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부터 책임지니 산재 줄었다…"처벌 신경 쓰면 서류만 늘어"

[공공기관 대해부]②자리 잡아가는 안전경영
공공기관 발주공사 산재 사망 최근 4년 중 최저 수준
발주부터 챙긴 안전 시스템이 공공기관 산재 사망 줄여
적응할 새 없이 강해지는 처벌에 민간은 여전히 ‘미흡’
“처벌보다 실효성 있는 산재 예방시스템 마련이 중요”
  • 등록 2022-05-15 오후 1:57:56

    수정 2022-05-15 오후 9:16:18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지난해 산업재해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근로자는 828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020년 산재사고 사망자 882명보다는 54명이 줄었다. 특히 경영평가 등을 통해 안전 체계를 갖춘 주요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에서 산재 사망자가 줄어든 것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11일 오후 4시쯤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신축 공사 중인 고층아파트의 외벽이 무너져내렸다.(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산재사고 사망자 수를 700명 초반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산재 감축이 발주 단계에서부터 책임을 강화한 시스템의 영향이라며 앞으로 처벌에만 신경 쓰는 방식으로 산재를 감축하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발주부터 챙긴 안전 시스템이 공공기관 산재 사망 줄여

15일 고용노동부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24개 공공기관(한해 공사발주 규모가 1000억원 이상)이 발주한 공사 현장에서 22명의 근로자가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공공기관 산재 사망사고 현황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승인을 내린 수치를 집계한 것으로 지난 2020년(31명)보다 9명이 줄었다.

지난해 공공기관 발주공사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최근 4년 중 가장 적다. 2018년 47명에 달하던 주요 공공기관 산재 사망자 수는 2019년 25명으로 대폭 감소한 뒤 2020년 31명으로 다시 늘었다. 이후 지난해 다시 낮아졌는데 이는 3년 전부터 공공기관 산재 예방 시스템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강화가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지난 2018년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근로자 고(故) 김용균씨 사망사고가 계기가 됐다. 이에 2018년 12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2020년 1월부터 시행되기도 했다. 개정법에는 산재 사망사고에 대해 원청 사업주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사업 발주자에 대한 안전보건관리 체계 확인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 산안법에 따르면 발주자는 건설공사에서 계획 단계에서 기본안전관리대장을 작성하고 설계자의 설계안전보건대장, 시공자의 공사안전보건대장을 확인하고 점검할 책임이 있다. 특히 발주자는 산정된 공사 기간을 단축하거나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공법을 변경하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자료=김웅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특히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작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공공기관 경영진을 문책하겠다”고 경고하면서 공공기관 대상으로 대대적인 산재 감축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에 공공기관은 임직원의 성과급 등을 결정하는 경영평가를 통해 산재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경영평가 항목에 협력업체의 산재 사망사고까지 포함한 안전관리 등급을 반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준원 숭실대 안전보건융합공학과 교수는 “발주자는 공사기간과 금액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 지시를 위반하거나 사고가 나면 재계약할 때 감점 혹은 입찰 제한이 있는 만큼 영향력이 크다”며 “해마다 경영평가를 받는 공공기관은 안전관리 체계를 주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고, 안전 관리비도 대폭 늘었다”고 설명했다.

적응할 새 없이 강해지는 처벌에 민간은 여전히 ‘미흡’

문제는 개정된 산안법을 활용해 실효성 있는 산재 감축 시스템을 갖춘 공공기관과는 달리 민간에서는 여전히 안전 체계가 미흡한 실정이라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전체 사망자 수의 70%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발생했고, 80%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한 근로자가 숨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산안법 개정 등의 대책을 마련한 뒤 지원 등을 통해 실효성 있는 산재 예방시스템을 만들기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처벌강화에만 신경 쓴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에 사업장에서도 효과 있는 안전 체계를 갖추기에 앞서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피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만 급급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산재 예방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국정과제에는 산재에 취약한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예방을 강화하고, 산업현장에 맞는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취임사에서 “산재사망사고를 막는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며 “산재를 획기적으로 감축시킬 수 있는 로드맵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사실 2020년에 시행된 산안법도 처벌이 강한 것에 비해 규제 자체가 엉성해 현장에서는 형식적인 서류상 안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민간에서도 발주자가 공사금액이나 기간을 적절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어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처벌 강화 위주의 대책만 마련하면 반짝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사업주 입장에서는 산재 감축보다 먼저 사법적 위험을 피하기 위한 대응에 나서면서 현장 안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서류만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그러면서 훨씬 안전에 취약하지만 관심에서는 멀어진 중소규모 사업장은 오히려 산재 감축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부작용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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