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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전기화와 전력수급

  • 등록 2021-10-01 오전 10:02:27

    수정 2021-10-01 오전 10:02:27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우리나라는 전기 선진국이다. 고종황제가 우리나라에 처음 발전소를 건립하고 경복궁 후원에 750개의 전등을 점등한 것이 1887년의 일로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앞서 동양 최초였을 뿐 아니라 에디슨이 뉴욕 월스트리트의 J.P.모건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상업용 발전을 선보인 지 불과 5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동양에서 최초로 전기를 도입한 나라답게 지금도 전기 도입률 100%에 평균 정전시간은 연 8.6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전기요금 또한 선진국 중 가장 낮아 언제 어디서나 싸고 안정적인 전기를 쓸 수 있으니 전기에 있어서는 선진국 중에서도 최고 선진국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전기 선진국의 위상이 흔들리는 듯한 징후가 보이고 있다. 올여름 폭염이 지속되면서 전력 공급 예비율이 10% 아래로 떨어졌고 2011년 대규모 정전사태가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았다. 2011년 이래 꾸준히 발전설비를 늘려 설비 예비율이 40%를 넘고 있지만 실제 공급 가능한 전력만을 고려한 공급 예비율은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한 자릿수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나라의 전력수급은 송배전이 문제이다. 최대 전력수요를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발전 설비가 있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전기를 공급할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발전설비는 대부분 영?호남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도권으로 전기를 공급하려면 수도권과 영?호남을 잇는 송배전 선로에 발전설비를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2014년 밀양 송전탑 사건이 발생한 이후 우리나라의 발전설비는 수요처에 전기를 공급할 송전 인프라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국에 건설된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의 송배전망 연결 완료율은 현재 20%에 불과하고, 송전망에 접속 대기 중인 전력이 원전 3대에 해당하는 3GW에 달하고 있다.

신규 송배전 인프라 구축이 여의치 않자 한전은 기존 설비 활용을 극대화하여 송배전 용량을 확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배전선로나 변전소의 실제 접속 전력량을 면밀히 측정하여 여유가 있을 때마다 신규 발전설비의 접속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변전소의 용량을 늘리고 배전선로를 보강하기만 해도 현재 접속 대기 중인 3GW의 전력을 모두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기존 설비 활용 만으로 송배전 용량을 3GW나 늘릴 수 있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더 큰 문제는 향후 계속 늘어날 전력 수요에 대한 감당 능력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매우 쉽고 단순하다. 2020년 12월 발표된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대 전력수요는 2034년까지 10GW 증가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향후 늘어날 전기차와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핵심인 4차 산업혁명을 모두 고려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기존 설비 활용 만으로도 송배전 용량을 3GW나 늘릴 수 있으니 13년 동안 10GW 정도의 추가 송배전 용량은 충분히 확보 가능하다는 게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요지이다. 최대 전력수요 증가가 많지 않을 테니 송배전 용량에 별문제가 없을 것이란 게 정부의 해법인데, 과연 그럴까.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향후 전기수요를 좌우할 핵심 변화를 놓치고 있다. 바로 모든 것의 전기화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전기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스레인지가 인덕션으로 대체되고 난방도 전기 온수 보일러나 히트펌프로 대체되고 있다. 자동차만 전기화가 되고 있는 게 아니라 선박, 비행기까지 전기화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전기화는 현재 20%에서 2050년 50%로 2.5배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라 송배전 용량 역시 2050년까지 2~3배 증가가 필요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나온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전기화는 현재 미국과 비슷한 19% 수준이다. 그런데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전기화의 미래 전망치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전기화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된다면 2034년의 최대 전력수요 증가폭은 10GW가 아니라 60GW가 될 수 있다. 향후 10년 사이 송전탑에 대한 국민 여론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전력수급 대란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송배전 설비의 증설 없이 전력수급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분산발전에 있다. 분산발전이란 전력 수요처에서 소규모 발전설비를 통해 필요한 전기를 공급받는 것이다. 원거리에서 전기를 받을 필요가 없으니 송배전 인프라에 대한 추가 부담이 없는 건 당연하다. 분산발전이 가능한 수소 연료전지를 활용해 수도권의 전기화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를 감당하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도 달성해가면서 송배전 문제도 피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최대 전력수요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전기화에 따른 전력수급의 변화에 대한 근본 대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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