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진 작가 "글쓰기는 저항…'파친코'도 위험한 책이라 생각"

'파친코' 새 한국어 번역본 출간 기념 내한
재일조선인 애환 그려 전 세계 독자 공감
"'파친코' 읽는 동안 누구나 한국인 되길"
차기작은 한국인 교육관 다룬 '아메리칸 학원'
  • 등록 2022-08-08 오후 2:39:59

    수정 2022-08-08 오후 9:22:4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정체성은 역사를 모르면 빈 깡통과 같습니다. 승자와 패자처럼 사실만 나열한 역사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역사를 통해 빈 깡통을 채울 ‘뿌리’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54)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파친코’의 새 한국어 번역본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이 작가는 기자간담회를 시작으로 사인회, 북토크 등의 행사로 한국 독자들과 만난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가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소설 ‘파친코’ 새 한국어 번역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가는 “‘파친코’는 평생에 걸쳐 집필한 작품이라 한국에도 정확한 번역으로 소개하는 게 중요했다”며 “새 번역으로 더 많은 독자와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재출간 소감을 밝혔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7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변호사로 활동 중 건강 문제로 오래 전부터 꿈꿔온 글쓰기를 시작했다. 2008년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발표했고, 2017년 두 번째 장편소설 ‘파친코’로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대서사극이다. 미국에서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 받았다. 최근 애플TV+가 배우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등이 주연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해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 작가가 ‘파친코’를 쓰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 일본에서 활동 중인 선교사의 특강으로 우연히 들은 한국계 일본인 소년의 이야기였다. 13세 중학생 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뒤늦게 졸업 앨범을 찾아보니 친구들로부터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라” 등의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작가는 “19세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화가 났고, 오래 뇌리에 박혀 떨쳐낼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 작가가 ‘파친코’를 쓰기까지는 30여 년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집필을 위해 일본계 미국인 남편과 함께 일본에 머물며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고, 이후 ‘모국’(motherland)이라는 제목의 초고를 썼다. 하지만 “역사적 재앙에 맞선 개인의 이야기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초고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집필에 들어가 마침내 ‘파친코’를 완성시켰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가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소설 ‘파친코’ 새 한국어 번역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한 가족의 애환을 그린다. 한국인의 아픈 역사지만 이를 국경·민족과 상관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이야기’로 풀어내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작가는 “한국 독자들도 ‘파친코’를 읽고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여줘 기쁘다”며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으면 러시아인이 되고, 디킨스의 소설을 읽으면 영국인에 이입되는 것처럼 ‘파친코’를 읽을 때는 누구나 다 한국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친코’의 한국어판은 지난 4월 판권 계약 종료로 절판됐다. 출판사 인플루엔셜이 이 작가와 새로 판권 계약을 맺고 번역가 신승미의 번역으로 지난달 27일 1권을 출간했다. 2권은 오는 25일 출간 예정이다. 이 작가의 의도대로 챕터별 소제목을 빼고 인용구를 그대로 번역했다. 이 작가는 “작가로서의 의도를 번역으로 최대한 반영할 수 있게 해줘 인플루엔셜을 선택했다”며 “글쓰기는 저항과 혁명의 행동이며, ‘파친코’ 또한 위험한 책이 되길 바라며 썼는데 이런 부분까지 커버해줄 수 있는 출판사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앞으로도 인종차별, 계급차별, 혐오 등 인간 본성의 문제를 소설로 다룰 계획이다. 차기작으로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인의 교육관을 이야기하는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집필 중이다. 이 작가는 “학원을 다녔든 안 다녔든 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학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교육은 사람을 억압할 수 있는 요인이고, 교육과 사회적 지위·부 또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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