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키네토스코프] 만성어둠의 시대, 내 편 `계춘할망`

  • 등록 2016-07-22 오후 12:00:00

    수정 2016-07-29 오후 5:02:57

[이데일리 e뉴스 김병준 기자]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술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스포일러에 민감한 사람은 서둘러 창을 닫길 바란다. 또한 정보 전달이 아닌 주관적 해석에 입각해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예술을 대하는 상대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넓은 아량을 부탁한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이탈리아의 영화이론가 리치오토 카뉴도는 영화를 ‘제7의 예술’이자 기존 예술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영상,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적 요소들 가운데 내러티브를 이끄는 영화 속 핵심 장치는 무엇일까? 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에서 나쁜 영화는 나올 수 있지만, 나쁜 글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같은 연유로 나는 감독이 쓴 영화 속 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사’에 집중해 영화를 감상하는 편이다. 앞으로 대사를 통해 영화를 톺아보면서 감독이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사진=영화 ‘계춘할망’ 스틸 이미지)
검사외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히말라야, 곡성, 아가씨, 귀향, 데드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엑스맨: 아포칼립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올 상반기 국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영화들이다. ‘검사외전’이 970만 6697관객을 동원하며 상반기 1위를, ‘배트맨 대 슈퍼맨’이 225만 6680관객을 동원하며 13위를 기록했다. 영화의 제목을 한번 유심히 보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 적어도 올해 절반 동안은 자극적인 영화가 대세였다.

안타깝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영화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범죄, 액션, 미스터리, 스릴러, 공상과학(SF) 등 장르를 택해야 한다. 눈요기할 만한 장면도 좀 있어야 한다. 화려하고 비범하고 선정적인 영화여야 대기업 계열 대형 배급사를 잡고 스크린 숫자를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이 국내 영화산업계의 현주소다. 하지만 앞서 거론된 영화의 작품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의 ‘다양성’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오늘은 시끌벅적한 대작이 유독 많았던 2016년 상반기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48만 1643명에게 잔잔한 힐링을 선사한 ‘계춘할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콘텐츠난다긴다’가 배급을 맡은 영화 ‘계춘할망’은 하나뿐인 손주를 잃어버렸다 되찾은 할머니 계춘(윤여정)과 12년 만에 그의 품으로 돌아온 손녀 혜지(김고은)가 전하는 가족 이야기다.

사실 영화는 감동의 전형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뻔하고 지루한 영화라고 ‘계춘할망’을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네 가족 이야기는, 나와 당신이 사는 이야기는 솔직히 ‘검사외전’이나 ‘히말라야’ 같지 않다. 만약 당신이 ‘곡성’이나 ‘아가씨’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건 정말 큰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전형적이고 잔잔한 삶을 살고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나는 ‘계춘할망’에 더 이입할 수 있었다.

(사진=영화 ‘계춘할망’ 스틸 이미지)
혜지야, 바다가 넓느냐? 하늘이 넓느냐? 인자 니가 다 큰 모냥이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초반부 손주 혜지는 할머니 계춘에게 바다가 더 넓은지, 하늘이 더 넓은지를 묻는다. 계춘은 바다가 넓다고 답하지만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오래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라고만 말한다.

‘계춘할망’에서 창감독은 이같은 질문은 두 차례나 더 던진다. 영화 중반부 12년 만에 손주를 되찾은 계춘이 담배를 태우며 혜지에게, 영화 마지막 치매에 걸린 계춘을 돌보는 혜지가 그림을 보던 삼촌 석호(김희원)에게 똑같은 내용을 질문한다. 하지만 감독은 이 질문의 정답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다만 계춘이 “하늘이 넓다”고 답한 혜지에게 “다 큰 모양이다”라고 말한 대목을 통해 창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유추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늘’이라고 답한 ‘어른’ 석호에게 혜지는 틀렸다면서 “바다가 하늘을 품고 있기 때문에, 바다가 더 넓다”고 말한다.

하늘이 넓다고 느끼면 어른이 됐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아울러 감독은 하늘과 바다에서 무엇이, 그리고 어른과 어른이 아닌 존재가 무엇이 다르다는 걸 말하려고 했던 걸일까?

우리는 어른이 돼 가면서 혹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위만 바라보는 삶을 살게 됐다. 더 높은 연봉을 받으려는 것도,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것도, 더 높은 권력을 잡으려는 것도 모두 지금보다 높은 곳에 목표를 설정하고 이것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른이 아닌 존재(아이)는 어떤가. 아이들도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위만 바라보며 경쟁적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진중권 교수가 ‘속사정 쌀롱’에서 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진중권 교수가 독일의 한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경험담이다. 당시 그는 운동회에서 아이들과 ‘둥글게 둥글게 하다 몇 명 모여’ 게임을 했다. 그런데 게임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3등에게까지만 상이 주어지는 방식이었는데 최종 4명이 남게 되자, 더 이상 경기 진행이 불가능했다고 그는 말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서로를 품은 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떨어지지 않느냐고 묻는 진중권 교수의 질문에 아이들은 “다 친구인데 누구를 떨어뜨리냐”고 우문현답했다. 그때 그는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 아이들에게 영화 속 질문을 던졌다면, 하늘이 아닌 바다가 더 넓다고 답하지 않았을까?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당시 가르쳤던 아이들 모두 한국 국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극소수의 이야기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아빠의 차가 뭔지를 서로에게 묻고 임대 아파트 친구와 놀면 혼난다는 2016년 대한민국의 아이들. 우리 ‘어른’들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사진=영화 ‘계춘할망’ 스틸 이미지)
꼭 좀 봐 주십쇼. 어르신 덕분에 아이가 어둠이 아니라 빛을 그리게 됐어요.

하늘과 바다의 대조 관계와 마찬가지로, ‘계춘할망’에서는 어둠(그림자)과 빛의 관계에 대한 언급도 수차례 반복된다.

이 관계는 혜지(은주)와 그의 미술 선생님 충섭(양익준)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충섭은 앞에 놓인 조각상의 그림자를 멍하니 보고 있는 혜지에게 뒤쪽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을 보라면서 “니가 그려야 되는 건 빛이야 빛.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면, 그림자 말고 빛을 봐”라고 충고한다.

영화는 ‘어른’을 상징하는 하늘 대신 ‘어른이 아닌 존재’를 뜻하는 바다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어둠 대신 빛을, 그리고 앞 대신 뒤를 봐달라고 당부한다.

이 글의 초반부에서 나는 ‘계춘할망’을 고전적이고 전형적이고 잔잔하고 따분하다고 평가하는 관객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틀렸다. 사실 ‘계춘할망’은 잔잔하고 따분하다고 말하기에는 사건·사고가 지나치게 많은 어두운 영화다.

어린이 실종, 절도, 가출팸(패밀리), 미성년자 성매매, 미성년자 꽃뱀 공갈, 폭행, 살인미수, 친자 사기, 교통사고, 사망, 신원 위조, 보험 사기, 치매, 사망 등 우리네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어둠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다만 비브라늄으로 만든 무적방패, 악마와 수호령과 굿판, 파란빛을 내는 광선검, 가학적 성행위 같은 것이 나오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관객의 기억 속의 ‘계춘할망’은 왜 잔잔한 힐링 영화로 각인된 것일까? 우리가 어둠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무뎌졌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삶의 질이 높아진 반면 위험의 소지도 커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예를 들어 비행기라는 기술 덕분에 우리는 단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을 방문할 수 있게 됐지만 사고와 참사, 밀매, 불법 체류,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 테러리스트의 표적 같은 부정적인 측면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처럼 우리는 사건·사고가 난무하는 시대에 살게 됐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터치 몇 번으로 모든 사건·사고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사건·사고를 ‘어둠’이라는 단어로 치환한다면, 우리는 ‘만성어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야근과 반복되는 주말 당직으로 ‘디폴트 값’이 돼 느껴지지 않는 만성피로처럼, 우리는 이제 웬만한 사건·사고에는 반응하지 못하는 ‘만성어둠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계춘할망’이 심심하게 느껴진 관객들은 이 ‘만성어둠’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창감독은 계춘과 충섭의 입을 빌려 하늘을 보며 목표만을 좇지 말고 바다처럼 포용하는 삶을 살라고 말한다. 아울러 어둠에 무감각해지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누군가에게 빛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길 부탁하고 있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뒤를 돌아보면 당신 편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영화에서 혜지(은주)는 “아직도 빛이 낯설게 보인다”며 돌연 떠난다. 하지만 짙은 어둠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았던 혜지의 뒤에는 늘 계춘이 있었다. 심지어 혜지가 떠난 뒤에도 계춘은 무조건적인 혜지의 편, 혜지의 빛이었다. 충섭의 말대로 혜지는 계춘 덕분에 결국 빛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사진=영화 ‘계춘할망’ 스틸 이미지)
나가 느 편 해줄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라. 할망이 모든 거 다 해줄거여.

영화에서 계춘은 혜지(은주)의 편을 자처한다. 조건 없이 모든 것을 지원하는 계춘이 혜지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혜지가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다.

계춘에게서 느낀 ‘무조건적인 사랑’은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 속 천재 수학교사 이시가미의 ‘헌신’과 비슷한 것이다. 소설에서 이시가미의 방향성은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기는 했지만, 그의 헌신 역시 진심에서 우러나온 무조건적 사랑이었다.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이었다.

영화 초반부 혜지는 계춘에게 “결혼이 뭐야”라고 묻는다. 계춘은 “결혼은 남자랑 여자가 짝지어서 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영화 중반부에서도 12년 만에 만난 혜지(은주)에게 계춘은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남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두 여자의 이야기 ‘계춘할망’은 결혼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감독은 무조건적인 그리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맺어지는 남녀 사이의 결혼이 행복한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반쪽을 찾았다’ ‘한몸이 됐다’ 등은 첫걸음을 내딛는 신혼부부의 결혼식장 주례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계춘의 말처럼 부부는 짝을 지어서 함께 사는 사이며,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살게끔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다. 내 반쪽이자 한몸인 부부가 무촌 관계인 이유도 이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대한민국의 결혼 문화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자. 결혼컨설팅 업체는 물론 미디어와 언론들도 2016년 현재 평균 결혼비용이 2억 7420만원에 이르며, 주택마련 자금을 제외한 순수 결혼식 비용도 평균 8246만원이라고 ‘프레이밍’하고 있다. 그렇다면 8246만원을 사용하면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반쪽을 찾을 수 있을까.

이같은 수치는 통계의 함정과 오류를 모르는 사람에게나 먹힐 만한 이야기다. 불과 1000명의 조사를 바탕으로 불필요한 문화를 선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들이 5000만명, 더 나아가서는 73억명을 대표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이같은 결혼 문화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고착화된 시스템을 그대로 좇지 말길 바랄 뿐이다. 허례허식에만 집착하지 말고, 계춘의 말처럼 영원한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살며 행복을 찾길 바라는 바다.

많은 사람이 이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언젠가는 결국, 아빠의 차를 비교하며 부류를 나누는 극소수의 아이들마저 없어지리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계춘할망’을 만든 창감독과 열연을 보여준 윤여정 선생, 김고은 양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미국 소설가 로이스 맥마스터 부욜은 “살아 있건 죽었건 자식이란 존재는 우리를 변하게 한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감독 트레이 파커는 “가족이란 당신이 누구의 핏줄인지가 중요한 것 집단이 아니다.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의 말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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