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리포트)호주의 `행복한 뚱녀들`

  • 등록 2005-10-10 오후 4:14:55

    수정 2005-10-10 오후 4:14:55

[이데일리 김경인기자] 호주의 거리에는 뚱보 언니들 투성입니다. 그렇지만 자신감 넘치는 노출로 자기의 개성을 발휘하고 자기 몸의 반 밖에 안되는 애인과 당당히 팔짱을 끼고 다니는 말 그대로 `쿨(cool)`한 모습입니다. 김경인 기자가 호주의 `행복한` 여자들에 대한 소감을 전합니다.

얼마전 호주를 다녀왔습니다. 어린 시절 해외여행은 곧잘 근거없는 사대주의를 부풀릴 계기가 되곤 했지만, 이제 조금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 나라와 남의 나라를 비교·평가할 수 있게 된 듯 합니다.

호주의 경이로운 자연과 조용하고 여유로운 시내 풍경, 느긋한 삶의 모습들은 충분히 부러웠지만, `우울한 날씨`의 대명사 영국을 뺨치는 변화무쌍한 기후는 자연스레 한국을 그립게 했지요. 또 다양한 밤 문화와 그 자체로 작품인 CF와 광고판, 놀랍도록 빠른 인터넷 등도 한국의 매력입니다.

특히 카드 한 개로 모든 교통수단 이용이 가능한 한국 대중교통 시스템은 놀라운만큼 진보적입니다. 심지어 핸드폰으로도 결제가 가능타 했더니, 호주인들은 "한국은 호주보다 가난하지 않느냐. 그건 미래에나 가능한 일 아니냐"며 놀라더군요.

하지만 한국의 수 많은 장점에도 호주가 정말 부러운 이유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길거리에 즐비한 뚱뚱한 여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족히 두 사람은 돼 보이는 그 몸매가 부러웠던건 아니죠.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모습과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사회의 여유가 부럽더군요.

패션은 `파리다`, `뉴욕이다`, `일본이다`, `여자는 동구권이 최고다` 말들이 많지만, 전 `평균적으로` 한국 여성들만큼 예쁘고 외모에 신경쓰는 여자들은 그 어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여대생들의 외모와 몸매, 패션감각은 정말 타국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미래를 위해 모든 돈과 시간, 열정을 투자해도 부족할 때지만, 피부의 잡티를 잘 가려주는 화장품, 55사이즈가 꼭 맞는 날씬한 몸매를 만들기 등에 투자하는 시간이 너무 많지요.

한심한 여자들에게 국한된 얘기라구요? 혹은 자기 열등감 탓이라구요? 물론 상당부분 본인에게 문제가 있겠지요. 하지만 한국이라는 사회의 구성원이기에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습니다.

호주의 여성들이 이처럼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는데는 여성의 외모보다 건강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적 배려가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여자의 `외모`보다 `건강한 모성`이 더 소중한 사회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오랜 여성 운동의 역사를 가진 호주는 최근 `엄마의 권리`가 가장 잘 보장되는 국가중 하나로 평가되곤 합니다. 특히 최근 저출산에 따른 안력 부족으로 중장기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체택하면서, 여성의 건강과 출산, 모유수요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 커졌다는군요.

일례로 지난해 호주의 출산율은 1.77명으로 지난 1997년 이래 가장 높았으며, 독일(1.4명), 스웨덴(1.65명), 일본(1.29명), 한국(1.19명) 등보다 높았습니다. 출생시 모유 수유율은 출생시 83%, 생후 6개월 48%로 한국의 21%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또한 국가가 자녀 출생 및 양육 보조금을 지급해, `직업을 갖는 것보다 아이를 셋 이상 낳는게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합니다. 이처럼 `엄마`로서 여성의 권리가 보다 잘 보장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외모보다는 여성의 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지요.

반대로 한국에서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건 외모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비만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만, 한국의 의류 매장에서는 입을만한 77사이즈 이상의 옷을 찾기는 점점 힘들어집니다. 듣자니 그 경우 흔치않은 소위 `통통족` 전문매장을 찾거나 인터넷을 통해 맞춰입는다 하더군요. 맞춤옷이니 당연히 기성복보다 좀더 비싸고 맞지 않아도 반품할 수 없다지요. 이쯤되면 자연스레 다이어트를 고민하게 되겠죠.

취업과 관련해선 더 흉흉한 얘기들이 많습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다 과감히 접고 고시에 붙었지만 나이많고 외모가 딸려 어디도 취직 못했다는 사례들도 심심찮게 들려오지요. 결혼할 나이가 되면 `공부할 시간에 외모에 신경 쓴 친구들이 훨씬 현명했다`는 자조적인 말들도 오갑니다.

미디어도 한 몫 합니다. 강남 여자의 평균 허리 칫수가 강북 여자들보다 몇 cm 적다는 기사가 나오는가 하면, `성공한 여자는 날씬하다`류의 책들도 출간됩니다. TV는 말할 것도 없지요.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는 게으르고 무능력하다는 편견을 강하게 심어줍니다.

이런 상황이니 이 시대를 사는 한국 여성치고 다이어트와 성형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을 지경입니다. 남자들에게 "오빠", "뜨거운 밤" 등의 스팸 제목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여자들은 "1주일에 5kg", "먹으면서 뺀다", "저렴한 성형수술" 등의 문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운동과 채식위주의 식단은 물론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당연히 좋겠죠. 허나 자기 의지가 아닌 사회적 강요가 불러온 열등감이 그 원인이라면, 효과도 반감됩니다. `다이어트`를 위해 목적지향적 운동을 하다보면 마음이 조급해져 포기도 빨라지죠. 결국 약과 수술 등 극단적 수단을 찾아, `야마`와 `사기`의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노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라며 출산을 은근히 종용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몸매 관리에 목숨을 걸어야하는 분위기가 조장됩니다. 이런 모순된 상황이 지속되는 한 우리나라는 `불행한 날씬녀` 왕국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쁘면 보는 사람도 좋고 본인도 좋을겁니다. 하지만 외모는 탄생과 동시에 상당부분 결정되고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는 부분도 많지요. 헛된 노력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은 개인도 물론이지만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일 겁니다.

한국이 `외모 지상주의`, `성형의 왕국` 등의 오명을 쓰는데는 본인도 물론이지만 사회의 책임도 큽니다. 타인의 외적 조건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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