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림으로 은퇴한 CEO..톰킨스

  • 등록 2005-08-08 오후 2:08:07

    수정 2005-08-09 오전 10:40:16

[이데일리 조영행기자]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연을 위해 일하고, 그 것이 결국 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1961년 암벽등반과 스키를 즐기던 활동적인 18세의 뉴욕 청년이 배낭을 메고 칠레의 파타고니아를 찾아 왔다. 안데스산맥을 끼고 펼쳐진 푸른 숲과 풍부한 물줄기에 반한 이 청년은 그로부터 30년 뒤에 이 곳으로 되돌아 왔다. 이번에는 배낭만 달랑 메고 온 것이 아니라, 무려 1억5000만 달러의 거금을 손에 쥔 채로.

잘 나가는 기업가의 자리를 망설임 없이 던져 버리고 칠레의 원시림으로 떠난 이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등산용품 전문 브랜드 `노스 페이스`의 설립자인 더글라스 톰킨스(62)다.

왜 톰킨스는 파타고니아로 갔을까?

1973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브루스 채트윈은 파타고니아가 수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 탐험가를 불러 들인 신비의 땅이며, 망명가와 죄수, 몽상가들이 몰려든 은신처이자 해방구였다고 표현했다. 채트윈은 파타고니아를 찾은 시인과 모험가들의 유랑 기질을 `고향을 꺼리는 위대한 고질병`라고 일컫기도했다.

하지만 더글라스 톰킨스가 파타고니아를 찾은 이유는 유랑기질 때문은 절대 아니다. 

톰킨스는 1990년 딥 이콜로지 재단(Deep Ecology)을 설립하고, 노스 페이스를 처분해 벌어들인 1억5000만 달러로 파타고니아 일대에서 막대한 부동산을 사들였다. 현재 톰킨스와 그의 부인 크리스틴 맥디빗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제주도의 4.5배 크기에 달하는 3000 평방 마일(8000 평방 킬로미터)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파타고니아 소매 체인점의 CEO를 지낸 크리스틴 역시 상당한 재산을 보유한 재력가다.

톰킨스가 보유한 땅은 풍성한 숲과 수자원, 비옥한 토질 때문에 개발을 염두에 둔 목재업자와 전력회사, 농업 관계자 등이 탐내고 있다. 하지만 톰킨스는 정작 이 곳에서 나무를 베어내지도, 댐을 만들지도, 경작을 하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투자 가치가 높은` 부동산이 아니라 `훼손되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땅을 보호구역으로 전환해 일체의 개발을 금지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출입은 허용하되 경작이나 다른 토지 이용은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톰킨스는 이 지역을 환경 보호구역으로 보존한다는 조건이 받아 들여진다면, 이 땅을 칠레 국민들에게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칠레 국민들에게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진심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칠레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외국인이라고 평한다.

어떤 이들은 톰킨스가 파타고니아 지역에 핵폐기장으로 세우려고 한다고 비난하며, 또 어떤 이들은 앞으로 다가올 세계적인 물 부족에 대비해 물공급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장삿속이라는 의심을 갖고 있다. 심지어는 앵글로 색슨계 백인인 톰킨스가 유태인들을 위한 새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다는 험담까지도 나돌고 있다.

톰킨스가 1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보호구역은 이 곳의 깊은 숲에 서식하는 푸마를 따서 `푸말린 파크`(사진)로 불린다. 푸말린 파크는 코르코바도 만에서 아르헨티나 접경지대의 안데스산맥에 걸쳐 칠레를 이등분하고 있는데, 이 지역의 넓이는 1153평방 마일(2986평방 킬로미터)에 이른다. 톰킨스는 자신과 부인, 재단을 통해서 푸말린 파크를 포함, 칠레에서 모두 2000평방마일(5180 평방 킬로미터)의 땅을 사들였다.

톰킨스는 "우리는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 대한 반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거나 어리석지는 않다"며 주변의 의심과 비판에 개의치 않는 자세를 보인다. "정치적 논란을 피하고 싶었다면, 자연보호사업에는 뛰어들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굳이 칠레에서 그가 환경보호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칠레가 남미에서는 보기 드물게 역동적인 자유시장 경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자산 매입이나 개발에 대한 정부 규제가 적은 데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전통으로 자리를 잡은 반면, 칠레에서는 이 같은 관습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에 행동에 대해 온갖 억측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칠레의 주요 환경단체인 테람의 간부 로드리고 피자로는 “그가 환경보호라는 낯선 목표을 추구하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칠레 사람들은 그가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며 “차라리 다른 외국인들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땅을 샀다고 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톰킨스와 부인은 푸말린 파크에 인접한 아르헨티나쪽 지역에도 1129 평방 마일(2916 평방킬로미터)의 땅을 더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칠레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도 역시 민족주의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내 생각에, 인류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벼랑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다”고 톰킨스는 주장한다. 또 “우리의 경제 모델과 생태에 대한 무지, 인류의 지나친 확장, 위험한 기술 등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칠레의 생태학자들은 그의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수단에 대해서는 때로 이견을 보인다. 그의 방법이 칠레의 아주 사적이며, 깊숙이 얽혀 있는 정치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미국식 경영논리가 앞선다는 것이다.

피자로는 “(톰킨스가 추진하는) 프로젝트 자체는 아주 훌륭하며, 남들이 본 받을 만 하지만, 톰킨스 자신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톰킨스가 기업가적인 자세로 일을 추진하면서 남미의 후진적 관행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에서 많은 실수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일례로 1990년대말 125 평방 마일의 땅을 매입해 푸말린 파크의 남북지역을 합치려고 했지만, 당시 집권중이던 기독교민주당 정부에 의해 좌절됐다. 톰킨스가 최고의 가격을 제시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소유하고 있던 로만 가톨릭 대학은 이를 스페인 전력회사에 팔아 버렸다.

다행히 톰킨스는 현재 사회주의 정권과의 관계는 다소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가 칠레 남부의 코르코바도와 틱톡에 소유한 땅이 올해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이를 칠레 최초로 설립될 해양 보호구역까지 포함해 확대하는 계획이 현재 검토되고 있다.

칠레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카를로스 웨버는 “지방 정부는 숲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감자와 가축을 기르는 정착촌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톰킨스의 제안이 이 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최상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현재 칠레에서 이해도, 환영도, 감사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30년 뒤에는 사람들의 생각이 보다 성숙되고 또 사업의 결과를 보게 되면, 아무도 그를 적대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웨버의 이야기가 실현될 때까지 톰킨스가 살아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여생을 환경사업에 다 받치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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