다. 쫄복 여덟 마리쯤에 콩나물, 미나리만 넣고 소금 간 맞추는 것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깊은 맛이 나는지 신기하다.

쫄복은 건져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잔가시를 뱉아내며 발라먹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하다. 먹을거리 귀하던 시절 가난의 흔적이 밴 음식이지만 그 어떤 복국, 복탕보다 훌륭하다. 아마도 거기 기울이는 정성 덕분일 것이다. 쫄복도 독이 든 내장, 알, 눈, 피를 일일이 제거해야 한다. 쭈그리고 앉은 채로 그 자잘한 것들을 하루 3시간씩 손질한다. 조봉(65) 할머니는 딸에게 가게를 맡긴 뒤 얼마 전 허리수술을 받고 들어앉았다. 평생 쫄복 손질이 남긴 허리병이다.

파무침, 깍두기, 김치, 멸치볶음, 파래무침까지 반찬들이 다 자극적이지 않고 얌전 정갈하다. 직접 담근 전어밤젓에도 정성이 깃들어 있다. 여느 밤젓과 달리 밝은 황갈색을 띤다. 대개 완두콩 모양 밤(위·胃)에 붙은 검은 내장까지 함께 담가 거무튀튀하지만 이 집은 내장을 일일이 떼어내 보기도 좋고 맛도 깔끔하다.

봄 도다리쑥국부터 여름 쑤기미매운탕과 삼벵이매운탕, 겨울 물메기탕까지 계절 차림들도 모두 통영 별미다. 독특한 식당 이름은 예전 수협 분소(分所) 곁에 가게를 차리면서 붙인 것이라 한다. 주인은 웃음을 나눠준다는 ‘분소(分笑)’로 해석해 달란다. 아닌 게 아니라 한 뚝배기 비우고 나면 절로 미소가 솟는다. 이 집을 비롯해 통영에선 ‘졸복국’이라고 하지만 졸복은 35㎝까지 자라는, 완전히 다른 복이다. 그렇다고 ‘복섬국’은 어색하니 방언이긴 해도 ‘쫄복국’이 낫겠다.

초기엔 어선에서 다른 고기에 섞여 잡힌 쫄복을 받아다 썼다고 한다. 지금은 70대 할아버지 세 분이 소일 삼아 낚아올려 하루 20~30㎏씩 대준다. 30석 홀과 열 명쯤 들어갈 방 하나. 새벽 낚시꾼과 어부, 장 보러 나온 통영 사람들에 외지인도 끊이지 않는다. 오전 6시~오후 7시. 첫째 월요일 쉰다. (055)644-0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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