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군사훈련 강행으로 기회를 날려보냈다.”
북한이 남북간 통신연락선을 복원한 지 2주 만에 태도를 돌변해 무력 도발을 예고했다. 남북 관계 파탄의 책임을 우리 정부 측에 떠넘기며 핵·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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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러한가. 북한의 주장은 여러모로 모순점이 많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한 지난 1일은 이미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온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지만, 화해 국면에서는 또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2018년 9월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과 상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난 11일 김 부부장에 이어 대남비난 담화를 발표한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2019년 1월 백악관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에도 주한미군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긴장국면의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는 북한의 행태는 또 어떠한가.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이 지난 1일 담화에서 남측에 ‘희망과 절망’이라는 두 길 중 선택권을 줬음에도 이를 ‘배신’했다고 주장하지만, 남북 통신선 연결의 의미를 확대해석 하지 말라는 것은 정작 김여정 부부장이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이를 지적하며 “한국 정부가 남북 관계개선의 기회를 제 손으로 날려버렸다는 김영철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불일치한다”며 “북한이 진정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원한다면 북한도 최소한 북한 핵 프로그램의 동결과 같은 상응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인질로 삼은 범죄자의 그것이라고 본다면 그 원칙을 의외로 인기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 중 이종화 위기협상 전문가 출연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운송수단을 제공하지 않는다. 운송수단을 제공하는 순간, 상황은 인질에서 납치로 바뀌며 범죄자의 협상력을 높여준다.
둘째, 시간을 끌어라. 흥분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냉정한 사고를 하게 된다.
셋째, 협상의 대상자가 인질이 돼서는 안 된다. 범인의 협상력을 높여줄 뿐이다.
넷째, 상대방이 화를 내더라도 냉정해져야 한다. 말다툼이 되는 순간, 협상은 깨진다.
첫째, 대북 제재를 풀지 않는다. 북한의 협상력을 높여줄 뿐이다.
둘째, 극단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위기관리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셋째, 협상대상자가 인질이 돼서는 안된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개성공단 중단 등으로 이미 인질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넷째,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더라도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다섯째, SLBM 발사 등 도를 넘은 행동을 할 경우 제재 강화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 것이다. 본격적인 ‘밀당’(밀고 당기기)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현 상황이 긍정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북한이 대선국면인 지금 승부수를 걸고 나온 것 역시 남남갈등을 고조시켜 ‘원코리아’를 흔들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침묵을 깨고 행동에 나선 배경에는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폭염과 폭우를 오가는 자연재해에 따른 경제난 심화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12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내년 초에 우리는 대선 국면이고 내년 중반 넘어가면 미국은 중반 선거 국면이니까 이걸 생각하면 김정은에게도 시간이 금년 가을밖에 없다”며 “북한이 강경 기조로 나오는 건 오히려 대화를 가을에 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