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모래땅에서 신도시로…'여의도 상전벽해' 책 발간

빅데이터·인터뷰로 여의도 이용과 일상 생생히 담아
  • 등록 2020-06-26 오전 11:15:00

    수정 2020-06-26 오전 11:15:00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해 여의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결과를 담은 ‘여의도, 방송과 금융의 중심지’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1973년 건축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여의도는 모래톱으로 이뤄져 이용가치가 작은 땅으로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 비행장으로 사용됐다. 1968년 윤중제 착공과 함께 국가 주도의 개발로 새로운 개념의 도시가 계획되고 실현됐다.

1967년 한강의 치수와 매립지 확보를 위한 ‘한강개발 3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여의도 개발은 이듬해 2월 밤섬이 폭파되며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밤섬을 골재로 사용한 윤중제가 밤섬 폭파 5개월 만에 완공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넓은 대지가 만들어졌다.

여의도는 당시 근대화·산업화로 변해 가는 도시의 이미지와 국내의 발전하는 기술을 알리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김수근을 중심으로 한 젊은 건축가들의 여의도 개발안을 시작으로 최첨단의 아파트 단지, 고층의 업무시설, 국내 기술과 국내 재료를 사용한 국회의사당 등이 하나둘씩 완공됐다. 또 군사퍼레이드, 반공 관제 시위가 열리던 5·16광장이 완성됐다. 1980년대에는 신군부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5·16광장의 이름을 여의도광장으로 바꿨다.

1979년 여의도 한국 증권거래소 신축개관 당시 모습.(사진=서울역사박물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며 시작된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한강시민공원이 재정비되고 유람선이 다니기 시작했다. 여의도 동쪽 끝에 당시 동양 최고의 63빌딩이 완성돼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선보였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관제 집회가 열리던 여의도광장은 대통령 유세와 시민 주도의 시위가 줄을 이었다. 1995년 서울 민선시장이 부임하며 국가권력의 상징이었던 여의도광장은 여의도공원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초고층 빌딩들이 등장하면서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변화했다.

이 보고서는 서울에서 가장 평평하고 완결된 섬 여의도가 어떻게 정치·방송·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2019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방송과 금융의 중심지 여의도’는 서울책방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으며 가격은 2만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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