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미 증시, 스캔들과 바닥논쟁으로 얼룩

  • 등록 2002-12-26 오후 1:50:44

    수정 2002-12-26 오후 1:50:44

[edaily 강종구기자] 올초 미국 증시의 출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9.11테러 여파로 인한 충격 이후 급등장을 펼치던 증시는 올해 첫 주를 상승세로 시작했다. 개인투자자들은 물론 내로라하는 투자전략가들도 올해 증시를 낙관했다. 일부 비관론자들이 줄기차게 경고성 멘트를 날렸으나 "그들은 언제나 그랬다"며 외면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여기에는 주가가 "설마 3년 연속 하락하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가 묻어 있었다. 신경제라는 조어를 만들어낸 90년대 거의 10년간에 걸친 미국 경제의 호황과 90년대말 기술주 열풍에 대한 향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 증시는 결과적으로 3년 연속 하락을 앞두고 있다. 아직 올해를 마감하지 않았지만 S&P500지수는 24일(현지시간) 현재 892에 머물고 있다. 미친 듯이 상승한다 해도 올해 초 지수대인 1160선의 회복은 사실상 물 건너간지 오래다. 사라지지 않은 거품의 악령과 "미국 주식회사"의 추락 1~2월 약세를 보이던 주가가 3월 다시 급등양상을 보이며 전고점을 돌파할 때까지만 해도 "그러면 그렇지"하는 심리가 증시를 지배했다. 강세론자들은 비관론자들을 몰아붙였고 목표주가를 잇따라 상향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실적과 실물 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는 주가상승은 모래바다에서 만나는 신기루에 불과했다. 4월 이후 증시는 길고 긴 하락으로 방향을 잡았다. 주가하락의 여정은 길 뿐만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었다. 4월이후 S&P500지수는 4개월 연속 하락했다.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한 지지선으로 인식됐던 1000포인트도 6월에 힘없이 무너졌다. 3년 연속 주가하락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기업 실적에 대한 우려였다. 2월 6일 "기술주의 황제" 시스코시스템즈는 11년만에 처음으로 분기매출이 감소했다고 발표했고 다음날인 7일 투자자들은 주가를 18개월래 최저가로 떨어뜨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해 11차례에 걸친 금리인하로 커지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실적악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회계스캔들은 올해 미 증시를 억누른 가장 큰 악재중 하나였다. "제 2의 엔론"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며 증시를 나락으로 이끌었다. 월드컴은 38억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가 들통나며 회계스캔들의 2막을 열었다. 월드컴은 결국 사상 최대규모인 330억달러 규모의 파산신청을 7월 21일 법원에 제출했다. K마트 글로벌크로싱 등도 분식회계 의혹을 받으며 결국 파산했고 심지어 "가장 투명한 기업"이라는 칭송을 받던 제약회사인 머크사도 분식회계의 스캔들에 휘말렸다. 세계 최고기업이라는 제너럴일렉트릭(GE)을 포함해 기술주의 상징인 마이크로소프트,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인 GM은 물론 IBM과 제록스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까지 분식회계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달에는 17일(현지시간) 초대형 생명보험사인 콘세코마저 파산보호신청을 내며 월드컴-엔론을 잇는 세 번째 규모의 파산으로 기록됐다. 회계스캔들은 연중 무휴로 미국 증시를 괴롭힌 것이다. 7월 24일 S&P500지수는 결국 지난해 9.11 테러 당시에도 지켜졌던 900선과 800선을 모두 뒤로 하고 775선까지 밀렸다. 다우지수는 7500대로, 나스닥지수도 1100대로 후퇴했다. 회계스캔들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미국 기업의 재무제표에 부정이나 오류가 없다는 경영자들의 "인증서"를 받기로 하면서 악재로서의 위력은 일단 소멸했다. 그러나 월가 전문가들은 아직 미국 상장기업 5개사 중 1개사 꼴로 분식회계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가도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시티그룹과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은 월드컴의 분식회계를 방조했거나 조장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이미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또한 90년대 후반 잘 나가는 기술주들을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 가짜 투자보고서로 투자자들을 속이거나 신규공개(IPO)주식을 투자은행 고객사 경영진에게 특혜배정했다는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다. 메릴린치는 애널리스트들이 스스로는 "쓰레기같은 주식"이라고 평가하는 종목들을 매수추천한 사실이 E-메일을 통해 드러나며 1억달러의 벌금을 받았다. 시티그룹 소속 애널리스트이자 "통신주의 전도사" 잭 그룹먼도 AT&T 등의 종목추천을 거짓으로 한 사실이 들어나며 자리를 잃었다. 월가 스캔들은 SEC 뉴욕검찰 미국증권업협회(NASD) 등이 중재에 나서며 투자은행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독립리서치사를 육성하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투자자들의 신뢰가 회복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급락하는 주가속 바닥론 "말잔치" 주가가 계속 새로운 바닥을 찾아 여행을 계속하자 올 여름을 전후해 "주가 바닥논쟁"이 거세게 일었다. 주가하락이 한창 진행중이던 5월 찰스스왑증권의 리서치부서는 주식투자수익률이 채권투자수익률을 3년 연속 밑돌았다며 주식시장이 바닥을 쳤거나 곧 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주가는 이후에도 더욱 하락했지만 전문가들은 각종 잣대를 들이대며 설왕설래를 계속했다. 6월에는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모건스탠리의 바톤 빅스 마저 "미국 증시가 조만간 랠리를 보일 것"이라며 비관론을 접었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데 주가는 온갖 주변 악재로 떨어졌다며 "대단히 저평가됐다"는 설명도 덧붙였지만 미 증시는 그 후 4개월여 동안 20% 가량 더 떨어졌다. 골드만삭스의 유명한 낙관론자 애비 조셉 코언 여사도 같은 달 미국 증시가 20% 가량 저평가됐다고 부르짖었지만 떨어지는 주가에 머쓱해야 했다. 낙관론자들이 바닥론을 주장하는 동기도 다양했다. 어떤 이는 미국 언론의 증시기사들이 모두 비관론으로 가득차 있다며 역설적인 바닥론을 제기했고 기업의 자사주매입이 늘고 있는 것을 바닥의 신호로 감지하기도 했다. 인덱스펀드에 자금유입이 증가하고 있다며 "주가 바닥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입질도 있었다. 주가가 급락했던 7월과 9월 및 10월초에는 선물시장의 변동성지수인 VIX가 바닥론을 재는 저울로 등장했다. CBS마켓워치는 설문조사를 통해 다우지수 7000선이 바닥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최대 채권뮤추얼펀드인 핌코 토탈리펀펀드를 운용하는 빌 그로스회장은 다우지수가 5000선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해 투자자들을 우울하게 했다. 비관론자들은 "걷히지 않은 거품이 아직 많다"며 맞섰다. 메릴린치의 수석투자전략가 리차드 번스타인은 "투자자들이 "언제가 바닥이냐"고 질문하지 않을 때가 비로소 바닥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비관론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비관론자들은 S&P500기업의 PER가 역사적인 평균치 15~18에 비해 너무 높다며 주가가 적정가격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이른바 "항복(카피추레이션)"논쟁도 지겹도록 이어졌다. 비관론자들은 모든 투자자들이 백기를 들지 않는 한 바닥은 없다고 외쳤다. 투자자들이 일거에 투매에 나서며 증시가 대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져 완전한 손바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긍정론자들은 "점진적인 항복이 진행중"이라고 반박했다. 끊임없는 바닥논쟁속에서 주가는 춤을 췄다. 주가는 7월 23~24일 바닥아닌 바닥을 찍고 반등했지만 10월초에는 7월보다 더 낮은 바닥을 기록하며 다우지수를 7000선 일보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그러자 "이번엔 정말 바닥이다"는 말이 흘러나왔고 이후 11월말까지 주가가 20% 가량 급등했다. 이후 바닥논쟁은 "새로운 강세장이 왔다"는 강세론과 "베어마켓랠리에 불과하다"는 신중론으로 바뀌었다. 강세론자들은 이제 미국 경제와 세계경기가 내년에 호전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주가도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이라크와의 전쟁가능성이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고 기업 실적도 더 나빠질 것이라며 주식투자 비중을 줄이라고 권하고 있다. CSFB는 20일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비중을 줄이고 대신 유럽증시에 투자하라고 추천했다. 개인투자자들도 아직 3년간의 약세장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비즈니스위크의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 개인의 56%는 내년 미국 증시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36%는 미국 기업의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약세장의 희생자, 주식뮤추얼펀드 증시 침체로 인한 최고의 희생자는 미국 증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왔던 주식뮤추얼펀드와 펀드에 가입한 주주들이었다. 증시침체로 손실이 늘어나자 자금이탈이 줄을 이었다. 5월까지 그럭저럭 순유입을 이어가던 주식뮤추얼펀드의 자금흐름은 지난 6월, 9개월만에 순유출로 돌아섰다. 일단 감소세로 시작한 펀드의 주식투자자금은 7월에는 1주일 동안 200억달러 가까이 빠져나가는 신기록을 작성하며 급속도로 줄었다. 주식뮤추얼펀드의 자금이탈은 이후 10월까지 계속 이어졌다. 자금이탈은 11월 5개월만에 순유입으로 돌아섰지만 12월에는 다시 순유출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뮤추얼펀드 투자가구수도 14년만에 줄어드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특히 3분기는 주식뮤추얼펀드로서는 기억하기 싫은 기간이었다. 펀드자금조사기관인 AMG데이타서비스에 따르면 분기기준 사상 최대규모인 511억달러가 유출됐다. 수익률도 역시 최악. 2분기와 3분기 주식뮤추얼펀드들은 평균 19%씩의 손실을 기록했다. 기술주와 성장주를 집중 편입한 펀드들은 손실폭이 더 컸다. 90년대말 벌어들인 수익을 몽땅 까먹고 원금의 10~20%밖에 남아 있지 않은 펀드들도 수두룩했다. 세계 최대 뮤추얼펀드로 이름을 날리던 피델리티의 마젤란펀드는 한때 운용자산규모 3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고 뱅가드500인덱스펀드도 채권펀드인 토탈리턴펀드에 밀려 2위에 만족해야 했다. 뮤추얼펀드가 사양길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운용자산 급감으로 수수료로 펀드매니저들의 연봉을 지급하기도 어렵게 된 중소형 펀드들은 잇따라 폐업을 선언하거나 더 큰 펀드에 합병됐다. 미국 뮤추얼펀드의 합병건수는 지난해와 올해 2년동안 1100건에 달했다. 이 바람에 투자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펀드비용만 늘어나 손실에 지친 투자자들의 주름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투자자들의 펀드비용은 올해 2000년에 비해 17% 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펀드매니저들의 해고도 늘어났다. 미국 5위 펀드운용사인 푸트남의 경우 한꺼번에 5명의 매니저를 해고조치했고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애널리스트를 내쫓는 운용사들도 적지 않았다. 이 바람에 증권사 리서치부서에 대한 의존도는 더 심화됐다. 하반기 들어서는 기업과 투자은행을 거친 투명성 논란이 뮤추얼펀드로 번졌다. 투자자와 감독당국들은 뮤추얼펀드들이 기업들에게는 정보공개의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속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며 비난했다. 투자자들은 뮤추얼펀드의 종목편입내역을 더 자주 공개할 것과 기업주총에서의 위임투표 내역의 공시를 요구했다. 뮤추얼펀드들은 또한 펀드수수료가 어떻게 산정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불평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 산업별회의(AFL-CIO) 등은 피델리티 본사앞에서 위임투표 내역을 공개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SEC도 펀드정보의 공개확대를 골자로 하는 뮤추얼펀드 개혁안을 제출해 의견수렴까지 마친 상태다. 미국 증시와 세계 증시를 호령하던 뮤추얼펀드 그룹들도 결국 "투명성제고"라는 시대의 요구를 비껴가지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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