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강서구 한 편의점. 기자의 요청에 편의점주는 계산대 한 켠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를 스스럼없이 꺼내 들었다. 이날은 편의점·제과점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 첫 날이지만 편의점주는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편의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편의점의 한 직원은 “일단 종이봉투 구매를 권유하지만 일회용 비닐봉투를 고집하는 손님들에겐 어쩔 수 없이 드린다”며 “그나마 일회용 비닐봉투 값인 20원조차 안내려는 손님들도 있었는데 100원, 200원 하는 생분해봉투나 종이봉투는 더할까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
이번 편의점·제과점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금지는 지난해 12월 31일 개정·공포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 중 일회용품 사용 제한 대상 확대 규정에 따른 것이다. 면적 3000㎡ 이상 대형마트, 165㎡ 이상 슈퍼마켓에서 시행 중인 규정을 소규모 점포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일선 현장에선 이날 이같은 규정의 본격 시행에 앞서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를 지적하며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는 일회용 비닐봉부는 물론 생분해봉투 역시 사용을 금지키로 했다가 지난 1일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가이드라인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생분해봉투는 2024년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각 편의점 본사는 생분해봉투 발주를 중단하고 전국 점포들의 재고를 줄이던 와중 정부의 급작스런 지침 변경에 부랴부랴 재발주를 해야만 했다.
세부안 없는 종이컵·나무젓가락…“에라 모르겠다”
즉석조리 식품을 취급하는 편의점들의 혼란은 이미 진행형이다. 편의점은 종합소매업으로 분류하지만 전국 60~70% 정도의 편의점은 즉석조리식품을 판매해 식품접객업의 하나인 ‘휴게음식업’으로도 등록을 한다. 자원재활용법은 이같이 종합소매업과 식품접객업이 혼재된 편의점 업계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4월 1일 식품접객업을 대상으로 나무젓가락과 일회용 용기 등 사용이 금지된 이후 편의점 내 즉석조리식품 취식에 대한 세부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환경부는 이와 관련 즉석조리식품이더라도 점포 내에서 나무젓가락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 개정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지만, 정작 편의점 일선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이날부터 식품접객업을 대상으로 점포 내 종이컵 사용도 금지해 혼란만 키우고 있다. 전국 대다수 편의점은 즉석 원두커피를 판매하고 있는데 단순 종합소매업만 등록한 편의점과 달리 식품접객업까지 등록한 편의점은 점포 내에서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각 편의점 본사의 해석은 제각각이다.
A편의점 본사는 “단순하게 얘기해 치킨을 판매하는 편의점 내에선 종이컵으로 커피를 못 마시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B편의점 본사는 “편의점 즉석 원두커피는 손님이 직접 내려 마시기 때문에 컵라면과 같은 개념으로 점포 내 종이컵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며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더 큰 문제는 판매 현장이다. 고등학교가 위치해 평소 점포 내 치킨과 어묵, 군고구마 등 즉석조리식품 취식 손님이 많다는 서대문구 한 편의점주는 일회용품 사용 제한 규정에 대해 “아예 모르다 보니 대응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
제과점과 카페들은 상대적으로 규정 적용이 단순하고 준비 기간 또한 길어 큰 혼란은 없었다. 하지만 일부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는 점포들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강서구와 강남구, 영등포구 등 여러 제과점과 카페에선 점포 내에서 종이·플라스틱컵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서초구 한 개인 카페 점주는 “지난 4월부터 점포 내 일회용품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면서도 “설거지 인력 고용, 재생 빨대, 종이 봉투 사용에 따라 추가적으로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데 여전히 일회용품을 쓰는 다른 카페들을 보면 박탈감이 든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