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許하라]"죄없는 여성은 어쩌라고" vs. "참고만 살라니"

반세기 넘은 이혼 청구 '유책주의' 논란
1965년 이후 유지, 2015년 대법원 7대6 팽팽
파탄주의 허용 시기상조 제도 뒷바침 미흡
'참고 살라' 무리, 시대 변화 반영해야
  • 등록 2019-06-16 오후 3:36:09

    수정 2019-06-16 오후 3:39:58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2015년 6월 26일 오후 대법정에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에 관한 공개변론을 열고 있다. (사진=대법원)


[이데일리 노희준 이성기 기자] 이혼 방식은 부부가 상의해 간단한 절차 등을 거쳐 법적 관계를 정리하는 협의 이혼과 민법 제840조가 정한 이유를 근거로 한 재판 이혼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지난해 기준 10명 중 8명(8만5600건·78.8%) 정도가 소모적 논쟁이 적은 협의 이혼을 선택하지만 나머지(2만3000건, 21.2%)는 법정에 나가 서로 얼굴을 붉히며 마지막까지 다툰다.

이혼 청구 사유는 법리적으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갈린다. 바람을 핀 배우자처럼 혼인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유책주의인데 대법원이 1965년 이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선량한 배우자(미성년 자녀)가 잘못이 있는 배우자에게 버림받아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일종의 보호장치다. 반면 결혼생활을 누가 깨뜨렸는지와 상관없이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면 이혼을 허용하는 제도다. 실제로는 따로 살고 서류상으로만 유지되는 무의미한 혼인관계를 청산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 축출 이혼 정서적·실질적 문제

유책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파탄주의 허용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무책 배우자나 일반 국민의 정서가 축출이혼(경제권을 가진 사람이 상대를 쫓아내듯 하는 이혼)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 크다는 점을 내세운다. 변화순 팸라이프가족연구소 소장은 “(무책 배우자는)죄가 없는데 왜 이혼까지 당하느냐,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하느냐는 정서적 저항이 크다”며 “감정적 문제가 파탄주의 도입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이혼 후 무책 배우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현실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지난 2015년 당시 대법원 공개변론에 참여했던 법무법인 숭인의 양소영 변호사는 “파탄주의는 경제적으로 평등을 이뤘기에 어느 일방이 축출이혼을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해외든 국내든 양성 간 경제적 불평등, 부부 간 불평등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 이혼 소송에서 낮은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비 문제는 무책 배우자의 이혼 후 삶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해외의 경우 손해액과 배상금의 1:1 관계를 넘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버금갈 정도의 위자료를 주고 있다. 반면 국내는 배우자 폭력과 외도로 이혼을 하는 경우에도 위자료가 3000만원 정도에 불과하고 많아야 5000만원을 넘기 어렵다.

부부가 함께 형성한 재산을 기여 비율대로 청산하는 재산분할 사정도 마찬가지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최대 50%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 소송에서 50%를 다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다. 양 변호사는 “국내에선 위자료가 현실적인 금액이 아니고 재산분할에서 배우자들이 향후에 발생할 장래 수입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며 “이혼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그들의 생존권은 어떻게 보호해야 할 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바뀌는 이혼 양상…시대 변화 반영해야

파탄주의 허용을 주장하는 이들은 시대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대적 약자인 여성의 축출이혼이 줄고 있고 결혼 생활이 사실상 끝난 상태를 어느 한 쪽의 책임 문제가 아니라 개인 행복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주문이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장은 “남성뿐만 아니라 외도를 한 여성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혼을 원하는 경우도 많아지는 걸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파탄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도 상당 부분 개선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수진 변호사는 “부부재산 중 공동으로 형성하지 않은 특유재산이 예외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려면 예전에는 결혼 기간이 3~5년은 돼야 가능했지만 이제는 1년 6개월로 단축되고 있다”며 “재산분할에서 부양적 요소를 고려하는 하급심 판결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형성한 공유재산이 아닌 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는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특유재산 증식 등에 기여한 경우는 재산분할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에서 `참고 살라`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유책주의에 따라 국가가 서류상 부부로 봉합시켜도 깨진 가정이 회복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여전히 유책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지만 법조계에선 파탄주의 허용을 시간상의 문제로 보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30년간(1982~2012년) 대법원 유책 배우자 이혼 청구 사건은 모두 171건이었다. 이 가운데 이혼을 해도 좋다는 판단을 받은 것은 44건이다. 부부가 서로 소송을 내거나 배우자 일방이 보복성으로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서로 잘못이 확실한 경우 등이었다. 그 외 사건에서 대법원은 모두 `참고 살라`는 결정을 내렸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방향성이나 시대 변화에 따라 파탄주의로 가는 것은 돌이킬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라며 “여성이 이혼했을 경우 충분히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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