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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도 ''나눔의 책'' 캠페인에 동참해요!
  • 스타벅스도 ''나눔의 책'' 캠페인에 동참해요!
  • [이데일리 EFN 강동완기자]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이석구 대표이사는 지난 2월 12일 오후 2시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스타벅스 써머셋팰리스점에서 아름다운 재단 윤정숙 상임이사, 세종서적 안희곤 대표이사와 함께 '땡큐! 스타벅스' 나눔의 책 협약식을 가졌다. ◇ 스타벅스 써머셋팰리스 점에서 진행된 “땡큐! 스타벅스” 나눔의 책 협약식 광경.  사진 왼쪽부터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이석구 대표이사, 아름다운 재단 윤정숙 상임이사, 세종서적 안희곤 대표이사'땡큐! 스타벅스'는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새로운 인생을 찾은 한 뉴요커의 감동 실화로, 오는 2월 말 세종서적에 의해 국내 발간 예정이다. 본 협약을 통해 세종서적은 책 판매 수익금의 1% 를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며, 스타벅스 또한 세종서적의 기부금 총액을 매칭한다. 기부금은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저소득 한부모 여성 가구주들을 위한 의료 지원 비용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아울러, 스타벅스 전국 280여 매장에서는 책 출간에 맞추어 오는 4월 말까지 본 책을가지고 오는 고객에게 카페 라떼 숏사이즈 한잔씩을 무료 제공하며, 매장 고객 모금 행사 및 특별 커피 세미나 등을 실시해 책 홍보를 지원할 계획이다. 나눔의 책 캠페인은 국내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 2002년부터 아름다운 재단에서 진행하는 작가, 출판인들의 지식 기부 캠페인으로 신경숙, 윤도현, 김용택 등 175명의 작가와 24개 출판사가 현재 동참하고 있다. 한편, 2월 15일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충전식 선불 카드인 스타벅스 카드를 출시한다.  30,000원부터 300,000원까지 10,000원 단위로 충전되는 본 카드는 스타벅스 단골 고객들에게 우선 판매되며, 일반 판매는 5월중 개시된다. 스타벅스 카드 특전으로는 500원 상당의 에스프레소 샷, 시럽, 휘핑 크림, 드리즐, 자바칩 등을 매회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신용 카드로도 구매가 가능하며, 음료 외에 스타벅스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카드 잔액이 부족할 경우, 현금 및 다른 카드와 함께 사용할 수 있다.
2009.02.16 I 강동완 기자
박찬욱 감독, "'박쥐' 송강호 은근히 섹시해"
  • 박찬욱 감독, "'박쥐' 송강호 은근히 섹시해"
  • ▲ 영화 '박쥐'의 스틸컷[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박찬욱 감독이 '박쥐'에서 뱀파이어가 된 신부 역을 맡은 송강호에 대해 이례적으로 섹시하다고 칭찬해 화제다. 박찬욱 감독은 '박쥐'의 주인공인 송강호와 김옥빈의 커플 스틸샷을 공개한 뒤 "송강호가 맡은 신부 상현은 친구의 아내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역할이다"며 "덕분에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남성다운 매력을 선보여 은근히 섹시하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1997년 송능한 감독의 '넘버3'에서 불사파 두목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괴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남자 배우 중 한 명으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간 송강호는 남성적인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탓에 섹시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게 사실. 하지만 '박쥐'에서는 김옥빈과 배우인생 최초로 정사 장면 등을 촬영해 그 표현수위에 대해 충무로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박찬욱 감독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박쥐'는 지난 7일(현지시각) 제59회 베를린영화제서 열리고 있는 유러피안필름마켓을 통해 뱀파이어 전설의 본고장인 루마니아에 영화 완성전 선판매돼 눈길을 끌었다. 현재 '박쥐'는 올해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막바지 후반작업에 한창이다. ▶ 관련기사 ◀☞'박쥐' 크랭크업, 박찬욱 감독 "내 작품 중 제일 나을 것"☞박찬욱 감독 '박쥐', 韓영화 최초 할리우드 스튜디오 투자 유치☞'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송강호-신하균, '박쥐'로 다시 뭉친다☞김옥빈, 박찬욱 감독 신작 '박쥐' 여주인공 낙점☞박찬욱 감독과 고전영화의 세계로...'시네마테크 영화제' 29일 개막
2009.02.11 I 김용운 기자
  • 굿바이! 소렌스탐...美LPGA 통산 72승·메이저 10승 대기록
  • [조선일보 제공] 가벼운 백 스윙에 이어 머리와 몸을 함께 휙 돌리는 듯한 특유의 샷.공은 퍼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핀 근처에 날아가 꽂혔다. 13번 홀(파5·554야드)부터 14번 홀(파3·171야드), 15번 홀(파5·470야드)까지 3 연속 버디. 그리고 16번 홀(파4·408야드)에서 파 컨시드를 받은 애니카 소렌스탐은 박세리에게 싱글 매치플레이 승리(3&2·2홀 남기고 3홀 차 승리)를 거둔 뒤 박세리와 뜨겁게 포옹했다. '골프 여제'가 마지막으로 선사한 미 LPGA투어 라운드를 지켜본 팬들은 환호성과 아쉬움 섞인 탄성을 질렀다.미 LPGA투어 대륙 대항전인 제4회 렉서스컵 최종일 싱글 매치플레이가 열린 30일(이하 한국시각) 싱가포르 아일랜드 골프장. 38세의 소렌스탐은 마지막 순간까지 '소렌스탐다운 모습'을 잃지 않으며 15년간 군림했던 미 LPGA투어를 떠났다.동료 선수들은 꽃다발을 목에 두른 채 작별하는 '언니'를 아쉬워했다. 박세리는 "언제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고, 카렌 스터플스(잉글랜드)는 "소렌스탐을 통해 미 LPGA투어가 마케팅 면에서도 한 단계 도약했다"고 했고, 폴라 크리머(미국)는 "모든 선수들의 위대한 역할 모델로 남게 될 것"이라고 칭송했다.소렌스탐은 지난 5월 14일 이미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했지만, 미 LPGA투어에서 3승을 올리며 상금랭킹 4위에 올랐고, 세계 랭킹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청야니(대만)에 이어 3위를 달리며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싱가포르에서 만난 소렌스탐에게 "여전히 정상급인데, 은퇴를 번복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그녀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은 소렌스탐에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해다. 그녀는 내년 1월 네 살 연하인 애인 마이크 맥기와 결혼한 뒤, 골프 코스 디자인과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 아카데미, 의류 사업, 자선 재단 운영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녀가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2007년 4월 나비스코 챔피언십 직후였다. 아이언 샷에 거리감이 없어 병원에 갔다가, 목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은 것. "마음보다 몸이 먼저 나의 변화를 알게 된 것이고, 이제는 다른 분야에서 정상을 향해 도전할 때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소렌스탐은 미 LPGA투어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인 소렌스탐은 12세 때 골프채를 처음 잡은 뒤, 1994년 미 LPGA투어에 데뷔해 메이저 대회 10승 포함, 통산 72승을 올렸다. 다른 투어 대회까지 합하면 통산 90승을 기록했다. 그녀는 데뷔 이후 매 홀 버디를 잡는 '비전 54'란 목표를 세운 뒤 하루 8시간씩 훈련했다. 2001년부터는 혹독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가냘프던 체격을 근육질로 바꾸어 놓았다.소렌스탐은 2001년 스탠더드 레지스터 핑 대회 2라운드에서 59타를 쳐 여성골퍼로는 유일하게 60타 벽을 깼고, 2003년 남자대회인 PGA투어 메모리얼 대회에 출전해 컷 탈락했지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LPGA투어 상금만 역대 최다인 2257만3192달러(330억2400만원)를 기록했다. 그녀는 "선수로서 골프 게임은 떠나지만 내 사랑인 골프 자체를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유러피언 투어인 두바이 레이디스 마스터스(11일 개막)를 끝으로 현역 선수 일정을 마감한다.
(클릭! 새책)비즈니스 성공전략이 알고 싶다면
  • (클릭! 새책)비즈니스 성공전략이 알고 싶다면
  • [이데일리 편집부] 현명한 초보 투자자 주식시장이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주식 투자의 기본과 올바른 투자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현명한 초보 투자자>는 초보자들에게는 투자의 기초를 탄탄히 잡아줄 투자 길잡이로, 경력이 오래된 투자자들에게는 가치 투자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이 책에서는 투자자들의 유형을 크게 4종류로 분류한다. ▲기업가치의 차이가 큰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부엉이 형 ▲단기간에 발생하는 가격과 가치의 차이를 포착하여 재빠르게 치고 빠지는 여우 형 ▲저평가 된 기업을 인수하여 가치를 높인 후 다시 되파는 사자 형 ▲특별한 투자 기준 없이 부화뇌동하는 양 형. 이 책은 우왕좌왕하며 항상 누군가의 뒤를 쫓는 양 같은 투자자들을 위한 투자입문서이다. 저자는 수조 원 규모의 M&A를 수행해온 M&A 전문가로, 기업의 가치 평가 방법을 개인투자자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소개한다. 또한 인과의 매트릭스라는 분석틀을 통해 기업의 사업 환경과 구조를 분석하는 법을 제시하며 이젠 더 이상 양 같은 투자자로만 머물러 있지 말기를 조언한다. (야마구치 요헤이 지음/ 유주현 옮김/ 이콘 출판/ 1만원) 이기는 묘책 역사속의 영웅들은 모두들 자신만의 이기는 묘책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실권 없는 황제 헌제를 폐위시키지 않고 품에 안은 것이며, 알렉산드르 1세가 나폴레옹과 정면대결을 피하고 식량창고와 초원을 불태우며 도망가는 식의 자연을 이용한 묘책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처럼 항상 역사가 검증한 승리 뒤에는 적이 생각하지 못한 묘책들이 숨어 있다. 이렇듯 <이기는 묘책>은 비즈니스 성공과 인생의 운명은 묘책의 유무에서 결정된다는 전제로 출발한다. 어떤 묘책을 가지고 있느냐 따라 최후의 승자 또는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 저자 이상각은 우리시대에 넘쳐나는 잘못된 정보와 각종 유언비어들 또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묘책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어느 것에서든 승리하길 원한다면 자신만의 이기는 묘책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을 권한다. (이상각 지음/ 케이앤제이 출판/ 1만 2천원) 나이스 샷! 굿 비즈니스 2008년 대한골프협회와 골프산업연구소가 공동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국내 골프 인구는 약 275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골프가 더 이상 특권계층만의 귀족스포츠가 아니라 대중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국내 CEO 90%이상이 골프를 즐기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골프는 비즈니스에 있어 매우 유리한 장점이 있다. 기타 어떤 스포츠보다도 파트너와 장시간에 걸쳐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건전한 신체활동을 통해 남다른 친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은 비즈니스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나이스 샷! 굿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와 골프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밝힌다. 책은 4명의 골퍼 (금융기관 상무, 중소기업 회장, 경영학과 교수, 컴퓨터 관련 계열사 사장)가 18홀을 돌며 비즈니스 상황에 대한 처세를 배우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는 구성을 통해 저자는 비즈니스 골프의 기본은 파트너가 가장 편한 상태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플레이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더불어 파트너의 플레이를 통해 상대의 비즈니스 전략을 꿰뚫어 보는 눈을 기를 것을 권한다. (김영안 지음/ 새빛 출판/ 1만 1천원)
2008.11.26 I 편집부 기자
  • KLPGA 6승 ‘필드의 슈퍼모델’ 서희경
  • [경향닷컴 제공] 처음 우승하자 '신데렐라'로 불렸다. 전까지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하다 불쑥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두번째 우승했을 때부터는 '필드의 슈퍼모델'이란 듣기 좋은 별명이 더해졌다. 늘씬하게 균형잡힌 몸매와 예쁜 경기 모습, 싱그러운 마스크로 빠르게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인기스타로 자리잡았다. 첫 우승의 물꼬를 트더니 3주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잠시 주춤하다 3승을 더했다. 내년 신지애(하이마트)가 미국으로 떠나면 한국 투어를 앞장서 이끌어야 할 책임을 안았다. 서희경(22·하이트)이다. '지존' 신지애에 1승이 모자라는 6승, 그리고 상금도 6억원을 넘기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그를 지난 23일 제주 롯데 스카이힐CC에서 만났다. 올시즌 성적 아직도 꿈만 같아 골프없는 인생 생각도 안해봐 남자친구는 아직 밝히기 곤란 -올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시즌 6승, 그것도 하반기에만 거둔 성적인데요. "정말 복이 터진 것 같아요. 아직도 안 믿겨집니다. 우승할 때마다 현장에선 실감이 나지 않았고요. 집에 가서 트로피를 보고, 경기 장면을 재방송으로 볼 때 아, 내가 정말 우승했구나 하는 게 믿겨지곤 했습니다. 아직도 꿈인 것만 같아요." -코치가 누구죠. 이렇게 달라지기 전까지 뭐가 변한 것인가요. "고덕호 프로님에게서 배우고 있습니다. 사실 올해 초까지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는데 하반기 시작하기 전에 체력훈련을 한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쇼트게임을 보완했고, 특별히 샷을 가다듬은 것은 없습니다." -신데렐라란 별명을 얻었는데, 어때요. "솔직히 노력 안하는 프로가 누가 있겠어요. 하이원컵이란 큰 대회에서 우승하니까 그런 별명이 붙었는데, 기분 나쁘지 않아요. 저한테만 붙여지는 별명이 아니니까요. 그 후엔 운으로 우승한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언제 골프를 시작했죠. 고비는 없었나요.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아빠(서용환·50) 따라서 골프연습장에 갔다가 취미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어요. 6학년 때는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시간도 뺏기고, 골프 때문에 아빠한테 혼나는 게 싫어서 채를 놓았던 적이 있어요. 그땐 아빠와 좀 멀어졌었습니다. 중학교 올라가 자연스럽게 다시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운동했죠." -2005년 여름에 프로에 입문했는데, 그동안 우승 기회는 없었나요. "2006년에 2번 3위를 했고요, 2007년에도 역시 3위를 두 번 한 게 최고였습니다. 3위는 몇번 했지만 특별히 우승 기회는 없었어요." -골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정규 투어 첫해, 2006년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주니어 땐 계속 중상위권에 머물렀고,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들어 프로에 와서 어느 정도 칠 줄 알았는데요. 첫 대회에서 컷탈락을 했습니다. 컷오프에 대한 두려움, 그걸 극복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소심하게 되고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러나 2006년 마무리 할때쯤 감이 왔고, 좀 과감하게 마음 먹기 시작했죠. -성격이 화끈한 편인가요. "원래는 소심했어요. 하지만 골프를 하면서 바뀌었어요. 특히 올해 전반기 끝나고 많은 게 바뀌었죠. 파퍼팅이 짧아서 안 들어가는 것 보다 과감히 쳐서 안 들어가는 게 속은 후련하잖아요."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얼마이며 장기는 뭔가요. "240야드 정도 나가요. 멀리 나갈 때는 260야드까지 나가는데, 지금은 체력이 떨어지면서 많이 줄었습니다. 예전엔 쇼트게임을 잘한다고 했는데, 요즘엔 아이언샷이 자신있어요." -내년 시즌에 대한 자신감과 부담감이 함께 있을 것 같네요. 앞으로 계획은 무엇이죠. "지금은 자신감이 더 큽니다. 동계훈련 기간 체력훈련을 착실히 하고요. 나중에 일본, 미국 무대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습니다." -신지애 프로와 겨뤄 이겨보고 싶지 않았나요. 내년엔 미국으로 가는데. "제가 6승을 하긴 했지만, 신프로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투어에서 경쟁할 날이, 머잖아 오지 않을까요." -남자친구는 있나요? 많은 남성팬들이 궁금해할 텐데. "그건 밝히기 곤란한데…."(웃음) -징크스나 좌우명이 있나요. "이모가 늘 강조하시는 말, '정신일도 하사불성'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고. 징크스는 경기 전에 장어를 안 먹는 것이었어요. 중학교 때 3번인가 장어를 먹고 그때마다 예선에서 탈락해서요. 이젠 그게 없어졌어요. 하이원컵에서 장어 먹고 우승했습니다." -서프로를 모델삼아 운동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한 번쯤은 정말 후회 없을 만큼 노력해 봤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결과도 좋아지고, 하늘은 노력하는 자에게 대답을 주시는 것 같아요. 노력은 하되, 너무 집착하지 않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서 프로에게 골프는 무엇인가요. "인생입니다. 한번도 골프 없는 인생은 생각해본 적이 없고요. 다른 걸 해도 골프가 먼저입니다. 인생이 끝날 때까지 인생을 즐기고 싶습니다."
(인물탐구)최경주① "타이거 우즈도 인정한 명품 눈매"
  • (인물탐구)최경주① "타이거 우즈도 인정한 명품 눈매"
  • [이데일리 이의철 논설위원] 최경주(39, 나이키)선수가 한국에 왔다. 최경주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PGA투어 자격을 얻은 골프선수다. PGA투어에서 지금까지 7승을 올렸고, 통산 상금만 1600만달러를 벌었다. 수천명의 일본 남자 프로골퍼들이 도전했지만 이루지 못한 성과다.&nbsp;그가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한국서 열리는 골프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게 아니다. ‘최경주 재단’ 일 때문이다. 최경주 재단은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최경주의 표현에 따르면 ‘기부와 나눔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만든 재단이다. 최 선수는 알려진 대로 골프계의 기부천사다. 이번 한국 방문길에는 최경주 선수가 기부한 1억원을 100만원씩 100명에게 나눠주고, 그 돈을 각자 기부하도록 기획한 ‘최경주와 100인의 천사’ 프로그램도 한 방송사(KBS)에서 제작됐다.최경주의 별명은 ‘탱크’다. 그도 좋아하는 별명이다. “앞으로 전진하는 이미지, 가볍지 않고 묵직한 이미지가 저와도 맞아요”. 최경주는 날카로운 눈매가 일품이다. 이런 눈매와 인상 때문에 ‘조폭’이라는 악플도 경험했다. 하지만 그런 눈매가 험한 PGA 무대에서 살아남은 힘이 된 것도 사실이다. “동반자들과 기싸움에서 밀리면 점수가 잘 나올 수 없거든요. 타이거 우즈와의 눈싸움에서도 지지 않습니다” 최경주는 전남 완도 출신이다. 원래는 역도선수였다. 고등학교 때 고향에 생긴 골프 연습장에서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았다. 그때는 골프를 아르바이트 정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96년 코리아 오픈에서 첫승을 올렸고, 99년 일본 골프투어에서 두차례 우승했다. 99년 미국 PGA투어 자격심사에서 35위에 올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PGA 투어 자격을 얻었다. 2002년 뉴올리언스 콤팩 클래식에서 PGA투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최경주는 PGA에선 ‘K.J. Choi'로 불리는 스타다. 실력 없으면 절대 인정 않는 미국 PGA 판에서 실력 하나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무척 겸손하다. 팬에게나, 스폰서에게나, 기자에게나 한결같다. 기부와 나눔에도 열심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인 김현정씨와 2남1녀의 자녀를 둔 모범적인 가장이기도 하다.최경주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하나 소개해야겠다. 2004년 미국 뉴욕주 시네콕 힐스라는 골프장에서 US오픈이 열렸다. 시네콕 힐즈는 골프다이제스트가 선정한 세계 골프장 순위 탑 10에 드는 유명 골프장이다. 사람 키 높이 갈대가 무성한 러프, 강한 바람 등으로 악명 높다. 기자는 당시 갤러리로 시네콕 힐스와 US오픈에 참가한 골퍼들을 구경한 일이 있다. 처음엔 주로 타이거 우즈를 따라 다녔는데, 이후 최경주로 바꿔 줄곧 그의 샷을 지켜봤다. 그 대회에서 최경주는 리더보드 상단에 이름을 올리진 못했다. 하지만 경기 끝나고 나오면서 그를 둘러싼 미국 팬들의 사인 요청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기자는 혹시나 해서 당시에 최경주 선수와 악수를 나눈 인연을 꺼내봤지만, 최 선수는 기억하지 못했다. 골프채 하나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최경주. 그 꿈을 기부와 나눔으로 되돌려주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최경주. 그를 만나봤다. -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는.“최경주 재단 일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최경주 재단이 만 1년을 맞았다. 마침 방송사에서 기획한 기부 행사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여러 행사에 참여했다”(최경주 선수는 이번에 한국에 일주일간 머물렀다. 인터뷰를 위해 최선수측과 접촉하다 보니 스케쥴이 분 단위로 조정되고 있었다. 최경주는 이번 한국방문 기간중에 육군 홍보대사 위촉을 비롯해, KBS 나눔의 기적-최경주와 100인의 천사, 체어맨 고객 골프 클리닉, 아시아나 항공 고객 초청 강연회 등 10여가지 일정을 소화했다, 편집자주)-재단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나."기부를 보다 효과적으로, 보다 잘 하기위해 만들었다. 재단이 앞으로 할 일은 많은데, 큰 줄기를 잡자면 아이들, 골프, 복지 등 세 부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꿈이다. 공부방이라든지, 복지관이라든지, 청소년들한테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시설이 있다. 또 골프교실을 통해서 나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말로만 하는 나눔보다 실제로 조금이라도 베푸는 나눔이 더 중요하다"-좋은 일 많이 한다. 최선수에게 기부란 어떤 의미인가.“기부는 내게 또 다른 충전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면, 더 도전적이 되고, 더 강해진다. 목표도 더 커진다. 지금껏 골프를 하면서 결코 나 혼자서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내 주위엔 팬들의 성원이 있었고,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고, 지인들의 믿음이 있었다. 기부는 내가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행위다. 국민들한테 지인들한테 교포들한테 분에 넘치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좋은 일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 많다. 최근 배우 문근영씨 악플 사건 아는가. 최선수도 악플 경험이 있나.“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악플에 그다지 연연해 하지 않는다. 일단 컴퓨터를 볼 시간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나도 악플의 경험은 있다. 언젠가 이런 글이 올라왔다 '네가 골프 선수냐? 조폭이지'.(웃음) 그런데 그 악플에 금방 ‘너나 잘해’라는 반박글도 올라오더라. 말하자면 나를 좋게 봐주는 우리편(?)이 올린 거다”-최선수 인상이 정말 매섭게 생긴 것은 사실이다.“간단치 않지.(웃음) PGA투어 같이 다니는 미국 선수들도 내 눈보고 무섭다고 할 정도니까. 그러나 사실은 부드러운 남자다”-이제 골프 얘기 좀 해보자. 올 시즌 초반 소니 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좀 부진했다.“초반에 1승을 올려 기분 좋았는데, 중간에 체중을 줄이면서 부상을 당했다. 엉덩이 부근 인대가 손상됐다. 이제는 거의 회복 단계다. 내년엔 다시 세계 랭킹 탑 10으로 올라가는 게 목표다” -시즌 중간에 체중을 줄이거나 스윙을 교정하는 일은 위험한 것 아닌가.“어차피 PGA 투어에서 4-5년 더 활동할 계획이고 그럴 바에야 빨리 하는 게 좋다. 체중을 줄인 것은 3-4년 앞을 내다 보고 한 일이다. 지금은 몸 상태가 아주 만족스럽다” (몸무게가 95kg이던 최경주는 10kg쯤 살을 빼 지금은 86kg이다, 편집자주)-올해 좀 아쉬웠던 부분은.“항상 그렇지만 숏게임이다. 9년을 PGA투어를 뛰면서 숏게임에 집중해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드라이버와 아이언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숏 게임의 귀재가 되지 않으면 메이저대회 우승이&nbsp;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인물탐구)최경주② "운동선수가 멋을 부리면 끝난 인생"
2008.11.25 I 이의철 기자
아시아나, 최경주 선수 강연회 개최
  • 아시아나, 최경주 선수 강연회 개최
  • [이데일리 정태선기자] 집념의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가 22일 아시아나클럽 우수회원을 대상으로 “집념의 한국인 최경주 선수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참석, 강연회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최경주 선수 본인이 완도의 평범한 소년에서 세계적인 골프선수가 되기까지의 인생역전 드라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100분여 동안 쉬지 않고 열정적인 강연을 펼쳤다. 유년시절의 기억과 우연히 골프에 입문한 동기,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의 수많은 위기와 시련들을 말할때는 세계적인 골프선수 최경주가 아닌 “인간 최경주”로서의 숨겨진 면을 여과없이 보여줘 감동적인 분위기를 이어갔다. 또한 타이거우즈 등 세계적인 골프스타와 경기 당시의 에피소드, 본인이 우승한 대회에 대한 생생한 스케치와 그 당시의 세세한 감정묘사까지 시종일관 청중들의 눈과 귀를 집중하게 했다. 그는 “벙커샷을 할 때는 항상 그린의 핀의 꼭대기를 목표로 스윙 하는 게 좋다”, “스윙을 할 때는 기계적인 스윙이 아닌 본능적인 스윙을 해라”, 한 홀 한 홀 마칠 때마다 “펼쳐졌다 바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스프링처럼 마음을 비우고 다음 홀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늘 비어있는 빈잔 처럼 마음을 비우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그날은 승리하는 날이라며” 골퍼로서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최선수는 강연 내내 꿈과 열정의 단어를 수없이 반복했다.&nbsp;&nbsp;그는 “어떠한 바람에도 꺽이지 않고, 스스로 강해지는 잡초처럼 꿈을 잃지 않고, 묵묵히 한 계단 한 계단 본인의 목표를 성취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과 같이 어려운 경제여건과 사회분위기에서도 꿈과 열정을 잃지 말고 살아가자고 독려했다. 강연이 끝난 후 대화의 시간에서 이번 강연회를 하게 된 동기를 묻는 질문에는, “대회가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만큼, 항공기의 기내는 이미 또 하나의 숙소이자 휴식처이다. 아시아나를 자주 이용하면서 편안한 서비스와 입맛에 맞는 기내식에 늘 만족해왔고, 감사했다”며 아시아나항공과의 특별한 인연도 언급했다. 대화의 시간 후 최경주 선수는 강연에 참가한 모든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격의 없는 짧은 대화를 나눴다. 경품시상에도 참가하고 본인이 직접 사인한 골프모자도 나누어 주며 행사를 마쳤다.
2008.11.23 I 정태선 기자
  • 구자경 명예회장, 골프 노익장..''에이지 슈트'' 기록
  • [이데일리 박호식기자] 구자경 LG명예회장이 최근 골프경기에서 '에이지 슈트’(Age Shoot)'를 기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해 화제다. 에이지 슈트란 18홀 골프경기에서 본인의 나이와 같거나 더 적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으로, 에이지 슈트를 기록한 사람을 ‘에이지 슈터(Age Shooter)’라고 부른다. 보통 70대 이상의 골퍼가 에이지 슈트를 기록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에이지 슈트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골퍼들에게는 꿈이자 희망으로 불리운다.1925년생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올해 84세로 지난 11일 경기도 곤지암 CC에서 능성 구씨 대종회 멤버들과 함께 한 골프경기에서 84타를 기록, 에이지 슈터가 됐다. 일주일에 1~2 회 지인들과 라운딩을 하면서 평소 90대 후반 타수를 치는 것으로 알려진 구 명예회장은 이날 특히 아이언샷이 좋아 파 8개를 기록하는 등 컨디션과 경기감각이 매우 좋았다는 것이 멤버들의 평이다.이날 구자경 명예회장이 사용했던 골프클럽은 최근 장남인 구본무 LG회장이 선물한 클럽세트여서, 더욱 기쁨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구본무 회장은 지난 1월 구자경 명예회장과 66년을 해로했던 모친인 하정임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계신 부친을 위해 더욱 정성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본무 회장은 지난 5월 구자경 명예회장의 84번째 생일을 직계가족들이 모두 모여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보여줄 수 있는 공휴일(어린이날)에 맞춰 치르기도 하는 등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간의 우애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 한편, 구자경 명예회장은 지난 199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1주일에 한번씩 대종회 멤버나 퇴직임원들과 라운딩을 하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평소에는 충남 천안에 있는 농장에서 버섯재배와 옛맛을 살린 된장, 청국장 제조에 심취하면서 자연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2008.11.13 I 박호식 기자
(CEO칼럼)조호연 CTC바이오 대표 "느리게 사는 지혜"
  • (CEO칼럼)조호연 CTC바이오 대표 "느리게 사는 지혜"
  • [이데일리 조호연 칼럼니스트] 흔히 한국인을 가리켜 냄비기질이 강하다고 이야기 한다. 빨리 끓고 빨리 식는 국민적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한 기질이 있었기에 우리는 역동적으로 살아왔다. 지구상에 대한민국 보다 빠르게 성장한 국가가 없었다. 반세기 전 최극빈국에서 지금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는 북경 올림픽에서 보았듯이 세계 7위의 스포츠 강국이기도 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서울 월드컵 4위 달성, 세계를 누비는 한류열풍의 시현 등 한국인의 질주 본능은 끝이 안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성장의 뒤켠에는 후유증이 남게 마련이다. 빈부격차의 심화, 계층간의 갈등, 자살율.이혼율.저출산율 공히 1위 등 명예롭지 못한 현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성장 위주의 성과주의는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를 누적시켜 왔다.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에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돈이 최고라는 의식이 만연하여 자동차가 얼마짜리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얼마냐로 통한다. 최근의 금융대란, 멜라민식품 파동 역시 황금 만능주의가 가져온 재앙이다.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상이변, 날로 심화되는 자연 재앙, 흉폭해지는 사회 등등. 이 모두가 인간의 성급함이 초래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빨리 빨리'는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행동지침이다. 골프 칠 때 공을 멀리 보낼 욕심에 스윙이 빨라지면 굿샷이 나오지 않는다. 실력 없는 회사원이 처세의 요령만으로 빠른 승진을 했다면 조직을 불행으로 이끌 수도 있다. 주식시장에서 빠른 매매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질병의 근원을 찾는 지속적인 노력보다 단칼에 환부를 도려내는 성급함으로 심신을 망가뜨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5분 빨리 가려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들 역시 조급증의 피해자들이다. 이제는 느리게 사는 지혜를 익힐 때이다. 느림은 게으름을 지칭하지 않는다.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인생을 바로 보자는 의미이다. 일찍이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라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가끔은 뒤도 돌아봐야 한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남도 배려하고, 자연의 작은 움직임에도 삶의 환희를 느낄 줄 아는 여유를 갖아야 한다. 또한, 자연과나를 하나로 보는 균형감각과 서둘지 않는 평점심이 필요하다. 요즈음 같이 경제상황이 안 좋고 앞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조호연 대표 <약력>서울대 축산학과 졸업동방유량㈜ 근무(1984~1991)㈜서울신약 근무(1991~1993)세축상사 설립(1993)현 ㈜씨티씨바이오 대표이사(1996~)㈜씨티씨바이오 1993년 회사설립(세축상사)2000년 ㈜CTC바이오로 사명 변경 2001년 벤처평가 우수기업인증 2002년 코스닥(KOSDAQ) 등록
2008.11.06 I 임종윤 기자
  • 잭 니클라우스 "좋은 골프장은 자꾸 도전하고 싶은 생각 드는 곳"
  • [조선일보 제공] "165야드 거리 파 3홀이라면 난이도를 더 높여야 돼. 그린 경사도와 벙커의 위치를 조절해 정확성을 갖춘 골퍼들만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3일 인천 송도 국제업무단지 내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18홀·7300야드) 건설 현장. 92만㎡의 벌판에 티 박스와 그린 등의 위치를 나타내는 54개의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깃발이 강한 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이고 있었다. 현역 시절 최고의 골퍼였고, 지금은 코스 디자이너로 세계적 명성을 갖춘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68)가 메모지에 다양한 홀의 형태를 그려가며 스태프들과 논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내년 8월 1차 개장을 목표로 송도에 건설 중인 이 골프장은 니클라우스가 전세계 25 개 골프장에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기로 하고 직접 설계한 골프장 가운데 하나다.니클라우스에게 너무 어렵게 만들면 일반 골퍼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평이한 골프장에서 친 골퍼들은 라운드를 마친 뒤, '아주 좋았어, 이 골프장은 이제 됐고, 내일은 어느 골프장으로 가서 칠까'라고 말한다"며 웃었다. 좋은 골프장이란 "참 재미있는 골프장이네, 내일은 다른 방법으로 다시 도전해 봐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니클라우스는 전성기 시절이던 1969년부터 골프 코스 디자이너로서 '부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제 샷의 탄도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홀들을 반복해서 만들었어요."하지만 승부 근성이 강한 그는 골프 코스 건설에서도 곧 세계 정상급 대열에 올랐다. '아름답고' '전략적이고' '창조적인' 디자인을 모토로 내건 니클라우스가 지금까지 설계한 코스는 32개국 269곳. 이 가운데 87개 코스에서 프로대회가 열렸다. 미국 골프 전문지 '골프 인크(Golf Inc.)'는 니클라우스를 5년 연속 가장 영향력 있는 골프계 인물로 꼽았다.그가 꼽는 최고의 골프장은 어디일까. "한번 라운드하고 싶은 곳이라면 아름다운 페블비치죠. 경기를 하고 싶은 곳은 분위기와 전통이 있는 오거스타 내셔널과 세인트앤드루스고요. 가장 독창적인 곳은 나무로만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낸 파인허스트 2번 코스를, 가장 어려운 코스로는 스코틀랜드의 커누스티를 꼽겠습니다."니클라우스에게 주말 골퍼들을 위한 팁을 부탁했다. 그는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 수준에 맞는 골프를 하는 게 중요하다"며 "코스를 만들 때 보기 플레이어가 보기를 목표로 치면 파를 할 수도 있지만, 파를 노리면 더블보기를 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3일 오전 7시 자신의 전용기로 인천에 도착한 니클라우스는 4일 오전 7시 중국 베이징에 건설 중인 골프 코스 자문을 위해 떠난다. 그는 지난해 550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냈다.잭 니클라우스(68)▲1940년 미국 오하이오주 출생.▲1961년 프로 데뷔 후 미 PGA투어 통산 73승. 메이저 대회 18승은 역대 최다 기록. ▲1969년 이후 전 세계 32개국에 269개 골프 코스 디자인. ▲골프 교본서의 고전으로 통하는 '골프 나의 인생(Golf My Way)' 등 저술.
(인물탐구)박세리② "슬럼프 겪으면서 내가 누군지 알게됐다"
  • (인물탐구)박세리② "슬럼프 겪으면서 내가 누군지 알게됐다"
  • [이데일리 이의철 논설위원] <박세리 인터뷰 1편에서 계속됩니다>-한동안 심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지금은 다 극복한 것인가.“그렇다. 하지만 계속해서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음식도 먹어봐야 맛을 알 듯, 슬럼프도 겪어봐야 안다. 그게 무언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까만 종이에 글을 쓰는 것 같다고 할까. 아무리 글을 써봐야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지. 수수께끼 같기도 한데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서게 된다. 사실 슬럼프 겪으면서 많이 배운다. 몰랐던 것 배우고 성장하게 된다”-박 선수는 슬럼프를 통해 무얼 배웠나.“그동안 내가 무엇을 필요로 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또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됐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오다 보니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선 몰랐다. 내가 성취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지도 몰랐고, 주변에 대해서 감사할 줄로 몰랐는데 그런 것들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정상에 있다가 내려오면 정신적으로 힘들어지지 않나.“내가 누구다 라는 걸 생각 안하면 된다. 세계 정상에 있던 박세리라는 이름을 스스로는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일반인들이랑 똑같이 밥먹고 잠자고 생활하지 않나. 다만 직업만 프로 골퍼로 다를 뿐이다.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골프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골프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영광의 시절은 순간이고 짧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정상의 순간은 짧다. 그럴 수밖에 없다. 뛰어난 후배들이 자꾸 나오니까. 그럴 때 과거에 갇혀 있으면 진전이 없다. 휴대폰도 그렇지만 사람도 충전해야만 다시 쓸 수 있다. 나나 후배들이나 좀 더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승부욕마저 버리면 안된다. 즐기되 승부욕을 잃지 않는 것, 말해 놓고 보니까 참 어려운 일이다(웃음)”-LPGA 명예의 전당에 최연소로 입성했다. 그것은 박 선수에게 어떤 의미인가.“나의 필생의 꿈이었다. 골프를 시작할 때 아버지가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며 명예의 전당을 말씀하셨다. 사실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큰 꿈이었다. 결국엔 목표를 달성했다.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차고 보람된 일이었다. 그동안의 모든 고생이 다 잊혀질 정도의 기쁨이었다. 내 가슴 한쪽에선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꿈을 이루고 나니 공허하지 않던가. 꿈을 이루었으니 목표가 없어진 것 아닌가.“그렇진 않다. 욕심엔 끝이 없다. 목표도 그렇다. 목표는 항상 바뀐다. 사실 못해본 것도 많다. 그랜드슬램도 그렇고 올해의 최고선수상도 못타봤고...”-인생에서의 꿈은 무엇인가.“소박하다. 어렵지 않다. 결혼해서 가정 갖고 행복하게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이다”-결혼하면 골프 선수생활 접나.“그건 잘 모르겠다. 골프를 너무 좋아하니. 지금 마음 같아선 선수생활을 접을 것 같지는 않다”-남자 친구 있나.“남자 친구 있다. 그런데 말 그대로 남자 친구일 뿐이다. 결혼은 또 다른 문제고. 사람과의 인연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박세리 선수로 하여금 끊임 없이 도전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은 무언가.“골프 그 자체다. 골프는 끝이 없다.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느낀 순간 또 다시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다시 도전하게끔 만든다”-박세리 선수에게 골프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골프는 도전이다”-본인은 천재형인가 노력형인가.“완전히 노력형이다. 욕심도 많고. 물론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노력이 90% 이상이다”-박 선수를 얘기할 때 아버지 박준철씨를 빼고 얘기하기 힘들다.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내게는 아빠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자, 코치다. 1인 다역을 하신 거지. 아빠가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다. 엄마보다 아빠랑 더 친하다. 이 말을 들으면 엄마가 섭섭해 하실텐데.(웃음) 그렇지만 아빠랑 시간을 더 많이 보냈으니까. 물론 혹독하게 연습시킬 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뒤에서 힘이 많이 돼주셨다” -미국 생활이 외롭지 않나“그게 미국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이다. 투어의 본질은 떠돌이 생활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어려움 중 외로움이 가장 크다”-보통 쉴 때엔 뭘 하는가. 취미생활은 있나.“쉴 때는 하루종일 집에 있게 된다. 힘드니까. 취미는 집 청소와 음식 만드는 것. 한국에 오면 스노보드 타러 다니고. 미국에선 올랜도에 있는 데 한국 선수들 집이 대부분 가까운 데 모여 있다. 서로 집도 자주 방문하고 친하게 지낸다. 내 집은 완전 오픈 하우스다. 후배들이 찾아와 자기들이 알아서 밥 해먹고 설거지까지 해놓고 간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나보다 더 잘 안다” -선수들끼리 무슨 얘기 많이 하는가, “처지가 비슷하니까 아무래도 공감 가는 얘기들이 많다. 공통적인 고민은 여유 있는 시간이 적다는 것이다. 짐싸서 미국 이곳 저곳을 다니는 게 힘들다. 대부분 비슷한 감정이다”-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을 위해서 질문 하나 하자. 골프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나.“티샷이다. 개인적으로 드라이버 티샷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티샷이 좋아야 버디를 할 수 있고, 점수를 줄일 수 있다. 프로선수나 아마추어나 마찬가지다. 단 멀리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정확히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골프선수가 안됐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글쎄. 사업가, 비즈니스우먼? 그런데 관심이 많다. 자질도 좀 있는 것 같고(웃음)”&nbsp;-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한국의 골프 유망주들 키우고 싶다. 골프 아카데미 같은 것 만들고 싶다. 체계적으로 유망주들을 교육시키는 시스템은 꼭 있어야 한다. 말 그대로 박세리 키즈를 키우는 것이다. 내가 선수생활을 해보았기 때문에 선수들 입장에서 볼 수 있고, 전해줄 것이 있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 모두를 전수해주고 싶다. 선수들의 가려운 점을 아니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박세리 선수는 공동묘지에서 담력 훈련 했다는 말은 100%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기자들이 지어낸 말일 듯 싶다. “세상에 그렇게 훈련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정색을 하고 반문했다. 그런 말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후배 골프선수들이 그런 얘기를 듣고 실제로 그렇게 훈련했다는 점이다. “(신)지애가 내 기사를 읽고 정말로 공동묘지가서 훈련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웃었어요”-그럼 어떤 훈련을 했나.“아빠가 배짱을 키우기 위해 내기를 시킨 것은 사실이다. 큰 돈을 걸고 내기 했는 데 지는 게 싫어서 악착같이 했다. 그런 게 승부욕을 자극했던 것 같다”-한국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조기 골프 교육 시키는 게 유행인데, 어떻게 생각하나.“무엇보다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다. 골프를 하면 돈도 벌고. 성공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 힘든 과정이다. 자녀들의 적성에 맞다면 시도해보는 것 나쁘지 않겠지만, 화려한 결과나 겉모습만 보고 달려드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 과정의 어려움을 몰라서 하는 착각이다”▶ 관련기사 ◀☞(인물탐구)박세리① "골프 어렵다. 그럴수록 여유를 가져야 된다"
2008.11.03 I 이의철 기자
(인물탐구)박세리① "골프 어렵다. 그럴수록 여유 가져야 된다"
  • (인물탐구)박세리① "골프 어렵다. 그럴수록 여유 가져야 된다"
  • [이데일리 이의철 논설위원] 경제가 참 어렵다. 10년전 외환위기 때 만큼이나 힘들다는 사람들도 많다. 10년전 외환위기를 겪던 한가운데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nbsp;신선한 충격을 준 인물이 있다. 박세리(31). 여자 골프선수다.98년 US여자 오픈에서의 명승부는 지금도 한국 국민들의 잔상에 남아있다. 박세리는 그 대회에서 태국의 추아시리 폰과 연장까지 가는 대접전을 펼쳤다. 그리고 연장전 첫 홀인 18번홀에서 해저드 기슭에 있던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 멋진 샷을 날렸고, 결국 우승컵을 쥐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던 국민들에게 묘한 감정이입을 주었다.박세리. 충남 공주 출신.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98년 미국 LPGA투어에 참가. 데뷔 첫해 맥도널드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 2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한국이 수출한 최고의 상품”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현재까지 LPGA 통산 24승, 이중 메이저 우승이 5회. 2007년 마침내 LPGA 명예의 전당에 역대 23번째(선수 출신)이자, 최연소로 입성했다.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권에선 최초다. 더 이상 어떤 프로필이 필요할까. 박세리는 한국 여자 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화려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세리는 극심한 슬럼프도 겪었다. 묘하게도 슬럼프는 일생의 목표였던 명예의 전당 헌액이 사실상 확정된 이후부터 찾아왔다. 상금랭킹이 100위대로 미끌어지면서 “박세리는 끝났다”는 수군거림도 있었고, 80대타수를 기록했을 땐 “주말 골퍼”라는 비아냥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2006년 LPGA 데뷔 첫해 우승대회였던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다시&nbsp;우승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해도 1승을 추가했다. 슬럼프를 겪으면서 아버지와의 불화설, 성형설 등으로 마음고생을 더했지만 박세리는 “이제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웃을 수 있다”고 말한다.박세리 선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었다. 아끼는&nbsp;후배 덕택에 어렵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스카이 72 골프클럽을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가본 것은 처음이다. 박세리는 스카이 72골프클럽 오션코스(파 72, 6490야드)에서 열리는 LPGA투어 2008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골프장에 도착해서도 2시간을 기다려서야 박세리를 만날 수 있었다. 박 선수가 연습 라운드중이기 때문에 중간에 방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클럽 하우스에서 폴라 크리머, 모건 프리셀을 비롯해, 신지애 김미현 이선화 이미나 등 국내외 유명 여성 골퍼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박세리가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지난 10년간 세계 골프계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이루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슬럼프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 예전과는 다르지만 또 같은 박세리로 섰기 때문이다. 박세리는 강인하지만 부드러운 여자다. 인터뷰 중간 중간 한 성격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농담도 잘하고 시집가고 싶다고 애교를 떨 줄도 알았다. 만화에서 ‘세리 공주’는 지팡이 하나로 무엇이든 이루어낸다. 현실에서의 ‘세리 공주’는 어떨까. 이제 ‘세리’의 마술 같은 골프와 인생의 세계로 들어가보자.-반갑다. 오랜만에 보니 예뻐진 것 같다.“아닌데.... 옛날이랑 똑같다. 저를 처음 보신 분들이 화면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보이니까(박세리는 실물이 훨씬 예쁘다, 편집자주) 턱을 깍았느니 얼굴을 고쳤느니 뒷말이 나온다. 그래서 예뻐졌다는 얘길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웃음)”-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는.“스카이72에서 열리는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대회 끝나면 다시 미국으로 간다. 한달 정도 가족들과 함께 시간 보낼 계획이고 이제 투어는 거의 끝났으니 동계 훈련 시작해야 한다”-스카이72 오션 코스가 익숙한 곳인가.“그렇지는 않다. 라운드는 한번 해본 적 있다. 연습라운드 해보니 골프장 컨디션도 좋고 그린 상태도 최상급이다. 스카이72 김영재 사장님이 골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다. 또 나에게뿐만 아니라 한국 골프계에 대단히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이다. 그런 인연으로 골프장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박세리와의 만남은 대회가 열리기 전 이루어졌다. 10년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을 때처럼 지금도 한국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켰더니 “더 잘쳐야 겠네요”라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박세리는 이번 대회 3라운드 합계 이븐파 216타로 공동 17위에 올랐다. 우승은 6언더파를 친 대만의 캔디 쿵이 차지했다, 편집자주)-지금도 기억난다. 98년 유에스 오픈 결승전 연장전 승부에서 양말 벗고 해저드에 들어가서 샷을 하던 장면. “그 얘기 해주시는 분들 아직도 많다. 우연찮게 그 때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 장면이 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것 같다. 그래서 더 기억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다”-지금 한국경제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어렵다. 이번에 좋은 성적 내면 좋겠다.“한국경제가 어려워 나도 안타깝다. 우연이지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올해가 LPGA 데뷔 10년차다.“벌써 그렇게 됐다. 98년 루키로 나갔으니까 올해로 꼭 데뷔 10년차다”-그동안 박 선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나. 소위 말하는 박세리 키즈가 지금 LPGA를 휘젓고 있다. 후배들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박세리 키즈란 박세리 선수가 US오픈 타이틀을 거머쥘 무렵인 98년을 전후로 박세리를 롤 모델로 골프채를 잡은 한국의 여자골프 유망주들을 말한다, 편집자주)“너무도 뿌듯하다. 후배들을 보면서 대단히 자랑스럽고 든든하다. 한국 여자 골프가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기분 좋다. 후배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그대로만 해주면 좋겠다. 너무 잘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어린 선수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던데.“선수들 자신은 그렇게 생각 안한다. 약간 아쉬운 게 있다면 20대 초반 나이에 그 또래들만의 추억을 갖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아닌가.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되는 거다”-후배들과는 주로 어떤 얘기를 하는가.“골프는 철저한 개인 운동이다. 또 정신력이 크게 좌우한다. LPGA 투어는 체력적으로도 대단히 힘들다. 자신과의 싸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후배들한테 ‘열심히는 하되, 짬을 내서 즐기라’고 충고해준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 나도 못한 부분인데, 외국선수들과 비교해보면 한국선수들은 그런 점에서 확실히 떨어진다”<박세리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2008.11.03 I 이의철 기자
개그맨 오지헌, '개그야'서 웨딩사진 최초 공개
  • 개그맨 오지헌, '개그야'서 웨딩사진 최초 공개
  • ▲ 개그맨 오지헌[이데일리 SPN 박미애기자] 개그맨 오지헌이 방송을 통해 웨딩사진을 최초 공개했다. 오지헌은 22일 방송된 MBC '개그야'의 '리얼개그 진짜야' 코너에서 최근 촬영한 5장의 웨딩사진을 공개했다. 박준형은 주인공을 대신해 웨딩사진을 공개하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예비신부의 직업이 사회복지사다. 진짜로 자신의 인생에서 사회복지를 실천했다"고 말해 웃음꽃을 피웠다. 또 박준형은 오지헌의 얼굴이 소품에 가린 사진에 대해 "사진작가가 베스트 샷으로 꼽은 것"이라며 "웨딩사진을 '개그야'에서 최초로 공개한 오지헌과 피앙세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오지헌은 8월30일 1살 연하의 여자친구와 결혼한다. 사회는 박준형과 정종철이 맡고 축가는 가수 별과 연예인 기독교 공동체인 미제이가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 이적효과?..'개그야' 3주 연속 '웃찾사' 제압☞'개그야' 이적 오지헌 "'개콘' 안전하지만 친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파"☞오지헌 결혼발표, "신혼 이수근 김시덕 부부와 모여 살아요"☞'8월 결혼' 오지헌, "박준형-정종철 공동사회, 반기독교식 웨딩"☞개그맨 오지헌 8월30일 결혼...“행복하기 그지없다”
2008.08.23 I 박미애 기자
 18홀 인생에 관한 단상
  • [독자 기고] 18홀 인생에 관한 단상
  • ▲ 자일스 모건&nbsp;[자일스 모건(Giles Morgan), HSBC 스폰서십 그룹 총괄 담당자] "사람들은 곧잘 골프를 인생에 비유한다. 인생에서 우리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계획과 전략을 수립한다. 그러나 정작 다양한 변수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가 일쑤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동일한 클럽과 공으로 수많은 반복 연습을 통해 경기에 임해 보지만 샷의 방향이나 결과가 같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박세리 선수가 최근 2008 HSBC 위민스 챔피언스(Women's Champions) 대회 참가 의사를 밝히며 가졌던 기자회견 내용이다. 상식적으로도 장시간 동안 기나긴 18홀의 경기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마라톤 못지않은 인내심과 끈기가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주위에 널린 웅덩이와 나무, 벌레와 같은 장애물에 좋지 않은 날씨까지 겹치면 고도의 집중력과 의지는 필수 조건이다. 그래서 어떤 선수는 골프대회를 끝낼 때마다 마치 긴 삶의 터널을 빠져 나온 것처럼 심적, 육체적으로 나이를 먹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골프와 우리네 인생은 많이 닮아 있다. 자기 이해와 통제력 골프 전문가들은 골프 초보자들에게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좋은 그립(grip)과 자세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클럽의 특성을 잘 파악해 자기에 신체에 맞는 적절한 클럽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빈틈없이 두 손에 감기면서도 편안하게 클럽을 통제할 수 있는 요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클럽에 대한 확실한 이해 없이는 제대로 된 그립도 나올 수 없다. 마치 단추를 잘 못 끼우는 것과 동일하다. 인생에서도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기 이해는 인생의 근간이며 통제력의 부족은 미숙한 행동을 유발하고 잦은 실수를 반복시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균형 삶에 있어 균형은 업무나 인간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한 곳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숲을 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편견과 선입견은 지양해야 할 점이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골프는 유난히 균형이 중요하다. 호두 크기의 작은 공을 쳐서 정확한 위치로 보내기 위해서는 두 발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게 중심이 흔들려,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 힘의 균형도 깨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역시 균형이 깨어지게 되면 결국 길까지 잃고 만다. 장애물 '비, 바람, 나무, 곤충, 여러 벙커, 깊은 풀 숲, 동물의 울음소리…' 이 모든 것들이 골프의 장애물이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스포츠이다 보니 작은 소리 하나로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다. 인생에서도 장애물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은 극복해야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때로는 반대로 해당 위험요소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거나 개인적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윙(Swing) 자신감 있는 스윙기술은 골프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다. 흔들림 없으면서도 강한 스윙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자신감 있는 추진력은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윙은 클럽으로 공을 치고 공이 날아가는 중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그리고 골퍼는 잠시 동안 스윙 자세를 유지하고 공이 그려낸 포물선을 주시한다. 공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원래의 자세로 돌아온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제 때에 박력 있게 클럽을 휘두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끝까지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된다. 계약서의 서명으로 일이 끝난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홀인원 홀인원과 같은 성공은 골프는 물론 일상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출세나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계획, 인내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골프 선수들은 홀인원을 치기 위해선 행운이 따라주어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행운의 빛도 기나긴 어둠의 동굴을 지나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최근 HSBC은행은 홍콩, 대만, 싱가포르, 한국 및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의 1,500명 이상의 골퍼 및 비(非) 골퍼를 대상으로 실시한 '골프 팩터 (Golf Factor)' 조사에서 재미있는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 중 80%가 골프가 직장 상사 및 동료와의 관계를 보다 친밀하게 만들어 주며 68%는 실제 사업상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이제 골프가 특수 계층만이 향유하는 스포츠가 아닌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의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골프 시즌이 다가가오고 있다. 2월 말 싱가포르에서 HSBC 위민스 챔피언스(Women's Champions) 대회를 필두로 다양한 골프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번 기회에 '18홀 인생'의 깊은 의미를 한번 되새겨보는 것도 색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2008.02.27 I 김삼우 기자
트로트 가수 이프로 "노래도 연기도 잘하는 비가 가장 부러워"
  • 트로트 가수 이프로 "노래도 연기도 잘하는 비가 가장 부러워"
  • ▲ 가수 이프로[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멀티 플레이어로서 비가 가장 부러워” 8월의 마지막 날 오후, 반짝이 재킷에 노란 나비넥타이, 골프 클럽까지 손에 쥔 사나이가 사무실로 성큼 성큼 들어왔다. 단번에 사무실 내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 이는 9월 초 퓨전트로트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가수 이프로였다. “예명은 왜 ‘이프로’예요?”라고 묻자 서슴없이 답변이 이어졌다. &nbsp;“얼마 전에 골프 세미프로 자격을 땄기 때문에 ‘이프로’이기도 하고, 지금은 2% 부족하게 시작하지만 서서히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겠다는 의미도 있어요. 같은 이름의 음료 CF를 노린 것도 있고요.(웃음)” 이프로가 선보일 타이틀 곡은 ‘오빠 말은 뻥이야’다. 차림새만큼이나 노래 제목도, 가사도 독특하다. ‘핸드폰만 몇 개 가진 남자 얼핏 보면 사업하는 핑계, 술에 푹 빠져서 사는 그런 남자 가장 흔한 비즈니스 핑계…’라는 가사에는 화려한 겉모습에&nbsp;속지 말고 남자를 현명하게 바라보라는 여자에게 건내는 충고의 뜻이 담겼다고&nbsp;한다. ‘화려함’이라는 비주얼 컨셉에 맞춰 골프 클럽을 들고 일명 ‘골프춤’을 선보일 예정이지만 단순히 스윙 흉내만 내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몇 달 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준회원(세미프로) 자격을 따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연예인 프로 골퍼 1호가 되고 싶다는 그는 “언젠가는 최경주 씨와 샷 대결을 해보고 싶다”고 큰 꿈도 말했다. ▲ 가수 이프로세미프로도 되고 앨범까지 낸 올해가 인생 중 가장 보람된 한 해라는 그는 “백댄서에서 가수의 꿈을 이루고 연기자로도 인정받는&nbsp;비가 가장 부럽다”며 “가수로 자리를 잡으면 연기에도 다시 도전해 나도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앨범이 가수로는 첫 도전이지만 사실 그는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 단역으로 시작해 ‘황금 사과’,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등에도 출연했고 하리수와 장윤정의 뮤직비디오 등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스무살에 혈혈단신 고향인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어렵사리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일거리가 없어 ‘돌아버릴’ 지경일 때도 있었다. 자신의 끼를 주체하지 못했던 그는 실력도 검증할 겸 매니저 몰래 ‘전국 노래 자랑’에 나가 관객을 휘어잡는 무대 매너로 1등을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대에 서길 간절히 꿈꿨다. &nbsp;드디어 가수의 꿈을 이룬 그는 “나훈아 선배님의 카리스마 있는 무대 매너를 닮고 싶다”면서 “세대와 장소를 뛰어 넘어 사랑 받는 트로트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사진=김정욱 기자)&nbsp;&nbsp;▶ 주요기사 ◀☞김남일-김보민 결혼 공식발표 "변장한 게 더 티났다"☞'무한도전'의 힘! 하하 '키 작은 꼬마 이야기' 가요차트서 선전☞['이산' 맛보기]이서진 "임자 있는 몸...여배우들에 잘해줘도 걱정 없어"☞탁재훈 "4년간 슬럼프...고민 많았죠"☞장윤정, 데뷔 4년 만에 단독 추석 특집쇼 연다&nbsp;
2007.09.04 I 유숙 기자
(CEO칼럼)조영광 대표,  ‘성공경영의 홀인원’
  • (CEO칼럼)조영광 대표, ‘성공경영의 홀인원’
  • [엠피씨 조영광 대표] “나는 하루 중 98%는 내가 하는 일에 긍정적이다. 그리고 나머지 2%는 어떻게 하면 매사에 긍정적이 될 수 있을까 궁리한다” 미국의 유명한 농구팀 보스턴셀틱스의 감독인 릭 피티노는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 이와 같이 이야기 했다. 물론 그의 말처럼 하루의 100%를 긍정의 바다에 빠져 행복한 기분으로 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nbsp;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는 내 앞의 어떤 변화와 난관을 마주했을 때, 그 시련 너머의 긍정적인 면을 확신하고 극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실패’라는 위기에 부딪힌다면, 내게 닥친 이 어려운 상황을 비관하며 당황하거나 외면하고 도망치기 일쑤일 것이다.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불리우는 골프 경기에서도 긍정적 사고가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세계적인 골퍼이건, 주말 골퍼이건 간에 결정적인 샷을 할 때는 누구든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뒷땅을 치면 큰일인데’, ‘토핑을 해서 OB라도 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생각들에 따라 실제 결과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통계에 따르면 이런 실수들은 오히려 결정적인 찬스 때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즉, 이는 좋은 기회를 망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사고’ 들이 이미 갖춰진 스윙의 기본 조차 흔들리게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스윙을 했을 때,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비단 골프 뿐이 아니다. 세계의 저명한 사업가들은 한결같이 실수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 성공의 밑바탕에 깔린 공통점은 바로 “잘 될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모든 일에 신중하자. 하지만 만일의 실수에도 길은 있다” 라는 긍정적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만사에 임했다는 점이다. 플러스 발상, 즉 긍정적 사고를 갖자. 낙관적인 사고를 지닌 경영자에게 ‘곤경’은 자신과 회사를 성장하게 하는 좋은 기회이며, 성공 경영을 실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발판일 뿐이기 때문이다. &nbsp;조영광 사장 <약력>서울 대학교 경영학 학사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원 MBA 석사前 (주) 세창유통 대표이사한국텔레마케팅협회 부회장現 (주) 엠.피.씨 대표이사 사장(주)엠.피.씨 1991 법인 설립1992 국내최초 고객센터 기반 CRM 패키지 솔루션 출시 1996 자체 고객센터 설립 및 고객센터 운영대행 서비스 시작2005 코스닥 상장2006 2006 글로벌 조인트벤처 MPCTI 설립&nbsp;
2007.02.07 I 임종윤 기자
(CEO 칼럼)"프로가 필요한 세상, 프로가 되자"
  • (CEO 칼럼)"프로가 필요한 세상, 프로가 되자"
  • [지오텔 이종민 대표]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CEO가 말하는 것처럼 필자도 ‘인재(人材)’라고 꼽겠다. 현대사회에서 최고 경영자는 단지 인재를 데려오고, 관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인재인지, 옥석을 가리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기업 문화와 CEO의 경영 철학(때로는 인생경험)에 따라서 달라지는 듯하다. 필자가 추구하는 프로페셔널한 인재는 자신의 지식을 수치로 정확하게 표현, 즉 정량화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영국의 학자 캘빈 경은 지식이란 측정할 수 있고,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기준에 의하면 측량할 수 없고, 수치로 표현하지 못할 때 그 지식은 빈약하고, 불만족스러운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다. 캘빈경이 말한 지식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례 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게 찾을 수 있다. 필자는 고대 우리 민족의 빛나는 역사를 전해주는 '광개토대왕비문'을 보고 그 정밀함에 놀란 적이 있다. 정치가 혼란한 시대 많은 왕릉들의 비문은 화려한 미사여구와 고매한 표현으로 선왕을 기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대왕의 비문은 등극 이후 당시의 국제 정세, 정벌과 치세의 기록을 연도별로 각 지명과 부족명, 군사의 수 등을 바탕으로 총 44행 1755문자에 걸쳐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8년 무술, 편사를 파견하여 백신토곡을 정찰하고, 막사라성과 가태라곡을 정복하고 남녀 800명을 잡았다. ~(중략) 이때 태왕의 은덕에 감격하여 따라온 자가 있는데, 매구루압로, 숙사사압로 등 이다. 모두 64성과 1400개의 촌락을 공파하였다” 이렇듯 병력의 수, 노획장비의 수, 침공하여 멸한 성의 수와 장비들 등 대왕의 치적에 대하여 매우 상세히 정량화 하여 기술해 놓고 있다. 광개토대왕릉비문에서 보듯이 우리에게도 사실적이요 실용적이며 계량화된 시대정신이 지배했던 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문에 새겨져 철저하게 정량화된 기록이 광개토대왕의 위대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아닌, 정밀한 실사구시의 정신이 고대 우리 민족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거중기와 수원성 축조에서 실용적인 탐구와 노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중기는 역사적으로 강국이었음을 증명하는 장비이다. 8개의 도르래를 사용하여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올리는가 하면 커다랗고 무거운 돌을 적당한 높이까지 들어올려 더욱 큰 힘을 쓰게 했던 것이다. 이는 공기(工期)의 단축이라는 과학성도 중요하지만 작업자의 안전도에서도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인생의 황금기 15년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 중 남긴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 는 무엇으로 그 탁월함을 인정받는가? 이 책은 총 226개의 표제 항목으로 분류한 각종 수산 동식물들의 명칭, 분포, 형태, 습성 및 이용법 등에 대한 매우 방대하고도 엄밀한 사실적 기록을 담고 있다. 중국의 문헌을 정리하고 고증하는 종래의 저술 방식을 극복, 해양 생물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만지고, 심지어 해부까지 해서 얻은 놀라운 성과물이다. 이를테면 50개가 넘는 청어의 척추 뼈를 일일이 세어 맞춘 그의 집요한 과학에는 현대 생물학자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민중을 사랑했던 선비의 마음, 학문에 대한 열정, 지식인의 양심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바다가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현대사회, 특히 IT산업에서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변화의 폭은 훨씬 커지고 있다. 첨단 기술과 선도 제품의 라이프사이클도 2~3년을 넘지 못한다.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남들 보다 반박자라도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량적 사고와 실사구시적 행동 양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밀하게 수치화된 목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밀하고 꼼꼼하게 계측하고 정량화하는데 무척 게으르다. 소프트웨어 개발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 개발도 결과 중심의 사고로는 소프트웨어 방법론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소프트웨어 방법론이 모두 서구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소프트웨어 선진국 직원과 함께 일을 해 보면 짜증날 정도의 세밀한 스케줄링과 계량화의 능력을 지켜봤을 것이다. 끝으로, 인재의 조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조직에 대한 태도이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인성과 능력만을 놓고 볼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능력과 개인적인 자질은 탁월하지만, 조직을 위해서는 자기 능력의 10%도 발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에 비해 개인적 능력은 전자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조직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의 90%, 그리고 100%를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인재는 별개의 개인이 아닌 조직 속에서 존재로 평가 받고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필자가 선호하고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조직 속에서 자기 잠재 능력의 90%이상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물론, 이 말은 조직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제 자신 뿐만 아니라 조직에 눈을 돌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조직을 통해서 협업하여 극복해나가는 자세, 그리고 자신의 꿈을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함께 일구어가는 자세, 그렇게 개인이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행복해지고자 하는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비결도 바로 이러한 프로정신에 충만한 인재들이 회사의 기둥이 되어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프로는 운동선수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지식산업사회의 프로는 계량화된 지식으로 실용적인 탐구와 노력을 투자한다. 그들만의 고유한 기법이 반드시 존재하며 항시 정량화된 그리고 계량화하는 지식을 가꾸는 방법을 안다. 엊그제 지오텔은 필기시험을 통해 신입사원 공채를 시작했다. 새롭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들을 멋진 프로로 키워내는 것 또한 지오텔과 필자의 몫이다. 이종민 대표 <약력>서울시립대학교 및 동대학원 GIS전공 졸업 쌍용정보통신㈜ 근무인천국제공항공사 근무㈜지오텔 대표이사 (현재)㈜지오텔 2000년 1월 주식회사 지오텔 설립 2003년 6월 MSN모바일서비스 세계 최초 상용화 성공 2003년 10월 한국 표준무선인터넷 플랫폼(WIPI) 상용화 성공2005년 8월 메시징허브플랫폼 `쿨샷` 상용화 성공, 벤 처기업상 수상2006년 8월 코스닥 상장&nbsp;&nbsp;&nbsp;&nbsp;&nbsp;&nbsp;10월 벤처기업대상 국무총리상 수상,&nbsp;&nbsp;&nbsp;&nbsp;&nbsp;&nbsp;11월 모바일기술대상 정통부장관상 수상
2006.11.29 I 임종윤 기자
  • 노대통령 "한국엔 어머니는 없고 아이만 있다"
  • [이데일리 박기수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4일 오전 방한 중인 미국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 선수와 어머니 김영희(58)씨를 청와대로 초청, 오찬자리에서 "우리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기는 없고 아이들만 있다"며 강한 모성애를 예찬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어머니의 뜻대로 자라기 참 어려운데, 꼭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자라줬으니 정말 착한 아들이다"며 "내 생각에는 본인보다 어머니가 훨씬 더 기쁠 것 같다"며 "전 인생을 아이들에게 바치고 보람을 찾는데 이렇게 성공했으니 얼마나 기쁘겠나"라고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 권양숙 여사도 "한국의 어머니가 얼마나 위대한지 전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며 하인스 워드의 성공 스토리에 기쁨을 표시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 내외는 접견실에 들어오면서 대기중이던 하인스 워드에게 "어서 오십시요. 반갑습니다"라고 말했고, 하인스 워드는 "How are you doing?"라고 간단하게 인사했으며, 노 대통령은 "되게 큰 줄 알았는데...,"라며 하인스 워드의 등을 가볍게 만졌다. 권 여사는 준비한 차를 설명하면서 하인스 워드 모자에게 따라주고, 차의 향을 맡는 다음 마시라고 설명하자, 노 대통령이 "원 샷 하면 안 된다고...,"라며 웃음을 지었다. 하인스 워드는 이날 노 대통령에게 'To President Roh Moohyun, Go Steelers, I ♥ Korea'라고 적힌 미식축구공과 'MVP'와 '86'번이라고 쓰인 유니폼을 선물했고, 노 대통령 내외는 '무궁화 다기 세트 및 접시'를 답례품으로 줬다.이날 오찬에서 노 대통령 내외, 하인즈 워드 모자, 김명곤 문광부 장관 등 참석자들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한국 스포츠 선수들의 활약상, 하인즈 워드의 성공담 등을 얘깃거리로 대화를 나눴다.
2006.04.04 I 박기수 기자
  • (정명수의 월가 키워드)Showdown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누가 리딩뱅크의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인가. 국민은행 얘기가 아니다. 세계 최대의 금융그룹 시티그룹 얘기다. 시티그룹은 존 리드가 이끌어온 시티콥과 샌디 웨일의 트레블러스가 만나 건설한 금융제국이다. <샌포드 웨일>1998년 4월 두 거인이 합병을 선언했을 때 월가는 존과 샌디 중 누가 최후의 CEO가 될 것인지 주시했다. 합병 선언 당시 존과 샌디는 공동 CEO로서 사상 초유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들은 방금 결혼한 신호부부처럼 다정하게 웃었지만, 애당초 공동 CEO라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2000년 2월 28일 시티그룹 이사회는 단일 CEO 체제를 선언한다.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존과 샌디는 손에 든 패를 모두 내놓고(Showdown) 진검 승부를 벌였다. `Tearing Down the Walls(저자: 모니카 랭글리)`라는 책을 보면, 존과 샌디의 권력 투쟁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CEO가 뭐냐, CEO는 어떻게 탄생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특히 금융기관의 CEO는 국가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어떤 인물이, 어떻게 선정되느냐"가 중요하다. 월가는 `행추위(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같은 것을 두지는 않는다. `외부의 입김`도 구조적으로 차단된다. 시티그룹 CEO 자리를 놓고 두 사람이 벌였던 진검승부를 자세하게 살펴보자. ◇벽을 넘어서 시티콥은 미국 최대 은행이다. 1955년 내셔날시티뱅크와 퍼스트내셔날뱅크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존 리드 회장은 1984년 CEO로 올라선 후 "소비자 금융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남미 경제 위기로 시티콥은 파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지만, 존의 현명한 대처로 1등 은행 지위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었다. 트레블러스는 보험, 증권, 투자은행, 소비자 금융이 복합된 금융시장의 신흥 강자였다. 샌디 웨일은 지칠줄 모르는 M&A로 자신만의 금융왕국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두 거인의 합병 제안은 샌디로부터 나왔다. 샌디는 그의 후계자 제이미 다이먼과 때때로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우리가 했던 모든 딜을 능가하는 딜(Mother of all deal)" 시티와의 합병이었다. 샌디는 은행, 카드, 보험, 증권, 투자은행을 아우르는 그야말로 금융 백화점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은행이 보험, 증권 등 다른 금융업을 함께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었다. 대공항 시대 금융기관의 전횡을 막기위해 `글레스-스티걸` 법이 만들어졌고,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은 철저하게 분리됐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샌디는 그의 법무 참모 처크 프린스를 시켜 비밀리에 글레스-스티걸 법을 우회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프린스의 아이디어는 이런 것이었다. 일단 합병을 하면 2~3년 안에 은행 이외의 부문을 분리해야한다. 그 기간 동안 글레스-스티걸 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금융규제법을 통과시키도록 워싱턴에 전방위 로비를 한다. 사실 월가는 1930년대 만들어진 글레스-스티걸을 바꿔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샌디는 월가의 주장을 몸으로 실천하려는 것 뿐이었다. 일단 딜이 추진되면 법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존이 합병에 관심이 있느냐였다. 존의 시티콥도 숙제가 있었다. 그는 시티콥이 너무 관료적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뒤흔들지 않으면 리딩뱅크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존도 몇차례 시티콥의 기업문화를 바꾸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샌디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존은 샌디의 `피묻은 손`을 잘 알고 있었다. 부실한 기업을 사들여서 가차없는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되살리는 비법의 소유자. 존은 "샌디의 DNA가 필요해(Citi could use some of Sandy"s DNA)"라고 말했다. 샌디의 합병 제안은 1998년 2월이었고 양사 이사회의 합병 승인은 4월에 이뤄졌다. 합병 협상 중 트레블러스는 `주피터(Jupiter)`, 시티는 `새턴(Saturn)`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 거인들의 합병은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괴물 히드라 "합치자"해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기업이 합병되는 것은 아니다. M&A 이후 누가 기업을 운영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존이나 샌디 모두 금융계의 거목이었고, 각자의 세계가 뚜렷한 CEO들이다. 이들은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로 자신의 왕국을 호령하는 제후였다. 존은 자신의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다. 샌디 역시 아들처럼 사업을 함께한 제이미가 있었지만, 최근 둘 사이의 관계가 썩 좋지 않다. 제이미가 샌디의 친딸을 트레블러스 승진 인사에서 제외시킨 후 샌디와 제이미 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다. 존과 샌디는 합병 기업의 이름을 시티그룹으로 하고, 그룹의 상징은 트레블러스의 빨간 우산으로 하는데 합의했다. 이사회도 시티와 트레블러스 측 인사가 50대50으로 참여한다. CEO도 존과 샌디가 공동으로 맡는다. 두 사람은 완전히 같은 권한과 책임을 진다. 회사 경영에 같이 참여하고, 같이 결정하며, 같이 책임진다. 존은 샌디에게 "합병 시티그룹이 제 궤도에 오르면 두 사람이 함께 물러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샌디는 은퇴 의사가 전혀 없었지만, "파트너십에 입각해서 회사를 잘 경영할 것"이라며 존의 제안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인다. 당초 합병 계약서에는 두 사람의 동반 은퇴가 명문화될 예정이었으나, 합병 발표 직전 공동CEO의 후계 구도에 대한 문항은 계약서에서 삭제된다. 이것이 훗날 권력 분쟁의 불씨가 된다. 여한튼 두 CEO는 합병에 합의했고, 제이미를 시티그룹 사장으로 선임했다. 시티측의 빅터 메네즈는 은행 부문을, 트레블러스 측의 데릭 머간은 증권 부문을 맡아, 제이미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제이미가 공동 CEO의 뒤를 이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경영진 인사 막판에 샌디는 데릭 머간을 제이미와 동격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데릭 머간은 살로먼브라더스의 CEO였다. 샌디는 시티와의 합병 직전에 살로먼브라더스를 인수했다. 제이미와 사이가 나빠진 샌디는 데릭을 제이미와 동격으로 대우함으로써 후계 구도를 안개속으로 몰아갔다. 제이미는 강하게 반발했다. 샌디는 시티그룹 이사회에서도 제이미를 제외했다. 존은 샌디와 제이미의 틈이 밖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존은 공동CEO인 샌디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자신의 심복 빅터도 제이미, 데릭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합병 원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제이미, 데릭, 빅터의 `3두 체제`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시티그룹의 기업금융, 소비자금융, 투자은행 부문을 분점하게 된다. 머리가 둘도 아니고, 셋이라면 의사 결정이 더욱 복잡해진다. 거기다 제이미와 데릭은 샌디의 묵인하에 2인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금융 공룡 시티그룹은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힘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었다. 제이미의 불만은 더욱 컸다.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가 흔들리면서 공공연하게 샌디와 시티그룹 경영체제를 비판했다. 불미스러운 일까지 벌어졌다. 시티그룹 최고 경영자들이 참석한 파티에서 제이미는 취중에 데릭과 주먹질 직전까지 갔다. 1998년 11월 1일 시티그룹 이사회는 제이미에게 회사를 떠날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한다. 샌디는 자신의 일등 참모를 제거했다. 이 사건은 샌디-제이미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를 떠나, 시티그룹 전체의 운명을 바꿔놓는 단초가 된다. 공동CEO는 뚜렷한 후계자가 없이 단일CEO 자리를 놓고, 최후의 전쟁을 치루게 된다. ◇너무 다른 두 거인 1999년 미 의회는 `금융서비스현대화 법(Financial Services Modernization Act)`을 통과시킨다. 클린턴 대통령은 당초 이 법안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으나, 힐러리 클린턴의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와 연계해 법안을 수용한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 법을 `Citigroup Authorization Act)`라고 불렀다. 은행 겸업을 금지하는 글레스-스티걸 법이 대체됨으로써 시티그룹 합병이 정당화됐기 때문이다. 샌디의 전략대로 시티그룹은 법의 장벽을 넘어 초대형 금융제국으로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존과 샌디의 투쟁이 시작된다. 존은 정통 뱅커다. 그는 `시티`라는 브랜드를 질레트, 코카콜라와 같은 생활속의 일부분으로 만드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 존은 "금융은 면도기처럼 사람들에게 아주 가깝게 다가가야한다(Finances are very personal to an individual much the same way of a shave)"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샌디는 새로운 시티그룹 광고를 보면서도 "이 광고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그것이 수익에 도움을 주는가"를 따졌다. 샌디는 "내 목표는 주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당장 주가로 표현되는 결과가 없는 곳에는 돈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샌디는 합병 직후 시티그룹의 보너스 체계를 스톡옵션 방식으로 바꾸려 했다. 존이 반대했다. 존은 직원들이 당장 주가에 반영되는 일만 할 경우 도덕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4개월 논의 끝에 존은 스톡옵션을 받아들였지만, 시행 일자를 2000년 이후로 미뤘다. 샌디는 단 일초도 시티그룹 주가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지만, 존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가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경영 습관도 달랐다. 샌디는 세 쪽 이상의 메모를 읽지 않는다. 결론 부분만 읽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존은 조용히 책을 읽으며 경영 구상을 메모로 남겼다. 샌디는 엄청난 대식가에다, 술고래지만, 존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샌디는 자신의 측근이 보고하는 인사자료를 근거로 주요 임원의 승진 여부를 결정한다. 존은 인력개발부서를 따로 두고, 수많은 데이터를 참고해서 인사를 한다. 샌디는 사업이 곧 자신의 인생이었다. 밤이나 낮이나 일 얘기 뿐이었다. 존은 MIT 출신답게 금융 이외에 과학관련 책도 많이 읽었다. 존은 가끔 형이상학적인 경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다른 공동CEO에게 보고를 해야하는 임원들의 고통은 어떠했겠는가. 같은 사안을 가지고 두 사람은 정반대 지시를 내리곤 했다. 둘 사이가 갈라진 결정적 사건이 두 차례 있었다. 합병 첫해 분기 실적이 나온 후 컨퍼런스 콜이 열렸다. 사상 최고의 수익을 냈다. 샌디는 신이 났다. "월가는 우리 실적을 좋아할 겁니다." 존은 무뚝뚝하게 말문을 열었다. "저는 분기 실적에는 연연하지 않습니다. 제 관심은 5년후 시티가 이룩할 성과에 있습니다." 컨퍼런스 콜 내내 두 사람은 회사 수익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을 벌이는 것 같았다. 샌디는 IR 담당 임원을 불렀다. "난 다시는 존 리드와 컨퍼런스 콜을 하지 않을거야. 그렇게 알아!" 그 임원은 "회장님, 저는 존 리드 회장님께 컨퍼런스 콜에 나오시지 말라는 말씀은 못드리겠습니다. 직접 말씀하시죠"라고 답했다. 1999년 사업 전략 회의가 열렸다. 담당 임원들은 공동 CEO가 회의 주제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측근들과 사전에 조율했다. 존 리드 회장은 경영 전략은 자신이 맡을 테니, CFO인 헤이디 밀러는 경영 결과를, 샌디 웨일 회장은 아시아 지점 순시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샌디는 불같이 화를 냈다. "존 리드가 전략을 점검한다고? 무슨 말랑깽이 같은 전략이야(His fucking strategy!) 시티그룹을 합병하자고 한 아이디어가 누구한테서 나온 것인데. 난 도대체 뭐야? 빌어먹을 여행사 직원인가? 최근의 여행 결과를 보고하라고. 내가 회사를 경영할 때 존 리드는 한가하게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존 리드 회장은 합병 전부터 전 세계에 있는 시티은행 지점을 돌아다니며 세계를 상대로 한 장사에 몰두했다. 존이 샌디에게 아시아 탐방을 보고하라고 제안한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샌디는 그러나 존과 같은 고상한 은행가는 아니었다. ◇Showdown 두 사람의 불화는 시티그룹 안팎에 모두 알려졌다. 고래 싸움에 지친 뛰어난 새우(임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급기야 CFO인 헤이디 밀러도 인터넷 업체로 옮기겠다고 선언한다. 헤이디는 원래 다이몬의 측근이었으나, 트레블러스 그룹에 참여한 후 승승장구, 여성으로서는 월가 최고위직에 올랐다. 존과 샌디는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데 합의했다. 이사회에 역할 분담을 요청했다. 이사회는 샌디가 경영 일반을, 존이 전략 일반을 맡는 안을 내놨다. 둘은 순순히 합의했다. 샌디가 경영을 맡는다는 것은 그가 돈을 번다는 뜻이다. 반면 존은 당장 돈을 벌기보다는, 돈을 쓰면서 미래의 전략을 세운다는 뜻이다. 존은 시티그룹의 미래가 인터넷 뱅킹에 달려있다고 믿었다. 그는 인터넷 관련 전략부서를 대폭 강화했다. 샌디는 이것이 못마땅했다. 그는 인터넷을 믿지 않았다. 역할 분담을 해도 둘 사이의 마찰이 끝나지 않았다. 마침내 둘은 단일 CEO 체제로 가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존과 샌디는 각자 상대방 측근들에게 접근했다. 자신의 비전이 시티그룹의 미래를 밝혀줄 것이라고 역설했다. 시티그룹 이사회는 합병 당시 약속대로 양측이 동수로 구성돼 있다. 표 대결을 벌여서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변수가 하나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활약하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퇴임후 시티그룹 경영 고문으로 참여한 것. 2000년 2월 27일 일요일 시티그룹 긴급 이사회가 열렸다. 두 명중 한 명을 선택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사회는 존을 먼저 불렀다. 존은 전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저는 공동 CEO인 샌디와 제가 동시에 회사에서 물러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사회는 회사 밖에서 CEO를 찾아야합니다. 새로운 CEO를 세워야합니다." 존은 합병 당시 "공동 CEO가 동시에 물러난다"는 약속을 다시 꺼내들었다. 존은 이전부터 60살에 은퇴할 것이라는 말을 해왔다. 그는 이사회가 외부에서 마땅한 CEO를 당장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존은 "만약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당시에 알았다면 저는 샌디가 제이미를 제거하는 것에 반대했을 겁니다. 제이미는 논리적으로 후계자가 될 유일한 인물이었죠. 내가 만약 그때 그를 더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면 저는 제이미를 구했을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존은 이어서 이사회가 특별 위원회를 꾸려서 외부에서 CEO를 물색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경영자의 임무는 진화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주주의 가치를 최대화하거나, 주가를 끌어올리거나, 마켓쉐어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위해 작은 씨앗을 뿌릴 수 있느냐, 아니면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며 자원을 써버리고, 마지막 순간 극도로 피폐해지느냐를 결정해야합니다." 존은 고도의 수를 썼다. 시티그룹 안에 2인자는 없다. 샌디가 스스로 제거했다. 둘은 같이 떠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샌디와 같이 떠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사회는 시티 밖에서 후계자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이사회는 결국 나 아니면 샌디를 선택할 것이다. 나는 샌디의 단기적인 전망에 치중하는 전략에 비판적이다. 결국 이사회는 나를 단일 CEO로 선택하고, 나로 하여금 후계자를 물색하도록 할 것이다. 다음은 샌디 차례. 샌디는 단순하게 접근했다. 그는 "내가 CEO로서 적임자다"라고 선언했다. 샌디는 "지금 우리는 한 사람을 선택해야하는데, 저는 그것이 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할 것이 너무 많아요. 나는 그것을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저는 은퇴를 준비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샌디는 "내가 이 자리(CEO)를 얼마나 강렬하게 원하는지"를 이사들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샌디는 정말 그 자리를 원했다. 자신의 아들같은 제이미도 제거하지 않았던가. 누구도 내 자리를 넘 볼 수는 없다. 샌디는 2인자의 부상을 원치 않았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나에게 은퇴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나는 너무나 할 일이 많다! 이사회는 루빈에게 코멘트를 요청했다. 그는 이사회 결정의 투표권이 없지만, 제3자로서 그의 시각이 필요했다. 루빈은 "가장 좋은 것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입니다.(루빈은 클린턴 행정부에 참여하기 전 골드만삭스에서 스티븐 프리드만과 공동으로 회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가장 나쁜 것은 두 사람이 모두 떠나는 것입니다.(이것은 존이 원했던 답.)"라고 말했다. 루빈은 "가장 현명한 선택은 샌디입니다." 이사들은 숨을 죽였다. 루빈은 "샌디에게 보고하는 그의 측근들은 제가 만나본 최고의 팀이었습니다." 이 한마디가 이사회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사회는 일단 샌디에게 CEO 타이틀을 주고, 존은 회장이 되는 안을 선택했다. 이사회 옆 회의실에서 대기 중인 존과 샌디는 골프 대회를 지켜봤다. 그들은 `최후의 전쟁`을 치루고 있으면서도 마치 친구처럼 골프 경기를 보고 있었다. "존, 저거 봤습니까. 어떻게 저런 샷을 칠 수가 있죠." "놀라와요." 존은 `샌디=CEO, 존=회장` 안을 거부했다. 결국 이사회는 샌디를 CEO로 선택하고, 존은 원하는대로 은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이사회는 샌디에게 2년 안에 후계자 인선 계획을 잡을 것을 권고했다. 이사회는 회의 결과를 전달했다. "우리는 샌디와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존은 조용히 회의실을 떠났다. 다음날 시티그룹은 샌디 웨일이 단일 CEO가 됐으며, 존 리드는 은퇴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시티그룹 주가는 3%나 올랐다. 이사회는 그들이 시티그룹 주가에 이로운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그들은 샌디 웨일 식 경영론의 추종자가 된 것이다.
2004.09.10 I 정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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