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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록의 채권프리즘)(속)OK목장의 결투
- [edaily] 2001년 10월 OK 목장의 결투에서 주가에 장렬하게 패배한 채권시장은 와신상담했으나 6개월 정도 지나서 또 한번 쓰라린 패배를 보고 있다. 1라운드 때는 긴 듀레이션에서 금리가 상승해서 K.O.되었다면, 이번에는 swap pay, FRN매입, 짧은 듀레이션 등으로 만반의 결투 준비를 갖추고 있는데 예상외의 주가하락이라는 뒤통수를 맞는 바람에 금리 하락으로 심적인 K.O.패를 당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주가하락은 경기 회복국면에서의 주가하락이라는 것과 역사적인 하락폭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여느 때와는 다른 국면이며, 우리나라가 받을 영향도 경우에 따라서는 클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개될 ‘OK목장의 결투’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보기로 하자.
1.역사적(historic) 장면
지금 미국의 주가하락은 역사적 국면에 해당된다. 1차 대전 후의 호황과 29년의 대공황과 2차 대전으로 인한 주가 폭락, 이후 50년대와 6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호황(Go-Go years)과 73년 1차 석유파동과 함께 시작된 주가 폭락이 있었으며 특히 이 시기는 폭락을 전후하여 20년에 걸쳐 주가가 횡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후 계속 상승하던 주가가 폭락한 것이 현재 국면이다.
따라서 현재의 국면은 그렇게 쉽게 대처할 국면은 아니다 : 혹자는 double-dip을 넘어서 장기침체를 고려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경험에서 보듯이 이런 국면에서는 70년대처럼 장기간 등락국면이 이어질 수 있고, 저점 이후 단기 급등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조정의 폭과 기간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조정 이후 예외 없이 장기간 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하락폭의 몇 배에 해당하는 보상을 해주기도 한다.
2. 몇 가지 판단
현 국면에 대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몇 가지만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하자.
(1) 미국은 10년 호황 동안 경상수지 적자 확대, 사상 최저의 저축률, 재정수지의 적자 전환이라는 문제를 남겼다. 반면에 10년 동안의 주식시장 호황으로 자산이 증가했던 투자가들은 이제 원점에 들어섰다(아래 그림). 3개월 단기 투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 베이비 붐 세대들도 90년대 40대에서 이제 50대에 접어 들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는 것이 금융사의 경험이다.
(2) 더블 딥이나 장기 침체 가능성은 낮다. 일본의 장기침체는 85년 이후 엔화 강세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여기에 인구 노령화 문제, 적절치 못한 정책 대응 때문이었다.
미국은 주가의 버블을 걱정하는데 주가는 환율에 비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국지적이다. 그리고 인구 구성도 미국은 일본보다는 양호하다.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의 이유중의 하나로 다른 문명권에 비해 급속하게 늘어나는 인구를 들고 있다. 그리고 젊은층의 비중이 높을 때 그 사회는 개혁적이고 과격해지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구는 장기적으로 경제, 문화적인 구도 형성에서 중요한 고려 상황이다.
부동상 시장도 마찬가지 인구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토드 부크홀츠는 베이이 붐 세대들이 은퇴 후의 집에 대한 수요로 다른 보금자리를 찾으면서 집값이 떨어진다고 하나, 일단 이들은 더 비싼 집들을 수요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입국한 외국 출신 주민들의 집에 대한 수요도 있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의 버블과 붕괴는 일본과 같을 수는 없다.
(3) 몇 년 전에 모 자동차 박물관에서 경주용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강한 소리였다. 미국은 이런 엔진 소리를 당분간 듣기 어려울 따름이며 엔진 자체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가격은 실물변수에 비해 변동성이 크다. De Long은 추정키로 주가의 실질가격이 실물변수의 10배에 이른다고 한다. 장기 호황과 New Economy에서 장기불황 내지는 더블 딥이라는 기대로 실물에 대한 예상이 반전되면서 주가는 급변동 했다. 향후 미국 경제가 점진적 성장궤도에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서 주가는 반등하게 된다. 다만 실물의 궤도를 감안한다면 반등의 폭은 제한적일 것이다.
(4) 이후의 긴 강세장에 대해서는 미국의 100년간 주가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20년대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된 자동차 산업의 호황이 29년 대공황 이후 합병을 겪으면서 미국의 주력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과 유럽 대륙간 전화선을 깔 때, 어부가 기념으로 전화선을 잘라 가기도 했고, 태평양에 전화선을 깔았을 때는 태풍 등의 영향으로 끊어지기도 했지만 투자는 계속되었다. 방향이 잡히면 가끔씩 길을 헤매기도 하지만 그 길을 가게 된다. 실리콘 벨리의 개념이 어떤 형태로 다시 구현될 지는 몰라도 그 개념은 여전히 중요한 성장 엔진이 될 것이다.
(5) 아시아의 de-coupling은 맞는 개념이다. 아시아는 빠른 경제성장과 많은 인구로 이미 서구에 견줄만한 세력이 되었다. 중국 본토의 급격한 성장과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대만 등과 연계된 중국의 경제권이 있다. 미흡하지만 구조조정을 했을 뿐 아니라 1세기에 있을까 말까 하는 훌륭한 인구구조(미국의 90년대와 같은 인구구조를 가지고 있다)를 가진 우리나라도 훌륭한 투자 대상이다.
그러나 de-coupling을 너무 조급하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아시아 시장은 역동성이 있는 만큼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세계시장이 안정국면에 접어들 때까지는 emerging market이 de-coupling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은 4반세기에 한번 정도 도래하는 불확실한 국면인데 이런 상황에서 성급한 de-coupling이 일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좀 더 긴 시야에서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3. KOSPI로 본 금리
(1) 당분간 금리는 주가에 연동하는 것이 패션이다. 최근 3개월간 일별자료를 단순 회귀분석 해보면 주가는 금리의 91%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6개월간으로 분석기간을 확장해도 주가의 금리 설명력이 78%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는 펀더멘탈의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채권시장 참가자들이 금리의 방향성을 주식시장의 정보에서 찾기 때문이다.
주가라는 관점으로 볼 때 금리는 어디 까지 보아야 하는가. 3개월간 자료를 이용한 추정 결과에 따르면 KOSPI 650이면 5.14%, KOSPI 600이면 4.85%이다. 6개월의 자료로 회귀 분석한 결과를 추정하면 각각 5.36%와 5.14%이다. 주가 600이면 시장의 심리가 무너진 선인데, 이 경우 금리는 5% 전후로 추정된다.
다음의 주가지수에 따른 금리수준 표를 보면 매 주가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금리의 적정수준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주가 50p당 금리는 25bp움직이는 모습이다. 당분간 등락국면이 이어질 것이므로 이 표를 참조하여 거래하면, 모형의 단순함과 조잡함에 비해서는 훨씬 유용할 것이다.
(2) 금리의 변동성 분포를 보면 일간 변동성은 5bp이내가 대부분이나 최근에는 일간(inter-day) 뿐만 아니라 일중(intra-day)에서도 10~20bp정도 변하는 일이 많아 변동성이 상당히 큰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당분간 이 영역에서 금리는 계속 움직일 것으로 보이며, 일간 뿐만 아니라 일중의 변동성도 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주가는 저점을 모색하고 있든지 혹은 한번 더 하락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를 택하든지 주가의 변동성은 클 것이며, 주가에 계속 연동될 채권가격 역시 변동이 클 것이다.
(3) 29년 이후 미국의 역사적인 약세장을 보면 ‘주가의 급락이 진정되면’ 그 이후 바로 반등이 있으며, 점진적 상승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형성되던 기대가 반전되면서 발생하는 금융시장의 특징이다. 물론 이러한 반등이 추세전환일 수도 있고(29년), 지루한 등락장의 시작(73년)일 수 있지만 급반등이 있다는 점은 공통된다.
주가 변동성 확대에 따라 채권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변동성을 이용한 거래를 하든가 혹은 중립적인 듀레이션에서 차익거래 등을 하고 여기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미국의 과거 주가 움직임에서 반등 국면을 고려한다면, 시장이 이런 변동성에 익숙할 때쯤이면 금리는 다시 중기적인 추세를 형성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일련의 시장 움직임은 사람의 예측 지식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한다. 하이예크가 ‘지식의 오만’(the pretense of knowledge)이라고 한 것이 실감나는 국면이다. 주식시장의 구루(guru)들이 미래에 대한 예측보다는 두려움과 욕심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지 말자는 것이다. 삶이 소설보다 훨씬 소설답듯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시장을 대하는 것이 시장에 대한 예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 (이진우의 FX칼럼)너무 취약한 시장구조
- [이진우 칼럼니스트]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3개월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줄곧 빠지기만 하여 170원 가량의 낙폭을 기록하던 환율이 이틀 만에 35원도 튀어 오르는군요. 1170원 아래에서 달러를 던졌다면 배 아프고 억울해 이 장세를 어찌 눈 뜨고 지켜 볼 수 있겠습니까? 한 차례 중간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 했습니다.
◇시장에 대한 예측보다는 시장 움직임에 대한 대응
1180원 아래로 환율이 미끄러졌을 때부터 “반등에 대한 기대”를 못 버리는 코멘트를 계속하던 필자에게 한 후배가 메시지를 보내 왔었다. “Cope with any situation! Foretelling is not important…항상 느끼는 거지만 머니게임에서 중요한 건 대응이지 예측이 아닌 듯 합니다. Nobody knows what will happen next…”
지난 번 칼럼에서 언급했던 “박찬호와 선동열論”을 주장했던 친구는 필자가 지금까지 보아 온 “딜러” 중에서 단연 한국 최고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데(기계보다 정확한 손절매 원칙 준수, 3분 동안 포지션 방향이 열번도 바뀐 적 있는 순발력과 탄력성, 오랜 기간 꾸준한 수익률로 나타나는 총잡이로서의 실력), 이따금씩 그 친구에게 “지금 뷰는 어때?”라고 질문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 같았다. “뷰? 나 그런 거 없어. 시장이 위로 가자면 사고 못 가면 파는 것 뿐…”
최근 몇 주 동안의 국내외 증시와 환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 정말 “예측이 무의미한 시장”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예측과 전망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당장 내일 아침 아니면 오늘 오후에 헛소리로 판명될지언정 아무도 모르는 “잠시 후”에 대하여 온갖 상상력과 알량한 경험을 동원하여 썰(說)을 풀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 말 같지 않은 말들도 잘만 활용하면 트레이딩에 어떤 의미에서건 도움은 된다. 참고로 월요일 아침 모 증권사가 하반기에 종합주가지수가 580까지 밀릴 수 있다고 리포트를 내 놓았는데(그 회사가 바로 환율 폭등 직전에 연말 환율 1150원으로 하향조정 한다는 리포트도 냈었다), 한 번 지켜 볼 일이다.
◇시장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초라한 원/달러 시장
은행권의 구조조정 및 합병을 거치면서 이른바 시중은행이라 불리는 은행의 숫자가 많이 줄어 들었다. 거기에다 워낙 안 움직이기로 유명한 데에다 그 움직임조차도 일관성을 결여하고 차트도 잘 안 맞는 시장이 되고 보니 외국계 은행들 중 상당수는 아예 원/달러 시장에서 발을 뺀 곳도 많다. 먹을 것도 없을 뿐더러 잘 먹여주지도 않는 곳이기에……
그러다 보니 서울 외환시장에서 주문 좀 낸다 할 만한 은행들은 외국계를 포함하더라도 열 손가락이면 충분하다. 업체들도 마찬가지, 환율 빠지는 장에서 주목 받는 전자회사, 중공업 회사, 자동차 회사 몇 군데와 환율 오르는 장에서 무서워지는 정유사 몇 군데 빼면 시장을 움직일 만한 업체라 해 봐야 그 또한 열 손가락도 못 채운다.
이런 장에서 힘 쓸 수 있는 세력이라면 이른바 역외세력이라 불리는 해외 투자은행 몇 군데와 외환당국… 역외가 산다 판다 말도 많지만 알고 보면 골드만 삭스나 모건 스탠리 같은 투자은행 한 두 군데가 조금(?) 매수세를 늘려보거나 달러를 팔겠다고 나서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외가 떴다 하면 시장은 시쳇말로 알아서 긴다. 그들은 길게 보고 방향 잡아주는 세력들이며 손절도 없는 슈퍼맨이라는 잘못 된 인식이 우리 외환시장을 지배한지 오래다. 당국 또한 욕 먹는 것으로는 세계 누구도 부럽지 않은 곳이다. 환율 빼겠다고 달려들면 국책은행 매수세 보인다 그러지 좀 위로 당길 만하면 국책은행 패밀리라 불리는 외국계 은행들 물량 털고 있지, 그래서 시장참여자들이 이런저런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 당국을 원망도 많이 한다. 그러나 시장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의 우리 원/달러 시장에서 그나마 당국이라도 없으면 어찌 될까 생각해 보면 아찔해 진다. 하루 20원 안팎의 움직임으로 지난 금요일 서울 외환시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당국마저 없다면 우리 외환시장은 매일 하루 50원에서 100원도 움직일 수 있는 곳이다. 환율 빠질 만 하면 매수세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환율 좀 오른다 싶으면 그 동안 그렇게 많다던 오퍼(Offer) 물량이 눈 녹듯 사라지며 오퍼공백 상태까지 가는 이 시장에서 그나마 견딜만한 레벨에서 손절매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당국이 시장참여자들 중 큰 축을 감당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원/달러 시장이 시장답게 움직이려면 시장참여자들의 저변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하다 못해 가구전문 상가나 고서적 취급 서점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포 숫자는 되어야 한다. 한 두 군데에서 마음 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시장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법 보다는 주먹”이 말을 하는 곳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고 장기적으로는 “손님들”이 다 떠날 수 밖에 없는 곳이 될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조금 더 잘난 척을 해본다면…
우리가 매 순간 모니터를 쳐다보며 시장을 쫓아 간다고 해서 좋은 수익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지난 금요일 미리 잡혀 있었던 가족들과의 휴가계획 때문에 목요일 뉴욕시장의 결과도 확인하지 못한 채 데일리 전망을 하루 전날 저녁에 올리고 갔다.
“하루 휴가로 목요일 저녁 시간에 뉴욕시장의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쓰는 전망이라 신뢰할 만한 데일리 전망은 될 수가 없다. 그러나 환율의 추가급락을 기대하고 믿는 시장참여자들도 다음 사항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첫째,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는 SK 텔레콤 지분매각과 관련한 12억불 가량의 공급물량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일찌감치 노출되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재료는 막상 그 여파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상례다.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SK 측에서 이미 지분매각과 관련한 물량을 이번 달러 급락장의 와중에 알게 모르게 처리해 왔을 수가 있고(전형적 달러 매수세력인 정유사가 그 동안 달러매도에 치중해 왔다) 당국이나 업체 측에서 밝히듯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중립적 처리”를 거친다면 당장에 달러/원 시장에 환율하락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둘째, 1달러선에서 방황하는 유로화나 115엔대 진입을 매우 두려워 하는 달러/엔 환율이나 지금 당장 달러 대비 급등세를 지속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말발 안 서고 시장에서 무시 당하는 폴 오닐 현 미국 재무장관을 대신하여 클린턴 행정부 시절 시장과 아주 호흡을 잘 맞춰 왔던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그리고 유럽이나 일본의 통화도 마냥 달러 대비 강세를 지속할 만한 경제적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 25일 발표된 경제지표만 보더라도 독일의 7월 IFO 지수가 89.9로 나타나며 2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고(6월은 91.3) 영국의 6월 소매매출도 예상 밖의 감소세를 나타냈다. 일본 또한 6월 소매매출이 전년 동기비 3.7%나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 최근 달러 약세는 유럽이나 일본의 경제상황이 미국보다 월등히 나아서 이루어진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게 만든다.
셋째, 월말을 맞아 네고물량의 공급을 기대하지만 의외로 네고물량이 적고 그 동안 발을 빼고 있던 결제수요의 유입이 이루어지면 수급상 달러수요 우위로 장세가 전환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동안 나올만한 물량은 얼추 나왔다는 계산과 달러가 필요한 세력들이 1170원 아래에서는 자꾸 막히는 환율을 보고 서서히 매수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정인데, 여기에 역외세력의 매수세까지 재개된다면 의외로 급한 환율의 반등도 가능하다.
달러/엔 및 NDF 시세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정해 보는 일중 레인지는 막연하다. 1160원에서 1180원 사이라 해두면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아예 뉴욕시장을 안 보고 쓴 전망이 시기적절한 코멘트가 되었지만, 만약 금요일 시장 한가운데에 있었더라면 1180원이라는 황송한 레벨에서는 고점매도에 나서라고 주변에 권하다 된통 망신을 당할 뻔 했다.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1160~1180원”의 일중 예상 레인지도 우스운 얘기가 되어 버렸다. “예측”보다는 “대응”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늘 틀리는 예측이라도 우리는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본 칼럼을 통해 자주 이야기 해왔듯이 “모두”가 간다고 할 때가 제일 조심해야 할 때이다. 경제신문과 일간지를 거쳐 TV에서까지 환율 폭락세를 다룰 시점이 되었으면 달러를 매수할 시점을 조율하는 것… 시장에서 잔 뼈가 굵었다는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의외로 중요시 한다. 그리고 국내 프로야구 해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하일성 씨도 9회까지 이어지는 경기를 해설하는 동안 “이 한방이(혹은 이 한 번의 야수실책이) 지금까지의 경기흐름을 돌려 놓을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 가거든요.”하는 식의 가능성과 분위기 해설로 경기를 풀어가지 않는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시장의 흐름을 짚어가는 본 칼럼에서 매일매일의 환율 등락을 다룰 수는 없다. 필자의 데일리 시황(www. nfutures.co.kr)에 대해서도 지적과 편달을 아끼지 않는 독자 분들이 계셨으면 하는 개인적 소망을 밝힌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 비해 토론 문화가 가장 뒤떨어진 외환시장에서 서로의 정보와 뷰를 교환하면서 “휘둘리지 않는 개미”가 되었으면 하는 오래 된 꿈을 같이 이루어 가고 싶다.
- (박주식의 주식보기)스톡옵션과 회계부정
- [edaily] 미국기업들의 회계부정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회계부정은 미국시장에 대한 신뢰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짐으로써 미국 주가 폭락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회계부정은 회사의 경영자, 회계감사인, 증권감독기관을 포함한 정부 등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회사 경영자의 몫이다. 왜냐하면 경영자는 모든 거래를 분류하고 집계하여 결산보고서를 작성함에 있어 필요한 정책 수립이나 내부통제시스템 유지 등에 있어 포괄적인 책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영자들은 회사의 전략과 통상적 영업활동을 지휘하여 회사의 영업실적을 제고시켜야 하는 책임뿐만 아니라 이들 실적을 정확히 집계하여 주주 및 기타 이해관계자들에게 보고하는 책임까지 부여돼 있다. 그러므로 회사 경영자는 영업활동과 이에 대한 보고활동 양면에서 주주들과 이해가 상충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꽃피우는데 일익을 담당해 온 스톡옵션제도는 경영자이익이 주주의 이익과 일치하게 함으로써 경영자가 주인의식을 갖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회사 실적제고에 노력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확대 운영되어 온 스톡옵션제도는 최근 경기 하락기를 맞아 경영자들로 하여금 회계부정의 유혹에 쉽게 빠지도록 하는 동인이 됨으로써 그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다.
◇스톡옵션이란
스톡옵션(Employee Stock Option)이란 회사의 설립과 경영ㆍ기술혁신 등에 기여하거나 기여할 수 있는 임직원들이 회사 주식을 미래에 특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주식회사 미국을 견인하는데 일익을 담당해온 이 제도의 도입은 1950년 트루만 대통령시절에 이뤄졌다.
스톡옵션은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옵션이다. 옵션은 부여당시의 시가와 옵션상 행사가격에 따라 그 가치가 변동한다. 옵션의 행사가격이 시가보다 낮을 경우에 그 옵션은 in-the-money 상태가 되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이런 경우 옵션부여는 미래 경영자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로써의 의미보다 과거에 회사를 위해 봉사한 성과를 보상하는 성격이 강해진다. 이런 경우 미국 회계기준은 시가와 행사가격과의 차액만큼 인건비로 처리하게 하고 부여 받은 임직원도 그에 해당하는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부여된 옵션의 행사가격이 시가보다 높을 경우, 그 옵션은 out-of-money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매우 낮게 형성될 것이다. 이런 경우의 옵션부여는 경영자의 과거 실적에 대한 보상 성격보다는 미래 행동을 주주의 이익증대 목적과 일치시키는 인센티브제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이런 옵션을 부여 받을 경우 미국 회계기준과 세법은 부여당시에는 비용과 소득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다만 후에 경영자가 매수옵션을 행사할 경우 행사당시의 시가와 행사가격의 차액만큼을 회사의 비용과 경영자의 소득으로 간주하여 처리한다.
◇스톡옵션제의 문제점
스톡옵션은 수혜자인 임직원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회사 주주이익의 증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금이 부족한 초기단계의 벤처기업들이 유능한 경영자 또는 기술자를 영입할 수 있는 수단이 됨으로써 첨단기술 기업들이 융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그러나 제도가 활성화 됨에 따라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도 등장했다.
첫째, 스톡옵션의 부여규모가 매우 커졌다는 것이다. 연간 수억달러에 도달하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스톡옵션이 부여된 경영자 개인의 실제 기여도가 그 정도로 클 수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적절하지 못하게 부여된 스톡옵션으로 경영자들이 자신이 기여한 것 이상으로 챙기는 소득은 누군가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고 그 만큼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부를 이전해 가져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그 규모가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다는 사실은 이러한 문제를 가벼이 볼 수 없게 한다. 이처럼 스톡옵션을 포함한 경영자 보상이 막대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경영자 보상의 일환으로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현금이 전혀 소요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계상 비용으로도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이를 부여받는 임직원들 입장에서는 현금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의 수입을 저항 없이 받을 수 있는 수단이고 요건을 갖추면 세무상으로도 우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옵션부여의 목적이 경영자의 미래 행위가 주주가치 증대목표에 일치되도록 하는 것이라면 in-the-money옵션의 경우 그 효과가 매우 제한되어 버린다. 특히 수혜자가 중도에 옵션을 행사하여 회사 주식을 매수한 후 이를 시장에 매각해 버리면 그 때부터 스톡옵션장치를 통해 경영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려 했던 목적 달성은 어려워지게 된다.
셋째, out-of-money 옵션이든 in-the-money 옵션이든 스톡옵션은 경영자들로 하여금 기업 실적을 좋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다하게 하는 강력한 유인장치로 작용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합리적 보상이라 함은 경영자가 자신의 순수한 역량과 노력의 결실로 가능해진 기업실적에 부응하는 보상이어야 할 것이다. 실제에 있어 기업실적은 경영자의 능력 및 노력과는 무관한 요소, 예를 들면 경제발전이나 소비자들의 기호변화와 같은 경영자가 예측하지 못했던 요소의 출현으로 인해 그 회사 뿐만 아니라 동종 다른 회사 또는 경제내 모든 기업들이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경영자 성과보상은 산업 평균 또는 전체 기업평균을 초과한 기업실적 만큼만 경영자의 기여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옵션의 가치 상승은 그 상승의 원인이 경영자의 노력에 기인한 것인지 산업 또는 경제전반의 상황호전에 기인한 것인지 가리지 않고 그 전부를 경영자가 기여한 몫으로 카운트하는 맹점을 지니게 된다.
◇궁극적으로 최근 빈발하고 있는 미국기업 회계부정의 한 토양으로 작용
스톡옵션이 거액화 되면 될수록 경영자의 재산규모의 변동이 회사주가 변동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진다. 회사의 주가는 회사의 실적에 따라 변동한다. 회사 실적이 양호할수록 기업의 주가는 높게 되고 실적이 나빠지면 주가도 하락한다. 따라서 회사의 실적이 나빠지면 그 경영자가 보유하고 있는 스톡옵션 또는 주식의 가치가 하락한다. 부여받은 수량이 많았던 만큼 재산의 감소규모도 대규모이고 그 만큼 경영자가 느끼는 손실의 아픔도 클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회사의 실적이 나빠지면 재산가치만 하락하는 것이 아니다. 실적이 나빠지고 주가가 하락하면 주주들의 불만이 팽배하게 되고 어떤 수준 이상으로 악화되면 이사회 또는 주총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므로 경영자들은 회사의 실적이 나빠지게 되면 이중고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영자들은 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만 있다면 온갖 수단을 다해서라도 회사의 실제 실적이야 어찌 됐건 공표하는 실적은 우아하게 만들려고 하는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른 바 분식회계의 유혹에 나약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90년대에 장기 호황국면을 즐길 때는 이런 분식이 참으로 쉬웠다. 전반적인 경기가 장기간 호황국면에 있다 보니 어떤 회계연도에 실적이 좀 나쁘게 되어 이익이나 매출조작을 통해 부풀려진 실적을 보고하더라도 다음해에 실제 영업실적이 충분히 개선되어 전년도의 부실회계를 충분히 은폐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떤 경영자들은 올 해 실적이 매우 좋게 나오면 오히려 이익규모를 줄여서 보고하고 금기 이후 실적이 나빠지는 회계연도에 대비하는 조작도 감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그 기업의 실적은 장기간동안 이익규모가 큰 기복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그 경영자에 대한 주주들의 신임이 두터워질 뿐만 아니라 유능한 경영자로 월가에서도 칭송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최근 불거지는 회계조작 사건들은 이런 미국 경영자들의 이런 관행이 2001년 이후 경기 침체기에 더 이상 은폐될 수 없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에 외부로 노출되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우리 시장에서도 몇 년 전부터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스톡옵션제도가 활발하게 도입되면서 대기업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아직 그 규모가 절대적으로 큰 것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최근 미국의 회계부정과 시장 침체의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는 이 제도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여 대처할 필요가 있다.
<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의 스톡옵션 부여현황>
자료 : 각 사 사업보고서
무엇보다 과도한 스톡옵션 부여에 대해서 신중하게 평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며 이에는 기관투자가 들이 적극적인 의사개진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스톡옵션을 발행한 회사의 적정주가를 평가함에 있어도 스톡옵션의 가치만큼 당기순이익에서 차감하고 옵션발행으로 늘어날 주식수만큼 발행 주식수를 조정함으로써 옵션행사로 인한 주당가치 희석효과를 반영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제도자체로서 스톡옵션은 현금 없이 핵심인원을 영입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그러나 손익계산서상의 비용으로 인식되지 않음으로 인해 스톡옵션이 아무런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는 보상방법이라는 인식이 만연되면서 스톡옵션이 남발되고 그 만큼 회사의 자원이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존재한다. 즉, 스톡옵션 제도자체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 보다는 그 운용의 적절성을 잘 감시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사례로부터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다.
일반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도 스톡옵션을 발행간 기업에 대한 투자시에는 사전에 이러한 점들에 대해 신중한 고려를 한 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회사가 발행한 스톡옵션 수량이 현재 발행주식수에 비해 과다한 것은 아닌지, 현 주가는 이런 잠재적 발행물량으로 인한 가치희석효과를 잘 반영하고 있는 수준인지, 스톡옵션을 부여받은 경영자가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자행하지는 않는지 등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또한 새롭게 스톡옵션을 부여하려는 제안이 있을 경우 주주들은 그 수혜자가 회사의 발전에 그 만큼 기여할 능력과 태도를 보유하고 있는 지, 그 수량이 적정한 범위에 있는지 등을 세심하게 따져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보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 (edaily리포트)낙타 위에서 거는 핸드폰
- [edaily 문병언기자] 금융팀 문병언 기자 입니다. 저는 최근 중국 서부 내륙지방인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2000Km에 이르는 우리은행의 "실크로드 대장정" 직원연수 프로그램에 동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중국이 경제개방 정책을 내건 지 20년이 됐습니다. 북경을 비롯해 상해, 청도 등 해안도시들을 중심으로 싹이 튼 "시장경제"는 이미 서부 내륙까지 깊숙히 침투해 있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주민들의 "돈"에 대한 인식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이동전화 보급 등도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중국에서도 낙후돼 있는 오지를 둘러보면서 겪은 몇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7박8일간의 여행 일정 중 첫 기착지인 서안(西安). 서안은 주(周)나라에서 당(唐)나라까지 13개 왕조가 2000년 넘게 도읍지로 삼았던 곳입니다. 저녁 식사후 한 야시장에 들렀는데 길 양측을 따라 늘어선 가게 앞 탁자마다 각종 꼬치와 면류 등 간단한 안주와 함께 술을 즐기는 시민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게는 모두 대형 텔레비전을 길가에 내놓고 월드컵 경기 중계방송을 틀어놓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한잔씩 걸치면서 축구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국내 호프집 등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륙 조그만 가게에서도 "월드컵 마케팅"이 한창이었던 것입니다.
또 서안의 특산품인 옥(玉)제품 매장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이곳에서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조선족을 고용한 것은 물론 미국달러와 한국 원화까지도 받았습니다. 게다가 한 남자직원은 "원화는 계속 내려가고 있어서 좋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최근의 원화가치 절상을 얘기한 거였는 데 타국 화폐의 환율까지 파악하고 있는 점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이튿날에는 그 유명한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그리고 당 현종의 부인이었던 양귀비가 목욕했다는 화청지와 비림박물관 등을 구경한 후 밤 늦게 돈황(敦皇)행 특급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돈황까지는 무려 24시간이나 걸리는 여정이어서 기차 내에서 세 끼니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한국 음식점이나 패스트푸드도 구할 수 없는 기차 안에서 세끼를 현지 음식으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모두들 부담감이 컸습니다. 일행중 일부는 컵라면, 빵, 과자 등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밥을 먹으러 식당칸에 들르자 그동안의 걱정이 기우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인들의 입맛에 어느 정도 맞게 요리한 음식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향에 대한 거부감이 큰 편인 저도 대충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국영인 중국 열차의 경우 음식을 적게 팔든, 많이 팔든 승무원들은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일부러 우리 일행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만든 겁니다. 이는 세끼 모두 이어졌고 우리가 요구하는 메뉴를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돈맛"을 아는 중국 변방 주민들의 사례는 더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중국에 불교가 처음 전파된 돈황에 간 후 4세기 중엽부터 1000년에 걸쳐 만들어진, 불교문화가 살아있는 석굴군인 막고굴(莫高窟)을 관람했습니다. 이어서 모래사막 명사산(鳴沙山)으로 갔습니다. 기온이 높을 때 여러 명이 한꺼번에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면 큰 소리가 난다는 명사산은 가로 40Km, 세로 20Km 정도의 사막입니다.
이번 우리은행 연수과정의 가장 힘든 코스인 명사산의 모래사막을 넘나든 후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을 때, 식당 한켠에는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돈황에 도착할 때부터 막고굴, 명사산에서의 일정을 모두 담은 장면이 나왔습니다. CD로 제작해 줄 테니 사라는 거였죠.
그리고 전날 저녁 11시쯤 돈황 기차역에 내릴 때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를 환영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이 호텔 직원이었습니다. 호텔에서 돈황역까지는 130Km나 떨어져 있어 차로 2시간이나 달려야 합니다. 기차역까지 왕복 4시간을 투자하고 그 뜨거운 사막을 오르내린 정성이 기특했던 지 일행 70명 가운데 50명이나 CD를 구입했습니다.
메마른 땅으로 둘러싸인 돈황은 주거지역이 반경 2Km에 불과하고 주민은 6만명 남짓 합니다. 관광객의 주머니를 열기 위한 이같은 상술이 연간 6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원천으로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보통신산업의 현 주소를 알수 있는 사례 2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막 가운데서 낙타를 타고 핸드폰으로 한국에 통화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돈황의 사막에서도 핸드폰은 완벽하게 터졌습니다. "지금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전화하는 거야"라며 우리들은 이색체험을 한국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실제상황이었습니다. 광활한 중국 땅에서 주민이 6만명에 불과한 변방인 돈황까지 이동전화 네트워크는 완벽했습니다. 이번 중국 여행 중 이동전화가 되지 않은 곳은 단 한군데 였습니다. 중국 영토의 북서쪽 끝자락인 천산산맥 기슭의 카자흐족 거주지였습니다. 해발 2200m의 만년설이 보이는, 가구수가 400여호에 불과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신강위구르족 자치구의 중심인 우루무치. 실크로드의 서역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이곳의 우리가 묵은 호텔엔 인터넷플라자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이용요금은 1시간에 15위앤(2400원 정도). 인터넷으로 때마침 열린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경기결과를 담은 한국 언론들의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루무치엔 PC방도 많이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습니다. 중국 정보통신산업이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것 아닌가요.
- 약세장에서 살아남는 방법-CBS마켓워치
- [edaily 강종구기자] "마지막 항복의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까..모든 주식보유자들이 백기를 들고 주식을 휴지조각 던지듯 내 던지는 그 순간을..."
미국 증시가 약세장이긴 한 모양이다. 다우존스와 나스닥지수는 작년 9 11테러당시의 주가를 위협하고 있고 월가주변에는 온통 악재로 뒤덮여 있다. 주가하락이 경기회복마저 저해할 것이란 우려나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방송과 신문은 악재를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시장붕괴 상장폐지라는 단어가 어렵지 않게 눈에 띄고 기업실적경고, 회계사의 재판회부, 정부 재정적자 확대, 핵전쟁 위협 등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런 장세에서는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의심과 두려움 걱정과 공포가 온 신경을 짓누르게 마련이다. 하물며 전문지식이 없는 개인투자자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상당 수 투자자들은 이미 매수단가보다 한참 아래까지 내려와 있는 주가를 보며 걱정과 근심에 한숨을 지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CBS마켓워치의 칼럼리스트인 폴 B. 파렐은 "비관론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사라"고 충고하고 있다. 파렐은 얼마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준비해야 할 때"라며 "100년 동안의 약세장에 대비하라"고 외쳤던 사람이다. 그의 시황관이 바뀐 것인지는 알길이 없으나 최근 미국 증시의 분위기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정반대의 논지의 글이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도 흥미롭다.
파렐의 충고는 간단하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증권사 직원, 애널리스트, 투자상담사 심지어 동네 이발사가 하는 그 어떤 충고에 대해서도 당신이 확신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파웰은 외친다.
떨어지는 주가를 바라보며 초보투자자는 오만가지 걱정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무엇을 해야만 할까. 손실을 회복할 수 있을까, 금을 사야 할까, 아니면 모두 처분해 현금으로 바꾸어 놓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냉정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걱정이 많아지고 두려움이 커지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고 이는 "실수의 씨앗"을 잉태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실수는 대개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실수"인 경우가 보통이다.
행동주의 금융전문가들에 따르면 두려움에 빠진 투자자들은 어떤 행동이나 조치를 취해야 두려움을 덜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을 덜기 위해 어떤 행동이든 하게 되는데 그 행동의 이름은 다름 아닌 "빅 미스테이크(Big Mistake)"라는 것이다.
이전의 많은 연구들도 걱정이 많은 투자자들은 "꼭지에서 사고 바닥에서 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악재가 시장을 지배할 때 감정에 의해 중요한 투자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파웰은 잘못된 투자결정으로 커다른 손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 몇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그 첫째는 "행동을 연기하라"는 것이다. 이는 파웰 자신이 몇 년전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써먹었던 방법이기도 하다. 결정을 연기하고 그 순간을 모면하면 반드시 좀 더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예를 들어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차안이나 서재에 틀어박혀 스웨드로의 "비합리적인 시대의 합리적인 투자:실수를 줄이는 방법"과 같은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설적인 투자자이며 성장주발굴의 귀재로 알려진 존 템플턴경(90세)이 사용했던 방법도 써먹을만 하다. 템플턴의 여러 투자원칙 중 22번째는 "기도하라 그러면 사고는 명쾌해지며 실수는 줄어들 것이다"는 것이다. 당신의 목표가 실수를 줄이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기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주시고, 이 두가지의 차이를 알게 하소서"
그래도 의심이 멈추지 않는다면 어찌할까. 역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파웰의 답이다. 조용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주가는 바닥을 형성하고 회복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드물게도 약세장속에서도 걱정과 의심이 없는 낙관론자라면 템플턴의 또하나 유명한 격언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약세장은 영원하지 않다. 다른 모든 투자자들보다 나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바로 비관론이 극에 달했을 때 매수하는 것이다"
- (이진우의 FX칼럼) 안정적인 혼미장세(?)
- [edaily] 원화환율이 좀처럼 1300원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에 달러/원 트레이딩은 현선물 가릴 것 없이 정말 먹을 것 없는(?) 매력없는 분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외환당국이나 기업체들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어수선한 시국에 환율이나마 잠잠하여 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금융상품을 사고 파는 시장임에도 요즘 달러/원 선물시장은 그야말로 파리나 날리는 형국입니다. 한사코 움직이지 않던 시장이 수요일에 모처럼 종가 대비 8원 50전이나 급락하는 장세를 연출하였지만 통상 그런 날은 번 사람보다는 크게 잃은 사람이 더 많기 마련입니다. 아주 사람잡는 시장이 되어 버렸군요.
국제외환시장에서는 미묘하면서도 그 어떤 힘이 느껴지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미 달러화의 강세 재개가 느껴진다는 것이죠. 통상적으로 증시의 뒷북을 쳐 왔던 서울 외환시장은 반 년 가까이 지속된 박스권 장세에 지칠대로 지쳐 그 어떤 인상적인 움직임을 아예 포기한 듯한 모습입니다만 슬슬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도 느껴지는 계절이 새삼스러운 시기입니다. 넋 놓고 있다가는 또 졸지에 뒷통수 한 방 맞을 수도 있는 때라 오랜만에 이런저런 변수들을 짚어보고 갈까 합니다.
◇미국 주가가 오르면서 달러화도 상승 추세
9월 11일의 테러사태 이후 뉴욕 증시의 폭락사태와 달러화의 추락 현상은 9월 21일을 기점으로 하여 반전 되었다. 나스닥 지수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등이 강한 반등세를 일구어 내면서 달러화의 하락세에도 급제동이 걸렸고, 10월 25일 오전 8시 현재 환율로 따지면 유로화의 경우 0.9300에서 0.8935까지 3.9%에 달하는 절하율을, 엔화의 경우에는 116.00에서 122.80까지 무려 5.8%에 이르는 절하율을 한 달만에 기록하고 있다. (원화는 물론 중간에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9월 21일 종가 1,300원에서 10월 24일 종가 1,296.00원까지의 변동에서 오히려 0.3%에 불과하긴 하지만 원화절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웬만해서는 돈 벌기 힘든 장세였음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테러 직후에는 달러화의 가치급락을 예견하는 견해가 상당히 힘을 얻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구촌 전체가 장기활황 이후에 불어 닥친 불황으로 신음하는 시기에 이렇다 할 대안이 없는 가운데에 달러마저 똥값이 된다면 어떻게 이 꼬인 경제상황을 풀어 갈 것인가 하는 의문이 없지 않았는데, 어쨌거나 시장은 그럭저럭 살 길을 찾아가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듯 하다.(이 대목이 무슨 의미인가 하고 의문이 생기신다면 뉴욕 증시의 폭락지속, 그에 따른 달러가치 급락이 유럽,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금융시장에 어떠한 여파를 몰고 올 것인지를 상상해 보시길......).
한 달여 기간동안 무슨 근본적인 경제상황의 변화가 있었거나 미국 증시나 달러가 강세를 띨 만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시장의 움직임에 일일이 속 시원한 해설을 갖다 붙인다는 것이 쉽지않은 일일뿐더러 또 그러한 치밀한 분석이나 전망대로 시장이 움직여주는 것도 아니다. 시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최대한 그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 것이 "다치지 않는 길"이기에 우리는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 헤매고 믿거나 말거나 읽는 사람의 판단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전망이나 칼럼 따위를 훑어보기 마련인 것이다.
◇달러/원 시장은 왜 이토록 안정적(?)인가?
첫째, 너무 강한 선수가 있어서 재미없는 시장이 되어 버렸다.
왕년에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렬 투수가 한참 전성기를 누릴 때에는 그가 불펜에서 몸을 푸는 것만으로도 상대 팀은 전의를 상실하곤 했었다. 묵직한 강속구에다 홈 플레이트에서 홱 꺾여 버리는 슬라이더 두 가지 만으로도 숱한 타자들을 휘청거리게 만들던 선동렬 선수에 해당하는 작금의 외환시장참여자가 누군지는 독자 여러분들도 다 짐작하시리라. 내노라 하는 은행권 딜러들이 장을 만들어 보겠다고 밀어도 보고 뜯어도 보다가 지난 6개월 동안 얼마나 상처를 입었던가? 환율이 빠질 만한 여건에서 매도공세를 취하다가, 환율이 오를 만하다 싶어 매수공세를 취하다 번번이 당한 이후에 지금 시장에는 "내가 깃대 들고 앞장서마. 날 따라와라!"고 외칠 용기를 가진 선수가 없다. 오죽하면 역외세력마저도 달러/원 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에 의욕을 잃었을까?
둘째, 수급과 재료가 계속 상충되고 있다.
최근 며칠간 신문지상에서 접하였던 기사들의 제목만 한 번 훓어 보도록 한다.
"삼성 반도체 사상 첫 적자......3분기 3,800억 영업손실"
"현대투신 매각협상 난관에 부닥쳐......AIG측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5개 조건 제시"
"美 경기선행지수 크게 하락......9월 0.5% 떨어져 96년 이래 낙폭 가장 커"
"Japan and Taiwan hit by sharply lower export orders..... Trade figures reflect fall in demand for technology and shrinking US economy" (Financial Times 10월 23일자 1면 톱)
"Dollar advances against Euro, Yen...... Common currency is hurt by weak German Business-Sentiment report" (The Asian Wall Street Journal 10월 23일자)
이쯤 되면 서울에서도 달러를 사고 싶다. 그러나 달러/원 환율은 좀처럼 1,300원대의 안착조차도 자신없어 하고 삼성전자의 주가는 수요일에 18만 원을 넘어섰다. 최근 국제외환시장에서의 달러강세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환율이 위로 잘 뻗어 나가지 못한 이유는 매물부담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로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인데...... 이달 들어서만 1조원 어치의 국내 주식을 사들인 외국인들의 주식매수자금용 환전물량과 영 의욕을 잃어버린 역외세력의 매수세가 예전같지 않은 와중에 한 달 전에 체결된 NDF 거래 정산과 관련한 역내 은행권의 매도세가 연일 시장에 환율하락압력으로 작용하자 1,305원은 당분간은 넘어서기 힘든 벽으로 인식되고 있다. 안 그래도 수급이 뻔한 구멍가게 수준의 서울 외환시장에 수요일에는 장 막판 담배인삼공사의 DR 발행자금 1억불 가량이 매물화되면서 모처럼 절벽장세(?)를 한 번 연출하였다. 달러/엔의 상승 기미에 과거 시장의 흐름만 기억하여 롱플레이에 주력했던 세력들로서는 된통 당한 하루였는데, 어쨌거나 환율을 움직일 만한 재료와 수급이 상충하면서 달러/원 환율의 정처없는 방황은 아직도 계속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도 굳이 앞으로의 환율 방향을 예측해 본다면?
좁게는 1,295~1,305원, 넓게는 1,285~1,315원의 레인지를 형성하며 진행되어 온 박스권 장세가 며칠 내로 깨지면서 큰 움직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좁은 박스가 깨지면 넓은 박스권의 저항선이나 지지선까지를 노리는 짧은 거래는 시도해 볼만 하지만 정말 환율로 인해 모두가 고민하고 흥분해야 하는 시점은 1,280원이 하향돌파 되거나 1,320원이 뚫리고 나서부터이다.
1달러당 123엔이나 1유로당 0.89달러라는 레벨은 기술적으로 만만치 않은 곳이다. 달러/엔이 조만간에 123.50이나 124엔을 딛고 올라서고 유로 환율이 0.87 아래까지 미끄러진다면 이것저것 이유를 따지기 전에 달러의 강세가 추세로 굳어짐을 인정해야 한다. (서울에서도 반드시 달러 강세요인인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요인이다)
반면 현 수준에서 엔화나 유로화의 약세가 멈추고 국내외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 가면서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사기가 이어진다면 달러/원은 서서히 아래쪽을 더듬게 될 것이다. 수요일 장세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바깥에서 들여 온 달러의 매물화는 엷은 시장에 큰 충격을 준다 (인터뱅크 딜러들의 사고 팔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샀으면 언젠가는 팔아야 되고 한 번 팔아 본 뒤 되살 수 밖에 없는 물량들은 궁극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못 미친다). 우리나라 업체들은 웬만해서는 보유 달러를 시장에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는 지난 번 칼럼에서도 이미 언급하였고, 남은 두 달 동안 외자유치자금의 유입과 증시에서의 외국인 투자행태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종합주가지수는 550이라는 예상 매물벽을 불과 몇 포인트 남겨 둔 상태, 달러/엔은 123엔이라는 기술적 저항선 앞에서 주춤거리는 상태, 달러/원은 1,295원 이하의 바닥을 제대로 한 번 확인해 보자고 안달하는 상태...... 필자는 개인적으로 일단 월말까지는 물량부담을 인정하며 고점매도의 기회를 엿보겠지만 달력이 또 한 장 넘어가고 나면 웬지 달러매수에 나서보고 싶다............................♣
- (요약)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국회 대표연설-경제분야
- [edaily]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여러분!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여러분!
우리 경제가 지금 깊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깊은 병은 단순히 금리나 내리고, 추경예산을 5조원 더 쓰고, 주식사주기 운동이나 한다고 해결될 병이 아닙니다.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서민생활은 갈수록 힘들기만 합니다. 근로자는 일할 맛이 나지 않고, 기업은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쌀재고 과잉문제로 추곡수매를 앞둔 농민들이 시름에 젖어 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는 미국테러사태 이후 내우외환의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내부적인 문제도 쌓여 있는데 세계적인 불황까지 겹친다면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정치논리에 휘둘려 경제살리기의 리더십마저 흔들린다면 우리 국민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국민들의 절대 다수가 경제살리기를 국정의 최우선과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에게 간곡히 요청합니다. 우리 경제를 보는 대통령의 안이한 현실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대통령의 이러한 안이한 현실인식은 경제장관과 참모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경제팀을 전면 쇄신할 것을 저는 강력히 요구합니다.
국민 여러분! 저와 우리 한나라당은 우리 경제의 기본부터 바로 잡는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비전과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경제살리기의 올바른 길을 가고자 한다면 저와 우리 당은 그 어떤 협력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는 미래경쟁력을 강화해서 다시 한번 고도성장의 추월선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20년 동안 최소한 연평균 6%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성장잠재력을 길러야만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고성장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 대만, 싱가폴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았을 때에도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꼭 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낡은 전략을 버리고 새로운 국가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국민 개개인의 자질이 이토록 우수하고 교육열도 높고 성취욕구도 강한데 우리 경제 전체로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면, 그것은 경제정책, 더 나아가 국가전략이 없거나 잘못된 것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미친 듯이 일할 수 있는 신바람 나는 일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투자할 분위기, 기업할 분위기, 경제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지름길은 활기차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국가주의, 관료주의, 권위주의를 과감하게 버려야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와 우리 한나라당은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몇가지 기본적인 과제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법과 원칙으로 우리 경제의 기초질서부터 바로 세워야 합니다. 시장경제는 공정한 룰 속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공정한 룰이란 바로 법과 원칙을 말합니다.
건강한 시장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공정한 법과 원칙에 따라 기업활동도 이루어지고 노사관계도 정상화되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경쟁상대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향하여 우리 경제를 혁신해야 합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시장경제를 이제는 제대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관치금융을 버리고 책임의식과 경쟁원리가 살아있는 금융을 만들어야 합니다.
경쟁력 있는 재벌을 때려잡는 재벌정책이 아니라 부실재벌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시장경제를 하려면 정부부터 혁신해야 합니다.
예산낭비와 불합리한 정부규제로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주고 시장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정부는 사라져야 합니다. 과거와 같은 관치경제의 주역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도우미로서 새로운 정부 역할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혁신에 국가의 명운을 걸어야 합니다. 새로운 성장의 엔진을 과학기술과 지식에서 찾아야 합니다.
부존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과학기술과 지식입니다. 제조업, 서비스업, 대기업, 벤처중소기업 모두가 기술과 지식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길로 매진해야 합니다.
정부는 질높은 교육과 훈련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지식이 창출되고 확산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합니다. 구체적인 기술·투자의 선택과 집중은 기업에게 맡기고, 기업이 할 수 없는 기술과 지식의 인프라를 제공하고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환경을 조성하는 국가전략을 세우는 일이 정부의 몫입니다.
여성과 청년에게 기회의 창을 활짝 열어줘야 합니다. 21세기 한국의 발전은 우리 여성들과 젊은이의 무한한 창의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자아실현을 제약하는 모든 사회적 악습과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안심할 수 있는 양질의 저렴한 탁아시설을 개발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도 시급한 국가적 과제입니다.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내년은 IMF 이후 최악의 실업대란이 우려되는 만큼 청년층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인턴제를 대폭 확충하는 등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위기재발방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경제위기가 오면 항상 가난한 서민들부터 가장 큰 아픔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다면 경제위기의 재발 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 합니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튼튼한 국가재정입니다. 올바른 구조조정이 전제된 경기대책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운용하는 바른 자세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구조조정 하면 마치 저승사자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지난 3년반 동안의 구조조정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공적자금을 쓰고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구조조정이란 말 자체를 싫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구조조정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것입니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속병을 고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부에게 강력히 촉구합니다.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이 정부의 지원과 국민의 부담으로 연명하는 일은 이제 중단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빅딜과 같은 잘못된 정책으로 부실을 키워놓았고, 이제는 관치금융으로 부실기업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부실기업의 처리를 두고 정부가 이제 와서 채권단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른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국가부채와 4대연금, 건강재정보험, 각종 공공기금, 공기업의 부실 등 총체적인 국가부실을 종합적으로 일관성 있게 관리하기 위한 국가부실에 대한 중장기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넷째, 우리는 소외계층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복지제도를 구축해야 합니다.
저는 최근 서민생활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붕괴된 중산층과 가난한 서민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인지 통감하고 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서민과 소외계층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우리 경제가 힘찬 성장의 활력부터 회복하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복지 없는 성장은 불의요, 성장 없는 복지는 기만입니다. 우리는 나누면서 커가는 상생의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와 우리 당은 서민과 소외계층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회성 선심정책이 아니라 복지의 확대가 실질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믿을 수 있는 복지제도를 만들어가겠습니다.
서민과 소외계층의 생활 현장에 늘 함께 있으면서 우리의 복지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고쳐갈 것입니다.
기초생활보장과 실업급여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가도록 복지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할 것입니다.
저와 우리 당은 이러한 과제와 원칙을 중심으로 112조 5,8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을 면밀하게 검토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⑨박성진 삼성투신 차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삼성투신운용의 스트레티지스트인 박성진 차장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운명의 장난(?) 교수의 꿈이 증권사 채권맨으로>
-그럼 신영증권에 입사한 것은 어떤 계기에서입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요. 제가 준비했던 학교가 인디애나 주립대였어요. 미국 내에서도 빅 10에 들어가고 무엇보다도 한국학자들 중 여기서 학위받은 분들이 많은 곳이죠.
제 석사논문을 영어로 번역해서 원서를 넣었더니 그 쪽에서 “좋다. 너는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이게 왠 떡이냐 싶었죠. 돈도 없는데 미국에서 다시 석사부터 시작하려면 좀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까.
의기양양 비자를 받으러 대사관에 갔더니 아까 그 여자 면접관이 “your job responsibility is not enough guarantee to come back. Your financial status is not enough guarantee to finish your coursework” 이라고 하더군요. 기가 막혔죠. 그때가 12월이었어요. 1월에 미국으로 가서 2월부터 시작하는 강의를 수강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 때 이미 결혼을 해서 기혼자용 기숙사에 제 피 같은 돈 100불을 예치금으로 송금까지 한 상황이었어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했죠. 그런데 전혀 안 통해요. 안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경을 불러서 끌어낼 태세에요.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 느껴본 적 있으십니까. 한 남자의 꿈과 인생이 일개 미 대사관 직원의 손에서 박살이 난 겁니다.
인디애나 주립대에 전화를 했습니다. 창피해서 비자가 리젝트됐다는 소리는 죽어도 못하겠고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다음 달에는 못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괜찮다. 2년 안으로만 다시 하면 된다. 그렇지만 2년이 지나면 토플과 GRE를 새로 시험 봐서 최신 성적을 보내주면 또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낙담한 마음을 조금은 지울 수 있었죠. 그 때 병도 좀 앓았는데 가장이니 어떡합니까. 먹고는 살아아죠. 신문을 탁 펼치고 구인광고를 막 뒤졌어요.
취직을 하기로 결심하고 보니 12월에 신입사원을 뽑는 곳이 딱 두 군데였어요. 신영증권이랑 디지털조선. 처음에는 당연히 디지털조선에 가고 싶었습니다. 대기업공채는 이미 가을에 끝났고 신영증권은 회사 자체에 일이 있어서 12월로 늦춰졌다고 하더군요. 신영증권의 일정이 먼저 시작됐는데 모집분야에 연구/조사 분야가 있었어요. 일단 두 곳에 모두 원서를 넣었죠.
-증권이 무엇인지는 아는 상태에서 입사를 결정한 것은 아닐텐데요.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유학준비를 하면서 잠깐 토플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그 학원 바로 옆에 동서증권이 있었어요. 학원에서는 초급반 영어랑 주부회화를 담당했습니다. 아침에만 좀 바쁘고 오후에는 내리 놀아요. 그리고 학생들 수업끝나고 직장인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시간에 연이어 수업이 계속되는 거죠. 학원강사가 참 고달픈 직업입니다. 건강도 많이 망쳐요.
낮에 시간 많겠다 바로 옆에 증권회사 있겠다. 그래서 순진한 집사람을 꾀서 주식을 하겠다고 졸랐어요. 당시 집사람이 피아노 레슨을 20개나 해서 2000만원을 모았거든요. 그 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이 돈을 불려서 유학가자는 결심을 하고 증권계좌를 만들었더니 처음에는 잘 되더라구요. 금방 2500만원으로 돈이 불어났거든요. 저는 주식의 ‘주’자도 몰랐고 기업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어요.
들어본 회사라고는 아버님이 다니셨던 동아건설이 고작이었어요. 당시 성수대교 붕괴사태 때문에 동아건설주가 무척 쌌어요. 그래서 “음 저건 낙폭과대주야” 라고 매입했죠. 하하. 그리고 당시 금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LG계열사 주식도 샀고요. 그런데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 그 다음부터는 폭락하기 시작하는 겁니다.(웃음)
그 후 손절할 때가 왔는데도 그걸 못했어요. 개미투자자의 전형적인 실패사례죠. ‘손절하지 않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를거야’ 라는 말도 안되는 류의 생각들. 되긴 뭐가 됩니까. 유학 갈 날짜는 다가오고 점점 돈은 줄어드는 지경이 됐어요. 대충 정리를 해보니까 1500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 남았더군요. 속으로는 “그래도 선방했다. 이게 다 내가 블루칩과 낙폭과대주를 산 덕택이야”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하
유학이 취소되고 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내가 왜 주식투자에 실패했는지 증권회사에 들어가서 몸소 알아봐야겠다는 오기죠. 전 그 당시만해도 증권회사 직원들은 그 이유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 딴에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는데 그 길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디지털조선은 어떻게 됐냐구요? 제가 학부는 놀아서 학점이 나쁜데 대학원은 all A였어요. 대학원 all A지, 토플 점수 우수하지…나름대로는 서류는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디조에 원서를 보냈어요. 그런데 서류에서 떨어졌습니다.(웃음) 그래서 지금도 조선일보는 감정이 좋지 않아요.
<우연의 연속, 채권분석가가 되기까지>
-신영증권에 들어자마자 바로 채권부로 갔습니까?
▲연수를 받고 신입사원들에게 지원부서를 적으라더군요. 1순위는 무조건 조사부 적었죠. 한 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두번째는 국제부. 폼 나잖아요. 3순위. 주식부. 왜 주식을 하다가 망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발령을 하는데 인사부장이 “박성진 채권부” 하고 부르는 겁니다.
인상 팍 쓰면서 ‘도대체 채권부가 뭐하는데야?’ 라고 생각했어요. 인사부장께 물었죠. 채권부가 뭐하는 곳이냐고. 그랬더니 인사부장이 “아파트 분양하잖아. 거기서 채권받거든. 분양하고 나오는 사람들 앞에서 채권, 채권 하면서 소리지르고 가서 팔아. 너 명동이나 주택가에서 채권, 채권하면서 팔러다니는 사람들 본 적 없냐? 그거하는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토씨하나 다르지않게 전해드리는 거에요. 반은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황당했어요.(웃음) 채권이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데다 신입사원 교육 때 채권시간이 무지 재미없었거든요. 수학공식 막 쓰고 계산도 복잡하고.
채권부에 갔더니 지금 LG투신에 있는 최원녕 과장이 “네가 채권부냐?” 라고 인상을 쓰면서 말하는 거에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초등학교 선배더라구요. 그것 때문에 꽉 잡혀서 찍 소리도 못하고 살았죠. 하하.
-결국 전공이나 희망사항과는 전혀 상관없이 채권판에 들어왔군요. 처음에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수도결제죠뭐.(증권사가 채권매매 중개시 현물 채권과 대금을 교환, 결제해주는 것) 처음 증권사 채권부에 가면 하는 일이 그거 밖에 더 있겠습니까. 속된 말로 인생이 완전히 골로 가더라구요. 그전까지는 알튀세르, 레비스트로스와 라캉을 논하던 나름대로 먹물먹은 지식인이라고 제 딴에 자부했는데 말이죠. 하하. 인생이 이렇게 꼬이고 저렇게 꼬이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더군요. 그냥 전공살려서 기자나 됐으면 폼이라도 날 거 아니겠어요. (웃음)
-수도는 얼마나 했습니까?
▲9개월 정도? 한 일년 가까이 했습니다. 제가 신입사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좀 많았어요. 다행인 것은 저랑 한 조가 된 친구가 운전을 전혀 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운전을 하고 그 친구가 막 뛰어다니는 일을 했죠(웃음) 제가 어떤 건물 앞에 차를 탁 세우면 그 친구는 미친 듯 뛰어올라가서 도장 찍어오고. 수도를 직접 해 봐야 채권의 비애를 몸소 체험할 수 있어요. 길이 막힐 때는 원효대교를 뛰어서 여의도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많았어요. 그때 거래가 많았거든요. 선배들이 “야 이 자식아 빨리빨리 처리 못해? 느려터져 가지고선” 뭐 이렇게 혼이났죠. 저도 열이 받으면 “우리 회사에서 매매보고서 나보다 더 빨리 작성하는 사람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나보다 더 빨리 하는 사람없으니까 늦는다고 갈구지 마” (웃음) 이렇게 맞받았죠.
<“너는 컴퓨터도 잘 다루니까 기술적 분석이나 한번 해봐라”>
-채권의 기술적 분석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그것도 제가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신영증권 황 부장께서 “너는 컴퓨터도 잘 다루니까 이거 한번 해봐라”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리셔서 하게 된 겁니다. 입사하고 3개월 후부터 수도업무랑 채권분석을 같이하기 시작했어요. 채권단가, 이론부터 알아나갔죠. 실제로 해보니까 제가 한 것이 잘 맞아 떨어지더라구요. 잘 맞을 때까지 조정도 이리저리 해보고. 여하튼 재미있었습니다.
-채권관련 책은 몇 종류나 봤습니까.
▲기술적 분석에 관한 책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아요. 거기에 나오는 공식들을 보는거죠.
제가 좀 컴퓨터를 다루니까 그 공식들을 프로그램으로 짜고 그것을 또다시 엑셀에서 구현하는 작업들을 했어요. 조정과정을 몇 개월 거치니까 신기할 정도로 잘 맞는 거에요. 그때 당시에는 족집게처럼 들어맞는다고 느껴졌을 정도니까요.
-그게 몇 년도인가요.
▲입사하던 해였으니까 96년이군요. 그런데 이유가 있더라구요. 그 당시 시장은 지금처럼 시가평가(market to market) 시장도 아니었고 대부분 시장참가자들이 기관투자가다 보니까 현재에 비해 모멘텀이 훨씬 분명한 시장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것이 아니라 한 번 모멘텀이 생기면 관성에 의해서 일정 기간은 그것이 계속 유지가 된 거죠. 단기 딜링을 해서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고 자신감도 막 생겨났습니다. 아침회의에서 “금리 어떻게 될 것 같나?”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코멘트를 하고. 그러면서 “아 나는 이쪽 방면에 소질이 있는가봐. 분석의 천재라니까” 라는 착각에 빠지게됐죠(웃음).
그 시절에는 어디 인터넷이 있습니까. 나오는 모든 금융데이타를 일일이 손으로 작업했어요. 한국은행 데이터, 경기동향, 통계청 데이터를 수기로 입력했다는 거 아닙니까.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재미를 느낀 것이 가장 큰 이유였군요.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안하고 말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비자받을 때 흠 잡히지 않고 돈 모아서 곧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습니다.(웃음) 학원강사랑은 엄청난 차이가 있잖아요. 증권회사라면 미국사람들도 job responsibility가 어쩌니 저쩌니 못할 거 아니겠어요. 2년간 괜찮다는데 금방 떠나려고 했죠. 그런데 학위받는 일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유학 갈 형편도 안됐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학계만큼 정치적인 곳도 없잖아요.
물론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없을 수는 없죠. 사람인데. 수도하면서 도장받으러 다니려고 내가 이때까지 공부했나. 이런 생각들. 그래서 대학때부터 다니던 교회에도 뜸하게 되고. 저는 토요일 교회모임 때문에 대학시절 내내 그 흔한 MT도 한번 안 간 사람인데 말이에요.
‘이렇게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을 모셨는데 생 양아치 같은 애들은 다 잘되고 나는 남들 다 가는 유학 한 번 못 가나’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도 위에서 뭐하라고 시키면 죽어라 하거든요.(웃음) 제가 바로 그랬어요. 마음 속은 썩어 문드러져도 하라면 다 했으니까요.
그러다 지금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만났어요. 그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자네를 유학 보내시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서 지금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그 일을 시키시려고 일부러 여기 남게 하신 거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에 관한 재능을 주신거다. 네가 경제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분은 하나님이 메꿔 주실거다.” 이렇게 설득을 하시더군요.
-조직 안에서 전문적으로 분석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수도일이 끝나고 나서는 상품운용팀에 들어갔어요. 말이 상품운용이지 일반고객들을 상대로 채권을 파는 거였죠. 전자계산기도 무지 잘 써야했구요. 세금계산을 손으로 하는데 나중에는 손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손동작을 놀려야 했습니다.
-아니 엑셀이 있었을텐데 왜 그런 일을 했습니까.
▲관행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깨지는 것이 아네요(웃음). 엑셀쓰자고 어른들에게 건의하면 무조건 손으로도 할 줄 알아야 된대요. 컴퓨터 없을 때는 네가 어떡할거냐는 거죠.
<”상상력과 재치” 시황으로 이름을 얻다>
-그럼 시황을 본격적으로 쓴 건 언제입니까.
▲브로커팀으로 옮기면서 시황을 쓰게 됐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3개월 정도 전이었어요. 97년 9월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데일리 한편 조그만 귀퉁이에다가 제 이름으로 시황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평이 너무 좋은 거에요. (웃음)
-제 기억으로도 호평을 받았던 것이 생각나네요. 기술적 분석과 관련된 코멘트도 최초로 나왔었죠 아마? 지금도 그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체 제작한 툴을 가지고 하니까 제 예측이 잘 맞으니까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자’ 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나름대로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도 많이 넣었죠. 확인도 안 해보고 “이런 건 아닐까? 저런 건 아닐까?” 를 집어넣은 겁니다. 그때는 그게 장점이었죠. 지금은 단점이 됐지만(웃음)
제가 지금도 “너는 확인해보면 간단한 일을 가지고 상상을 먼저 해. 그래서 안돼” 질책을 받아요. 그러면서 맨날 깨지거든요. 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해요.
-당시 데일리 말고 따로 리포트를 쓴 적은 없나요.
▲사실 저는 데일리를 쓸 만한 내공도 가지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배우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권을 잘 알지도 못하는 애가 채권계에 입문해서 뭔가 쓴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 정도겠죠. DB 만들고 상관관계 분석하는 모든 일들이 재미있었고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첫번째 프리젠테이션은 어디서 했습니까.
▲정말 기억이 안나요. 한때 많이 불려다니긴 했는데 어디서 처음 했는지가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자주 갔던 곳은 외환, 한미은행 등 은행권이었습니다.
-혼자 갔습니까.
▲아뇨. 담당부장님과 함께 갔습니다. 가서 상담하고 이것저것 말해주고. 사실 맞았던 적보다 틀린 적이 훨씬 많았어요. 틀렸을 때의 그 창피함, 짜증남이라는 건 말로 못해요. 틀린 것만 가지고도 많은 공부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채권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다른 곳에서는 프리젠테이션을 한다고 전해주는 정보가 채권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 빈약하게 느껴진거죠. 시장도 좁고 돌아가는 메커니즘도 빤한 곳이 이 바닥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가서 이러저러 말을 하니까 “쟤는 채권수도도 해 본 녀석이고 말은 좀 통하네” 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건 절대 아네요. 전 지금도 투신, 은행권이 어떻게 채권을 사고 파는지 잘 몰라요. 많은 선배들은 제게 “네가 말은 참신하고 조리있게 했지만 실상 은행이나 보험이 그렇게 단순하게 자산운용을 하는 곳이 아니다” 라고 충고를 해줬죠.
-그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뭡니까.
▲우리 시장이 좀 건조하다 보니..제가 장난기가 좀 심한 편이라 의도적으로 코믹하게 쓰려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내용의 본질은 놓치지않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긴 했는데. 별루 기억에 남는 것이 없네요.
-시황제목을 무척 재미있게 달았던 걸로 기억됩니다만.
▲음 그런 건 있었어요. 외환위기 이후 IMF 고금리 정책을 계속 고수했잖아요. 그 후 분기마다 정책 내용을 바꾸게 됐는데 한번은 영문을 읽어보니까 이번엔 고금리 정책 완화기조로 간다 뭐 이렇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진짜 금리가 내렸습니다. 마침 금리가 하락하는 날 IMF 서울사무소장의 금리하락 멘트도 나갔죠. 그 시점에서 제가 뭐라고 코멘트를 했냐면 “IMF는 Immediate Money-market Fever 다“ 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그런 걸 기억해 준 거죠. 분석을 잘해서가 아니라.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 재계원로가 본 고 정명예회장-송인상 전 능률협회장
- [edaily] 21일 별세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은 한국 현대사를 이끈 재계의 거목으로 평가되고 있다. 재계원로들이 평소 가졌던 그에 대한 평가를 들어본다.
◇송인상 전 한국능률협회장= <아이디어 샘솟는 불세출의 기업가>
아산에 대해 나는 여러 가지 입장에서 겪어 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다양한 시각에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긴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와 함께 지냈던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고 그의 성격과 일하는 스타일, 생각하는 방식 등을 그저 내 나름의 느낌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아산과 나는 1920년대 초에서 중반에 이르는 시기를 강원도 통천에서 보냈다. 그는 송전보통학교에 다녔고, 나는 통천보통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서로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같은 시대를 한 지역에서 보낸 셈이다. 통천군 송전은 청송백사(靑松白沙)로 유명한 송전해수욕장이 있고 경치가 수려한 고장이기도 했다. 이러한 자연조건이 소년 시절 아산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사람을 매혹하는 아산의 자질은 아마도 이런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해방의 감격과 전쟁의 참회를 거쳐 전재복구에 여념이 없던 1950년대 종반, 미국 원조가 DLF 차관으로 바뀌어져 갈 무렵 부흥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나는 아산과 만나 시멘트 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기업가로서의 아산의 편모를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나의 재임 중에 현대시멘트 건설은 실현을 못보았지만 그의 치밀한 기업가적 재능은 엿볼 수 있었다.
1960년대 중반에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세계 각국을 돌며 한국에 투자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정부의 4대 기획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조선분야의 투자 유치를 위하여 스웨덴의 요테보리(Gothenburg) 조선소와 노르웨이의 아카(Aker)그룹을 방문해서 관계인사들과 폭넓은 교섭을 하였는데, 그것이 현대가 조선사업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교섭의 결과로 아카그룹의 시엠(Siem) 사장 일행이 한국에 왔고, 아산은 현대그룹이 정부로부터 조선사업자로 지정된 것을 전후하여 영국의 애플도어(Appledore)와 조선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때에도 아산의 과감성과 사업적 수완은 여실히 표출되었다.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자재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산은 희랍의 선주로부터 이미 수주를 따냄으로써 세계의 조선업계 인사들을 놀라게 했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현대중공업이 조선사업을 전개해가는 과정에서 아산은 리더십이 탁월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사업을 펼쳐가면서 그가 보여준, 미지의 세계에 돌입하는 모험심과 불퇴전의 용기는 뭇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고 지금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조선소 건설 현장을 야간에 손수 돌아보다가 자동차를 탄 채 물에 빠졌던 이야기는 그의 불굴의 용맹과 모험심을 여실히 알려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나는 아산과 함께 6년 동안 전경련을 맡아 일한 적이 있다. 내가 전경련 부회장이 되었을 때 아산은 이미 회장으로서 4년 여를 일해오던 터였다. 원용석, 정인욱 그리고 내가 부회장으로서 아산을 모시고 전경련의 일들을 열심히 돌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아산의 기업가로서의 모습은 크게 드러났다.
그는 나 같은 행정가 출신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때때로 내놓곤 했다. 그런 제안들에는 거시적으로 크게 멀리 내다보는 혜안과 탁견이 담겨 있었고, 그러면서도 비용과 효율을 충분히 고려하는 기업가의 본질이 내포되어 있었다.
아침에 모여 회의를 하다보면 아산은 곧잘 깜짝 놀랄만한 아이디어를 돌연하게 이야기했다. 한강의 고수부지도 그가 제안한 것이다. 오늘날 서울 시민들에게 큰 혜택을 주고 있는 이 고수부지의 아이디어를 아산이 담담하게 꺼냈을 때, 그런 일에 전혀 조예가 없던 나로서는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옳았으며 지금의 고수부지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언젠가 아산이 나에게 “송 회장도 무슨 사업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 같은 관료 출신은 사업을 하기에 가장 부적절하고, 나는 사업가로서의 재능이 전혀 없다.”고 답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산은 “나는 길을 가다가도 이곳 저곳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발견하는데, 송 회장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눈에 뜨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아산에게는 무슨 아이디어든지 사업으로 전환해서 이익 창출의 기회를 마련하는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다.
아산이 전경련 회장으로 있을 때는 한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큰 발전을 향해 줄달음치던 시대였다. 아산은 비단 대내적인 경제발전 뿐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전경련의 국제협력사업에 대하여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 동남아 여러 국가와 경제적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아세안 협력사무소(Korea-ASEAN Business Club)를 만들었고, 몸소 대표단을 이끌고 필리핀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심방하기도 했으며, 구주를 위시한 각국과의 경제협력위원회 설립에도 엄청난 집념을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이 오늘날 한국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지고 경제적 측면에서 훌륭한 파트너로서 여러 나라들과 유대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아산은 도전을 기회로 만드는 탁월한 재질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려운 일에 당면해서 우리가 용기를 잃고 있을 때 그는 이런 때야말로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서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격려했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의 하나로서 아산은 지나치게 높은 금리를 들었다. 그는 경제기획원 장관실과 한국은행 총재실을 찾아가 대만 등 우리와 비슷한 개발도상국의 금리를 비교하면서 금리를 비교하면서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정부의 규제를 철폐, 완화해 줄 것을 집요하게 건의했고, 전경련 내에 규제 완화를 연구하고 건의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 운영하기도 했다. 아산은 정부가 그러한 몇 가지 일만 도와준다면 다른 경제적 사안에 대해서는 기업가인 우리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것을 역설했는데, 그런 과정에서의 아산은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철인 같은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아산은 어느 모로 보나 웅변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기업가로서의 철학에서 우러나온 진지함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무게가 실렸다. 아산과 함께 일본에 가서 한일경제협력회의에 참석했던 때의 일이다. 일본측 위원들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아산이 말하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고 경청했다. 그것은 아산의 확고 부동한 기업가적 신념과 그 소박한 접근 방식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기업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산이 성취한 현대의 성장사가 큰 무게로써 그들을 압도한 것이라고 믿어지는 대목이다.
아산과 나는 강원도의 낙후된 지역 출신으로서 한국경제가 도약단계로 뛰어들 무렵 경제계에서 같이 생각하고 희비애락을 함께 나누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필시 우리 두 사람이 전생에 대단히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불세출의 기업가 아산과의 만남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정녕 매우 뜻깊은 것이었다.
*자료 = 현대그룹 사이버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