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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탐방)조이온 조성용사장
- [edaily 전설리기자] "세계 시장을 내 발로 직접 뜁니다. 해외사업 진행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죠"
잦은 해외 출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조이온 조성용 사장의 말이다.
조 사장은 "올해 남은 기간동안 인기리에 서비스되고 있는 온라인게임 `거상`의 해외 서비스 진출과 해외 합작법인 설립을 통한 거점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비행기에서 새우잠을 자도 일이 즐겁다는 부지런한 조 사장 덕분에 조이온의 해외 사업은 그야말로 날개를 활짝 폈다.
조이온이 개발한 온라인게임 `거상`은 현재 국내 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홍콩, 일본에서 서비스중이다. `거상`은 지난 4월 일본과 대만에서, 6월 홍콩에서 부분 유료화를 단행했으며 중국에서 오는 9월 유료화를 단행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현지화 작업이 한창이다. 또한 태국과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호주와도 서비스 계약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으며 올해 안에 진출할 계획이다.
조이온은 아울러 올 연말까지 게임포털 `조이온닷컴`의 영문화 작업을 마치고 미국에서 오픈베타서비스(공개시범서비스)를 실시해 내년 3월말~4월초 유료화를 단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미국 온라인게임 서비스업체 실리몬스터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300만달러를 투자해 지분 40%를 인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해외 거점 확보를 위한 합작법인 설립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조 사장은 "현재 중국,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호주 합작법인 설립을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라며 "올해안에 이들 국가에 모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사장이 이처럼 해외 사업을 활발히 펼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그의 17년 사업 경력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88년 20세의 나이로 컴퓨터 하드웨어 유통업체 샘전자에서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일을 시작한 그는 92년 쌍용과 미국 게임을 한국에 들여오면서 게임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12년동안 한국 라이센싱과 감마니아코리아, 조이온을 거치면서 미국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게임 라이센싱 업무를 담당했다.
덕분에 올해 조이온은 튼실한 결실을 맺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140억원, 41억원으로 전년비 각각 205%, 481% 급증한 것. 올해 전체로는 매출 304억원, 순이익 80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한편 지난 6월말 코스닥 등록업체 경조산업(050120)이 지분 약 48%(185만주)를 인수해 우회 등록한 것과 관련, 조 사장은 "텐트 제조업체인 경조산업이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을 위한 사업 다각화를 위해 조이온을 인수한 것"이라며 "경조산업이 점차 게임 사업쪽으로 무게를 두고 사업 방향을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조산업은 오는 9월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상호를 `조이온소프트`로 변경해 조이온과 통일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한편 결산기를 조이온과 같은 12월로 변경할 예정이다. 또한 현재 일본 이미지웍스의 오노기 케이치 전사장이 개발하고 있는 온라인게임 `더 마스크` 판권을 취득해 국내와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 서비스를 준비중이다. `더 마스크`는 내년 2분기 국내와 일본에서 상용화할 예정이다.
"지속적인 신규 게임 개발과 해외 진출을 통해 회사 가치를 1조원으로 만드는 게 꿈"이라는 조 사장은 "앞으로도 `게임`이라는 한 우물을 파겠다"고 말했다.
현재 조이온은 차기작으로 `거상2`와 `천하`를 개발중이다. `천하`는 내달말부터 중국에서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며 `거상2`는 내년 2분기 유료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조성용 사장 약력
68년 경기도 안양 출생
87년 서울고등학교 졸업
94년 명지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88년 샘전자 이사
96년~ 한국라이센싱 대표이사
99년~ 조이온 대표이사
00년 정보통신부 장관상 수상(소프트웨어 산업발전 유공 포상)
02년 국무총리상 수상(소프트웨어 산업발전 유공 포상)
- 선물 `상승`에 무게..외국인 포지션 주목
- [edaily 김경인기자] 지난주 증시는 거듭되는 외풍에도 아랑곳않고 기분좋은 상승세로 한 주를 마무리했다.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 국제유가와 기업실적 악화에 따른 미 증시 급락이 부담스러웠지만, 우리 증시는 미·일·대만증시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며 견조한 상승흐름을 나타냈다.
이번주(8월16~20일) 선물시장은 지난주의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대외악재가 여전히 부정적이지만, 지난주 국내증시를 견인한 깜짝호재인 `금리인하`와 외국인 현물매수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단기급등에 따른 기술적 조정 혹은 숨고르기 양상이 진행될 가능성은 염두에 둬야한다. 아울러 최근 외국인과 함께 시장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축인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베이시스와 베이시스를 조절하는 외국인의 선물매매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긍정적 수급 `유효`..추가반등
지난주 KOSPI200선물시장은 3주 연속 오름세로 마감했다. 5주 연속 지속되고 있는 외국인의 현물매수가 상승의 주요한 동력이었고, 주 후반 `금리인하` 발표가 기폭제로 작용했다.
옵션만기를 맞아 유입된 프로그램 매수와 역대 2번째 수준의 외국인 선물매수도 수급에 활기를 더해줬다. 만기일 대량매수로 인해 선물 외국인의 누적포지션도 매수로 전환됐다.
이번주 역시 추가반등에 대한 기대가 강하다. 지난주 예상을 뛰어넘는 탄력적인 반등으로 기술적 지표들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고, 미 증시 급락에도 그간 꾸준히 현물 `사자세`를 보여온 외국인이 갑자기 매도로 전환할 가능성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서준혁 굿모닝신한증권 과장은 ▲상승반전한 5일선의 상승탄력 강화 ▲5-10-20일선의 정배열상태에 진입한 지수 ▲강한 저항대로 인식됐던 60일선 돌파 ▲외국인 매수로 현물시장 유동성 보강 ▲단기 부담요인이던 매수잔고 청산 등 양호한 수급여건을 고려할 때 기술적으로 추가적인 반등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단기상승률이 9%를 넘어섰고, 지난주 국내증시가 5.73% 오른 반면 나스닥, 일본, 대만시장이 모두 하락한 점이 부담"이라며 "추가반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지만 상승탄력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지승훈 대투증권 차장은 "연속상승에 따른 기술적 조정 가능성으로 상승탄력이 축소된 완만한 상승이 예상돼 60일 이평선(98.05p) 상향돌파 후 숨고르기장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로 조정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 봤다.
◇외국인 선물매매에 `주목`
방향이 `위`쪽으로 정해졌으니, 이제 문제는 속도다. 외국인 현물매수가 외풍을 막고있다면, 추가반등의 강도는 프로그램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난주 반등강도가 기대 이상이었던 것은 "아직도 프로그램 매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데 따른 기대감이 작용했다.
지난 6월 옵션만기 무렵부터 잔고상 매수압력이 압도적인 상황이 석달째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잠재적 호재`로만 남아있고 실제로는 현실화되지 않는 이유는 3대악재로 시작된 불안한 대외환경에 따른 베이시스 하락이다.
이번 반등과정에서 역시 지수반등에 비해 베이시스 개선폭은 극히 미미했다. 유가 리스크와 급등 부담, 미 증시 급락 등의 악재를 베이시스가 머금고 있기 때문. 이에 따라 1조3000억원을 웃도는 사상 최고수준의 매도차익잔고는 꿈적않고 쌓여있다.
지승훈 차장은 "전주말 종가 및 평균 베이시스가 -0.6p, -0.58p로 8월초 대비 소폭개선에 그쳤다"며 "이는 미 증시의 불안한 움직임과 고유가가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남아있고 연속상승에 따른 기술적 조정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재훈 LG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베이시스가 백워데이션을 지속하는 주요한 원인은 현시장이 약세장이라는 추세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외국인 매매가 현물매수과 선물매도로 나타난 것이 단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이어 "과거 외국인의 선물매매 패턴과 베이시스 움직임을 분석해볼 때 방향성이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현재 중립 포지션을 나타내고 있는 외국인의 추가적인 매매방향이 베이시스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주 증시는 다소 숨고르기 양상을 포함한 추가반등 관점을 갖고, 외국인 선물매매에 따른 베이시스 동향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시장에 반영될 수 있을지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Zoom-In증권가)대우증권 유상철 부동산금융팀장
- [edaily 이정훈기자] 국내 첫 선박펀드인 `동북아1호 펀드`를 탄생시킨 산파. 대우증권 유상철 부동산금융팀장의 다른 이름이다. 그가 부동산금융팀에 발을 디딘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전. 선박펀드를 준비한 것은 1년 반 정도됐지만, 선박펀드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매력적인 선박펀드..안정적 장기투자·비과세 혜택`
그가 자신있게 내세우는 선박펀드의 매력은 안정적인 장기투자라는 점. 정해진 만기 내에는 거의 고정적으로 정해진 만큼의 배당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유 팀장은 "해운선사에 빌려주는 배[船]의 소유주가 펀드 투자자들이기 때문에 해운사가 디폴트 상태에 빠지더라도 실물인 배는 그대로 남아 처분 가능하다는 점에서 담보력이 충분한데다 장기적인 용선료로 안정적인 수익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61억원 공모에 8대1이라는 엄청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은 비과세 혜택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종합과세 적용대상이 되는 돈 많은 투자자들이라면 3억원 이하 비과세, 3억원 이상 16.5% 과세는 분명 커다란 메리트일 수 밖에 없다.
지난 3월말 1호 펀드를 출시한 후 새로운 선박펀드의 주간사 자격을 따내며 추가적인 펀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오는 8월에는 160억원 규모의 2호 펀드를, 9월 중순에는 각각 200억원씩으로 3호부터 5호까지 시리즈로 펀드를 내놓을 예정이다.
"앞서가는 자의 어려움"..초기 선점효과 노린다
이처럼 선박펀드를 성공리에 출시했지만, 1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린 준비과정은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서 가는 자의 어려움은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유 팀장은 "처음 시작하다보니 무엇보다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마땅한 인덱스나 투자지표가 없다보니 투자자들을 설득해 자금을 유치하는데 어려움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또 "제도상으로도 아직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감독규정이나 세제지원 등 요구할 부분이 많았다"며 여전히 수시공시나 상장 규정 등은 손질해야 할 숙제로 남겨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초기 선점효과는 분명히 있다는 게 그나마 그를 위로하는 수확이다. "초기 시장이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데다 경쟁도 치열하지 않아 수익성도 그런대로 괜찮고 초기 선점까지 감안하면 투자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아직 갈 곳은 무한하다..새로운 투자처 선도할 터`
선박펀드 출시로 간접투자상품의 영역을 한 단계 넓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오히려 새로 개척할 부분이 더 많다고 느끼는 그는 만족감보다는 도전의식에 충만해 있다.
초기 리츠와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의 경험을 가진 유 팀장은 선박펀드에 이어 부동산펀드, 공기업 및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사회간접자본(SOC) 채권 발행 등을 진행하고 있고 향후에는 금(金)이나 원유, 항공기 등 실물자산펀드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또 해외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나 펀드오브펀드도 구상중이다.
"그동안 주식이나 채권 등 리스크가 큰 유가증권 투자에 길들여져 있는 투자자들에게 안정성이 있는 실물펀드 등 새로운 투자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제도권내 자금을 흡수하며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커다란 꿈을 유 팀장은 덤덤하게 밝혔다.
오늘도 외국계 선박이나 해운시장 리서치 자료, 부동산시장 뉴스나 보고서를 두루 살피면서 주요 선사나 건설사, 금융기관, 기관투자가,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을 분주하게 만나고 다니면서 그의 꿈은 영글어가고 있다.
- (벤처인)싸이더스 노종윤 이사
- [edaily 전설리기자] "7연타석 홈런에 도전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씨큐리콥(052640)의 자회사인 영화 제작사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요즈음 싱글벙글이다. 한국 영화 제작사상 처음으로 연속 4편의 영화를 흥행시킨데 이어 7편 연속 흥행이 기대되고 있기 때문.
싸이더스는 지난해 `살인의 추억`으로 관객 540만명 동원해 대박을 터뜨린데 이어 `싱글즈`(220만명), `말죽거리 잔혹사`(310만명), `범죄의 재구성`(220만명)까지 연속 4편의 영화를 흥행에 성공시켰다. 이는 한국 영화 사상 전례없는 기록. 4편 모두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어섰음은 물론이다.
노 이사는 "앞으로 개봉될 예정인 3편의 영화도 기대되는 작품들로 7연타 기록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은 세 편의 영화는 인터넷 소설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한 귀여니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오는 2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늑대의 유혹`(쇼박스 배급), 올 가을 개봉할 예정인 이범수 주연의 `슈퍼스타 감사용`(CJ엔터테인(049370)먼트 배급)과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릿속의 지우개`(CJ엔터테인먼트 배급).
노 이사의 입가에 웃음이 머무는 이유는 이 뿐 만이 아니다. 연속된 흥행 성공으로 싸이더스의 재무구조도 건전해진 것도 큰 이유. 영화 4편의 성공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플레너스와 분리하면서 떠안았던 막대한 부채를 되갚았고 이에 따라 2년만에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
올초 코스닥 등록사인 씨큐리콥의 100% 자회사로 편입한 싸이더스는 영화 `늑대의 유혹`이 개봉되는 23일에 맞춰 모회사인 씨큐리콥의 이름까지 싸이더스로 바꿔 완전한 통합을 이룰 예정이다.
노 이사는 "씨큐리콥의 또 다른 자회사인 모바일 컨텐츠 제공업체 올엠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를 기반으로 한 통신사업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싸이더스를 이처럼 안정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데는 한국 영화계에서 16년간 잔뼈가 굵은 노 이사의 숨은 내공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고교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꿔온 노 이사는 대학시절 `영화마당 우리` 활동을 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한국영화 아카데미 5기 출신인 그는 이후 감독지망생에서 프로듀서로 변신, 삼성물산 드림박스 사업부 영화팀, 삼성영상사업단 영화사업부 한국 영화팀을 거치면서 현재 싸이더스 영상본부 이사에 이르기까지 16년간 한국 영화 산업을 키우는 외길을 걸어왔다.
`비트` `초록물고기` `처녀들의 저녁식사` `약속` `태양은 없다`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 `쉬리` `봄날은 간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 한국 영화사의 계보를 잇는 낯익은 영화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프로듀서로서 그의 철학은 분명하고 정직하다. 컨텐츠에 대한 기획력만 좋으면 자금이 적극적으로 들어온다는 것. 그는 "좋은 기획력이 경쟁력"이라며 "좋은 기획을 위해서는 좋은 감독, 좋은 작가들을 유치하기 위해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3년전 외교통상부에서 스크린쿼터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도 노 이사는 이같은 철학을 내세웠다.
그는 "스크린쿼터 축소하면서 시장이 작아지면 그만큼 지원금을 주겠다"는 외통부의 논리에 "스크린 쿼터로 시장이 지켜져야 하고 시장에서 나온 건전한 자본들이 건전한 경쟁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맞섰다.
노 이사는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투자 리스크가 크다고 여겨졌던 영화 제작에 대한 투자 리스크를 축소하는 기제도 많아져 영화 산업의 힘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류 열풍 등으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기획 단계부터 해외쪽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이 용이해졌습니다. 프리세일즈(pre-sales)나 해외 펀딩을 통해서 리스크를 헷징하는 거죠"
이같은 맥락에서 싸이더스도 올 연말 개봉할 예정인 설경구 주연의 영화 `역도산`의 한·일 공동 제작을 추진하기 위해 현재 일본 메이저급 영화사들과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그는 밝혔다.
노 이사는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를 위해 지금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아시아에서 영화 컨텐츠를 제대로 만들어내고 있는 국가가 현재 한국 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한 풀 꺾였고, 중국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산업적으로 활성화하려면 아직 멀었죠. 지금이 중요한 타이밍입니다. 좋은 인력들을 유입하면서 시장을 넓혀나가야 합니다"
국내 영화 관객의 수준도 우리 영화 경쟁력의 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관객은 리트머스 종이입니다. `드라마`에 대한 감성이 짙어서 `드라마` 없이 기획적인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단호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여지없이 성공하기 때문에 헐리우드도 우리나라 시장에서의 개봉을 먼저 추진하며 중요한 시험대로 여기고 있습니다"
노 이사는 "한국 영화 시장이 질적, 양적 성장으로 산업적인 기반을 마련해 후배 영화인들이 좀 더 안정적이고 편하게 영화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아시아·유럽 시장에서 한국 영화가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꿈"이라며 중견 영화인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노종윤 이사 약력
82년 상문고등학교 졸업
86년 숭실대학교 졸업
89년 한국영화 아카데미 졸업
89년 동서 영화사 기획실/한국영화기획정보센터 공동대표 및 기획실장
93년 삼성물산 드림박스사업부 영화팀
95년 삼성영상사업단 영화사업부 한국영화팀
99년 삼부 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
00년~ 싸이더스 영상본부 이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 (자료)민노당 김혜경 대표 취임사·문답
- [edaily 조용만기자] 다음은 민주노동당이 6일 밝힌 김혜경 민주노동당 신임 대표 취임사 및 문답자료
◇ 당 대표 취임사
사랑하는 당원 여러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자랑스러운 민주노동당 당대표 김혜경입니다.
이 자리에 선 지금 30 여 년 동안 창신동 골짜기에서, 난곡 산꼭대기에서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과 함께 싸우며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창당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오늘의 민주노동당을 만들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온 당원 동지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들 모두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우리는 수권정당으로의 도약이라는 막중한 역사적 과제 앞에 서 있습니다. 진보정당 최초의원내진출, 그리고 명실상부한 제3당 도약이라는 성과는 소중합니다. 노동자와 서민들은 이제 민주노동당의 정치를 체감하면서 정치가 곧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지 여러분, 우리가 제3당 하려고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것은 아닙니다. 의석 10개 차지하려고 121명의 지역구 후보들이 패배가 눈에 보이는 싸움에 불나비처럼 뛰어든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노동해방, 민중해방이라는 가슴 사무치는 꿈이 고동치고 있으며, 우리들의 눈은 이미 통일조국의 미래를 향해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수권정당으로 도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지 여러분 저 김혜경과 함께 6만 당원의 힘을 모아 2012년 집권을 향해 힘차게 전진합시다.
존경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우리들의 눈과 가슴은 이미 집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권이 가슴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비젼과 정책을 가다듬고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실천을 통해 국민들의 가슴속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자리 잡았을 때 비로소 국민들은 우리를 집권세력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우선, 원내와 원외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의 전형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원내에 진출한 우리 10명의 의원들, 누구보다도 훌륭한 국회의원이 되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10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한국사회 개혁의 상징, 투쟁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당원 여러분께서는 힘을 모아 주셔야 합니다. 단병호의원은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상징이 되고, 최순영 의원은 무상교육 실현의 상징이 되며, 천영세의원은 언론 개혁의 상징이 되고, 심상정 의원은 부유세 도입과 조세개혁의 상징이 되며, 권영길의원은 자주외교와 통일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아나가는 것, 바로 이것이 원내정치와 원외정치를 아우르는 민주노동당의 새로운 대중정치입니다. 원외 투쟁으로 원내정치가 힘을 얻고, 원내 정치로 원외 투쟁이 활성화 되는 새로운 대중정치, 저 김혜경과 함께 당원의 힘을 모아 반드시 실현합시다.
당원 여러분!
집권을 위해서는 지역과 여성에 투자해야 합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2명으로는 집권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청장 2명으로는 집권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많이 당선 시켜야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을 믿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장, 군수, 구청장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보적 지방자치가 무엇인지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도록 해야 국민들은 우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이르지 않습니다. 지역조직 활성화를 위해 재정적, 정책적 투자를 대폭 상향조정하고 2006년 지방자치 선거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갑시다. 2004년 중앙정치 판갈이에 이어 2006년에는 지방정치 판갈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줍시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 그 절반의 지지 없이 민주노동당은 집권에 이를 수 없습니다. 여성들과 함께 하려는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여성적인 구조와 정책을 가진 여성주의적인 정당이 되려고 했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민주노동당은 주로 ‘아저씨’들이 지지하는 정당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저씨들만의 지지에 만족하지 맙시다.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아이들 아토피 걱정에 무얼 먹일지 몰라 울상 짓고 있는 주부들, 그리고 이 세상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며 씩씩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성들의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수다 떨면서 세상사를 걱정하고 믿고 의지하며 서로를 북돋울 수 있는 씩씩한 언니들의 정당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17대 국회는 개원부터 파행입니다. 개혁을 실천하고 민생을 챙기라는 국민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은 체, 개혁과 민생이라는 말마저 자신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농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민주노동당의 당대표로서 아무런 실천도 뒤따르지 않은 박근혜 대표와-정동영 전 당의장 간의 대표 회담 같은 언론 이벤트용 회담이 아니라 진정 민생과 개혁을 위해 각 당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논의 할 것을 제안합니다. 진정 국민들을 두려워 할 줄 안다면 각 당 대표들은 즉각 저의 제안에 응할 것이라 믿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이 모든 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기본은 무엇입니까. 바로 당의 통합과 단결입니다. 최고위원회를 운영하라는 당헌의 정신은 바로 집단지도체제를 통한 통합과 단결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강령과 당헌 그리고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통합과 단결의 정신이 구현될 수 있도록 대표인 저를 비롯한 13인의 최고위원들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당원 여러분들께서도 이제 성장통을 앓고 난 후의 청년처럼 쑥쑥 자라나는 당을 만들어 가는 데 마음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당원 여러분!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내 주고 있지 않습니다. 노동자, 서민들은 우리에게 통합과 연대의 정신으로 수권정당으로 도약하기 위해 혁신하라는 엄중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 선출된 최고위원들과 깊이 논의하여 2012년 수권을 위해 직접적인 준비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개혁의제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개혁을 위한 한국사회의 모든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도록 뛰겠습니다. 너른 연대의 정신으로 한국사회의 개혁세력을 아울러 내겠습니다. 수권정당으로 도약하기 위한 혁신의 길에 당원의 힘과 지혜를 믿고 의지해서 당당히 나가겠습니다. 당원 여러분 힘차게 전진합시다. 감사합니다.
◇ 일문일답
- 소감은
▲지난 30여년 달동네에서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세월들이 주마들처럼 스쳐갑니다. 도한 민주노동당의 창당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오늘의 민주노동당을 만들기 까지 피와 땀을 흘려온 당원 동지들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진보정당의 대표로서, 그리고 원내 제3당의 대표로서 노동자 서민들에게 희망의 정치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
▲우선 민생과 개혁을 위한 5당 대표 회담을 제의합니다. 지난번 박근혜-정동영 회담은 언론용 이벤트 회담에 불고 했다는 것이 한달만에 드러났습니다. 진정 민생과 개혁을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2012년 집권계획을 짜는 것입니다. 국민들 앞에 진보정당이 그리는 한국사회의 미래와 비젼을 보여드리고 집권을 위해 우리 스스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장애인 이동권 확보와 여성 정치인 육성,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사회적 약자가 믿고 의지하는 정당, 아니 그들 스스로가 참여하는 정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 공직과 당직이 분리된 민주노동당에서 원내에 진출한 의원단과 관계를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헌 당규에 정해진 대로 하면 됩니다. 민주노동당은 13인으로 구성된 최고위원회가 있고 의원단은 일상적으로 최고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최고위원회의 정신은 집단지도 체제인 만큼 이 정신이 올곧게 구현되리라고 봅니다.
- 경선 후유증 극복 방안?
▲성장통입니다. 성장하기 위해 거치는 통과의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당 안에 특히 진보정당안에 다양한 노선이 경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이러한 노선 경쟁이 한 분파의 이익이나 당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실현하고 국민의 이익을 실현하기에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경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치열한 토론과 단일한 실천이 중요한데요, 최고위원회가 집단지도체제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 통합 단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원외대표로서의 한계 어떻게 극복하실 계획이십니까?
▲당대표는 당대표입니다. 원내와 원외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당대표입니다. 진보정당에서 당대표가 원내냐 원외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대표의 지도력은 직선으로 저를 선택해 주신 6만 당원들과 당 지지자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 민주노동당이 이제 제도권에 진입했지만 당장 10석 갖고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들이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십니까?
▲원내에 진출한 우리 10명의 의원들, 누구보다도 훌륭한 국회의원이 되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10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한국사회 개혁의 상징, 투쟁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원외정치가 뒷받침 해 줘야 합니다. 원외 투쟁으로 원내정치가 힘을 얻고, 원내 정치로 원외 투쟁이 활성화 되는 새로운 대중정치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네 꿈을 펼쳐라… 청약통장으로
- [조선일보 제공] 서울 강남 아파트 평당가가 3000만원을 넘고, 수십만명이 몰린 주상복합 아파트에 몇 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소식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한숨만 쉬기보다는 내 형편에 맞는 전략을 짜고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직장 새내기나 서민들이라면 청약저축부터 가입, 내 집 마련의 꿈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앞으로 청약저축 가입자를 위한 아파트 공급이 크게 늘어나고, 판교·파주·김포신도시 등 ‘2기 신도시’에는 청약저축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중소형 아파트에 저렴한 분양가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시간과 공간사’ 한광호 대표는 “청약저축은 정부가 무주택자에게 주는 특권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집마련정보사에 따르면, 올 하반기 청약저축 가입자들이 청약할 수 있는 전국의 국민주택(민간건설 임대주택 포함)은 4만3843가구에 달한다. 수도권 물량은 민간 아파트 1606가구와 주택공사 공급분을 포함해 2만1914가구다. 향후 2~3년간 서울의 알짜 지역으로 꼽히는 장지·발산·마곡지구, 강남구 세곡동 등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있는 서울 시내 9개 지구(81만평)에서도 공공 분양 또는 임대 아파트 2만 9500가구가 새로 지어질 예정이다.
주택공사도 2~3년 뒤 판교신도시(1만2000~1만6000가구), 충남 아산신도시(7000여가구), 파주신도시(4만7000가구) 등에 아파트를 줄줄이 내놓는다. 내집마련정보사 함영진 팀장은 “올 하반기 분양될 인천시 논현2지구 32평형, 고양시 일산2지구 30·33평형, 부천 소사, 용인 신갈, 용인 동백·보라지구 임대 주택 등을 노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청약예금·청약부금은 민간 건설회사가 공급하는 아파트를 분양받는 반면, 청약저축은 대한주택공사, 지방도시개발공사가 짓는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공공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다. 국민은행 등에서 판매하고 무주택 세대주라야 가입 자격이 생긴다. 매달 2만~10만원 범위 안에서 5000원 단위로 불입할 수 있다. 같은 1순위라도 불입금액,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우선 순위가 정해지기 때문에 빨리 가입, 최대 한도인 10만원까지 매달 불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가입 후 24개월 납입하면 1순위, 6개월 이상 납입하면 2순위가 된다.
청약저축은 일정 요건만 갖추면 나중에 청약예금으로 갈아 탄 뒤 민영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게 장점. 청약예금은 전환이 불가능하다. 청약저축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주공이나 도시개발공사 공급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민간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에 짓기 때문에 교통 등 기반시설이 좋은 편이다. 특히 판교 신도시는 정부가 분양가 규제를 통해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를 평당 850만원선에 공급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대박 기회’를 노려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청약저축은 청약예금·부금에 비해 가입자 수는 상대적으로 적고, 청약 가능 물량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당첨 확률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4년 4월 말 현재, 청약예금, 청약부금 가입자는 각각 249만여명, 268만여명이지만 청약저축 가입자는 124만여명에 그치고 있다.
- (정명수의 월가 키워드)Exile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뱅크원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과 시티그룹의 샌포드 웨일(Sanford I. Weill) 이야기를 `Mentor`라는 제목으로 지난 1월29일 기사화한 후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기사의 출전이 어디냐"는 물음이었다.
월가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비교적 자세하게 알려져 있는 모양이지만, 기사를 쓸 당시에는 보고 베낄만한 책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실린 과거 기사를 검색해서 조각조각 이야기를 맞춰나갔다.
얼마전 맨해튼 팬스테이션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마침 시간 여유가 있어서 역구내 서점에 들어갔다. 신간 코너에 `Tearing Down the Walls`라는 책이 있었다. 부제는 "How Sandy Weill Fought His Way to the Top of the Financail World and Then Mearly Lost It All" 이었다. 단번에 "그 독자가 원하던 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저자는 모니카 랭글리라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다. 샌디 웨일 회장이 어떻게 자신의 금융제국을 건설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투쟁`을 벌였으며, 우정과 배신의 드라마를 만들어갔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Mentor`가 다룬 제이미와 샌디 이야기는 둘 사이가 갈라지고, 복수를 꿈꾸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이미 다이먼이 기사의 중심이다.
언젠가는 샌디의 입장에서 뒷얘기를 찾아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샌포드 웨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추방(exile)`이었다.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
샌디는 폴란드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영업으로 그럭저럭 집안을 잘 꾸려나갔다. 샌디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코넬 대학에 입학했다.
샌디의 꿈은 대학 졸업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회사를 이어받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집안에 큰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젊은 여비서와 눈이 맞아 어머니를 버린 것이다. 회사도 몰래 팔아버렸다.
샌디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배신`을 경험했다. 샌디는 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결혼하기로 약속한 약혼녀가 있었다. 아버지의 배신으로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샌디는 `가족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샌디는 어찌어찌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호구지책을 마련해야했다. 그가 문을 두드린 곳이 다름 아닌 월스트리트였다. 1950년대 월가는 황금도시 앨도라도였지만, 샌디처럼 금융을 전혀 모르는 젊은이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유태인 딱지까지 붙은 샌디는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했다.
샌디가 월가에서 맡은 첫번째 임무는 증권수도였다. 주식과 채권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대금을 받아오는 것으로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았다.
샌디는 회사의 브로커들이 엄청난 월급을 받아가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했다. 그 다음 샌디는 후선부서(back office)에 배치됐다. 브로커나 트레이더들은 계좌를 어떻게 관리하고, 결제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다. 샌디는 묵묵히 백 오피스 업무를 배워나갔다. 마침내 샌디는 보스의 허락을 받아 브로커 시험을 치룬다. 브로커 자격을 얻는 샌디는 직장을 옮겨서 자신만의 고객을 관리하게 된다.
브로커 샌디는 적극적으로 고객을 찾아나설 위인이 못됐다. 브루클린 친구들과 아내 조안의 도움으로 몇몇 계좌를 관리하며 브로커 경력을 쌓아갔다.
그럭저럭 월가에서 5년을 버틴 샌디는 1960년 유태인 동료들과 함께 작은 회사를 만든다. 그들의 이름을 따서 `카터, 벌린드, 포토마 앤 웨일`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1960년대 월가는 이른바 `Go-Go` 시대였다. 대형 블루칩들은 영원히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브로커 영업도 단순해서 돈 많은 전주들과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IBM이나 AT&T같은 주식을 사라고 권하는 게 전부였다.
샌디는 그때까지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책상머리를 지키며 기업들의 회계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샌디의 회사도 증시 활황 덕을 보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고객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서 백 오피스를 확장할 필요가 생겼다. 동료들은 샌디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샌디는 꼼꼼하게 백 오피스 시스템을 구축했다. 회사가 지금보다 몇배 더 커질 것을 대비했다. 백 오피스 경험이 풍부한 수줍은 브로커 샌디의 시대가 곧 도래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구조조정 전문가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Go-Go 시대의 거품이 무너지자 월가는 빙하기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수십년 전통의 브로커 회사들도 하나 둘 문을 닫을 처지가 됐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회원사들의 부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시절이 험악해지면 사건 사고도 많아진다. 백 오피스 관리를 엉성하게 한 회사들이 잇따라 사고를 치면서 월가 전체의 신뢰도가 위태롭게 됐다.
NYSE는 부실 브로커 회사를 조용히 인수해줄 `청소회사`를 찾고 있었다. 그때 NYSE의 주목을 받은 것이 바로 샌디의 회사였다. 당시 샌디의 회사는 동업자들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CBWL로 불렸다. 최초 회사를 만든 동료 중 일부가 회사를 떠나고 새로운 파트너들을 받아들이면서 CBWL이 됐다. 이 중에는 나중에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이 되는 아서 레빗도 포함돼 있다.
파트너가 모두 유태인이고, 규모도 보잘 것 없는 CBWL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월가의 대형 브로커리지 회사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CBWL을 비하해서 `Corned Beef With Lettuce`라고 놀렸다.
이런 CBWL이 `문제 회사들`을 하나 둘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려나갔다. 그 핵심에 샌디가 있었다. 영업전선에서는 뒤로 한발 물러서 있었지만, 후방에서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은 샌디밖에 없었다. CBWL이 다른 회사들을 인수할 때마다 샌디의 역할이 커졌고 마침내 그는 동료 파트너들을 제치고 CEO가 된다.
샌디는 `무식한 사장`의 전형이었다. 대식가인 샌디는 고상한 예술을 즐기기보다는 좋은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시거광이기도 했다. 업무 시간 내내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았다.
샌디는 업무에 있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한번은 회사에 불이 났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샌디는 회사에 불이 난 것을 보고 급히 달려갔다. 빌딩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직원을 붙잡고 샌디는 "채권, 주식예탁증서, 수표는 어떻게 했어"라고 외쳤다.
그 직원은 "사장님, 그걸 어떻게 챙겨 나오겠어요. 피신하기도 급한데"라고 말했다.
샌디는 "이런 망할 놈. 당장 뛰어들어가지 못해. 우리 사무실이 있는 층에는 아직 불이 안붙었잖아"라고 윽박질렀다.
샌디는 비용절감에는 귀신이었다. 하루는 비용관리부서를 순시하다가 우편발송 비용이 너무 많은 것을 지적했다.
직원은 "회사가 합병되면서 증권분석자료를 발송하는 고객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해명했다.
샌디는 고객명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샌디는 "이런 XX새끼!(You fucking idiot!). 같은 사람에게 중복해서 자료를 보내고 있잖아. 도대체 몇명이나 중복돼 있는거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합병, 비용절감, 다시 합병, 다시 비용절감"을 반복하며 회사 규모를 키워나간 샌디는 1979년 마침내 롭로즈라는 유수의 증권사를 인수, 자신의 첫번째 왕국 시어슨을 완성한다. 시어슨은 1980년 월가의 상징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 106층으로 본사를 이전한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샌디는 저층을 원했지만 106층에서 시어슨 최후의 경쟁자인 메릴린치 사옥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말에 주저없이 계약서에 서명한다.
◇수평적 결합에서 수직적 결합으로
샌디가 시어슨 왕국을 만드는데 일등 참모는 피터 코헨이었다. 샌디가 제이미를 얻기 전까지 코헨은 샌디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사 규모를 키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코헨은 샌디의 오른팔이었다. 샌디는 코헨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했다. 코헨은 자신이 시어슨에서 중책을 맡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샌디는 이를 무시했다. 실망한 코헨은 잠시 샌디를 떠나기도 했다. 샌디는 시어슨 왕국을 완성하는데 코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시어슨을 그에게 넘겨준다는 암묵이 있었다.
1980년대 월가는 새로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월가는 우량 증권사가 부실 증권사를 인수하는 `수평적 결합`에 주력했다. 증권사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마지막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쟁의 양상을 하루 아침에 바꿔놓은 대사건이 벌어졌다. 1981년 3월 20일 프루덴셜보험은 바체할시증권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보험과 증권, 각기 다른 영역을 결합하는 수직적 합병이 일어난 것이다.
샌디는 프루덴셜의 막강한 보험 세일즈 조직이 증권사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샌디는 그 즉시 합병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프루덴셜에 의표를 찔린 것은 샌디만이 아니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짐 로빈슨 회장도 위기를 직감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시어슨은 이전에도 교감을 한 적이 있다.
경쟁사인 메릴린치가 CMA(Cash Management Account)라는 신상품으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시어슨은 이에 대항하는 FMA(Financail Management Account)를 내놨다. 샌디는 이 상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FMA 고객에게 카드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했다. 그 파트너로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선택했던 것이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도 시어슨이 확보하고 있는 고급 고객 명단이 은근히 탐이 났다. 양사가 이 문제를 놓고 논의를 벌이는 사이 프루덴셜이 바체를 인수한 것이다.
샌디와 로빈슨은 두 회사의 합병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생명으로했다. 반면 시어슨은 증권사 특유의 방만한 기운이 넘쳤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샌디의 저돌적인 성격도 마음에 걸렸다. 그가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삼키지 않을까 우려했다.
시어슨은 25억달러 짜리 회사였지만,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200억달러의 회사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샌디를 받아들였을 때 그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지가 숙제였다.
양사의 합병이 급속도로 진척되던 어느날 샌디와 코헨은 같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샌디는 차에서 내리면서 한마디 불쑥 던졌다.
"코헨 자네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합병을 하더라도 이사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게 알고 있어."
코헨은 충격을 받았다. 샌디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코헨은 샌디의 집으로 달려갔다. 코헨은 샌디에세 해명을 요구했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우리에게 이사 자리 2개를 준다고 했어. 한 자리는 내 친구 변호사를 앉히려고 한다.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합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헨은 샌디와의 결별을 직감했다. 두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가 이제부터는 분명히 달라졌다.
◇추방 그리고 새로운 동반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이사회는 시어슨과의 합병을 논의하기 위해 하루 종일 회의를 열었다. 로빈슨과 세부적인 부분에서 합의를 마친 샌디는 불안했다.
마침내 로빈슨이 찾아왔다. 그는 "이사회가 합병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샌디를 이사진에 받아들일 수 없다. 대신 그의 대리인으로 코헨과 다른 한명을 이사진에 포함시키겠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집행 이사회 의장직을 맡게 된다"고 말했다.
샌디는 "그렇다면 투자자들에게 매년 보내는 레터에 로빈슨 회장과 공동으로 서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로비슨과 자신이 동격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로빈슨은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시어슨이 합병했다. 시어슨 주주들은 당시 주가의 3배에 달하는 프리미엄을 받았다. 샌디 자신도 백만장자가 됐다. 샌디는 그러나 미국 최대의 금융왕국 중 하나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더 큰 일을 해보고 싶어했다.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조직 문화을 이해하지 못했다. 샌디는 여행자수표 부문의 실적이 좋지 않은 이유 들어보려고 담당 이사를 찾았다. 마침 그는 외부 출장 중이었다.
샌디는 출장을 중지하고 즉시 달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 이사는 "현재 테스크포스 팀이 그 문제를 연구하고 있고, 곧 프리젠테이션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복귀 명령을 거부했다. 샌디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이것이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로빈슨은 샌디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샌디는 회사의 약점을 정확하게 골라냈고, 그 해법도 기가막히게 제시했다. 로빈슨은 이런 샌디를 더욱 견제해야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로빈슨은 샌디의 오른팔 코헨을 불렀다. 다음 이사회에서 사장을 선출해야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물었다.
코헨은 "당연히 샌디가 사장이 돼야한다"고 답했다. 로빈슨은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당시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최고급 고객을 위해 유럽에 있는 은행을 하나 인수하려고 했다. 그 인수 프로젝트에 샌디와 코헨이 참여했다.
코헨은 "샌디가 사장이 되지 않으면 이번 유럽 은행 합병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로빈슨은 코헨이 합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며 흡족해 했다.
이사회가 열렸다. 로빈슨은 공개적으로 코헨을 칭찬했다. 로빈슨은 "코헨은 우리 회사의 보배"라고 말했다. 샌디는 놀랐다. 로빈슨은 곧이어 샌디를 사장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로빈슨은 샌디에게 증권 부분(시어슨)에서 손을 떼라고 권고했다. 샌디는 자신의 근거지를 내주는 것이 불안했지만, 로빈슨의 뜻대로 시어슨 CEO로 코헨을 임명하고 자신은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사장직에 전념했다.
샌디가 사장으로 승진할 즈음 제이미가 찾아왔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제이미는 골드만, JP모건 등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제이미는 아버지의 상사였던 샌디에게 어느 곳이 좋은지 자문을 얻으려 했다. 샌디는 제이미에게 자신의 비서로 일해 줄 것을 부탁했고, 제이미는 이를 받아들였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사장` 샌디는 마침내 정상에 선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함정이었다. 샌디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샌디는 할 일없이 대낮부터 포도주에 취해, 빈둥거리기만했다.
샌디에게 오랜만에 일거리가 생겼다.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IDS라는 금융자문사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샌디는 정열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로빈슨은 코헨을 따로 불러서 IDS 실사를 객관적으로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IDS는 인수가격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실사를 허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샌디는 IDS가 원하는대로 인수가격을 먼저 결정하고, 실사단을 보내기로 했다. 실사단에 포함된 코헨이 인수가격이 정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샌디, 인수가격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샌디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코헨은 "그럼 실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는 본사로 돌아갔다. IDS 인수는 무산됐다. 코헨은 샌디를 도와주지 않았다. 샌디는 코헨이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내에서 샌디의 위치가 더욱 불안정해졌다. 샌디에게 마지막 기회가 왔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관리하는 연금 펀드 하나가 큰 부실로 골치거리가 됐다. 샌디는 그 펀드를 자신이 개인적으로 인수하고 싶다고 했다. 샌디는 로빈슨에게 그 펀드를 받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로빈슨은 못이기는 척 이사회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샌디의 마지막 요청도 거부했다. 샌디는 구조조정의 대가다. 만약 펀드를 회사 내부자인 샌디에게 팔고, 샌디가 이를 정상화시키면 이사진이 소송에 직면할 수도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랬지만, 샌디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샌디는 이사회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들었다. 1985년 6월 25일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조용히 물러난다. 그를 따라 나온 직원은 비서였던 제이미 다이먼이 유일했다.
◇충성심에 대한 집착
샌디는 아버지로부터의 배신, 오른팔 코헨으로부터의 배신 때문에 `충성심`을 부하의 제일 덕목으로 생각하게 됐다.
샌디와 유배 길에 오른 제이미 다이먼은 `사실상의 아들`이었지만, 제이미에게도 무한 충성심을 요구했다.
샌디가 재기에 성공하고, 시티그룹과의 합병을 거쳐, 존 리드 회장과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샌디는 제이미 다이먼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샌디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이미 추방된 경험이 있다. 그는 투쟁에서 밀려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제이미 다이먼은 샌디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췄고, 벌써부터 후계자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샌디는 제이미가 자신의 친딸 제시카 비블리오윅을 내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샌디는 부인과 자식들을 끔찍히 위했다.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아픈 기억에 대한 반작용때문이다.
샌디는 두번 다시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친아들이나 다름없는 제이미를 제거했다. 월스트리트는 비정한 거리다.
1985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추방당한 샌디는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첫날 샌디는 자신에게 위로 전화를 건 사람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누가 자신의 진정한 친구이고, 누가 자신의 적인지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였다. `복수심`은 월가를 움직이는 또 다른 동력이다.
- 盧 `아마추어 발명가`..윤태영 대변인 기고
- [오마이뉴스 제공]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두 번째 펜을 들었다. 윤 대변인은 19일 발명의 날을 앞두고 1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발명가 대통령의 미완의 사업"이라는 제목으로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 ② - 발명의 날과 노무현"이라는 글을 실었다. 후보 시절부터 노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등 사람을 움직이는 글 솜씨가 좋은 윤 대변인이다.
윤 대변인은 지난 4월20일에도 "잃어버린 봄" 제목으로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 글을 중앙일보에 기고한 바 있다. 그때는 탄핵심판 결정을 기다리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기간이었다면, 이번은 만물이 살아 움직이고 생동하는 신록의 기간이다. 그래서인지 글도 훨씬 더 밝고 활기차다.
윤 대변인이 곁에서 지켜본 노 대통령은 "아마추어 발명가"다. 국회의원 및 낙선 의원 시절에 개발한 "노하우 2000"이라는 "인명관리 프로그램"이 그렇고, 노 대통령이 정말로 특허청에 실용신안 특허로 등록해 놓은 "독서대"가 그것이다.
윤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특허청에 실용신안 특허로 등록해 놓은 30여 년 전쯤의 그 유명한 "독서대" 개발과 75년에 "거금 500만원"을 투자해 일을 벌렸다가 말아먹은 사업 비화, 그리고 빚지고는 못사는 기질 등을 오밀조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윤 대변인 글에는 안나와 있지만, 노 대통령은 작년 5월 19일 코엑스(KOEX)에서 열린 발명의 날 행사에 권양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아마추어 발명가"로서의 호기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동만 특허청장은 "그때 코엑스에 특허전산망을 전시했는데 노 대통령 내외가 보는 앞에서 특허전산망을 시연해 노 대통령이 30여 년 전에 특허출원한 독서대 실용신안 등록증을 그 자리에서 뽑아서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고 다른 발명품들에 큰 호기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 청장은 "노 대통령의 실용신안 특허는 그후 다른 사업자에 의해 실물로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만든 독서대 1개가 아직 특허청에 전시돼 있다"고 말했다.
그뿐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발명의 날 행사장에 도착해 걸어가면서 주변에 "혹시 발명특허 중에 머리에 쓰면 가지런해져 머리 손질이 필요 없는 그런 모자는 없냐"고 물어 주변을 당황하게 했다. 특허청에서는 발명의 날 행사가 끝난 즉시 혹시 그런 발명품이 있는지 검색해보았는데 다행히(?) 그런 발명품은 아직 없었다고 한다.
청와대 안에서도 대통령의 무궁무진한 발상과 발명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었던 모양이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 감을 편하게 딸 수 있을까를 궁리한 끝에 밑에서 가위질만 하면 높은 곳의 감을 잘라낼 수 있는 장치를 생각했고, 그것이 대통령의 지시로 실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 대통령은 자신이 개발한 그 장비를 들고 관저 주변 감나무의 감을 열심히 땄다고 한다.
앞으로도 윤 대변인은 그때그때 사안이 있을 때마다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 시리즈"를 틈틈이 쓸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청와대 홈페이지(http://www.president.go.kr)에 오른 윤 대변인 글의 전문이다.
"발명가 대통령의 미완의 사업"
대변인이 만난 대통령 ② - "발명의 날"과 노무현
대통령은 발명가이다. 물론 직업발명가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또 어떤 상황에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면서 이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그것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보거나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영락없는 발명가의 모습이다.
우선 인명관리 프로그램("노하우 2000")을 개발하는 데 들인 열정과 정력이 그렇다. 웬만한 젊은 세대보다 컴퓨터를 일찍 받아들이고 그것을 활용했다. 주어진 것을 대충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뭔가 바꿀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발명가가 되는 게 꿈이라서? 결코 아니다. 그것은 천성이자 본능이다. 그 열정은 젊은 참모들조차 도저히 따라가지 못해 두 손을 드는 상황이다.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 대통령은 회의를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의자 등받이 위쪽의 모양을 옷걸이 모양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무래도 그냥 의자에 웃옷을 걸어놓으면 모양이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일리 있는 발상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청와대 안에서도 대통령의 무궁무진한 발상은 끝이 없었다. 경내에 있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면서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저 감을 편하게 딸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밑에서도 편하게 가위질만 하면 높은 곳의 감을 잘라낼 수 있는 장치를 생각했고, 그것은 대통령의 지시로 실제로 만들어졌다. 지난 가을 대통령은 자신이 개발한 그 장비를 들고 관저 주변 감나무의 감을 열심히 땄다. 아무튼 우리 대통령은 그런 대통령이다. 그 대통령이 정말로 특허청에 실용신안 특허로 등록해 놓은 것이 있다. 바로 독서대이다.
오래 전, 30여 년 전쯤의 일이다.
김해 장유의 불모산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노무현, A씨, B씨, 세 명의 고시준비생이 있었다. 뒤늦게 이 팀에 합류했던 A씨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수험생 노무현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독서대. 말하자면 대통령의 발명품이다. 그 독서대를 이용하면 책을 여러 형태의 각도로 놓을 수 있어서 책을 보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있어도 항상 편하게 책을 볼 수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비스듬히 누운 것 같은 편안한 자세로도 볼 수 있는 그런 독서대였다. 게다가 두터운 수험서와 법전을 동시에 올려놓고 볼 수도 있었다.
A씨는 대통령의 그 발명품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엄연히 밤을 낮 삼아 공부하고 있는 사람에게 언감생심 독서대를 만들어 달라 하기도 미안하던 차에 어느 날 우연히 제안을 했더니, 대통령은 제안을 흔쾌히 OK. 한나절 이상 땀을 흘리며 뚝딱뚝딱 한 끝에 새로운 또 하나의 독서대를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 효용을 만끽한 3인에게 독서대는 고시에 못지 않은 새로운 희망이 되었던 듯. 3인은 논의를 한 결과 이 독서대를 특허로 등록하기로 합의했고, 대통령은 실제로 이를 특허 등록했다.
그 후 대통령은 결혼을 했고, 그 결과로 3인의 고시준비생 가운데 대통령과 A씨는 시험준비 장소를 대통령의 집이 멀리 마주보이는 산자락에 지은 마옥당(磨玉堂)으로 이전했다. 이후 A씨는 서울의 고시촌으로 다시 이동을 했고, 얼마 후 대통령은 고시에 합격을 했다.
어느 날 사법연수원을 다니던 대통령이 A씨가 있던 고시촌에 들러 하나의 제안을 던졌다.
"사법연수원을 다녀보니, 고시에 합격하는 게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그럴 바엔 아예 지금부터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떨까?"
특허를 받아놓은 독서대를 가지고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보자는 것. 결국 철두철미한 성격의 A씨가 사업계획서를 작성했고, 그 계획서를 들고 3인은 부산의 한 선생님을 찾아가 그 사업의 후견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선생님은 뜻하지 않게도(?) 75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500만원을 내놓으면서 이들 일행의 사업에 투자를 했다.
3인은 즉시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나 보다. 무엇보다 생산공장을 원활하게 돌리기가 어려웠다. 목재조립품이었던 독서대는 당시 목재가공기술이 여의치 않아 상당한 불량품이 쏟아지는 등 생산과정에서부터 애로가 많았다. 또 광고를 할 자본이 없으니 판로 개척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악전고투 그 자체였다. A씨는 고시촌 일대를 돌며 영업을 했고 또 적지 않은 물량을 팔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오래 버티기에는 역부족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리고 1년. 500만원은 30만원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막다른 길에 봉착한 3인은 결국 선생님을 찾아가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첫째, 다시 500만원을 투자해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주시거나, 둘째, 그 빚을 갚을 때까지 A씨가 노력봉사를 하거나, 셋째, 기약은 없지만 먼 훗날 갚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쯤에서 일단 정리하자는 것. 말을 다 듣고 난 선생님의 결론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하라."
다시 시간이 흘러, 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화려한 청문회 스타에서 초라한 낙선자로 전락해 있던 대통령과 A씨가 소주를 함께 했다. 그리고 제법 거나하게 취한 두 사람이 권양숙 여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헤어지려던 즈음, A씨는 권 여사가 건넨 뜻밖의 말에 술이 확 깨었다.
"그때 그 500만원, 이 양반이 변호사 된 후에 제일 먼저 갚았습니다.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옛날의 기억을 되살려준 뜻밖의 이야기에 깜짝 놀란 J씨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이 또 있었다. 권 여사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권 여사를 향한 대통령의 불만 가득한 한마디.
"쓸데없는 소리! 그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