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가계빚잡기' 마지막투수 고승범은 직구를 던질까

文정부 마지막 금융위원장 고승범 위원장 31일 취임
"상충 목표 사이 균형 및 현장에서 해법 모색"주문
가상자산 신고 예정대로…코로나 대출 추석전 결정
  • 등록 2021-08-31 오후 5:54:36

    수정 2021-08-31 오후 9:14:14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금융위기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온다.”

인사청문회를 하루만에 통과하고 31일 취임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단호하다. 위원장 후보로 내정된 지난 7월 초부터 약 한달간 급증한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계속 던져온 그는 31일 취임사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영국 금융감독청(FSA) 의장을 역임한 ‘아데어 터너’가 한 말을 인용, 위기는 예고하고 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터너는 금융위기를 회고하며 “의장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불과 일주일 전에도 재앙이 코앞에 와 있음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평소 온화한 성품으로 알려진 그지만, 가계부채 관리를 통한 시장안정을 위해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취임사 곳곳에 묻어난다.

마무리투수의 최우선 과제는 ‘가계부채 관리’

고승범 위원장은 10개월 정도 남은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 ‘마무리 투수’다. 상대의 불방망이 타선을 잘 틀어막아 앞선 경기를 지켜내야 하듯, 급증할 대로 불어난 1800조원의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 있다.

고 위원장은 ‘특급 소방수’ 역할을 해본 경험이 있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부실 정리를 주도하며 ‘빚의 위험성’을 몸소 체험했다. 예전부터 그와 손발을 맞췄던 금융당국 한 고위공무원은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겪으면서 그의 입은 더 무거워졌고, 행동은 민첩해졌다”며 “감당할 수 없는 빚의 최후가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온화한 리더이자 조용한 성격으로 알려진 고 위원장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으로 재직하면서 기준금리 인상을 가장 먼저 주장하는 ‘매파’ 본색을 드러낸 것도 이러한 경험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고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급증한 가계부채가 내포한 위험요인을 제거하는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가계부채와의 전쟁’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가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은 등판 시점에 맞닥트린 상황 자체가 녹록지 않아서다.

가계부채는 한국은행 가계신용 기준 2분기 1805조원9000억원으로 불어났다. 1년 사이 168조6000억원(10.3%) 급증했다. 이전 ‘중간 계투’였던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이 올해 가계부채 관리 목표치로 제시한 연 5~6%의 두 배 가량 빠른 증가 속도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 속에 지난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하지 않으면서 각종 금융완화책을 쓴 탓이다. 여기에 ‘영끌’(영혼까지 끌어옴) ‘빚투’(빚을 내 투자) 영향도 한몫했다.

고 위원장은 취임식 직전 금융위 기자실을 찾아 “1~2주 내에 추가 대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중함을 보였지만,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빠른 만큼 그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관측이다. ‘갚을 수 있는 능력만큼만 빌려라’는 취지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규제 강화가 유력한 카드라는 게 금융권 시각이다.

하지만 고 위원장의 임무는 일반적인 마무리 투수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삼진과 범타로 상대를 무조건 틀어막는 식의 대출 옥죄기는 곤란하다는 게 대출 이용자들의 일반적 생각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 위험요인인 가계부채가 터지지 않게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동시에 실수요자에게 돈줄이 마르지 않도록 숨구멍도 열어달라는 주문이다. 그가 풀어야 하는 고차 방정식 가계부채 관리의 딜레마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강도 높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추가 대책이 부를 수 있는 실수자의 ‘대출 절벽’과 혼란도 걱정스런 부분이다. 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가 신규 주택담보대출과 집단대출 등을 갑작스럽게 금지하자 시장에서는 도미노 대출 막힘을 우려한 ‘막차 대출’의 선대출 수요 등이 몰리는 실정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 26일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143조1804억원으로 지난 20일 이후 7일 만에 2조8820억원 늘어났다. 직전 1주일(13∼19일) 증가액인 4679억원의 6.2배 수준이다.

특히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0.25%P 인상은 고 위원장에게는 가계부채 관리의 양날의 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개인대출자의 차입 비용을 올려 대출 상품에 대한 과수요를 일부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저신용, 저소득자,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한계차주의 금융부담 역시 높이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한은이 국회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지난해 4분기말 기준으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전체 가계대출 이자는 11조8000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계산됐다.

고 위원장도 이런 가계부채 문제의 복잡성과 해법을 잘 알고 있다는 듯하다. 그는 취임사에서 “규제강화와 시장친화, 금융안정과 금융혁신, 건전성 제고와 금융소비자 보호 등 상충되는 목표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며 “과거 경험이나 교과서적 이론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현실을 관찰하고 현장에서 해법을 찾아보자”고 금융위에 주문했다. 스스로도 기자들과 만나 가계부채 추가대책에는 실수요자 보호대책도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논란·사모펀드 제재 등 현안 산적

고 위원장의 앞날에는 가계부채 관리 외에도 새로운 현안도 산적해 있다. 우선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 관리·감독 문제가 발등의 떨어진 불이다. 국내에서 가상자산 사업을 영위하려는 가상자산 거래소는 내달 24일까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하고 은행의 실명 입출금 계정(실명계좌)을 확보해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수리를 마쳐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신고서를 제출한 곳은 업비트가 유일하다. 다른 거래소는 실명계좌 발급에 어려움을 겪어 무더기 폐업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고 위원장은 하지만 “가상자산 시장 문제도 피하거나 미룰 수 없다”며 가상화폐 신고 기한 연장이 불가하다는 단호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취임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관련 간담회를 갖고 신고 거래소를 늘릴 방안, 가상자산 업권법 제정 방향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한다는 지적이다.

9월말로 종료되는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의 대출 만기연장·이자상환 유예 조처의 3차 연장 여부는 고 위원장의 목소리가 반영돼 결정되는 첫번째 중요 사안일 가능성이 크다. 고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방역이 엄중한 상황이라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어려움을 충분히 감안하겠다”며 “추석 전에는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이 주장하는 이자상환 유예 조치의 중단 요구에 대해서도 “금융권과 협의겠다”고 말해, 현장 목소리를 반영할 것을 시사했다. 이자상환 유예 조처의 일부 중단 가능성이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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