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⑧김윤모 하나증권 기업본부장(중)

  • 등록 2001-04-27 오후 2:43:38

    수정 2001-04-27 오후 2:43:38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하나증권 기업금융본부 김윤모 이사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하나은행은 종금사를 그다지 많이 인수한 편은 아닌데요. ▲한 군데를 인수했죠. J종금이나 D종금 같은 곳을 비롯해 시도는 여러 곳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때 M&A업무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당시 신한경제연구소에서 일본 측 사람들과 같이 M&A 작업들을 많이 했었고 저희는 하나경제연구소와 같이 열명 정도로 팀을 꾸려서 작업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하면서 금융지주회사가 곧 생길거라는 것을 예상했습니다. 합작증권사의 대상으로는 살로먼스미스바니나 베어스턴스가 괜찮은 파트너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작업을 하실 때는 보람은행과 합병하기 전이죠. ▲그렇습니다. 보람과의 합병은 99년 1월이었으니까요. 그 후 하나증권 쪽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금융그룹이 증권사설립을 위해 선택한 방식은 기존의 증권사를 인수하는 것이었나요. 실제로 새로운 파트너를 찾지않고 보람증권을 인수해 하나증권으로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것은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증권사 때문에 보람은행을 합병한 것은 아니지만요. 당시 하나은행 투자개발실에는 25명 정도의 직원이 있었고 상단한 수익을 냈습니다. 산업은행에 이어서 2위였죠. -지점으로 나오신 건 언제인가요. 무슨 계기가 있었습니까. ▲어르신도 부산에 계시고 바쁘게 살다보니 제대로 뵙지도 못하고 해서 “이번 기회에 효도나 하자”는 생각에서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게 99년입니다. -부산에서 얼마나 계셨나요. ▲1년 6개월입니다. 하나증권으로 온 건 2000년 9월입니다. -증권으로 옮기게 된 건 어떤 이유입니까. ▲저희 부사장께서는 영업부시절 제 담당 부장이셨는데 굉장히 성질이 급한 분이셨어요. 저역시 성질이 급해서 의견차이가 많이 있었습니다. 싸우면서 정이 들어서 제게 일을 많이 맡겨주셨습니다.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께서 “증권에 누구를 보내야 하는데 누구를 보내나?” 하고 말씀하셔서 부사장께서 하나증권으로 옮기시게 됐고 같이 데리고 갈 사람으로 저를 지목하신 겁니다. 부산에 있는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내가 이쪽으로 가는데 당신이 나를 도와줘야지” 라고 하시더군요. 사실 은행 직원들은 증권사로 옮기는 것을 그다지 반기는 편이 아닙니다. 의리 때문에 옮기게 됐다고 하는 것이 맞겠죠. 저도 매니저생활을 오래한 사람인데 선뜻 내키는 제안은 솔직히 아니었습니다. <채권 브로커로의 변신> -채권분야에서 현재 하나증권의 위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바로는 수위를 다투고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뭐 크게 틀리지않습니다. 저희 조직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팀은 IPO, 2팀은 ABS, 3팀이 회사채, 4팀이 채권운용과 CP를 담당합니다. Market share로 보면 유통시장 브로컬리지의 경우 또 다른 채권영업팀과 합쳤을 때 상위권입니다. 개별로 봤을 때 김동환 팀장의 팀이 2~3위 정도 하는 것 같고. 어쨌든 3위안에는 항상 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블룸버그 집계로 발행시장의 경우 ABS는 6위를 했습니다. 올해는 LG증권에 이어 근소하게 2위를 기록했습니다. 회사채는 작년 8위를 기록했고 현재은 5~6위 정도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그룹사들은 자기 계열사 물량이 있어서 저희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어쨌든 빠른 기간안에 급성장한 하우스가 됐는데..비결은 무엇입니까. ▲뭐 특별한 비결이라기보다는…저는 무엇보다도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세계적인 증권사 중 어떤 곳은 개개인의 능력보다 팀웍을 중요시한다고 들었습니다. 1위를 모아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2위들만 모은 다음 이 2위들이 1위를 능가할 수 있도록 만드는거에요.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는 거죠. 처음 사람을 뽑을 때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좋은 사람을 뽑아야하니까요. 브로커의 특성상 매니저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고객이 제일 선호하는 사람 위주로 뽑았습니다. 다른 기관을 다니면서 벤치마킹도 많이 했구요. 이 업계가 좁아서 대충 돌아다녀도 인물정보는 거의 다 얻을 수 있습니다. 브로커리지 능력이 제일 뛰어난 사람을 뽑기보다는 성장가능성을 염두에 뒀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그 사람이 가진 잠재능력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개인의 캐릭터는 물론이고 성실성과 영어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죠. 저는 개인적으로 그룹사의 문화를 좋아합니다. 삼성, 현대 같은 거대기업에도 의외로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 일을 한다고 해서 사람을 모두 금융권에서 데려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룹사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기업의 사람들도 현재 꽤 있습니다. <브로커는 근성, 분석능력,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부하직원을 평가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그건 직업의식이죠. 브로커는 근성이 뛰어나야 해요. 한번 맡은 고객에겐 끝까지 딜을 따낼 수 있는 강한 승부근성을 가져야합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지적능력도 가져야죠. 현재 이 시장의 브로커들은 그다지 학구적이지 않아요. 오죽하면 “마**” 라는 용어까지 나왔겠습니까. 브로커는 오히려 공부를 증권사사람보다 더 열심히해야 합니다. ABS건 외환스왑이든 다른 사람보다 앞설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임원이 되면 세부적인 일에는 그다지 관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달라요. 구체적인 사항까지 일일이 체크합니다.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뭐냐면 전 식사시간에 동료들과 밥을 먹는 직원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무조건 고객과 밥을 먹으라고 강조해요. 고객과 직접 부딪히면서 배우고 스스로를 레벨 업 시킬 수 있단 말입니다. 리만 브러더스의 경우 헤드는 일반 직원들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한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빠징코에서 지배인들이 딜러를 일일이 관리하는 것처럼요. 그 곳에서는 점심을 동료직원이랑 먹으면 사유서를 제출해야한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직원들을 하드 트레이닝시켰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항상 과학적인 접근방식을 가지라고 요구합니다. “가격 좋으니까 이거 한 번 사시죠” 이런 류의 접근은 이제 탈피해야하지 않겠어요. 브로커는 기업분석능력을 갖춰야합니다. 그래야 고객들에게 상품판매권유를 할 수 있죠. 재무구조나 신용상태 등 그 기업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서 브로커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자료화해야 합니다. 저희는 실제로 그렇게 했고 저희가 만든 자료를 가지고 기관들을 상대로 IR작업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삼성캐피탈을 발굴해냈고 고객들에게 많은 수익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대한민국 최고의 채권애널리스트를 우리 하우스로 모시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리서치가 뛰어나야만 채권 브로컬리지 하우스로 각광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어요. <적응은 빠르게, 변화도 신속하게> -은행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을 보내셨는데 그때는 브로커를 상대하는 입장이셨죠. 상황이 바뀌었을 때 적응은 잘한 편이었나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제가 처음 은행지점장이 됐을 때 마흔이었어요. 빠른 편이었죠. 제가 발령받은 곳은 부산 시장통에 있는 지점이었습니다. 하나은행 120개 전국점포 중 CS(서비스 모니터링) 부문에서 115등을 했을 정도로 업무여건이 나쁜 곳이었습니다. 처음 가봤더니 창구여직원들도 시장통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거친 편이었고 청경은 아예 인사도 안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수위를 불렀어요. 그 사람이 원래 포커페이스여서 더 무뚝뚝해 보였거든요. “나는 당신이 웃고만 있어주면 바랄 것이 없겠다” 라면서 소주를 한 잔 사주고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수위의 집에 가봤더니 단칸방에서 너무너무 힘들게 살고 있길래 집사람을 시켜서 좀 돌봐주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일을 너무너무 열심히 하는 겁니다. 무조건 90도로 숙이고 손님이 깜짝 놀랄만큼 큰 소리로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후에는 제가 객장일도 시켰습니다. 서서 인사하는 일만 하지말고 여기서 일도 배우라는 의미였지요. 여직원들을 모아놓고는 “우리도 한 번 해보자” 라고 말했습니다. “아플때는 무조건 쉬어라. 휴게실에서 쉬는 것은 막지않겠다. 하지만 아프다고 찡그리면서 고객응대하지 마라. 특히 전화받으면서 고객을 상대하는 것은 질색이다. 그 일은 절대 금물이니까 조심하라” 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각각 전담업무를 맡겼어요. 목소리가 좋은 직원에게는 전화응대를 전문으로, 상냥한 직원에게는 창구업무를 담당하게 했습니다. 심지어는 여직원들의 머리모양이나 메이크업까지 일일이 참견했습니다.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를 불러다가 교육을 시켰죠. 그랬더니 그 다음달에는 글쎄 전국 3등을 하지 뭡니까. 흔히 부촌이라고 말하는 서울의 압구정동, 평창동, 동부이촌동 등 쟁쟁한 지점들을 제치고 3위를 해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3위하고 나서는 표창과 상금까지 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다음에도 계속 전국 10위권 안에 들었습니다. <”증권으로 옮길 때 사실 많이 울었습니다”> 여의도 하나증권으로 첫 출근하기 전에는 사실 많이 울었습니다. 연로한 부친께서는 은행지점장을 하다가 증권사 브로커로 간다니까 ‘너 혹시 사고쳐서 전출되는 거냐. 이러다가 쫓겨나면 어떡하냐’ 고 걱정을 많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첫 출근하던 날 7시에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평생 뱅커로 남을 줄 알았는데 브로커로 여의도에 입성하고 보니 기분이 무척 묘하더군요. 저는 일이 바뀔 때마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출근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요. 여의도로 옮기기로 결정한 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부산에 놔두고 홀로 상경했습니다. 6개월 동안 숙명여대 앞에서 하숙을 했죠. -숙명여대 앞으로 하숙집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시절 숙대 앞 하숙집에서 지냈기 때문입니다. 2000년이 됐지만 20여년 전 제 대학시절과 달라진 건 거의 없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문을 열면 바로 수돗가가 나오고 신발벗는 곳도 바깥에 있는 집 말입니다. 2000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정확히 6개월을 그 집에서 지냈습니다. 겨울이라 무척 추워서 지내느라고 혼났습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이불하나, 옷걸이 하나로 6개월을 버텼습니다. <여의도의 젊은 분위기를 느끼기위해 대학촌에서 6개월간 하숙도> -딜러들을 상대로 직접 호가를 부르며 브로커 업무도 하셨나요 ▲딜러들의 경우 요즘 급속도로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저희 쪽도 마찬가지구요. 그러다보니 마흔이 넘은 제가 일일이 딜러들과 호가를 부르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소위 이쪽에서 나이 좀 지긋한 사람들과는 호가를 부르는 사이였습니다. 하하. 그래서 젊은 팀장을 영입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연령추세는 점점 더 낮아질 겁니다. -낯선 여의도에 오셔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궁금합니다. ▲은행가와 증권가는 상당히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여의도에서는 출근시간이 8시로 은행보다 빠르잖아요. 은행에서는 9시까지하면 됐는데 아주 피곤하더군요.(웃음) 우선 여의도에서는 아침에 모든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아요. 가방을 들고 입으로는 음식을 먹으면서 잰 걸음걸이로 어디론가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여의도의 분위기는 좀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행업무는 그래도 낭만이 있는 비즈니스에요. 은행 재직시절 요즘같이 날씨가 좋은 때에는 여직원에게도 “미스 김.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뭐하고 있나. 도시락이라도 싸들고 삼청공원이나 갈까?”라는 말도 종종 했었죠.(웃음) 그런데 여의도에서는 온통 “money” 라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증권, 특히 채권쪽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은행보다 분위기가 자유로운 것은 확실합니다. 은행원들은 와이셔츠 색깔도 거의 흰색으로 통일하고 넥타이도 트레디셔널한 스트라이프 무늬를 많이 매요. 저는 빨간색 넥타이를 여의도에 와서 처음으로 매 봤습니다. 모셨던 행장께서는 여름에도 긴팔 와이셔츠를 입으라고 하셨고. 양말도 검정이나 잿빛 계통으로 신고 배지도 항상 착용해야 합니다. -완전히 적응하는데 까지는 얼마나 걸렸습니까. ▲1년 정도입니다. 아직까지 낯설 때도 많습니다.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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