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경영한 故김우중 회장의 파란만장한 삶

대한민국 경제 성장 주도한 대표적 1세대 기업인
31세에 대우실업 창업해 30년만에 재계 2위로 키워
세계경영 신화 쓰다 외환위기로 대우그룹 몰락
  • 등록 2019-12-10 오후 4:52:44

    수정 2019-12-10 오후 4:52:44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지난 9일 향년 83세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함께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주도한 1세대 기업인이다. 김 전 회장이 일군 대우그룹은 한때 한국의 수출 14%를 차지했을 정도로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김우중 전 회장은 특히 ‘세계경영’으로 유명하다. 대우그룹 전성기 때는 1년 중 28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하며 수백여 곳의 현지법인과 해외 네트워크를 직접 챙겼다. 김 전 회장이 집필한 베스트셀러 제목이기도 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은 그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10일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에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창업 첫해부터 세계로 눈 돌리며 고속 성장 발판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 전 회장은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던 중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출범한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세계로 눈을 돌렸다.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 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린 데 이어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시장을 넓히며 성장했다. 1969년에는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다. 김 전 회장은 생전에 “세계를 무대로 생각하면 되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 이런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세계적 안목이고 글로벌 마인드”라며 세계경영을 설파했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었다. 1973년에는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꿔 달고 무역부문인 대우실업과 합쳐 그룹의 모기업격인 ㈜대우를 출범시켰다. 이어 1976년에는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1974년 인수한 대우전자와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의 주력으로 성장시켰다. 대우그룹은 그룹의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1990년대 들어선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20여차례 북한을 오가며 김일성·김정일을 만나 남북을 잇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95년 한 강연에서 “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걱정하는데, 우리 세대로 봐서는 할 수 있으면 빨리 해야 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로 대우그룹 공중분해 후 청년사업가 양성

대우그룹은 1998년 기준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을 거느리며 자산 기준으로 현대그룹에 이은 재계 2위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10만5000명, 해외사업장 21만9000명으로 임직원이 30만명이 넘었다. 당시 한국의 총 수출액 1323억달러 중 대우그룹의 수출액은 186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는 세계경영 신화를 무너뜨렸다. 1998년에는 대우그룹 구조조정의 최우선 핵심사안으로 꼽혔던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의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 조치에 이어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그 즈음 일본계 증권사에서 ‘대우그룹의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것을 계기로 상황은 더 나빠졌다.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대우그룹은 끝내 해체됐다.

불행은 대우그룹 해체에서 끝나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 프랑스 등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 2005년 귀국해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된 이후 그는 ‘제2의 고향’ 베트남 등을 오가며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GYBM)’에 주력해왔다.

김 전 회장은 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을 줄곧 내비쳤다. 2014년 연세대에서 열린 ‘연세대 상경대학 창립 100주년 기념 초청 특강’에서 그는 “개발도상국 한국의 마지막 세대가 돼서 ‘선진 한국’을 물려주고 싶었다”며 “우리는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미안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해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들 500여명이 참석한 ‘대우특별포럼’에선 “방만한 경영을 하고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쓰러진 것으로 알려진 대우그룹 해체가 사실과 달리 알려져 있다”면서 “이제는 시간이 충분히 지났기 때문에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고 역사가 자신들을 정당하게 평가해 주길 바란다”고 주장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고인은 17조원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과 세금을 내지 못하고 1년여 투병 생활을 하다 9일 오후 11시50분 수원 아주대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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