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화려한 날은 가고"

신규 펀드 러시로 고달픈 경쟁만 남아
  • 등록 2003-04-09 오후 2:09:30

    수정 2003-04-09 오후 2:09:30

[edaily 강종구기자] 월가 대형 증권사에서 잘 나가던 주식전문가였던 앤디 스코프(37세)는 2년전 회사를 그만두고 헤지펀드회사 사장으로 변신했다. 연봉이 적어서도 아니고 회사에 다른 불만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순전히 “헤지펀드의 화려함”이 좋았다. 모건스탠리에서 100만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던 스코프가 아내의 반대를 뿌리치고 사표를 던진 것은 “갑갑함”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야심찬 젊은이었던 그는 자유롭고 다양한 투자기법을 활용할 수 있는 헤지펀드의 매력에 이끌려 “포인트레이즈캐피탈"이라는 자그마한 회사를 차렸다. “2년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는 아마도 아내의 만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사표를 낼 생각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헤지펀드업계에는 이제 화려함은 사라지고 고달픈 경쟁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앤디 스코프는 1000만달러를 가지고 헤지펀드를 시작했다. 이중 일부는 친구들이 투자한 것이다. 그러나 13개월이 지난 지금 약 10%를 손해보고 있다. 빚만 잔뜩 지게 된 스코프는 큰 집을 팔고 작은 아파트로 가족들을 이사시켰고 롱 아일랜드에 있는 별장도 팔려고 내놨다. 2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헤지펀드는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주식에 투자하면서 지난 4년 연속 수익을 낸 투자상품을 꼽으라면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투자하겠다는 손님도 계속 늘고 있다. 겉으로 볼 때 헤지펀드는 투자업계의 별처럼 보인다. 헤지펀드가 각광을 받게 된 때는 공교롭게도 주식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진 2000년부터. 1995년 이후 꾸준히 수익을 내기는 했지만 S&P500지수나 다우존스지수에 비해 초과수익을 내기 시작한 것은 장기 약세장의 출현과 때를 같이 한다. S&P500지수와 다우존스지수는 올해까지 4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지만 헤지펀드는 많이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수익을 내주고 있다. 투자자들은 손해난 뮤추얼펀드에서는 자금을 빼냈지만 헤지펀드에는 투자를 늘렸다. 지난 4년 동안 헤지펀드의 운용자산은 4000억달러에서 6000억달러로 늘었다. 99년의 20%를 훨씬 넘는 수익률 탓이긴 하지만 헤지펀드는 4년 동안 37%의 수익을 내줬다. 헤지펀드의 비중이 미국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4% 정도. 그러나 매매비중은 하루 거래대금을 기준으로 25%에 달한다. 외부차입 자금으로 실제 덩치가 투자자금보다 훨씬 커진 탓도 있고 매매를 자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시장에서 헤지펀드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최근 헤지펀드업계는 죽겠다고 난리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뮤추얼펀드를 의식한 표정관리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죽어나가는 헤지펀드들이 속출하고 있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수익을 내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부나방처럼 몰려든 신참 헤지펀드들 때문에 경쟁은 치열해져 자금을 유치하기가 이만 저만 힘든 것이 아니다. 올해도 벌써 수십개 소규모 펀드가 청산했고 개중에는 잘 나가던 헤지펀드도 더러 끼어 있다. 수익을 내기는 하지만 고객들이 만족할 정도는 아니다. 90년대 말 강세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CSFB/트레몬트 헤지펀드 지수에 따르면 올해 들어 헤지펀드들은 평균 2% 가량의 수익을 내고 있다. 지난 4년간 연간 10% 이상의 수익률을 올린 적이 없다. 90년대 후반에는 20%를 쉽게 넘었고 30%에 육박한 해(97년)도 있었다. 뮤추얼펀드는 주식을 계속 쥐고 있기 때문에 시장보다 낫기만 하면 비난을 면하지만 헤지펀드는 강세장이든 약세장이든 수익을 내지 못하면 욕을 먹게 돼 있다. 감독당국은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월가 증권사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투자자오도와 이해상충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는 이제 헤지펀드로 향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로엘 캄포스 위원은 “헤지펀드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규제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헤지펀드는 뮤추얼펀드와는 달리 SEC에 등록을 할 필요도 없고 정기적으로 운용보고서를 제출할 의무도 없다. 고객들에게 자금을 유치할 뿐만 아니라 이를 담보로 외부에서 추가로 자금을 투자해 주식 등을 매수하는 이른바 레버리지투자도 할 수 있고 주가가 떨어질 것 같으면 증권사 등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공매도(short-selling)도 가능, 약세장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 새로운 헤지펀드들은 갈수록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투자업계의 주류하고 할 수 있는 월가 증권사들이 과거처럼 높은 보수를 주지 않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증권사들이 보너스를 줄이거나 없애자 헤지펀드에 투신하는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가 줄을 이었다. 1%가 넘는 운용수수료는 물론이고 운용성과의 20%에 달하는 성과보수를 챙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지난해에는 전체 헤지펀드중 14%가 운용을 중단했다. 레버리지투자나 공매도로 성공하는 헤지펀드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고 이라크 전쟁 등으로 시장이 워낙 변화무쌍하다 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펀드들이 더 많다. 올해 초 고담파트너스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회사는 가장 큰 펀드들을 청산하기로 해 고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 회사는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삽시간에 엄청난 손실을 봤고 지금은 감독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SAC캐피탈의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리만브라더스의 유명한 애널리스트인 아내로부터 추천종목을 미리 입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유명 헤지펀드인 비콘 힐, 리퍼앤컴퍼니, 에이후쿠마스터트러스트 등은 손실을 보고도 고객들에게는 이익을 낸 것처럼 속인 것으로 나타나다. 앤디 스코프가 모건스탠리에 근무할 당시 직속 상관은 다름 아닌 월가의 대표적 투자전략가중 한 사람인 바톤 빅스. 빅스는 스코프를 불러 “너는 지금 실수하는 거야”며 타일렀다. 스코프는 이 거장의 충고를 무시했다. 그러나 헤지펀드를 만든 지 6개월 정도 지난 지난해 8월 스코프는 빅스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해야 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타호호수로 가족여행을 떠난 스코프는 아침 7시에 눈을 뜨자 마자 세계증시 동향을 듣기 위해 회사로 전화를 거는 자신을 발견한다. 화가 나 소리치면 아이들이 깰까봐 그는 밖으로 뛰쳐 나가고 휴대폰이 터지는 곳을 찾기 위해 나무들 사이를 헤치고 호수 물가까지 내려왔다. 그곳에서 스코프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히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스코프는 다른 대다수 헤지펀드 매니저들과 마찬가지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최근 뜻밖에 놀라운 뉴스를 접하게 됐다. 2년 전 그를 말렸던 바톤 빅스가 모건스탠리를 떠나 헤지펀드에 종사하겠다고 올해 초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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