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의 요구를 정면으로 뿌리쳤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경영권 분쟁 장기화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9일 KT&G는 긴급 기업설명회에서 여기저기서 파고드는 경영권 위협에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동안 주주중시 경영을 해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때문에 외국인 지분율이 60%대에 달하지만 기존 주주들이 KT&G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내심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경영권 방어 자문계약을 서둘러 맺은 것은 이 맥락이다.
◇ 문제는 주총 이후..경영권 대책마련 시급
KT&G가 큰 돈을 들여가며 외부에 구조 요청(SOS)를 부탁해야하는 처지까지 몰린 이유는 아이러니컬하다. 잘 분산된 기업지배구조가 거꾸로 칼이 되어 목을 겨누고 있는 격이다.
실상 KT&G는 민영화 이후 정부 관련 지분이 계속 매각되면서 기업은행 5.85%, 우리사주조합 5.75% 이외에 뚜렷한 우호지분이 없다.
지분 7.14%를 보유한 프랭클린뮤추얼조차도 우호지분인지 아닌지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칸측은 현재 지분 6.59%를 보유하고 있다.
오는 3월 주총은 지난 12월말 주주현황을 기준으로 표대결이 벌어진다. 아이칸측이 집중투표제로 표대결을 벌이면 사외이사 1~2 자리 정도 내주는 정도로 주총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이후다.
매우 취약한 지분구조를 보이고 있는 KT&G는 최대한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책마련에 서두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가가 만약 추가로 더 오른다면 방어가 더 힘들어진다.
◇ 기업은행 등 백기사 영입에 관심..자사주 8000억원 수준 부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자사주를 인수할 수 있는 백기사 영입이다. 경영권 위협을 벗어나기 위해 SK는 삼성전자와 팬택앤큐리텔을, 대한해운은 포스코와 대우조선해양를 각각 백기사로 끌어들인 바 있다.
우선 기업은행이 유력하다. KT&G의 지분 5.85%를 보유하고 있는 공기업 기업은행은 KT&G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강권석 기업은행 행장은 "아직 KT&G측의 백기사 요구가 없었지만 공기업으로서 역할이나 필요한 일이 있다면 최대한 협조를 하겠다"면서 백기사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다만 추가적인 지분 매입은 철저한 검토를 할 부분이고, 백기사로 나선다면 어느 정도 선이 적정한 지도 검토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KT&G와 사업관련이 있는 협력사와 관계사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SK와 대한해운의 경우에도 대부분 사업협력 관계회사에서 백기사로 나서줬다. 다만 자회사나 계열사는 자사주를 넘기더라도 의결권이 제한된다.
문제는 백기사 영입으로 자사주를 모두 넘기기에는 자사주 물량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전일 KT&G의 시가총액 기준(8조8044억원)으로 자사주 9.58%의 가격은 8000억원을 넘어선다.
과거 백기사로 나섰던 최대 규모가 삼성전자의 2500억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기사로서 KT&G의 자사주 물량을 다 소화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 ESOP 도입 유력..부인 불구 자사주 교환 가능성 남아
따라서 백기사 영입과 더불어 다른 방법을 동시에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직원들의 우리사주 취득을 지원하는 신우리사주조합제도(이솝, ESOP)가 유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솝이란 기업이 각종 정책적 지원을 제공해 근로자로 하여금 회사 주식을 취득하게 하는 우리사주제도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도입되기도 한다. 과거 현대상선이 경영권 안정화를 위해 도입한 바 있다.
KT&G는 이미 우리사주조합이 5.75%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기회에 종업원지주회사 형태로 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대기업간 자사주 교환도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제기되고 있다. KT&G는 이날 "포스코와 자사주 교환을 통한 경영권 방어를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대기업간 자사주 교환은 그 절차도 가장 간편하면서도 부담이 덜한 방법이여서 가능성이 남아 있다.
SK와 KT&G의 잇따른 경영권 위협을 지켜보면서 내심 위기의식을 느끼는 대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포스코와 삼성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포스코는 경영권 안정을 위해 SK텔레콤와 자사주 교환을 한 전력이 있다. 삼성전자도 지속적으로 인수합병(M&A) 위협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돼 왔다.
이외에도 국내외 투자자들이나 사모투자펀드(PEF) 등을 대상으로 자사주를 장외에서 매각하는 것도 방법이다. 외국계 증권사 대표는 "그러나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자사주를 넘길 경우에는 의결권 관리차원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급해진 KT&G로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이 때문에 동원 가능한 수단은 총동원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쓰든 방어에 따른 내외적 출혈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적대적 M&A로 악명높은 아이칸측의 창을 KT&G가 어떤 방패로 막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