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노랑머리 참여연대와 검은머리 참석연대

  • 등록 2002-02-28 오후 7:10:48

    수정 2002-02-28 오후 7:10:48

[edaily] 28일 열린 삼성전자의 주총은 역시 뜨거운 관심거리였습니다. 지난해 참여연대가 8시간 넘게 경영진들을 추궁한 사건의 여운이 살아있는 듯, 이날도 500여명이 넘는 주주와 관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산업부 이진우 기자가 이날 주총에서 느낀점을 전합니다. 삼성전자의 주총은 몇가지 이유에서 늘 관심을 모읍니다. 한국 최대 기업의 주총이라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끌죠. 최대 재벌그룹의 핵심 계열사라는 점에서 재차 관심을 갖게 합니다. 또 매년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참석해서 이사진을 추궁하는 걸로도 유명하죠. 지난해 8시간, 98년엔 13시간을 넘겨가며 이사진들을 "괴롭혔던" 일은 아직도 화제거리로 남아있습니다. 참여연대는 "다행히도" 이날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의장인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매년 거듭된 악몽이 떠오르는 듯 "발언은 2분이내로 해줄 것, 발언 전에는 회사 측에서 주주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주주번호와 이름을 꼭 말해줄 것" 등을 시작 전부터 신신당부했습니다. 주총에선 낯이 익은 "주총전문가"들이 대거 참석, 처음부터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대차대조표를 조목조목 짚어 내려가면서 날카롭게 이의를 제기하는 듯 하다가도 마지막엔 슬그머니 "회사측의 안건에 동의합니다"로 마무리하는, 전형적인 주총용 코멘트가 이어졌습니다. 의장 역할을 맡은 윤 부회장도 간간히 웃음을 지으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끽하는 모습이었죠. 하지만 삼성전자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조항 삭제 안건은 한가롭던 분위기를 확 깨버렸습니다. 사실 미리 예상됐던 이날의 하이라이트였죠. 이 논쟁의 불씨는 지난 97년 IMF한파가 몰아치던 당시, 기업들의 증자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정부가 "우선주를 10년 후에 보통주로 바꿀 수 있게 하자"고 지침을 만든 데서 시작됐습니다. 그런 조건으로 발행된 주식을 소위 "신형 우선주"라고 부르죠. 그때 삼성전자도 정관에 이런 규정을 만들었는데 바로 문제가 된 "5조 8항" 규정입니다. 삼성전자는 5년이 지난 지금 별 의미가 없고 97년 이후 신형 우선주를 발행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번 주총에서 조항을 삭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96년 발행된 삼성전자 우선주 2%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계 펀드인 엘리엇이 반발하고 나선 겁니다. 보통주로 바꿔주는 "그 좋은 혜택"을 왜 갑자기 빼앗아가냐는 거죠. 우선주와 보통주의 주가 차이가 두 배 이상 나는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이로운 규정을 삭제하려는데 가만히 있기는 어려웠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원래 우선주라는 것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주식"이기 때문에 우선주 주주들의 입지는 주총장에서 더욱 움츠러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엇펀드 측이 규정 삭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일부 강경 주주들은 "우선주 주주는 발언권이 없다"고 목청을 높였고 윤 부회장도 이들을 두둔했습니다. 윤 부회장은 엘리엇펀드를 빗대어 "순간적으로 회사를 흔들어서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이라고까지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룹 회장 외동아들의 특혜 문제를 물고 늘어진 토종 참여연대에 비하면 기껏 자기들 이익을 지키려는 "노랑머리 참여연대(?)" 쯤은 아주 쉬운 상대였는지도 모르죠. 명분에 자신이 있다는 듯 윤 부회장은 고문 변호사를 시켜 5분간 엘리엇펀드의 주장이 왜 말이 안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하게 했습니다. 엘리엇펀드가 우선주를 보통주로 슬그머니 바꿔먹으려는 "영악한" 투자사라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게 아닙니다. 반대로 우선주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그들의 주장도 전혀 딴소리는 아닌 거죠. 그러나 제 관심은 "우선주 지분 2%에 불과한 엘리엇펀드가 저렇게 강력하게 대들고 있는데 90%가 넘는 나머지 주주들은 왜 조용한 것일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주주 대부분이 삼성전자 측의 정관 삭제 방침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엘리엇펀드의 한 관계자는 표결이 끝난 뒤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의 지분이 내 개인 재산이라면 포기할 수도 있다. 사실 우선주 주주로서 주총장에서 싸우기에는 명분에서도, 힘에서도 달린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돈을 맡긴 고객들을 위해 싸워야 할 의무가 있다." 엘리엇펀드가 무슨 독립운동을 하는 투사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충분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고객들로부터 배임 혐의로 소송당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어찌됐건 고객의 돈을 위해 열심히 싸우는 모습은 논리적 정당성을 떠나,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객 돈을 모아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며 "이것도 투자"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재벌 투자회사들을 자주 봐온 저로서는 차라리 신선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날 엘리엇펀드처럼 우선주 주주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또 있었습니다. 우선주 3.17%를 갖고 있다는 국내 투자회사 H투신이었죠. 그런데 H투신의 관계자는 "우리가 반대했었다는 내용을 주총 속기록에 실어주기만 하면 된다"며 "나머지는 의장이 알아서 진행하라"는 요구를 하는데 그쳤습니다. 윤 부회장이 "우리 안건에 반대해서 수정안건을 제안한다는 거냐, 아니면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냐?"고 되물을 정도였지요. 보다 못한 외국인 주주가 "H투신의 수정안에 우리도 동의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서야 "그럼 수정안을 낸 것으로 하자"고 할 뿐이었습니다.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중에 "우리도 이렇게 항의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강변할 증거자료를 만들려는 의도처럼 보였습니다. 똑같은 안건, 똑같은 이해관계 속에서도 치열하게 싸우는 노랑머리 "참여"연대와 주총 참석에 의의를 둔 듯한 검은머리 "참석"연대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연기력의 차이일거야. 오노를 보면 알잖아. 미국 친구들이 원래 연기를 잘해...." 주총장을 나오는데 동료기자 한 명이 고민하는 저에게 던진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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