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살인은 결코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다

  • 등록 2022-09-27 오후 6:03:32

    수정 2022-09-27 오후 6:03:32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제가 진짜 미친 짓 했다”

스토킹하던 피해자를 신당역에서 잔혹하게 살해한 전주환(31)의 말입니다. 경찰 조사에서는 자신이 불법 촬영과 스토킹으로 검찰이 징역 9년형을 구형하자 원망에 사무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피해자 때문에 화가 났고, 이러한 감정을 조절할 수 없어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피의자 전주환(31)이 21일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출감된 뒤 검찰로 구속 송치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그럼 정말로 전주환은 분노를 조절할 수 없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까요?

형사 사건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는 치밀한 계획살인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김성희 경찰대 교수는 26일 이데일리 스냅타임과의 통화에서 “스토킹은 살해 동기가 우발적이기보단 계획적인 것이 더 많다”며 “우발적이라는 개념은 (살해) 계획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스토킹 범죄 단계에서 따라다니거나 협박 및 강요하는 행동이 나타난다”고 짚었습니다.

김성희 교수가 쓴 ‘친밀한 파트너 살인 특성에 관한 연구’에서도 스토킹 범죄의 계획 살인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김 교수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파트너를 살해한 국내 사례를 분석했는데요. 스토킹 없이 살인을 저지른 경우는 우발적 살인이 78.6%로 높게 나타난 반면, 스토킹이 있었던 살인은 계획 살인이 63.5%로 더 높았습니다.

전주환이 살인을 저지르기까지도 수많은 계획 범죄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서울 교통공사 내부망을 활용해 피해자 주소와 위치를 파악하고, 피해자가 홀로 있는 시간을 노려 ‘샤워캡’을 쓰고 1시간 10분을 기다렸습니다. 휴대전화에 위치정보 시스템(GPS) 정보 조작 애플리케이션도 설치했죠.

김 교수는 전주환이 이런 발언은 지극히 가해자 중심적인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전주환이 말하는 ‘미친 짓’이나 ‘원망’은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것이고, 이러한 발언이 그대로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것입니다.

가해자들이 흔히 하는 ‘욱해서 그랬다’, ‘순간 화가 나서 그랬다’ 등 변명도 스토킹 범죄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선 연구에서 스토킹 가해자가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는 7.3%로 현저히 낮았습니다. 정신질환 없이 스토킹 및 살해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 압도적(92.7%)으로 많습니다.

한편, 미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에서는 간헐적 폭발 장애(분노조절장애)에 대한 명확한 진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계획적인 공격성’은 간헐적 폭발 장애로 보지 않고 있죠. 전주환의 ‘미친 짓’ 발언에 신빙성이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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