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몸집 타령만 늘어놓는 초대형IB

  • 등록 2016-09-21 오후 12:15:00

    수정 2016-09-21 오후 12:15:00

[이데일리 이정훈 증권시장부장]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전이었을 게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로서 양재동 모처에서 열린 기자단 간담회에 참석해 “우리 금융산업에 빅뱅이 일어나고 한국판 골드만삭스도 나올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한참을 설렜던 기억이 또렷하다. 후일 금융위원장을 역임했던 김석동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보가 자본시장통합법이라는 새로운 법 제정안 얼개를 처음 외부에 공개했던 때였다.

우여곡절 끝에 이 법은 국회를 통과했고 1년반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9년 발효됐다. 그러나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의 주역이던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불과 2년만인 2011년 “법 제정 때 모든 규제를 없애려고 했지만 입법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내용이 바뀌고 말았다”며 책임을 국회에 돌리면서 법 내용의 절반 가까이를 뜯어 고친 개정안을 만들어냈다. 개정안에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와 증권사의 기업 신용공여와 프라임브로커리지 허용을 새로 담은 김 위원장은 “이번에는 정말 자본시장 빅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알다시피 이후 큰 변화는 없었고 2016년 현재 우리 증권사들도 여전히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견주기에 초라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글로벌 IB 9개사가 굴리는 평균 자기자본은 국내 5대 증권사의 12배에 이른다. 작년 증권사 순영업수익에서 위탁매매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56.7%나 된다. IB부문인 인수주선, M&A자문 수수료 비중은 합쳐봐야 8% 밖에 안된다. 이렇다보니 4년이 지나 최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벤치마킹 대상으로 골드만삭스에서 말레이시아 CIMB로 바꾸고 “제대로 된 IB를 키우겠다”며 `초대형IB`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들고 나왔다. 핵심은 증권사 자기자본에 대해 각각 3조·4조·8조원의 단계별 기준을 세워 신규업무를 확대해 주겠다는 것. 특히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증권사는 어음 발행을 통해 다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8조원 이상인 증권사는 종합금융투자계좌(IMA)와 부동산 담보신탁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장착할 수 있도록 했다.

과연 이번 대책은 약발이 있을까. 아직 금융투자업계에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어 좀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다만 현재 6곳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덩치별로 세분화해 부분적으로 규제를 풀어주겠다곤 했지만 증권사들이 이런 `당근`을 노리고 과감하게 증자나 인수합병(M&A)으로 자기자본을 늘려갈 것인지는 미지수다. 자본을 늘리는데엔 비용과 리스크가 있다. 여전히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한 자릿수대에 불과한 대형 증권사들로서는 이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굳이 자기자본을 늘릴 이유가 없다. 어음 발행만 해도 낮은 금리의 전자단기사채나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한 대형 증권사들에게 큰 매력이 아닐 수 있다. IMA나 부동산 담보신탁은 어느 정도 돈이 될 수 있지만 8조원까지 3조~5조원씩 자기자본을 늘리는데 따른 리스크를 상쇄해줄 만큼 메리트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수 십, 수 백년씩 된 서구 IB들의 역사와 노하우, 서구 I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를 배우려 애쓰고 있는 아시아 주요 IB들의 행보를 보면 대형IB를 키워내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게 얼마만큼 지난(至難)한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항구에 묶어두려고 배를 만든 것은 아니다”라며 IB 육성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배가 클수록 안전할 순 있지만 덩치가 능사는 아니다. 또 큰 배를 정부가 주도해 만들 순 있어도 그 배를 험난한 바다 한가운데로 띄우는 일까지 해줄 순 없는 노릇이다. 배를 몰 수 있는 항해사를 키우고 선원들이 바다로 나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고 과감히 바다에 도전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원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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