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새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이후 대외활동을 자제해 온 팻 겔싱어 CEO는 이 같은 야심찬 투자를 통해 과거 인텔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이는 전 세계 반도체 제조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기도 하다.
최근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 속에서 안정적 반도체 조달을 위한 공급망(서플라이체인)을 재구축하는 동시에 급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려 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생산의 80%를 아시아에 빼앗긴 미국과 EU가 기술력의 균형을 다시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인텔은 서드포인트 등과 같은 일부 행동주의 투자자들로부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반도체칩 제조사업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미국 정부의 큰 그림 하에서 인텔은 행동주의 펀드들의 요구를 뒤집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다만 최근 인텔은 14나노미터(nm)에서 10나노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나 7나노 공정 개발에서도 기술적 문제를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대해 갤싱어 CEO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칩 제조 기술상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했고, 2023년에 새롭게 내놓을 반도체칩에는 모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극자외선(EUV) 기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ASML과도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인텔은 200억달러를 들여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있는 기존 캠퍼스 내에 2곳의 공장을 새로 짓고 3000명 이상을 고용하겠다고 했다. 또 미국과 유럽에서 추가로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알렸다. 부지 선정은 내년 중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공장들은 자체 칩 생산 외에도 외부 고객들의 위탁 물량을 생산하는 파운드리용으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갤싱어 CEO는 “새로 짓는 공장은 글로벌파운드리 등 일부 제조업체들이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구형 기술이나 특수 기술이 아닌 최첨단 컴퓨팅칩 제조에 집중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업계와 고객을 위해 규모에 맞는 선도적인 프로세스 기술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울러 인텔은 삼성전자와 TSMC와의 협력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인텔은 컴퓨팅 칩과 패키지 기술에 초점을 맞춰 IBM과 새로운 연구 협력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삼성, TSMC와 경쟁을 하더라도 ‘타일’이라고 불리는 칩의 하위부품을 만드는 쪽으로 눈을 돌려 이들을 자사의 고객으로 끌어 들이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갤싱어 CEO는 “최고의 공정 기술을 어디에 있든 선택할 것”이라며 “내부와 외부 공급망을 활용해 최고의 비용 구조를 갖출 것이며, 이는 환상적인 조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동안 인텔이 거의 외면해 왔던 파운드리사업을 받아들임으로써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균형을 바꿔놓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는 갤싱어 CEO의 공언이 먹혀들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제조·생산은 아시아에서 80%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의 생산 비중은 15%, 유럽은 5%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