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설득 못한 정부…플랫폼종사자보호법, 연내 입법 무산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배달이나 가사 근로 종사자 등 플랫폼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기본적 안전망을 마련하려는 입법이 사실상 연내에는 물 건너 갔다.

여당은 노동계가 플랫폼종사자보호법 제정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추진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제정안이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가 아니라 프리랜서 등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있는 한 정부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배달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 국회 등에 따르면 오는 9일 정기국회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도 플랫폼종사자 보호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 심사에 오르지 못했다. 플랫폼종사자 보호법안은 사실상의 정부안으로 장철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플랫폼종사자보호법과 직업안정법 등 4개 법안으로 구성됐다. 이 법은 플랫폼 기업과 소속 업체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고 계약의 공정성 확보, 기본적 권익 보호, 주요 정보 신고 의무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올해 연말까지 플랫폼종사자보호법 입법을 목표로 삼고 강하게 추진했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도 지난달 플랫폼 기업 대표이사를 불러 모아 “플랫폼 산업 발전과 종사자의 권익 보호와 애로 해소를 위한 법적 기반도 필요하다”며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이 연내 국회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플랫폼 종사자는 급증하고 있다. 고용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종사자는 취업자(15~69세)의 8.5%인 약 220만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조사 대비 40만명 넘게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적인 권리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과의 계약 형태의 경우 계약을 체결했다는 비율은 57.7%, 어떤 계약도 체결하지 않았다는 비율은 28.5%로 나타났다.

계약을 체결한 사람 중 계약 내용 변경 시 ‘플랫폼이 일방적으로 결정·통보한다’는 응답이 47.2%에 달했다. 특히 종사자는 플랫폼 기업이나 소속 업체의 보수 미지급(22%), 비용·손해에 대한 부당한 부담(18.1%), 일방적 보수 삭감(16%) 등의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료=고용노동부 제공

플랫폼 종사자가 급증하고 기본적인 권리 조차 보호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이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동계가 제정안에 대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여당 관계자는 “양대 노총이 보호법이 필요하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법안 심사를 요구할 텐데 국회에다 당장 필요하다고 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어 올해 안에 임시회가 열려도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이 논의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이 플랫폼종사자를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플랫폼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원칙은 그들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현재 정부안은 절대 수용할 수 없고, 다만 이수진 민주당 의원의 안이라면 다시 논의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 안은 플랫폼종사자가 근로기준법·노조법 등 노동관계법률의 적용을 주장하는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운영 사업자나 이용 사업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즉 플랫폼종사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입증책임을 사용자가 져 근로자성을 사실상 인정하는 셈이다.

고용부는 국회에서 논의가 재개되면 이 의원 안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논의에 나서겠다고 전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안도 플랫폼종사자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그간 프리랜서로 인정되던 부분에서 근로자 인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며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자문기구까지 두기로 했지만,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불안해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런 오해로 연말까지 보호법이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안타깝다”며 “내년 1월이라도 다시 논의가 된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등 보호법 제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