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흑기사 소원은 키스…흑심은 유죄일까[사사건건]

회식에서 술 대신 마시는 대가로 소원 들어달라는 직장상사
소원이라면서 부하 여직원에게 입맞춤 강제추행
법정에서 "소원 쓴 것"이라 변명했지만 유죄로 인정돼
  • 등록 2022-11-09 오후 2:20:23

    수정 2022-11-09 오후 2:20:23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20년 10월 그날은 회식이 있었다. 직장 상사 A와 갓 입사한 여직원 B, 그리고 이달의 우수 실적 여사원 C가 모여 술을 마셨다. 실적을 축하하는 자리였기에 분위기는 훈훈했고 다들 술을 제법 마셨다. 소주병이 테이블 한편에 가득 쌓였다. 흥에 겨운 A가 2차로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일행은 그렇게 노래방을 갔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노래방에서 다시 술자리가 시작했고, 거기서 A의 수작이 시작했다. A는 남녀가 편을 짜서 술 마시기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직장 상사 남성과 부하 직원 여성이 남녀로 묶이는 것도 상식 밖인데, 편을 짜려고 해도 남성이 한 명 부족해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A는 남성 노래방 도우미를 한 명 불러 C에게 붙여 한팀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는 B와 같은 편을 먹었다.

방에서는 양주잔이 돌았다. B는 술을 더는 못 마시겠다고 했다. 만 나이 열여덟 미성년자이기도 했고 사회 초년생 B에게 술은 버거웠다. A가 나서더니 “내가 너 대신 술을 마실 테니 소원을 들어달라”고 했다. B는 “알았다”며 상황을 모면했다. A의 손이 B의 어깨와 허리에 슬그머니 올라갔다. 이렇게 술잔이 계속 돌았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A는 C와 남성 도우미를 옆방으로 보냈다. B와 단둘이 방에 남게 되자 “아까 소원을 말해도 되겠느냐”고 했다. B가 그러라고 했다. A가 B에게 입을 맞췄다. 상대가 고개를 빼고 거부했으나 입맞춤은 계속됐다. 둘의 나이는 열일곱 살 차이가 났다. B가 옆방으로 도망가서 말했다. “언니(C) 저 좀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A가 옆방에 나타났다. B는 잠든 척을 했다. “나는 네 상사다. 일어나.”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B에게 A의 말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다시 술잔이 돌았다. 시계는 새벽 1시께를 가리키고 있었다. A는 다시 B에게 입을 맞추고 신체 주요 부위를 접촉했다. B는 지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성추행을 당했다. 죽고 싶다.’ 이후로 술자리는 더 이어졌다.

회식 다음날 B는 출근하지 않았다. 이튿날 퇴사한 B는 A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법정에 선 A는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다만 입맞춤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 “술을 대신 마시고 받은 소원권을 쓴 것”이라며 “그러니 상대와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A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의 행동이 피해자다움과 거리가 멀다는 게 무죄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B가 성추행을 당하고 A와 같은 방에 있었고, 회식을 마치고 “다음에 저도 도우미를 불러달라”고 발언한 걸 근거로 삼았다. 강제추행을 당해 공포심을 느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판결은 2심에서 뒤집혔다. 강제추행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B의 진술이 일관되고 일행의 법정 진술이 신빙성 있다고 보고 이같이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양상은 개인의 성향 및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피해자다움을 무죄의 근거로 보지 않았다. “직장 상사였기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는 B의 경찰진술도 참작했다. 아울러 B의 도우미 발언에 대해서는 “자신을 접대부 취급한 데에 적극적으로 항의하기 어려워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A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며 “피해자는 A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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