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빌려주면 월 550만원 드립니다”‥불법 대포통장 판친다

  • 등록 2014-07-09 오후 4:35:37

    수정 2014-07-09 오후 4:35:37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놨지만 불법 대포통장 영업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진은 한 사이트에 올라온 불법 대포통장 광고급을 캡쳐한 것이다.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기자가 대포통장 브로커에게 접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 사이트 구글(Google)에 ‘차명계좌’, ‘통장임대’, ‘통장 구합니다’라고 입력하자 브로커들이 남긴 글들이 10페이지 넘게 검색됐다. 가장 위로 검색된 한 지역신문사 사이트로 들어가 봤다. 이 사이트 자유게시판엔 ‘개인·법인통장을 구한다’는 대포통장 모집 광고글이 이달 들어서만 총 41건이 올라와 있었다. 비교적 20~30대의 젊은층이 주로 접속하는 디씨인사이드(디씨)와 같은 대형 커뮤니티는 물론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도 대포통장 광고글이 쉽게 눈에 띄었다. 브로커 대부분은 발신자 추적이 어려운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전화를 쓰고 있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사기 매개로 활용되는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해 지난 2012년 11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감독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근까지 보완대책도 수차례 내놨다. 그동안 달라진 게 있을까. 이데일리 취재결과 불법 대포통장 영업이 당국의 단속을 비웃듯 여전히 활개치고 있었다. 당국이 잇따라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인터넷에서 불법 대포통장 영업실태를 확인해도 수사당국이 실제 이들을 적발할 수단이 여의치 않은 것도 문제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반해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려는 브로커들의 수법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불법 대포통장 영업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다.

고객을 가장해 브로커 10명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한국말을 어눌하게 하는 A브로커는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본인 회사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나 하는 사기업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A브로커는 “요즘 전화로 사기치는 얘들 때문에 통장 구하기가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우리처럼 안전한 업체에 맡겨야 돈도 벌고 사기를 안 당한다. 만약 경찰에 적발돼 벌금을 물면 우리가 벌금도 대신 내준다”며 기자를 설득했다. A브로커는 일반은행 통장 3개를 빌려주면 월 550만원, 증권사 입출금통장 4개를 빌려주면 다달이 최고 750만원까지 챙겨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포통장 수요가 늘면서 통장값이 꽤 올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B브로커 역시 “우리가 보이스피싱이나 하는 얘들과 엮이는 게 싫다”며 입을 뗐다. 중국에 술을 수출해 돈을 버는 회사의 직원이라고 소개한 B브로커는 세금을 덜 내려고 대포통장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대포통장 임대인을 영업사원으로 고용한다고 했다. B브로커는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기 때문에 혹시 돈이 자주 입금됐다 빠져나가 당국의 조사를 받더라도 말만 제대로 하면 걸릴 일이 없다”며 “우리와 장기 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도 꽤 된다”고 말했다. 본인만 원하면 술을 파는 영업사원으로 취직시켜준다는 제안도 했다. 이 업체는 통장에 들어오는 돈의 5%를 인센티브로 떼준다고 했다. 대략 통장 2개를 맡기면 월 500만원은 벌 수 있다는 것이다. B브로커는 다른 업체와 조건을 비교해보고 마음에 들면 다시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긴 뒤 전화를 끊었다.

C브로커는 인터넷으로 선불폰(대포폰)을 파는 핸드폰 매장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C브로커는 통장 2개를 빌려주는 대가로 월 200만원을 제시했다. 다른 업체에 비해 금액이 적은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금액이 많을수록 통장을 더 험하게 사용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선불폰 대금결제용으로만 통장을 사용해 안전하다. 통장을 오래 빌려주면 6개월 뒤 사용료를 더 올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연간 약 5만개 이상의 대포통장이 보이스피싱·대출사기에 이용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당국의 은행권 감시 강화로 풍선효과가 나타나 제2금융권과 증권사 입출금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당국도 인터넷상에 올려진 대포통장 광고를 긁어서 경찰에 전달하지만 사실 경찰쪽에서도 대포통장 브로커를 잡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대포통장 수요가 많고 업자들이 단가도 올리다보니 대포통장을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당국이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의심고객의 은행 계좌개설을 최대한 막는 것이다. 당국의 조치로 은행은 계좌를 개설할 때 고객에게 통장 양도는 불법이라는 것을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은행에선 설명 없이 고객의 서명만 받고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국이 내놓은 대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부분 은행권 감시를 강화하거나 의심고객의 계좌개설을 막기 위해 계좌개설 절차를 강화한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고객에게 통장 양도의 불법성에 대해 설명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설명 없이 고객의 서명만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자거래금융법상 본인 명의로 개설한 통장은 본인만 사용해야 한다. 타인에게 팔거나 빌려주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만약 개인통장을 타인에게 빌려주다 적발되면 관련 법률에 따라 징역 3년 이하 또는 20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그러나 실제 법에 따라 처벌되는 경우는 드물다. 본인 역시 피해자라는 걸 주장하면 감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이 규제를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포통장 브로커와 연결될 루트는 상당히 많다”며 “단순히 피해사례만 모아 분석할 게 아니라 브로커와 연결되는 루트를 차단하는 방법들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용어설명

대포통장은 거짓말·허풍을 뜻하는 대포(大砲)와 통장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다. 쉽게 말해 거짓말 통장이다. 대포통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같은 금융사기에 이용돼서다. 보이싱피싱 조직은 금융사기를 통해 번 돈을 대포통장을 이용해 돈을 빼내간다. 타인명의로 개설된 통장인 만큼 수사당국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곰신' 김연아, 표정 3단계
  • 스트레칭 필수
  • 칸의 여신
  • 김호중 고개 푹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