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면 가슴이 탁~ ‘2000원의 평화’가 있네

전철타고 열차타고 ‘연천 고대산’
  • 등록 2009-06-10 오후 12:12:00

    수정 2009-06-10 오후 12:12:00

[경향닷컴 제공] ◆ 1코스는 지루하고 3코스는 가파르다. 2코스로 올라가 3코스로 내려오는 게 가장 좋다. 3코스 하산길에 표범폭포가 있다. 등산로에서 딱 100m 정도 벗어나 있는데 다녀올 만하다. 등산로에는 샘이 따로 없다. 해서 신탄리역 바로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물 한 병 정도는 사가는 게 좋다. 도시락도 사먹을 데가 없으니 싸가지고 가야 한다. 산행코스는 등산시간만 4시간 정도로 보면 된다.
 


◆ 이 일대 별미는 오리더덕구이다. 인근 가겟집에 물어보니 신탄리역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강변식당(031-834-8800)이 주말마다 줄 서는 집이라고 했다. 더덕을 섞은 오리고기 고추장 주물럭이다. 한마리 4만원, 반마리 2만8000원. 양이 많다. 어른 4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구이 다음에 오리뼈에 우려낸 수제비가 나왔다. 매주 첫째, 셋째 화요일 휴무.

전철비 빼고 열차는 편도 1000원(경로우대 500원), 입장료 1000원. 연천 고대산은 열차 타고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산은? 밋밋해 보이는데 전망은 꽤 좋다. 광활한 철원평야와 함께 북녘의 산들도 한 눈에 보인다. 제법 가파른 구간도 있어 산 타는 맛도 난다. 다만 때는 6월이고, 남북관계는 위태로우니 먹먹한 마음도 감출 수 없다.
 
▲ 등산객들이 경기 연천군 고대산 정상에서 눈 앞에 펼쳐진 철원평야를 바라보고 있다.

열차는 동두천에서 떠난다. 경원선이다. 종착역은 신탄리역. 매시 50분마다 1시간 간격으로 떠나는데 종착역까지는 딱 47분 걸린다. 신망리, 대광리, 신탄리 역사는 정겨운 간이역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대광리역은 현재 나무지붕을 수리하고 있어 어수선하긴 하지만.

주말엔 등산객이 많지만, 평일엔 노인들이 많단다. 하루 나들이 코스다. 노인들이 많이 내리는 곳은 종점 신탄리역과 바로 그 앞인 대광리역이다. 노인들은 이 열차를 꽃그림 열차라고 부른다. 꽃이 그려진 차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대산 2등산로를 오르는 등산객.
노인들은 여기서 뭐했을까? 대광리역에서 보신탕 먹고 분단관광지를 찾았다고 한다. 웬 보신탕? 대광리역은 시골의 조그마한 역사인데 맞은편 뒷골목은 보신탕 골목이다. 1981년 이 일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정착해 90년 구시울보신탕 집을 연 이성옥씨는 “군대짬밥 가져다 개를 키운다. 지금은 장사가 예전만 못하지만 과거엔 꽤 잘됐다”고 했다. 90년 자신이 보신탕집을 차릴 때에는 식당이 4개였으나 이후 20여개 늘었다가 지금은 10여개로 줄었다고 했다. 전철이 동두천 소요산까지 들어가자 연천으로 오는 노인들이 3분의 1 정도 줄었단다. 신탄리역에선 과거엔 주말이면 2000명을 넘겼는데 지금은 1200~1300명 정도 찾는다고 했다.

“노인들 대여섯명 가는데 관광도 조금 시켜달라고 전화가 와요. 그럼 승합차 대기시켜 놓았다가 열쇠 전망대, 철원 노동당사 같은 데를 모시고 가는 거죠. 온천도 꽤 잘됐는데 지금은 문을 닫았을 거예요. 노인들 중에는 실향민들도 많지요. 원래 이 길이 금강산 거쳐 원산가는 열찻길이잖아요. 안보관광지를 도는 여행사 버스도 있었는데 몇 해 전 보신탕집 때문에 망했어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는 안타깝고 답답하다. 보신탕 여행코스를 권하는 것이 아니다. 실향민들이 아직도 마실 가듯 북녘땅 코앞을 맴돌고 있는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가 숨을 턱 막히게 하기 때문이다. 모두 평화를 앞세우지만 정작 ‘공존’을 위한 노력은 크지 않다. 삭여도 삭여도 수그러지지 않는 망향의 한(恨)은 때로 분노로 변하기도 한다. 열차에서 얼큰하게 술이 올라 “빨갱이 새끼들 다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노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등산객들조차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이런 노인들은 안쓰럽고 측은하다.

고대산 표범폭포
경원선은 한국전쟁 때 중단돼 현재 신탄리역이 종착역이다. 2010년 예정으로 대마리역까지 5.8㎞ 연장공사를 하고 있지만 예산문제로 완공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종점 신탄리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에는 등산객들이 많다.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주차장과 매표소가 나온다. 산행 코스는 세 가지. 등산객들은 대개 2코스로 올라가 3코스로 내려오는 게 가장 무난하다고 했다.

겉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제법 맷집이 있는 산이다. 등산로 입구의 산길은 오밀조밀하다. 등산로는 넓지도 좁지도 않다. 아름드리 거목은 없고 잡목이 대부분이지만 햇살이 쉬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울창했다. 이런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쯤 오르면 칼바위 능선. 여기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숲에 가려있다가 전망이 탁 트이는데 산아래 신탄리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산너머로 철원평야가 펼쳐진다.

서울에서 왔다는 50대 후반의 등산객은 “수도권에서 돈 안들이고 찾을 수 있는 전망 좋은 산”이라고 했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대광봉 정상(827m)이다. 이후부터 산길은 편편하다. 삼각봉(830m)을 거쳐 고대산 정상(832m)까지는 40분 걸린다. 산행출발점부터 시작하면 2시간 정도다.

정상의 생김새는 산 아래서 본 것처럼 밋밋했다. 정상은 석축을 쌓고 헬기장을 만들었다. 전망은 좋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산은 천혜의 군사요충지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들은 멀찌감치 물러서있어 들은 넓다. “철원평야가 넓다더니 이렇게 광활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원평야 너머의 산줄기들은 북으로 이어진다.

6월의 산에서 북녘을 바라보는 심경은 묘하다. 한달음이면 갈 수 있는 땅이지만 60년 가까이 막혀있다. 게다가 북한은 핵실험에 이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기자와 인터뷰 약속을 했던 미국인은 방한까지 취소했다. ‘위기가 생활화’됐는지 한국인들은 무덤덤해 보인다. 한 매듭 풀리려다가 다시 꼬이기를 반복해온 남북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하다.

내려오는 길에 표범폭포가 있다. 발 한 번 담그고 가기 좋을 만한 못으로 폭포가 떨어진다. 못은 깊지 않지만 1분 이상 발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로 차다. 고대산은 마치 광활한 평야에 떠있는 섬 같은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막 물을 담그고 모를 심은 논은 조각난 유리처럼 반짝반짝거린다. 자연은 이리도 평화로운데 시국은 답답하니…. 고대산에 올라서 그저 메아리라도 저 산너머 북녘으로 보낼 수밖에.

-길잡이-

◆ 매시 50분 1호선을 타고 동두천역에서 내려 열차로 갈아탄다. 소요산역에서도 탈 수 있다. 다만 자리 잡기가 힘들다. 7월1일부터 열차 시간표가 바뀐다. 동두천에서 오전 6시30분이 첫차, 그 다음은 오전 7시30분이다. 이후 1시간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000원. 경로우대 500원. 신탄리역(031-834-8887). 고대산 입장료(쓰레기 수거료)는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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