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국 내 공장 증설 속도 낼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회의’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해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이 회의에는 미국 기업들 외에도 한국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참여했다. 사실상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서 동맹국 기업들의 공동 대응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이날 백악관 화상회의에서 어떤 주문을 받았는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미국 공장 증설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공장을 증설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미국의 의지를 확인한 삼성은 주어진 재원 내에서 적절한 분배를 통해 최선의 투자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증설하는 공장 일부를 차량용 반도체 라인으로 만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인텔이 이날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계획을 밝힌 것처럼 삼성전자 역시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해소에 힘을 보탤 것이란 예상이다.
미국-한국-대만 연합전선에 중국 반응 주목
사업적 측면에서 보면 삼성전자의 미국 내 투자 확대는 문제가 없다. 수요가 증가하는 반도체 생산을 늘려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교적인 측면에 있다. 중국이 이번 백악관 회의를 미국-한국-대만 동맹국의 공동 대응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은 반도체를 통상이 아닌 안보 차원에서 보고 있다”며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이 아닌 나라들의 생산 역량을 동시에 검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규태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은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편이 돼야 한다’고 대놓고 얘기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기업인들 불러서 회의를 주재했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미국에 맞서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에 투자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할수록 중국이 견제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산시성 시안 공장에서 6세대 3D V낸드를 양산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장쑤성 우시 공장에서 10㎚급 D램을 생산한다. 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거래를 문제삼거나 중국 내 투자 확대를 요구할 경우 미국과 중국에서 모두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 글로벌 밸류 체인 전략 고심
업계는 미·중 반도체 패권 싸움에서 한국 정부가 외교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업계와 소통하고 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소집, 반도체와 전기차 등 주요 전략산업 현황을 점검하고 대응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이정배 삼성전자 사장과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등이 참석한다. 앞서 지난 9일에는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호승 정책실장이 삼성전자 고위임원들을 만나 반도체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아울러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달께 발표하는 ‘K반도체 벨트 전략’에는 국내 투자 확대뿐 아니라 글로벌 밸류 차원의 전략이 담길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는 미국의 기술과 중국의 시장 모두 중요하다. 둘 다 놓치면 안 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며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키우면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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