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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우월적 지위에 있는 정부의 독감백신 입찰관행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 신성약품이 정부가 매입한 독감백신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일부 제품이 상온에 노출돼 품질이 변질됐을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게 발단이다. 신성약품은 정부의 독감백신 입찰에서 모두 500만 도즈 가량을 따낸 업체다.
독감백신의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배경으로 정부의 ‘막무가내식’ 독감백신 입찰전횡이 지목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독감백신의 정상적인 시장가격을 무시한채 지나치게 낮은 입찰가격을 고집하면서 이번 사태를 야기한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정부와 독감백신 업체들이 판단하는 적정한 독감백신의 입찰가격에 큰 차이가 있다 보니 결국 4차례나 입찰이 유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잇단 유찰로 독감백신에 대한 최종 낙찰자가 결정되기까지 무려 한달 넘게 소요됐다. 지난 4일에야 5번째 실시한 백신 입찰에서 가까스로 최종 낙찰자가 선정됐다.
지난해 독감백신에 대한 정부입찰에서는 단 한번에 낙찰자가 선정됐다. 시기도 7월 30일로 지금보다 한달 이상 빨랐다. 올해에는 이처럼 최종 낙찰시기가 크게 지연됐음에도 정부는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독감백신의 접종개시 시점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9일 앞당기는 악수를 뒀다. 지난해 독감백신 접종 개시 시점은 9월17일이었는데 올해는 9월8일로 당겨졌다. 독감백신 접종시기를 무리하게 앞당기다보니 백신 유통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노출됐다는 게 업계의 항변이다.
독감백신 업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입찰제도 전반에 걸쳐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업계는 정부가 적정한 독감백신 입찰가격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체들은 “국내 독감백신 전체 수요의 60% 이상을 정부가 구매하다보니 정부가 제시한 가격에 일방적으로 휘둘릴수 밖에 없다”며 “백신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납품 업체들에게 적정한 마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지나치게 낮은 입찰가격을 고수하자 주요 업체들은 손실을 볼수 없다며 막판에 입찰거부 움직임마저 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는 “코로나19 비상상황에서 대승적 차원에서 독감백신 입찰에 참여해 달라”고 업체들에게 강권한 것으로 확인됐다.
독감백신업체들로서는 정부에 일정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백신공장을 효율적으로 가동조차 할수 없는 ‘을’의 처지에 놓여있는 상황을 정부가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턱없이 낮은 입찰가격을 제시해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정부 입찰에 참여할수 밖에 없는 구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독감백신은 조달청에서 백신입찰 전과정을 전담한다. 조달청이 입찰공고를 내면 독감백신 제조업체 대신 의약품 유통업체가 입찰에 참여한다.
질병관리청과 백신업계는 신성약품이 공급하려던 500만 도즈 가운데 일부 물량만 품질 변질의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독감백신을 맞아야 하는 국민의 불안은 여전하다. 질병관리본부는 2주간 샘플 조사를 거쳐 신성약품이 공급하려던 독감백신의 품질상태를 파악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