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ABCP에 동원되는 한은, 금융회사 도덕적 해이 부추긴다

한은, 91일물 RP매입해 채안펀드에 2.5조 지원
'버티니까 돈 더 준다'…최종대부자 '한은'까지 팔 걷어
전 국민 '금리 인상' 고통 겪는데 특정 부문만 유동성 지원
PF-ABCP 매입 정책만 세 개 가동…실행도 전에 추가 대책
발등에 불 떨어진 증권·건설사보다 더 조급한 정책 당국
  • 등록 2022-11-28 오전 11:01:25

    수정 2022-11-28 오전 11:01:25

이창용(왼쪽 두 번째)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출처: 한은)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이 ‘최종 대부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또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달말에는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으로 증권사에 자금을 지원한다고 하더니 이번엔 RP매입으로 채권시장안정펀드를 통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산담보부증권(PF-ABCP) 매입을 지원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등장했던 정책이다.

지난 달말 정부와 한은이 50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고, 지난 11일 PF-ABCP 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했지만 아직 제대로 실행이 안 되는 상황에서 추가 대책이 나온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PF-ABCP 익스포져가 있는 증권·건설사인데 조급한 것은 정책 당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조급증’ 걸린 당국자들…‘금융위기’ 때 썼던 카드 내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 등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이하 비상거금)’를 열고 채권시장안정펀드(이하 채안펀드)에 5조원 규모의 2차 캐피탈콜을 실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가 채안펀드에 출자하면 출자액의 절반을 한은이 RP매입을 통해 금융사에 지원한다. 이에 따라 최대 2조5000억원의 유동성 지원이 공급될 전망이다. 채안펀드는 PF-ABCP, CP(기업어음) 등을 매입하고 이번에 부동산 PF·건설업 관련 비우량 회사채, A2등급 CP 등을 추가 매입키로 했기 때문에 사실상 한은이 금융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우량 회사채 등까지 매입하는 식이다.

한은은 이번 지원을 통해 공급된 유동성을 RP매각 등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곧바로 흡수할 계획이기 때문에 현재의 긴축 통화정책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채안펀드 5조원 캐피탈콜에 유동성을 제공하기로 한 것은 단기자금 시장 안정이 한은 금리 정책의 파급이 시작되는 곳이라 통화정책 전달 경로상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말까지 PF-ABCP가 20조~30조원 가량 만기 도래되고 거래가 위축돼 최근 금리가 20%를 찍는 등 유동성 우려가 심화되고 있기는 하나 ‘최종대부자’인 중앙은행이 자주 자금 지원에 동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나왔던 방식의 대책을 재가동할 만큼 다급한 상황인지에 대한 비판이다.

PF-ABCP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우려해 PF-ABCP를 매입하는 방안이 한 달 새 세 가지 대책이나 발표됐고 아직 제대로 실행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23일 비상거금 회의에선 기존 채안펀드 1조6000억원을 활용, 시공사 보증 PF-ABCP 등 회사채, CP를 매입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달 11일엔 산업은행이 1조원 규모의 별도 매입기구(SPC)를 설립해 건설사 보증 PF-ABCP를 매입하고, 대형증권사 9곳을 동원, 1조8000억원을 조성해 증권사 보증 PF-ABCP를 매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건설사 PF-ABCP는 이번 주부터 매입이 시작되고 증권사 보증 PF-ABCP는 24일에야 매입이 시작됐다.

기존에 발표된 대책들의 잉크도 마르기 전이다. PF-ABCP 디폴트 우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증권사, 건설사인데 오히려 정부가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기도 전에 또 다시 정책을 발표하면서 ‘정책 조급증’만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구노력 하라니까 ‘돈 받으러 안 와’…한은 ‘긴축’ 의지에도 의구심

이러한 정책 조급증은 금융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지난 달 23일 발표된 비상거금 대책에 따라 산은은 우선적으로 2조원을 동원해 증권사CP를 매입할 방침이었다. 다만 자금을 받기 위해선 증권사 사장이 자구 노력에 동의하는 확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자 단 2곳만이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구 노력은 원하지 않고 자금 지원만 해달라는 얘기다. 이는 역으로 증권사의 자금 사정이 겉으로 호소하는 것보다 다급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은이 간접적으로 자금 지원에 나서게 되면 더 빠르고 더 간편하다. 한은은 벌칙금리(0.1%포인트 추가 금리)를 통해 시장금리보다 높게 이자를 매기겠다고 했지만 자금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벌칙금리는 자구 노력 등 확약서보다는 수용하기 쉬운 방법이다.

한은이 긴축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특정 부문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에 대해 금융통화위원회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은이 증권사 RP매입에 6조원(잔액)을 지원한다고 했을 때에도 당시 한 금통위원은 “긴축 통화정책은 필연적으로 시장에 어느 정도 충격을 유발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대책을 시행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 국민이 고물가를 잡기 위한 한은의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 인상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저소득 등 취약계층도 아닌 저금리 내내 고수익을 냈던 특정 부문에만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도 불만이 커질 수 있다. 한은 금리 인상 등 긴축 의지에도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24일 금통위 당시 이 총재가 PF-ABCP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시사하자 “한은의 전향적인 단기 자금 시장 지원의 배경과 그것이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총재의 태도는 통화정책 전환(Pivot)을 연상하게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24일 “지난 달 예상치 않게 PF-ABCP 관련 사건이 생기면서 부동산 관련 금융시장이 불필요하고 과도한 신뢰상실이 생겨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상 이상으로 급격하게 올라간 일이 생겨 당황스러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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