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vs '혼자만의 착각'…여고생 강제추행 20대 공익男 '무죄'

서울동부지법, 국민참여재판서 정모씨 무죄 선고
`18년 온라인 채팅방서 만난 여고생 추행한 혐의
檢 "이성적 호감 가진 사이로 안 보여"
정씨 측 "청춘남녀 사이 자연스러운 스킨십"
  • 등록 2020-01-15 오후 9:22:22

    수정 2020-01-15 오후 9:36:44

에버랜드 (사진=뉴스1)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유튜브 동아리 오픈 채팅방에서 만나 온라인 대화를 이어가다 놀이공원에서 처음 만난 여자 고등학생의 손과 볼 등을 만져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20대 사회복무요원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는 15일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정모(23)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만장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기존 관계, 신체접촉 정도를 비춰볼 때 강제로 추행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원고 A(당시 18세)양은 지난 2018년 7월쯤 오픈 채팅방을 통해 정씨를 알게 됐다. 온라인에서만 대화를 주고받다가 같은 해 12월 정씨의 제안으로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 A양은 당시 정씨가 자신의 손을 갑자기 잡고,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볼을 만지는 등 강제로 추행하려 했다며 작년 1월 정씨를 고소했다. 정씨 측은 신체적인 접촉은 인정하지만, 이성끼리 데이트 과정에서 나온 행동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청춘남녀의 썸 vs 지극히 혼자만의 생각…법원 판단은

이날 재판에서는 정씨의 신체접촉이 강제추행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검찰은 정씨가 강제추행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강제추행은 폭행이나 협박을 전제로 하지만, 대법원에선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 없이 손을 만지는 행위 자체도 폭행으로 본다”며 “이 과정에서 상대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힘의 대소강약과 상관 없이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정씨가 해당 여고생의 손을 잡고 볼을 만지거나 껴안으려고 시도한 사실 등 사실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범죄 성립 여부는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변호인 측은 “청춘 남녀가 데이트할 때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정도의 신체접촉일 뿐, 형법에서 처벌 대상으로 하는 강제추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강제추행’ 구성요건 가리기 위한 ‘거부’ 여부…피해자 불참으로 확인 어려워

강제추행 여부를 가리기 위한 ‘거부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양측 입장은 엇갈렸다. A양이 정씨를 고소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 진술한 내용에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별다른 대화 없이 계속 등을 만지고 머리에 손대는 행동을 해 심한 불쾌감을 느꼈고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명시됐다. 처음 만나자마자 자신의 몸을 만져 수치심이 느껴졌고, 잡은 손을 뿌리치고 몸을 빼는 등 거부의사를 밝혔다는 게 A씨 주장이다.

하지만 정씨 측은 A양이 확실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씨 측 변호인은 “정씨가 A양의 머리에 손을 댔을 때 ‘물어버린다’고 장난스럽게 대응했을 뿐 진지한 태도로 거부의사를 표현한 바 없다”며 “물론 이 행동이 A양의 허락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매너 없는 행동과 범죄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A양은 재판에 불참했다. ‘2차 가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검찰은 “국민참여재판에선 성폭력 피해자가 반대의사를 표현하면 출석을 배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며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자를 수차례 수사기관으로 불러 2차 가해를 하는 걸 막고자 소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온 정씨의 동아리 후배 김모(20)씨는 정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김씨는 “정씨가 워낙 붙임성이 좋아서 남자든 여자든 다가가서 껴안고 악수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정씨의 여자친구도 참석해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정씨는 “정말로 제가 A양을 강제추행하려고 했다면 옆구리만 찌르고, 머리만 쓰다듬었을까”라고 항변했다.

배심원 8명의 결론은 ‘무죄’

검찰은 정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정씨는 A양과 온라인 상에서 대화를 이어가며 ‘썸’을 탔다고 주장하지만 대화 내용을 보면 이성적인 호감을 주고받은 걸로 보이지 않는다”며 “‘썸’ 관계라고 오해했다 치더라도 신체접촉에 거부 표시를 충분히 했는데도 추행을 했기 때문에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최후 변론에서 “피고인의 행위가 비록 명시적으로 고소인의 허락을 받은 건 아니지만, 사귀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상황에서 손을 잡고 가볍게 포옹하려 한 신체접촉이 과연 기습 강제추행에 해당하는가”라며 “피고인 입장에서는 데이트라 생각하고 가볍게 행동한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양쪽 주장을 청취한 배심원 8명(예비 배심원 1명 제외)는 1시간 진행된 평의 끝에 모두 무죄 평결을 냈다. 15일 오전 9시 30분 시작된 이번 국민참여재판은 8시간여만에 마무리됐다.

선고 결과에 대해 정씨는 “울컥했다”고 답했다. 정씨 측 변호인은 “애초에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며 “검찰이 항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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