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th SRE]SRE 10년..신평, 기본으로

신용평가 정상화 위한 '과도기'..신뢰도 제고 노력 펼쳐야
시장, 방향성은 '공감'.."변화 지속해야"
  • 등록 2014-11-10 오전 10:40:00

    수정 2014-11-10 오전 10:40:00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신용평가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평가사 스스로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시장에서는 노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데일리가 지난 2005년 4월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시장 참여자들의 신용평가사에 대한 진단이다. 그 후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신용평가 시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신평사들에 대한 이같은 시장의 견해는 10년 동안 얼마나 개선됐을까. 시장참여자들은 최근처럼 신용평가 시장이 요동친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동양그룹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사태 이후 신평사들은 줄곧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신평사들이 동양그룹의 신용등급을 법정관리에 앞서 미리 강등하며 시장에 경고했다면, 수만명의 피해자가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리고 금융당국은 동양 사태의 책임이 모두 신평사에 있다는 듯 유례없이 강도 높은 신평사 제재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신평사가 기업과 뒷거래를 통해 등급 하향을 미루는 등 등급을 조작했다는 과격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기업에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신평사 위상이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10년 전 SRE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신평사 스스로 노력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때다.

◇신평사 “달라지겠다”


지난 6월 금융감독원이 신평사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를 예고한 후 신평사들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신용등급 강등을 두고 주저하지 않았다. 시장이 재무적으로 ‘위험하다’고 감지한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이 이어졌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상반기 한국기업평가의 신용등급 상하향 비율, 즉 상향기업 수를 하향기업 수로 나눈 수치는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0.27배로 하락했다.

신용등급이 하향된 기업이 상향된 기업 대비 가장 많다는 얘기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상반기 신용등급이 변경된 33개 업체 중 등급이 하향한 기업은 23개로 상향한 기업보다 월등히 많았다.

신용등급 하향 속도도 빨라졌다. 지난해 GS건설이 해외 사업장에서 대규모 손실을 냈을 당시 신평사는 GS건설의 신용등급은 하향했지만, 타 건설사의 신용등급을 함께 내리지는 않았다. 건설사들의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난 후에야 주요 건설사에 대한 신용등급 조정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 현대중공업이 2분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자 한기평은 발 빠르게 국내 주요 조선사들의 신용등급을 함께 내렸다. 한신평과 NICE신용평가는 조선사들의 신용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또한 등급별 차별 없는 하향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AAA’급이나 ‘AA’급처럼 우량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것. 한기평은 신용등급 ‘AAA’인 포스코를 ‘AA+’로 끌어내렸고, 한신평은 역시 ‘AAA’급 기업인 KT에 ‘부정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시장 “부족하다”..방향성은 ‘공감’

신평사들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시장은 공감하면서도 아직 부족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동안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만큼 신용등급 정상화를 위해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신평사들이 부여한 기업의 신용등급은 국제 신평사가 부여한 등급 대비 많게는 7~8단계가 높아 비판이 거셌다.

20회 SRE에서 최근 신평사들의 등급 하향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시장참여자 139명 중 무려 60명이 ‘당국 제재를 앞둔 보여주기식 하향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는 신평사의 신용등급 하향이 ‘A’급 또는 ‘BBB’급 등 비우량 기업들에 집중돼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자구 계획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을 만큼 이미 재무 위험이 드러난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신용등급 하향이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AAA’급 기업인 포스코나 KT의 신용등급, 신용등급전망 조정이 있기는 했지만 AA급에 대한 포괄적인 조정도 이어져야 한다는 충고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발 빠른 신용등급 하향 움직임 속에서 ‘AA’급 기업이 ‘A’로 내려앉은 경우는 ‘AA-’였던 대림산업이 ‘A+’로 강등되며 우량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한 정도다.

같은 질문에 ‘하향 속도와 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답은 41표를 받았다.

시장 참여자들은 신평사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신평사가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신용평가 정상화를 위한 과도기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신평사들이 이번 과도기를 잘 넘기며 기업의 신용등급 키를 맞추는 ‘매핑(Mapping)’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등급 하향 움직임이 있을 때 과대 평가된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하향해 등급 인플레이션을 해소해야 한다는 뜻이다.

SRE 한 자문위원은 “지금이 신용등급 하향을 이어갈 적기”라며 “금리가 낮은 수준인데다 회사채 품귀 현상도 발생하고 있어 신용등급이 하향해도 시장이 금리 충격을 덜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평 시장, 틀을 바꿔야


신용평가 시장 정상화를 위해 평가사의 노력이 가장 우선시돼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이익을 내는 구조에서는 신평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는 신용평가 시장 개선을 위해 다양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의 제도 개선 움직임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가 주도한다고 해서 시장 신뢰도가 곧장 높아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20회 SRE에서도 시장 참여자들의 우려가 그대로 나타났다. 정부와 국회의 신용평가제도 개선 움직임에 대해 139명 중 80명(58%)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시장이 정부의 개입 방식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SRE 한 자문위원은 “정부가 개입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며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독 기관이 주먹구구식으로 제도를 개선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가 이미 신용평가 제도 개선에 나선 만큼 이를 무조건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 경우 신용평가 시장에 충격이 가장 적고, 신평사 역량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신중하게 찾아야 한다는 충고다.

시장은 현재 정부와 국회가 논의하고 있는 신용평가 시장 제도 개선 방안 중 ‘기금이나 발행분담금 등 신평사가 수수료에 얽매지 않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에 가장 많은 표를 던졌다. 20회 SRE에서

‘정부가 나서 시스템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 66%가 수수료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신평사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냉정하게 기업의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신용등급 하향에도 적극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신평사가 정해진 순서대로 기업의 신용등급을 매기는 순환평가제나 정부가 신평사를 지정하는 지정제 등 제도 개선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33%로 그 뒤를 이었다. 이 역시 신평사가 수익에 얽매이지 않고 신용평가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다만 시장은 신평사가 수익을 걱정하지 않게 될 경우 역량 제고 등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장치 마련이 필수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SRE 설문에 참여한 한 시장 참여자는 “만약 신용등급을 높게 평가해 금융기관이나 투자자가 손해를 봤을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정비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RE 자문위원도 “이익이 보장되면 신평사가 기업 신용등급 평가에는 엄격할 수 있지만 신용평가 체계 개선, 연구개발 등 활동에는 게을러질 수 있다”며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하고, 나머지는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신용평가를 감시하는 독립 기구나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은 14표에 그쳤다. 이미 금융감독원 등 감독당국이 존재하는데다 신평사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신규 신평사 진입을 허가해 신뢰도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시장 참여자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제4 신용평가사 등 신규 신평사 진입을 장려해 신뢰도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답변을 택한 응답자는 6명에 불과했다.

변화 지속돼야..“기업도 생각 바꿔라”

시장 참여자들은 금융당국의 신평사 제재로 시작된 신평사들의 등급 하향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평사들이 최근 앞다퉈 신뢰도 제고를 외치며 경쟁하고 있는 모습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평사들이 수익 저하 등 어려움을 겪으면 자칫 예전처럼 신뢰도보다 고객 확보에 주력하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신용평가 시장에서는 이미 등급 하향에 적극 나선 기업이 고객을 잃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개 신평사에서만 신용등급을 받으면 되는 현재 상황에서 만약 3개 신평사 중 한 신평사만 등급을 하향했다면 기업이 등급을 내린 신평사를 이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관행적인 모습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도 시장 참여자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기업들이 돈을 내는 ‘갑’의 입장에서 신용평가 서비스를 이용해온 만큼 아직도 수수료를 무기로 신평사를 압박하는 모습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장은 신용평가3사가 모두 함께 수익보다는 신뢰도 제고를 선택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모든 신평사가 엄격하게 신용평가에 나선다면

‘갑’인 기업이라고 해도 수수료로 신평사를 압박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SRE 한 자문위원은 “이 기회에 시장점유율을 높이겠다고 나설 경우 당장은 고객을 늘릴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시장이 해당 신평사의 등급을 신뢰하지 않아 결국에는 고객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투자자가 ‘A 신평사가 믿을만 하니 A 신평사의 신용등급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내면 기업이 이같은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관, 보험 등 회사채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신평사에 대한 신뢰도 제고에 기여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얘기다.

SRE 자문위원은 “투자자가 이 신평사의 신용등급은 못 믿겠다면서 투자를 꺼려하면 기업이 무조건 신용등급이 후한 신평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등급을 대하는 기업들의 인식도 점차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신용등급 하향을 극도로 꺼려왔다.

신용등급이 하향하면 회사채 등 시장 자금을 조달할 때 더 많은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재무지표의 숫자만을 개선해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이미 시장에서는 해당 기업의 실질적인 재무 위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 최근 ‘AA’급 기업들의 회사채 흥행이 지속되는 가운데 위험 산업에 속한 일부 기업들이 높은 신용등급에도 회사채 미매각의 고배를 마시는 것도 이 때문이다.

SRE 한 자문위원은 “회사가 어렵지 않은데 높은 신용등급, 유지하지 못할 등급을 쥐고 있다 보니 오히려 자금조달 자체가 안 된다”며 “차라리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금리는 다소 오르겠지만 회사채 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0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20th SRE는 2014년 11월1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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