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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경화 적신호?...연예계 20대 톱스타가 없다
  • [2 빠진 연예계]동맥경화 적신호?...연예계 20대 톱스타가 없다
  • ▲ 원더걸스 서태지 빅뱅 장동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남자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겠는가?” -남이장군 북정가 중 비단 남자 스무 살 뿐만이 아니다. 남녀불문하고 연예계에 이름을 올린 스타 가운데 20대에 그 존재감을 만방에 떨치지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톱스타라 칭하겠는가? 20대의 톱스타들이 연예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과거 연예계를 주름잡던 톱스타들의 연령층은 20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는 30대를 넘어선 탤런트들이 톱스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요계에는 '원더걸스'를 위시한 '빅뱅' 등 10대 아이돌 그룹만이 톱스타의 자리를 향한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약관의 나이로 연예계를 종횡무진하며 대중들을 휘어잡던 20대 톱스타들의 명맥이 점차 끊겨가고 있는 것이다. ◇ 90년대 청춘 스타, 서른 잔치는 계속된다 시계를 90년대로 돌려보자. 1995년 시청률 60%를 넘기며 '귀가시계'라는 별명이 붙었던 SBS 창사특집드라마 ‘모래시계’의 열풍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모래시계’의 열풍 핵심에는 운동권 여대생에서 카지노 대부로 변신한 여자주인공 ‘혜린’ 역의 고현정이 있었다. 1971년생인 고현정은 1993년 MBC 주말극 ‘엄마의 바다’에서 김혜자에게 뒤지지 않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만 스물 넷의 나이에 ‘모래시계’ 여자주인공으로 발탁되어 한국 드라마의 신화를 썼다. 고현정보다 앞서 20대에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 여자 탤런트로는 채시라가 있다. 채시라는 1991년 MBC에서 방영된 ‘여명의 눈동자’에서 여자주인공 ‘윤여옥’ 역을 맡아 ‘최대치’ 역을 맡은 최재성과 함께 한국 드라마 역사에 기리 남을 명연기를 펼쳤다. 1968년생인 채시라의 나이 불과 스물 셋에 이뤄낸 성과였다. 고현정과 채시라 뿐만 아니었다. 20대 초반 “남편은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CF한 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최진실 역시 90년대를 관통하는 대중문화의 이십대 아이콘이었다. 최진실은 스물 다섯 살이었던 1992년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질투’를 통해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후 연일 최고 몸값을 경신하며 각종 드라마와 영화를 섭렵했다. 하희라와 신애라 김혜수 심은하 고소영 김희선 역시 20대 초반 자신의 전성기를 스스로 개척해내며 톱스타의 자리를 꾀찼다.   ▲ 20대에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 고현정 채시라 최진실이는 비단 여자 탤런트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90년대 남자 탤런트 가운데서도 톱스타로 인정받은 이들의 면면은 대부분 20대였다.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로 손꼽히는 1997년 KBS '첫사랑‘의 주인공은 최수종이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최수종의 동생으로 출연한 배용준에게 쏟아졌다. 이미 1995년 ‘젊은이의 양지’로 시청률 60%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용준은 당시 나이가 만 스물 세 살이었다. 1972년생인 배용준은 20대 중반부터 톱스타의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명실상부한 톱스타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만 스무 살이었던 1992년 MBC 21기 탤런트 공채로 연예계에 데뷔한 장동건 역시 1993년 ‘우리들의 천국’을 거처 1994년 ‘마지막 승부’로 20대 초반의 나이에 스타덤에 올랐다.  1997년 MBC ‘별은 내 가슴에’의 테리우스 강민으로 중화권 한류의 시초를 연 안재욱 또한 20대 중반의 나이에 톱스타로 우뚝 섰다. 최근 할리우드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이병헌이나 김성수 감독의 영화 ‘비트’로 90년대 청춘들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정우성 등도 약관의 나이에 연예계의 별이 되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 시켰다. ◇ '서태지' '박진영'에 열광하는 가요계, 20대 대형스타 부재 반증  가요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2년 1집 앨범 ‘난 알아요’로 한국 가요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더 서태지의 당시 나이는 만 스무 살이었다.  1집 ‘미소속에 비친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해 발라드의 황제로 자리 잡은 신승훈 또한 만 스물 둘의 나이에 가요계의 톱스타 자리에 올랐다.  이승환, 김건모, 듀스, 신해철, 조성모, 박진영 역시 그들의 나이 20대 초중반에 가요계 정상에 올라 범접하기 어려운 톱스타의 지위를 누렸다. 물론 지금도 20대의 나이에 정상에 오른 톱스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월드스타로 인정받고 있는 비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몇몇을 제외하고는 과거 20대 톱스타들이 지녔던 아우라를 보여주는 대형스타가 드문 것은 사실이다. 90년대 20대였던 톱스타들은 오히려 30대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더 구축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20대의 젊은 대형스타들이 부재한 지금의 현실을 방증 한다. ◇ 20대 스타의 부재, '방관' 아닌 '치료'에 나설 때   20대 대형 톱스타가 드물어진 최근의 연예계 환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그만큼 젊은 피를 수혈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젊음의 패기와 열정, 그리고 창조성이 과거에는 20대 톱스타의 모습을 통해 연예계에 수혈되고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변화를 주도했다. 따라서 20대 톱스타가 부재하는 지금의 연예계 현실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20대의 젊음이 역사에 획을 그었던 경우는 과거를 비추어볼 때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20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른 어느 분야보다 20대의 활기와 열정 그리고 창조성이 필요한 연예계에 20대 톱스타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우리 연예계의 동맥경화를 암시하는 ‘위험신호’임에 분명하다. ▶ 관련기사 ◀☞[2 빠진 연예계]구혜선 이승기 이지아...'20대 톱스타 내가 할래!'☞[2 빠진 연예계]20대 연예인은 '낀 세대'... CF 치중 활동도 문제▶ 주요기사 ◀☞신해철, 아내의 둘째 임신 소식 방송녹화서 공개☞전도연, 심사위원 만장일치 APSA 초대 여우주연상 수상☞'이산', 우직함으로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 굳히기☞'황진이' '하얀거탑'...전문가는 이런 드라마를 원한다☞노현정 전 아나, 美서 남편 꼭 닮은 아들 재롱에 행복한 나날
2007.11.14 I 김용운 기자
박상민, 임권택 감독 주례로 9일 웨딩마치
  • 박상민, 임권택 감독 주례로 9일 웨딩마치
  • ▲ 박상민-한나래 커플[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탤런트 박상민이 9일 영어 전문가 한나래 씨와 화촉을 밝혔다. 박상민은 이날 오후3시 서울 광장동 W호텔 비스타홀에서 임권택 감독의 주례, 배우 김상중의 사회로 결혼식을 올렸다. 박상민의 결혼식에는 영화배우 안성기, 박중훈, 신은경 등 동료 연예인들을 비롯한 10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해 박상민-한나래 부부를 축하했다. 지난해 한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교제를 시작해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10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나고 신접살림은 서울 잠실에 있는 박상민의 집에 차리게 된다. 박상민과 평생가약을 맺은 한나래 씨는 현재 EBS English TV에서 미국 ABC 방송사의 ‘월드 뉴스 리뷰'를 진행하고 있는 영어 전문가로 한국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교수를 역임한 재원이다. ▲ 박상민-한나래 커플▲ 박상민-한나래 커플▲ 박상민-한나래 커플▶ 관련기사 ◀☞박상민-한나래 커플 웨딩사진 공개... 왕실 컨셉 한복사진 눈길☞박상민-한나래 커플 만남에서 결혼까지 “자기 일에 당당한 모습에 반해”☞'장군의 아들' 박상민, 11월9일 결혼...주례는 임권택 감독☞박상민 4일 결혼기자회견서 방송인 예비신부 공개☞박상민 11월 결혼, 곧 정식 발표 예정 ▶ 주요기사 ◀☞'주무치' 박성웅, 낙마사고로 허리부상... 보호대 의존 촬영 강행☞KBS 아침극 '그대의 풍경', 16% 자체 최고 기록으로 종영☞오광록 측 "배용준 'X무시' 발언, 음성 파일 부분 발췌 편집된 것"☞박철-옥소리 이혼소송, 협의 여부 관심... 박철 "옥소리 하기 나름"☞허니패밀리 마약혐의 검찰조사 곤욕... 소변검사 음성 판정
2007.11.10 I 유숙 기자
박상민-한나래 커플 웨딩사진 공개... 왕실 컨셉 한복사진 눈길
  • 박상민-한나래 커플 웨딩사진 공개... 왕실 컨셉 한복사진 눈길
  • ▲ 배우 박상민-한나래씨 커플[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배우 박상민이 웨딩 사진을 공개했다. 박상민은 오는 9일 서울 광장동 W호텔에서 영어 전문가 한나래 씨와 결혼식을 앞두고 공개한 웨딩 사진에서 예비신부와의 행복한 모습을 자랑했다.웨딩 사진은 최근 서울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촬영됐으며 박상민의 턱시도는 장광효 디자이너가, 신부 한나래씨의 웨딩드레스는 이승진 디자이너가 각각 제작했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임금과 중전을 연상케 하는 한복사진도 눈길을 끈다.박상민과 한나래씨의 결혼식은 임권택 감독이 주례를 맡는다.  ▲ 배우 박상민-한나래씨 커플▲ 배우 박상민-한나래씨 커플▲ 배우 박상민-한나래씨 커플▶ 관련기사 ◀☞박상민-한나래 커플 만남에서 결혼까지 “자기 일에 당당한 모습에 반해”☞'장군의 아들' 박상민, 11월9일 결혼...주례는 임권택 감독☞박상민 4일 결혼기자회견서 방송인 예비신부 공개☞박상민 11월 결혼, 곧 정식 발표 예정▶ 주요기사 ◀☞패리스 힐튼, 7일 첫 방한... 4박5일간 체류☞'왕과 나'VS'이산', 박빙경쟁 속 치열한 힘겨루기☞'로비스트' 송일국 장진영 키스 신으로 반전 노려☞[만능 개그맨 시대]장두석에서 김미려까지...개그맨의 가수 도전사☞'죄민수' 조원석, 박재석 결혼식에 트로트 축가
2007.11.07 I 유숙 기자
박상민-한나래 커플 만남에서 결혼까지 “자기 일에 당당한 모습에 반해”
  • 박상민-한나래 커플 만남에서 결혼까지 “자기 일에 당당한 모습에 반해”
  • ▲ 박상민(왼쪽) 한나래 커플[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자기 일을 당당하게 해내는 모습에 끌렸다” 박상민(37)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나래씨(35)의 매력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었다.  박상민이 4일 오후 서울 광장동 워커힐 W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달 9일 결혼하는 한나래씨와의 결혼과정과 그에 따른 여러가지 뒷이야기들을 털어놨다. 박상민과 평생가약을 맺을 한나래씨는 현재 EBS English TV에서 미국 ABC 방송사의 ‘World News Review'를 진행하고 있는 영어 전문가로 한국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교수를 역임한 재원이다. 한나래씨는 1년전 박상민과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박상민은 “처음부터 한눈에 반해 불꽃같은 사랑을 했던 건 아니었다" 말하며 "혼기가 넘도록 아직 결혼을 않고 뭐했냐"고 되레 면박을 주던 사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나래씨가 쓴 영어회화 책의 프로필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 박상민은 한나래씨가 혼기를 놓칠 정도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2~30대를 당당하게 살아온 것에 감동했고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자신을 가꿀 줄 아는 모습에 차츰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 박상민(오른쪽) 한나래 커플한나래씨는 "처음 (박상민을) 봤을 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했었는데 상민씨의 포기하지 않은 구애에 끌렸다"며 “박상민씨 사전에 가식이란 존재하지 않더라. 그래서 이 사람이 진국이구나 싶어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상민 한나래 커플은 11월9일 오후3시 서울 광장동 워커힐 W호텔 비스타홀에서 임권택 감독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며 신혼살림은 박상민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에 차릴 예정이다. 1989년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로 데뷔한 박상민은 이후 ‘장군의 아들’ 시리즈에서 김두환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으며 최근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글, 사진=김용운기자)▶ 관련기사 ◀☞'장군의 아들' 박상민, 11월9일 결혼...주례는 임권택 감독☞박상민 4일 결혼기자회견서 방송인 예비신부 공개☞박상민 11월 결혼, 곧 정식 발표 예정 ▶ 주요기사 ◀☞'얼렁뚱땅 흥신소'...인기 사극 틈바구니서 8일 출사표☞가수 '비' 투자 세이텍 거래 재개...급등 출발☞최지우, 파리 컬렉션 참석...패션피플 관심 모을 듯☞배용준, '태사기' 8회서 액션신... 마침내 태왕 각성하나☞슈퍼주니어를 지탱(?)하는 힘 "안마의자와 규현"
2007.10.04 I 김용운 기자
류승수 "권위(?) 없는 감독 덕에 작품 선택"
  • 류승수 "권위(?) 없는 감독 덕에 작품 선택"
  • ▲ 류승수(사진=김정욱기자)[이데일리 SPN 박미애기자] 류승수가 '얼렁뚱땅 흥신소'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까닭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연출을 맡은 함영훈 PD의 영향이 크다. 류승수는 KBS 2TV 월화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만화가게 주인 용수 역을 맡았다. 최근 있었던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의 제작보고회장에서 류승수는 드라마를 선택하게 된 동기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해 눈길을 끌었다.  "사실은 촬영 중인 영화가 끝나지 않아서 작품은 끌렸지만 안 하려고 했죠. 그 뒤에 감독님을 직접 만났는데 깍듯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까지 저한테 감독이란 존재는 늘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저희 감독님은 절대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소품도 자기가 직접 치우고 매니저보다 더 연기자들을 잘 챙겨주고...감독이라는 권위를 던져버린 분이세요." 류승수는 스태프 모두 열심이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함영훈 PD 덕분에 힘들어도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류승수의 첫 드라마 주연 작품이기도 한 '얼렁뚱땅 흥신소'는 8일 첫방송된다.▶ 관련기사 ◀☞'타로 마스터' 변신, 예지원 "이번엔 꽤 정상적인 역할이에요"☞'얼렁뚱땅 흥신소'...인기 사극 틈바구니서 8일 출사표☞[포토]유쾌상쾌한 예지원의 포토타임 포즈법☞[포토]사극열풍 잠재울 코믹발랄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 ▶ 주요기사 ◀☞'장군의 아들' 박상민, 11월9일 결혼...주례는 임권택 감독☞가수 '비' 투자 세이텍 거래 재개...급등 출발☞최지우, 파리 컬렉션 참석...패션피플 관심 모을 듯☞배용준, '태사기' 8회서 액션신... 마침내 태왕 각성하나☞슈퍼주니어를 지탱(?)하는 힘 "안마의자와 규현"
2007.10.04 I 박미애 기자
'타로 마스터' 변신, 예지원 "이번엔 꽤 정상적인 역할이에요"
  • '타로 마스터' 변신, 예지원 "이번엔 꽤 정상적인 역할이에요"
  • ▲ 예지원(사진=김정욱기자)[이데일리 SPN 박미애기자] '얼렁뚱땅 흥신소'와 예지원. 한 눈에도 꽤 그럴 듯한 조합으로 비춰진다. 예지원이 KBS 2TV 월화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를 통해 어설프고 엉뚱한 타로 마스터로 변신한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을 것 같은 캐릭터인데 예지원은 "이번엔 비교적 정상적인 역할"이라며 뜻밖의 말을 건넸다.지금껏 출연한 작품들에서 살펴보면 상식을 뛰어 넘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주로 맡아온 그녀다. 본인 입으로도 "정상적인 역할은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미자가 처음이었다"고 말했을 만큼 태극기를 사랑하고, 백화점을 사랑하고, 뻥튀기를 사랑해야만 했던 별난 여인이 바로 예지원이었다. 때문에 예지원은 '4차원'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예지원이 개성 강한 '타로 마스터'로의 변신을 두고 '이번엔 비교적 정상적인 역할'이라고 칭한 이유도 바로 전작에서 맡은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워낙에 강했던 탓. 예지원은 "영매사를 연기하게 됐는데 다행히도 어설픈 영매사라서 부담이 크게 되지 않았다"며 "역할 때문에 타로점도 2번 정도 봤는데 결혼은 늦게 하는 게 좋겠다고 나와서 안심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예지원이 얼렁뚱땅 타로 마스터로 변신한 '얼렁뚱땅 흥신소'는 8일 첫방송된다.▶ 관련기사 ◀☞류승수 "권위(?) 없는 감독 덕에 작품 선택"☞'얼렁뚱땅 흥신소'...인기 사극 틈바구니서 8일 출사표☞[포토]유쾌상쾌한 예지원의 포토타임 포즈법☞[포토]사극열풍 잠재울 코믹발랄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 ▶ 주요기사 ◀☞'장군의 아들' 박상민, 11월9일 결혼...주례는 임권택 감독☞가수 '비' 투자 세이텍 거래 재개...급등 출발☞최지우, 파리 컬렉션 참석...패션피플 관심 모을 듯☞배용준, '태사기' 8회서 액션신... 마침내 태왕 각성하나☞슈퍼주니어를 지탱(?)하는 힘 "안마의자와 규현"
2007.10.04 I 박미애 기자
'얼렁뚱땅 흥신소'...인기 사극 틈바구니서 8일 출사표
  • '얼렁뚱땅 흥신소'...인기 사극 틈바구니서 8일 출사표
  • ▲ KBS 2TV 월화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이데일리 SPN 박미애기자]KBS 2TV 월화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가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10월8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얼렁뚱땅 흥신소'는 치열한 사극 격전이 펼쳐지고 있는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10시대에 편성됐다.  같은 시간 다른 방송사에서는 SBS의 '왕과 나'와 MBC '이산'이 각각 방송되고 있다. 게다가 '왕과 나'와 '이산'은 각각 20%대와 10%대 후반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월화드라마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인기 사극의 틈바구니 속에서 '얼렁뚱땅 흥신소'가 선보여지는 것이다.   최근 사극의 인기는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일주일 중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사극이 방송되지 않는 날이 다 없을 정도다. 물론 다양한 색깔을 지닌 사극의 등장이 더없이 반가운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쏠림 현상은 시청자들의 자유로운 채널 선택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선 분명 경계되어야할 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얼렁뚱땅 흥신소'는 사극에 매력을 못 느끼는 시청자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드라마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얼렁뚱땅 흥신소'는 남녀 주인공의 애정행각에 초점을 맞춘 트렌드 드라마와도 확실히 선을 긋는다. TV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어드밴티지와 판타지를 결합한 신선한 모양새를 갖췄다.  그래서 였을까. 드라마 소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얼렁뚱땅 흥신소'는 사실 드라마로 결정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극본을 집필한 박연선 작가도 "첫 작품인 '파란만장 미스 김 10억 만들기' 전에 준비했던 작품인데 드라마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미루고 또 미뤄지다가 이번에 KBS에서 방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드라마를 이끌어 갈 주요 인물 또한 예지원, 류승수, 이민기 등으로 평범함을 지양하는 개성 강한 인물들이 똘똘 뭉쳤다.  망해버린 흥신소 사무실에 이런저런 이유들로 자리를 함께하게 된 꼴통 3인방은 돈에 눈이 멀어 '고종의 열 두 항아리의 황금'을 찾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끌리는 매력이 적지 않다. 하지만 '얼렁뚱땅 흥신소'의 입장에선 앞서 시장을 선점하고 나선 사극들의 맹공세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함영훈 PD는 "사극에 대한 심적인 부담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이들 작품들과 경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며 "시청률보다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고 연기자 및 스태프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얼렁뚱땅 흥신소'에 대해서는 TV가 사극에 쏠려있는 사이, 시청자들에게 좀 더 다르게 어필하기 위한 차별화 전략 차원에서의 선택 아니었겠느냐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 이성주 KBS 드라마 팀장은 "이 시간대 드라마는 지금까지 젊은 층을 겨냥해 참신하고 트렌드 한 드라마를 선보였기 때문에 차별화 전략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 시청자들의 다양한 시청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얼렁뚱땅 흥신소'는 현 시점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원하는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16부작 '얼렁뚱땅 흥신소'는 10월8일 첫 방송된다.▶ 관련기사 ◀☞류승수 "권위(?) 없는 감독 덕에 작품 선택"☞'타로 마스터' 변신, 예지원 "이번엔 꽤 정상적인 역할이에요"☞[포토]유쾌상쾌한 예지원의 포토타임 포즈법☞[포토]사극열풍 잠재울 코믹발랄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 ▶ 주요기사 ◀☞'장군의 아들' 박상민, 11월9일 결혼...주례는 임권택 감독☞가수 '비' 투자 세이텍 거래 재개...급등 출발☞배용준, '태사기' 8회서 액션신... 마침내 태왕 각성하나☞슈퍼주니어를 지탱(?)하는 힘 "안마의자와 규현"☞'뉴스데스크' 방송사고...보도 영상 사전 확인 못해 일어난 실수
2007.10.04 I 박미애 기자
'장군의 아들' 박상민, 11월9일 결혼...주례는 임권택 감독
  • '장군의 아들' 박상민, 11월9일 결혼...주례는 임권택 감독
  • ▲ 박상민(왼쪽), 임권택 감독[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임권택 감독이 박상민(37) 결혼식의 주례를 맡는다. 오는 11월9일 오후3시 서울 광장동 워커힐 W호텔 비스타홀에서 영어 전문가인 한나래(35)씨와 결혼식을 올리는 박상민은 4일 기자회견을 통해 결혼까지의 과정과 결혼식 준비 일정 등에 관해 밝혔다. 1989년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로 데뷔한 박상민은 이후 ‘장군의 아들’ 시리즈에서 김두환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으며 최근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영화로 데뷔한 박상민의 결혼식 주례를 혼쾌히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박상민과 평생가약을 맺을 한나래씨는 현재 EBS English TV에서 미국 ABC 방송사의 ‘World News Review'를 진행하고 있는 영어 전문가로 한국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교수를 역임한 재원으로 알려졌다. ▶ 관련기사 ◀☞박상민-한나래 커플 만남에서 결혼까지 “자기 일에 당당한 모습에 반해”☞박상민 4일 결혼기자회견서 방송인 예비신부 공개☞박상민 11월 결혼, 곧 정식 발표 예정 ▶ 주요기사 ◀☞'타로 마스터' 변신, 예지원 "이번엔 꽤 정상적인 역할이에요"☞가수 '비' 투자 세이텍 거래 재개...급등 출발☞최지우, 파리 컬렉션 참석...패션피플 관심 모을 듯☞배용준, '태사기' 8회서 액션신... 마침내 태왕 각성하나☞슈퍼주니어를 지탱(?)하는 힘 "안마의자와 규현"
2007.10.04 I 김용운 기자
박상민 4일 결혼기자회견서 방송인 예비신부 공개
  • 박상민 4일 결혼기자회견서 방송인 예비신부 공개
  • ▲ 영화배우 겸 탤런트 박상민[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장군의 아들' 박상민이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예비 신부를 공개한다. 박상민 측은 “4일 오후 2시 서울 광장동 워커힐 W호텔 2층 기자회견장에서 결혼 발표 기자회견을 연다”고 1일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방송인으로 알려진 예비신부가 박상민과 함께 참석해 정확한 결혼날짜와 교제 과정 등에 관한 질문에 답할 예정이다. 박상민 측은 지난 달 초 11월 결혼설이 불거지자 “11월께 결혼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박상민은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스타덤에 올라 SBS 드라마 ‘여인천하’, SBS 드라마 ‘내 사랑 못난이’ 등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9월28일 종영된 MBC 아침드라마 ‘내 곁에 있어’에서 성형외과의사 최동건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박상민 11월 결혼, 곧 정식 발표 예정 ▶ 주요기사 ◀☞[2차 남북정상회담] '쉬리'에서 '...동막골'까지, 분단영화 변천사☞'디 워' 美 개봉...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나나☞박상민 4일 결혼기자회견서 방송인 예비신부 공개☞'10월의 신부' 김희선 웨딩드레스 자태 뽐내☞가수 비, 공연 취소 사기 혐의 벗어
2007.10.02 I 유숙 기자
드라마는 속편,가수는 2기 전성시대
  • 드라마는 속편,가수는 2기 전성시대
  • ▲ 속편 제작이 결정된 쩐의 전쟁[이데일리 SPN 윤경철기자] ‘드라마는 속편, 가수는 2기가 뜬다.' '장군의 아들' '투캅스' 등 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서의 속편(續篇ㆍSequel)이 최근에는 드라마 장르에도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가요계에서는 기존 인기 밴드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멤버로 구성된 2기 밴드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들 2기 밴드의 성격은 타이틀과 장르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등장인물의 전부 혹은 일부가 바뀐다는 점에서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속편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드라마업계에서는 '시즌2'라는 형식으로 속편 제작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시청률 30%를 가볍게 넘으며 인기가 뜨거운 SBS 수목 드라마 ‘쩐의 전쟁’은 일찌감치 속편 및 시즌제를 도입키로 결정했다.  ‘쩐의 전쟁’ 제작사 이김프로덕션 측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원작 만화의 다른 에피소드를 드라마로 만드는 것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도 높을 것으로 판단해 시즌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김프로덕션 측은 이미 원작 만화의 드라마 판권을 구매한 상태여서 다른 에피소드로 새 드라마를 만드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이밖에 ‘궁'에 이어 시즌2의 성격을 지닌 ‘궁S'이 제작됐고, 드라마 '연애시대'도 속편으로 제작된다.충무로에서는 ‘두사부일체'의 2탄인 '투사부일체' '가문의 영광'의 속편 '가문의 위기', '가문의 부활'이 1편 못지않게 흥행에 성공했다.  현재 ‘괴물’ ‘작업의 정석’ 이 속편으로 제작중이다. ◆가요계, '모닝구무스메 스타일의 2기 결성 붐▲ 베이비복스 리브가요계에는 일본의 모닝구무스메와 같은 기수 시스템에 정착되고 있다. 누적 판매량 1108만장을 자랑하는 일본 그룹 모닝구무스메는 ‘졸업 시스템’이라 불리는 멤버교체 방식으로 유명하다.  기수별로 멤버를 영입하고 졸업시키는 시스템이다. 후배 멤버들은 선배 기수가 부른 과거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해 선보이곤 하는데 같은 노래지만 부르는 멤버가 다르다 보니 새로운 느낌을 준다. 여성그룹 쥬얼리는 박정아, 이지현, 정유진, 전은미로 구성된 1기에 이어 박정아, 서인영, 조민아, 이지현으로 구성된 2기를 선보였고, 그리고 곧 박정아 서인영을 중심으로 한 3기를 공개할 예정이다.이는 과거 ‘그룹멤버탈퇴=그룹해체’와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쥬얼리는 앞으로 멤버 교체를 통해 계속 활동을 할 계획이다. 베이비복스의 소속사 DR뮤직도 지난해 베이비복스 2기 베이비복스 리브를 선보였다. DR뮤직은 "계약이 만료돼 기존 멤버는 각자 흩어졌지만 동남아지역에서는 베이비복스의 인기가 여전히 높아 2기를 출범시켰다"면서 "한류 스타 베이비복스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얼굴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해 베이비복스 2기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고 밝혔다. 드라마 속편과 가수의 2기 제작은 리스크 관리 측면이 강하다. 대중문화 콘텐츠는 성공했을 경우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반면 엄청난 초기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속편은 이미 성공한 콘텐츠를 다시 활용해 브랜드 파워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속편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법도 없다. '속편이 원작만 못하다'는 '소퍼모어 징크스'는 영화계에서는 작품성면에서 이미 통설로 자리잡았다. 또  올 초 기대 이하라고 평가된 일부 드라마에서도 나타났다.  속편이나 가수 2기 제작은 실패를 줄여주고 친근감으로 프로모션에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새로울 게 없는 내용으로 시청자와 팬에게 실망감을 주거나 '한물 간 소재의 재탕'이라는 혹평을 들을 수 있는 위험도 지니고 있다.▶ 관련기사 ◀☞영화 '작업의 정석' 속편 나온다☞황진이 화장품, 주몽술을 아십니까.☞영화 '괴물', 이번엔 드라마로도 만든다☞'데스노트' '꽃보다 남자' 등 日 스핀오프, 속편 열풍
2007.06.21 I 윤경철 기자
대한민국 서쪽 끝 :: 가거도 여행 (2)
  • 대한민국 서쪽 끝 :: 가거도 여행 (2)
  • ▲ 회룡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싼 가거도항. 오른쪽 뒤로 독실산이 보인다.[조선일보 제공] 가거도는 잘 모르지만, ‘소(小)흑산도’는 익숙한 이름. 하지만 소흑산도는 일제시대 명칭. 옛날에는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로 불렸다. ‘사람이 가히 살 만하다’는 의미인 가거도(可居島)가 된 건 1896년부터다. 전설 하나 깃들지 않은 마을이 어디 있겠냐만, 가거도는 유난히 전설이 많다. 가거도 주민들은 바위마다 깃든 사연을 마치 어제 일어난 옆집 이야기처럼 줄줄이 풀어낸다. 신화와 전설로부터 구분되지 않은 삶을 사는 신선들 같다. 주민들이 들려준 가거도의 탄생은 이렇다. 바다 용왕이 아들에게 가거도에서 수련하라고 명했다. 용왕의 아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과 노래하고 춤췄다. 용왕이 아들을 꾸짖었다. 장군에게 아들을 감시하게 했다. 용왕의 아들은 경고를 잊고 다시 선녀들과 어울렸다. 분노한 용왕이 아들을 중벌했다. 아들은 몸의 절반은 바닷속에, 나머지는 땅에 내놓은 채 화석으로 굳었다. 대리(1리)마을 서쪽 회룡산 줄기다. 용왕은 장군도 벌했다. 대구마을 동쪽 ‘장군바위’가 장군이 굳은 것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 배타고 돌아보기 가거도는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를 돌아본 모습이 가장 멋지다. 선착장을 빠져나가면 녹섬, 돛단바위, 기둥바위, 섬등반도, 납덕여, 망부석, 검은여, 칼바위, 구절곡, 빈주암, 용머리, 남문 등 기기묘묘한 생김새의 바위가 늘어섰다. “서울 사람들은 놀이공원 같은데로 소풍가죠? 우리는 이리로 와요.” 임진욱 대리(1리) 이장이 '개린여'로 향하는 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배를 탔으면 개린여는 한 번 꼭 가보시라. 작은 섬이지만 윗부분이 1000㎡쯤 되는 넓고 평평한 돌바닥이다. 가거도 분들은 이따금 여기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놀기도 한단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겠다. 옛날에는 바다표범이 많이 살았지만, 일제 시대 함부로 포획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섬 오른쪽에 지름 60㎝쯤 되는 구멍이 바다까지 뚫려 있다. 돌을 던지면 바닷물에 떨어지며 “퐁당” 소리를 낸다. 가거도 주민들은 “이 구멍으로 용이 승천했다”고 한다. 어선이나 낚싯배를 15만원에 빌릴 수 있다. 섬 한 바퀴 돌아보려면 2시간 정도 걸린다. ::: 바다 낚시 가거도는 원래 낚시꾼들 사이에서 국내 최고의 감성돔, 돌돔, 농어 낚시터로 유명하다. “가거도는 섬 전체가 포인트(물고기가 잘 잡히는 지점)”라는 말도 있다. 갯바위에 앉아 낚싯바늘만 드리우면 팔뚝만한 물고기가 쉴 새 없이 올라온다. 6월 초순에는 농어와 참돔, 우럭이 잡히고, 6월말에서 7월 중순이면 돌돔이 가세한다. 초보 낚시꾼도 부둣가에서 작은 우럭이나 불볼락을 쉽게 낚는다. 선창낚시에서 낚싯대를 1만5000원에 빌릴 수 있다. 미끼(5000원)과 낚시찌(1만원부터)는 따로 구입해야 한다. (061)246-5800, 010-4761-3898. ::: 독실산 등산·절벽길 산책 의외로 가거도로 등산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독실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잘 정비돼 있다. 시멘트를 쳐서 흙길을 밟는 즐거움이 없다는 건 아쉽다. 정상 부근에는 '하늘별장'이 있다. 주변 24마일 해상구역을 책임지는 경찰 레이더기지다. 신승일 기지장을 비롯, 대원들이 아주 친절하다. 정상에 가고 싶다면 안내를 맡아준다. 항리(2리)마을에서 올라오는 길도 있다. 후박나무 사이 등산로를 걸으면서 정글에 가까운 섬의 생태계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천천히 걸으면 왕복 4시간쯤 걸린다. 대리에서 항리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어도 좋다. 대리에서 독실산 중턱까지 오른 다음 왼쪽으로 꺾으면 항리가 놓인 섬등반도 뒤로 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가파른 절벽과 바다가 섞인 풍광은 '에게해 어딘가에 있는 섬'이라고 해도 믿을 법하다. 항리는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주요 촬영지이기도 하다. 가거도 주민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인데 마치 여기서 벌어진 것처럼 알려졌다”며 살짝 섭섭해한다. 대리에서 항리까지 2시간쯤 걸린다. ::: 어떻게 갈까 매력적인 가거도, 접근은 쉽지 않다.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빨라야 4시간 20분 걸린다. 날씨와 파도에 따라 결항하는 경우도 많다. 섬에 들어갔다가 배가 뜨지 않을 수도 있으니 최소 1박2일 일정으로 잡아야 한다. 쾌속선이 이틀에 한 번씩 운항하다, 지난 5월 1일부터 매일 뜨고 있다. 동양고속과 남해고속에서 운영하는 쾌속선이 매일 오전 8시 목포를 출발, 비금도초-흑산-홍도-상중태-하태를 거쳐 오후 12시 20분쯤 가거도에 도착한다. 가거도에서는 오후 12시 20분 출발해 오후 5시 목포에 닿는다. 여객운임 어른 4만6550원, 중고생 4만2050원, 3~12세 2만3300원, 65세 이상 3만7550원. 바다 날씨가 변덕스러우므로 미리 확인해야 한다. 동양고속 전화 (061)243-2111~4 인터넷 홈페이지 www.ihongdo.co.kr, 남해고속 전화 (061)244-9915~6 인터넷 홈페이지 www.namhaegosok. co.kr ::: 음식·숙박 싱싱한 자연산 우럭과 돔, 농어, 불볼락, 해삼을 삼겹살보다 흔하게 먹는 게 이곳이다. 양식 생선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씹는 맛이 각별한 뿔소라는 가거도에서만 나는 별미다. 농어는 3㎏에 10만원, 돔 중에서도 맛있기로 소문난 줄돔은 2㎏에 10만원쯤 받는다. 어른 넷이서 먹기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우럭이나 불볼락 구이·찜 등이 줄줄이 나온다. 홍합전, 조기젓, 독실산에서 뜯은 곤드레로 끓인 된장깻국, 미역·톳무침 등 반찬이 실하고 맛있다. 생선구이에 각종 반찬이 딸려 나오는 백반도 가격(5000원)에 비해 아주 실하다. 원재료가 워낙 좋아서인지 음식 맛은 어디나 비슷한 편이다. 식당에서 민박과 여관을 대부분 겸한다. 민박은 2만5000원, 여관은 3만원. 2인 1실 기준으로, 1인 추가시 5000원씩 추가된다. 임진욱 대리(1리) 이장(061-246-3292, 010-2929-4989)이나 박정남 항리(2리) 이장(061-246-4070, 011-9415-0117)에 연락하면 알아서 연결해준다.
소박한 일상 속으로
  • 소박한 일상 속으로
  • [조선일보 제공]▲ 목포 바다에서 잡힌 생선들이 온금동 담벼락에 한 줄로 나란히 걸려 바람을 맞고 있다.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절대 못 빠져나올 것만 같은, 이리저리 멋대로 휘어진 미로, 끊임없이 나타나는 계단, 빨갛고 파란 색색 지붕…. 목포 유달산 남쪽 산비탈에 들어선 온금동과 서산동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목포문화원 조상현 사무국장에게 ‘목포에 아직까지 1960~70년대 풍경이 남아있는 동네가 어디인가’ 묻자 “온금동과 서산동을 찾아가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알록달록 빨래집게에 생선이 대롱목포 온금동&서산동 &nbsp;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국립목포해양대학교 방면으로 달리다가 유달산 방면을 올려다봤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동네가 바로 서산동이고 그 다음이 온금동이다. 일단 ‘유달동사무소 2청사’를 온금동 일대 추억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온금동의 행정 명칭은 바로 옆 동네인 서산동까지 포함한 ‘유달동’. 동사무소 옆, 비디오 가게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골목길 탐사가 시작된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골목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정도로 좁다. 우물터, 생뚱맞은 종려나무, 대문 위에 장식된 용머리, 빨랫줄에 걸린 생선,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문패 등등 사진 촬영 거리가 제법 눈에 띈다. 집들은 비록 낡았지만 지붕 색깔은 화려하고 담벼락도 분홍색, 연노란색 등 감각적인 색깔의 옷을 입었다. 손바닥만한 옥상에서는 빨랫감이 바람에 흔들린다. 난삽하게 얽힌 전깃줄은 때로 혼란스럽고 때로 묘한 구도감을 보여준다. 어느새 다다른 곳은 온금동과 노적봉을 이어주는 ‘아리랑 고개’. 지금 도로 개설 공사가 한창이다. 몸을 뒤로 돌리자 목포 앞바다와 옛 조선내화 공장의 우뚝 솟은 굴뚝, 그리고 고하도가 발 아래로 보인다. 연두색 페인트로 단장한 4층짜리 동신빌라 뒤편 골목길로 들어서면 온금동 뒷산 산책로가 시작된다. 남근석과 장사바위의 능선에 서면 전망이 한결 좋다. 하루를 환하게 밝혔던 해가 이 서민 동네에 마지막으로 따스하게 내려앉았다가 고하도 뒤로 넘어가려 한다. 온금동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서산동 풍경은 노적봉 주차장에서 야경으로 감상한다. 가로등에 불이 하나 둘 들어오자 허름했던 한낮의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그림 엽서 같은 환상의 야경으로 변신한다.온금동 여행을 마치고는 하당 신시가지에 있는 ‘용돼야지’(061-281-1782)로 갈 것. 청산도가 고향이라는 식당 주인이 고안해 냈다는 ‘홍합삼겹살 구이’(홍합 1접시 2만원·삼겹살 1인분 6000원)를 맛 봐야 한다. 청산도 남쪽 여서도에서 해녀들이 잡은 홍합과 기름기 적은 삼겹살을 불판에서 같이 굽는데, 도톰한 삼겹살에 홍합의 맛이 배어 들어 더욱 고소하다. >> 찾아가는 길목포역 - 여객선터미널 - 목포수협직판매장 - 유달동사무소 2청사(061-270-3616)동사무소나 조선내화 공장 주변에 차를 대고 걸어서 돌아다니면 된다.&nbsp;&nbsp;&nbsp;빛바랜 간판에 추억이 방울방울&nbsp;강경젓갈 시장으로 유명한 충남 논산시 강경읍. 간간이 짭조름한 젓갈 냄새가 번져나는 강경읍내의 중앙초등학교 뒤로 가자. 중앙리에서 북옥리의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도로 양편에 흘러간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직선 거리로 따지면 고작 500m. 그런데 골목길을 샅샅이 누비자면 넉넉히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 -->과거 강경은 금강을 끼고 있던 덕에 전국 최고의 내륙 포구 도시로 꼽혔다. 강경읍 중앙리 일대는 1970년대까지 시장통의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이후 고속도로의 등장과 논산, 연무의 발전에 밀려 빛이 바랬다. 이것이 강경이 허름한,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특별하게 빛나는 1960~70년대 풍경을 간직하게 된 사연.이 마을에서 제일 돋보이는 촬영 대상은 족히 수십년은 돼 보이는 간판들. 문구점, 분식점, 이발소, 사진관, 전자제품 수리점 등의 간판이 유리창이나 출입문 위에 얌전히 붙어 있다. <!-- -->▲ 강경에서 발견한 추억의 목욕탕 굴뚝골목길을 걷다가 영화 ‘장군의 아들’ 등을 촬영했다는 ‘대동전기상회’ 건물 옆을 지날 때면 정말 세트장 속을 거니는 기분이다. 가전제품을 파는 주민은 “여기 와서 일제 시대 지어진 저 대동전기상회 건물을 쳐다보는 외지인들한테 1000원씩만 받아도 떼부자가 될 것”이라고 웃었다. 거리에는 기와집, 벽돌집, 양옥집, 함석지붕집, 잡풀 우거진 폐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적산가옥이 섞여 있다. 낮은 지붕, 파란 철대문, 창문에 덧댄 쇠창살, 담장의 낙서, 높다란 목욕탕 굴뚝 등은 30대 중반 이상 여행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추억 속으로 깊숙이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 마을 중앙에 솟은 이동통신 중계탑만이 지금이 첨단의 2000년대임을 말해 준다. 등록문화재인 강경북옥감리교회 뒤로 해서 옥녀봉으로 오르면 과거의 시간 속에 침잠해 있는 강경읍내 풍경뿐 아니라 멀리 논산시내, 대둔산과 계룡산 줄기까지 시야에 잡힌다.&nbsp;&nbsp;>> 찾아가는 길천안논산 고속도로 연무 IC - 68번 지방도 - 강경읍 - 중앙초등학교&nbsp;강경읍사무소(041-745-3007)에 차를 대고 걸어 다니자.&nbsp;<!-- -->&nbsp;&nbsp;<!-- 기사내용+기사이미지 -->
(CEO 칼럼)"IT벤처 CEO 재충전, 어떻게 실천할까"
  • (CEO 칼럼)"IT벤처 CEO 재충전, 어떻게 실천할까"
  • [엑스씨이 김주혁 대표] 어느 CEO인들 마음 편안한 사람이 있을까? CEO란 참 고독한 자리라는 그 누군가의 글귀가 진한 공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탁월한 CEO와 그렇지 않는 CEO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IT벤처 CEO들의 일상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과 기술환경 속에서 기업경영 실적에 대한 부담감에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가히 강행군에 가깝다. 대부분의 IT벤처 CEO들의 몸과 마음은 긴장과 스트레스로 위협받고 있는 수준이다. 벤처 CEO의 여가생활은 이제 더 이상 특권의식이나 권위의식이 아니다. 과도한 업무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고달픈 CEO에게 재충전의 시간과 기회는 반드시 지켜야만 되는 일종의 과제인 것이다. 재충전 없이 새로운 사고의 발상과 상상력은 불가능 하며, 결국 기업에 오히려 마이너스되는 셈이다. 동장군이 찾아 온 도심 거리에는 벌써부터 성탄절 캐롤이 들려오고 상점 곳곳마다 산타클로스 마케팅이 넘쳐난다. 지난 주말에는 아들녀석과 함께 모처럼 짬을 내어 서점가를 찾았다. CEO 관련서적 코너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CEO의 여가생활이라는 문구였다. CEO라는 자리가 주는 부담과 여가의 중요성, 의도적인 실천만이 정신적, 신체적 부담을 완화하고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내용은 최근 필자가 느끼고 있던 바와 너무나 비슷했다. 가깝게 지내는 CEO들의 경우 바둑이나 등산, 독서, 골프, 낚시, 마라톤, 예술, 명상 등 다양한 여가생활을 실천하고 재충전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 모두 불규칙적이고, 실천하는 시간과 횟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IT벤처 CEO 7년째인 필자는 요즈음 3년 전 때이른 오십견과 불면증이 찾아오고 난 뒤부터 실천 중인 반식욕과 독서, 그리고 6개월 전부터는 요가를 시작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하루에 단 십분이라도 편안한 시간을 갖자고 자신과 다짐한 이후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자신을 컨트롤하는 법을 터득한 결과였다. 반신욕과 독서는 밤 늦게 집에 들어가는 일이 잦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는 날 아침과, 주말을 선호한다. 3년차 '반신욕 베테랑'답게 읽고 있는 책이 지겨워 질 때까지는 탕에서 나오지 않는다. 요가는 회사 근처에 주 3일 반을 끊었다. 일과 후 규칙적인 여가생활에 활력 충전 효과는 물론이고 다이어트 효과까지 얻어 비만체형에서 7~8kg도 줄어 들었다. 못나간 날에는 사무실과 집에서 전날 익힌 동작들을 반복한다. 필자가 반신욕과 요가를 실천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면, 처음부터 매일 해야겠다는 생각은 일단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이나 새로운 여가생활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부담에 지레 겁을 먹기 때문이다. 그저 틈나는 대로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그게 시간을 컨트롤 하는 요령인 것이다. 오늘 저녁, 필자가 배우게 될 요가는 이전보다 한 단계 높은 고난이도의 자세가 기다리고 있다. 나날이 늘어나는 즐거움으로 상쾌한 기분으로 사무실을 나설 생각이다. “내가 지금 실천하고 있는 이 작은 투자가 세계 자바플랫폼 시장의 선두기업으로 우뚝 서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작은 길이다”는 신념으로 말이다.김주혁 대표<약력>서울대 전기공학과포항공대 컴퓨터그래픽스 석사삼성전자 중앙연구소SK텔레콤엑스씨이2000년 3월 회사설립(SKT 사내벤처 1호)&nbsp;&nbsp;&nbsp;&nbsp;&nbsp;&nbsp; 8월 자바플랫폼 개발2003년 3월 위피 자바 1.1 표준플랫폼 개발2004년 10월 벤처기업대상 국무총리상 수상2006년 7월 코스닥 신규상장
2006.12.05 I 임종윤 기자
  • 김승우 "양다리 바람둥이 내 코드는 아니야”
  • [스포츠월드 제공] 이 남자, 위트가 넘친다. 얘기를 하고 있으면 그의 유머 감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흥행에 목말라 있다고 얘기하면서도 조급함 대신 여유가 보이고, 쉴 새 없는 홍보 스케줄에 피곤함이 배어있지만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순간 만큼은 더 이상 열정적일 수 없다. 단지 의무감으로 하는게 아니라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과정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진심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김승우 얘기다. 남들은 1년에 한 편 하기도 어려운 영화를 동시에 두 편이나 들고 찾아온 ‘행복한 남자’ 김승우를 만났다.●‘연애참’은 ‘쎈’ 영화지난달 ‘해변의 여인’에 이어 7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김해곤 감독,굿플레이어 제작,이하 연애참)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김승우. 두 편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헷갈렸다”는 그는 이제 ‘연애참’에만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해졌지만 한가지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연애참’을 봤을 때 이해하는데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어서다. “내가 이 역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는데 실제 이야기라서 했어요. 영운이 진짜 때려죽일 놈인데, 그런 인물이 실제로 있다니 말이죠. 내 정서로는 두 여자 중 하나는 잘라야(관계를 정리해야) 하는데 영운는 그러지 않는단 말이예요. 정말 한번 직접 만나볼까도 생각했을 정도예요. 정상적으로 자란 사람들이 봤을 때 영운와 연아의 연애를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이예요.”그가 이처럼 고민하는 데는 ‘연애참’이 ‘쎄다’는데 이유가 있다. 백수 영운과 술집 아가씨 연아(장진영)의 대책없는 연애담을 그린 영화는 기존의 로맨스가 아니라 욕설과 싸움으로 도배가 돼있어서다.“저보다는 욕설을 하면서 연아를 연기하는 장진영씨가 더 안 돼 보였어요. 결국 감독님에게 의견을 많이 개진해 원래 찍은 것보다는 20% 가량 순화를 했죠. 하지만 영화를 모두 찍고 나니 감독님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잘 전달된 것 같아 좋아요.” ●책임있는 배우 90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데뷔해 16년차가 된 그는 자신의 나이에 책임을 져야함을 느끼고 있다. 단지 영화의 주연을 맡는다는 사실보다 중견 배우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귀감이 되기를 원한다. 올 초 일본 영화 ‘멋진 밤 내게 주세요’에 출연한 이유도 그래서다. “지금 못 배우면 배울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만 부지런하면 후배들에게 일본 영화 제작 시스템 등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했습니다.”그는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는 시각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시나리오에 대한 느낌도 마찬가지다.“전에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기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을 봤는데 긍정적으로 사는게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그 책을 다시 봤더니 이건 세상을 요령있게 사는 법에 대한 책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시나리오도 그렇게 느껴져요. 98년 처음 ‘연애참’의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그냥 소동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전혀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20대에 ‘연애참’의 시나리오가 들어왔으면 절대 못했을거라는 그는 영화와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면서 어느덧 원숙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러가지 유형의 배우가 있지만 진정성을 갖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SW확대경]연예인야구단 구단주… '폼'은 선수급김승우는 야구 마니아다. 연예인 야구단 ‘플레이보이즈’의 구단주를 맡고 있는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주 그라운드에서 열정을 불사른다. 그럼 실제 야구 실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항상 클린업 트리오를 치죠. 제가 실력에 비해 폼이 아주 좋거든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사회인 야구에서 선수 출신은 변화구를 안던지고 직구만 던지는게 일종의 불문율인데요. 어느날 선수 출신 투수가 나와 저한테 구속 140㎞가 되는 직구를 뿌리는거예요. 처음은 스트라이크, 두번째는 파울이 됐죠. 전 당연히 3구도 직구거니 하고 배트가 나갔는데 글쎄 변화구를 던진거예요. 그래서 헬멧을 벗어던지고 화를 내니까 투수가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김승우씨인 줄 몰랐다. 폼만 보고 선수 출신이거니 생각했다는 거예요.”(웃음)김승우의 야구 실력에 대한 오해는 오로지 나무 배트를 고집하는 것도 한 몫을 한다.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대부분 알루미늄 배트를 쓰지만 그는 나무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나무의 느낌이 좋아요. 큰 타구를 날려 펜스에 맞히는 경우 알루미늄 배트를 썼으면 홈런이라고 멤버들이 얘기해주지만 그래도 나무 배트가 좋은 걸 어떡해요.”체육학을 전공한 그의 만능 스포츠맨 같은 폼은 촬영장에서도 웃음 꽃을 피어낸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 짬이 날 때, 촬영 스태프들과 편을 짜서 족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도 그가 참여하면 웃음바다가 된다. ‘어쩌면 족구까지 폼이 좋니’라는 말이 나오면 으쓱해진다는 김승우, 그가 있기에 한국 영화계도 신바람이 난다.
`유럽클럽 감독되면 한국팀 통째 데려갈 것`-아드보카트감독
  • `유럽클럽 감독되면 한국팀 통째 데려갈 것`-아드보카트감독
  • [조선일보 제공]처음엔 얼핏 보고 못알아볼 뻔 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딕 아드보카트 한국 대표팀 감독 같았지만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어깨를 꼭 감싸안고 다정히 걸어오는 모습이 축구장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 못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무릎까지 오는 황토빗 세무 반코트에 화려한 황금 귀걸이, 대형 구찌백을 들고 한껏 멋을 부려 멀리서도 눈에 확 뛰었다. 검정 코트에 버버리 풍 체크 목도리를 두른 아드보카트 감독은 상대적으로 검소해 보였다. 하지만 “아내가 골라준 건데, 잘 어울리지 않는가?”라고 먼저 운을 떼는 모습에 절로 “좋아보인다”는 말이 나왔다. 1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경기장 VIP입구에서 만난 아드보카트 감독. 하필이면 경기장 주변에 마땅히 앉을 벤치 하나 없어 그냥 서서 인터뷰를 할수 밖에 없었다.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다행히도 꺼리는 표정은 아니었다. 덕분에 주변에서 그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고 싸인을 요청하는 한국, 네덜란드, 독일 팬들이 수시로 몰려와 인터뷰 장소가 우습게도 갑자기 팬사인회 현장처럼 돼버렸다. “제가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감독을 하다보니 TV 등을 통해 얼굴이 알려져 버려서. 인터뷰를 방해해 오히려 제가 미안하게 됐네요.” 어쩌면 그는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 월드컵 이후 그를 더 많이 알아보는 팬들의 행렬이 이어지기를…. 자신감 불어넣어 주는게 축구감독의 진정한 역할 ―당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중 하나다. 당신이 생각하는 축구란 무엇인가? “어렵게 생각할 게 없다. 축구는 단 한마디로 매력 그 자체다. 수많은 팬들을 한자리에 끌어모으지 않느냐. 축구가 주는 승리의 쾌감은 그 어느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끈하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 한골이 터질 때마다 우리의 본성을 자극한다. 인간의 본성과 가장 가까운게 축구가 아닌가 싶다.” ―경기의 80~90%는 사실상 선수들의 능력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감독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선수들의 자질을 끌어올리고 잠재능력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린 누구와도 맞붙어 이길수 있다’는 암시를 수시로 집어넣어 줄수 있어야 한다.” ―네덜란드와 한국 선수들의 경기 안팎에서 보이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경험이 많다. 또 다들 유럽에서 뛰지 않는가? 하지만 한국은 유럽파라고 할수 있는 선수들이 5~6명 정도 뿐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자세에선 한국이 한수 위인것 같다. 엄청 열심히 뛴다. 이런 경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겨울내내 친선 경기를 갖지 않았느냐? 그외의 차이점은 모르겠다.” ―처음에 한국 팀을 맡아달라는 소리를 들었을때 기분이 어땠는가? 당신의 첫마디는 무엇이었나? 걱정되진 않았나? “무슨소리. 아주 기뻤다. 2002 월드컵 때부터 한국에 대해선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히딩크의 명성이 있으니 약간의 부담도 있었지만 난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다.” ―한국에 도착한뒤 지금까지 우리 문화에 대해서나 혹은 선수들의 행동 같은걸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나? 일종의 문화충격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은데 “유럽 코치가 처음 부임했다면 그럴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훌륭한 조언자가 있다. 거스 히딩크와 핌 베어벡이다. 특히 베어벡 코치를 통해 선수들의 정보는 대부분 입수할수 있어 상당히 쉽게 적응한 편이다. 선수들과 개인적으로 면담을 갖거나 한 건 아니지만, 선수들과 관계도 아주 편하고 좋다.” ―경기장 밖에선 어떤가? 음식은 불편하지 않은가? “아 그렇다. 김치! 사실 음식은 조금 견디기 어렵다. 특히 김치 냄새는…. 그런데 선수들이 워낙 잘 먹고 좋아하니 즐겁게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내가 만약 김치까지 잘 먹는 날이 오면 내 배는 아마 남산만해 질 것이다. 그 외엔 아주 만족스럽다.” ―한국에 온지 6개월도 넘었는데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는 한국말은 있는가? 한국 사람들은 보통 노래방 18번을 갖고 있는데 본인은 어떤가? “제대로 발음을 할 수 있는 건 ‘감사합니다’ 뿐이다. 그래도 조금씩 배우려고 한다. 그리고 노래라면…. 나에게 노래를 시킨다면 정말 최악의 가수로 기억될 거다. 난 태어날 때부터 노래를 못하는 것 같다. 내 노래를 한번 들으면 제발 그만 하라고 오히려 부탁할 거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의 성향은 어떤 것 같은가? 한국에 대한 인상이나…. 외국인들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당혹하기도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빨리빨리’란 말도 안다. 하지만 이는 축구에 적용하기에 딱이라,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워낙 친절하고 배려를 잘해줘서 또 다른 고향에 온 느낌이다. 젊은이들도 아주 혈기 넘치고, 나라가 역동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여성들도 하나같이 다들 아름답다.”(당신 부인도 아름답고 패셔너블하다는 말에 그는 “대신 돈이 많이 든다”며 크게 웃었다.) ―그동안 경기를 치르면서 팬들이나 미디어로부터 승리에 대한 압박이나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을 텐데 어떤가? “그런 부담은 항상 느끼는 것이다. 어느 감독이든 항상 견뎌야 할 관문이다. 그런 적당한 압박은 즐거운 자극이 되기도 한다. 한국 팬들은 항상 이기고 싶어하고, 그건 선수들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다.” ―팬들의 관심이 높다는 건 그만큼 인기도 높다는 걸 반영하는 걸 꺼다. 그동안 팬들에게 어떤 선물과 팬레터를 받았는가? “선물이야 선수들이 많이 받는거 아닌가. 경기 끝나면 백(백지훈), 호(이호), 영박(박주영) 등에게 쏟아지는 선물은 정말 엄청나다. 농담 삼아 그거 다 뭐 할꺼냐, 혼자 다 가져갈거냐고 묻기도 한다. 물론 나도 많은 건 아니지만 팬들로부터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당연히 고맙다.” ―히딩크 감독 때도 그랬지만 아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 올리면 선물이 두 손으로 안기도 힘들 정도로 쏟아질 것이다. “선물은 없어도 좋다. 그냥 우리 선수들과 함께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 올리는 게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네덜란드 감독으로 두 번의 큰 대회(94월드컵, 2004유럽선수권)를 치렀고 이번엔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있다. 메이저대회를 치르면서 감독으로서 자신의 어떤 부분과 색깔이 변화, 발전, 진보 되었다고 생각하나? “글쎄….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어떻게 자신감을 일깨우고 선수들을 어떻게 하면 좀더 효과적으로 조련할 수 있을지를 배운 것 같다. 하지만 내 색깔은 항상 똑같다. 승리를 맛보는 것, 그 뿐이다.” ―월드컵 본선 조별 상대 중 하나인 프랑스는 현재 주전들이 노쇠했고 정신력이 취약해졌다는 단점이, 토고는 아데바요르 원맨 팀이라는 단점이 거론되고 있다. “노(No), 노. 프랑스는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니다. 물론 최근 실력이 예전같지 않고, 노령화도 인정한다. 그러나 세계 정상을 달렸던 팀이다. 저력은 무시할수 없다. 막상 큰 경기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팀이 될 것이다.” 만약 김치까지 잘 먹으면 내 배는 남산만 해질 것 ―그러고보니 우리팀 역시 골게터, 혹은 타겟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듣는다. “우리가? 그게 혹시 단점이라고 생각되는가? 축구는 이기는 경기다. 무수하게 골을 많이 넣을 필요는 없다. 단 한골이라도 상대보다 많이 넣으면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가 골을 넣지 않게 봉쇄하는 데 총력전을 펼치는게 상책이다. 현대 축구에 정형화된 시스템은 필요없다. 이기는 경기를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당신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인가? “모든 팀이 마찬가지겠지만 올라갈 수 있는 한 최대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물론 상황이 2002년 같지는 않다. 어웨이 경기에다 적응해야 할 게 많다. 하지만 우리도 좋은 팀이다. 낙관적이 돼라. 6월이 되면 우리팀은 분명 상대를 놀랠 킬 것이다.” ―그렇다면 6월의 한국팀을 100점이라 치고 현재는 몇 점 정도를 줄 수 있겠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팀의 몇 %까지 접근했는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특히 젊은 선수들의 성장 속도는 놀라운 편이다. 과감하고 용기 있다. 나도 아주 기대가 크다.” ―당신은 젊은 선수들에게 특히 만족한다고 했지만, 젊은 선수들에게도 단점은 있다. 무엇보다 국제 경기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비라인은 더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물론 경험 부족은 인정한다. 그래서 지난 겨울 친선 경기를 한 것이다. 우린 유럽팀을 이기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건 젊은 선수들에게 아주 큰 경험이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선수들에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반드시 주입돼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 한국 선수들의 체력 향상에 특히 주목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번 대표팀을 맡아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선수들은 이미 선진 축구를 상당 부분 흡수한 것 같다. 전술적 이해도도 높고, 체력도 좋으며, 정신력 또한 강하다. 무엇보다 새로 투입된 젊은 선수들이 제 실력 이상을 뽑아낼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훈련때도 이에 집중하라고 시킨다.” ―아까 월드컵에서의 당신 목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한 단계 더 앞선 것을 예상하고 있다고 했는데, 16강 이후 상대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를 하고 있는가. “기본적인 자료수집은 항상 하고 있는 일이다. 비디오 분석도 놓치지 않고 있다. 유명할 수록 전력도 많이 노출돼 있다. 미리 분석을 해놓으면 현장에서 훨씬 수월하다.” ―이번 월드컵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유명 클럽을 맡고 싶어한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그렇게 말한 적 없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 레인저스 감독 경험이 있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에도 특별히 관심이 있다고 했던 것 뿐이다. 난 한국 감독으로 남고 싶은데 내가 왜 외국으로 가야하나?” ―솔직히 월드컵 이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 아닌가. 당신이 말한대로 정말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서 유명 클럽으로부터 구애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물론 일단 계약은 독일 월드컵때까지인건 맞다. 하지만 내가 원하면 2007년 아시안컵 본선때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도 있다. 지금 한국 생활이 무척이나 좋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선수들부터 코칭 스태프, KFA(대한축구협회), 그외 모든 주변 환경이 아주 만족스럽다. 이미 반쯤은 한국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진짜 떠나야할 경우가 오면 KFA와 충분히 상의를 한 뒤 결정하겠다.” ―평소에 관심있게 봐왔던 리그가 있다면 “당연히 K리그 아니겠는가. 그 외의 해외 리그는 꾸준히 봐오고 있다. 난 한가지 스타일을 고집하는 성향이 아니다.” 반쯤은 한국사람 된 듯 월드컵 뒤에도 남고싶어 ―그렇다면 월드컵 끝난 뒤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글쎄…. 무엇보다 행복한 감독이 되고 싶다. 물론 내 생각은, 내 감독 철학은 일정하다. 무조건 이기는 경기를 하는 감독이 되는 것이다. 비기는 것도 용납치 않는다. 성공하고, 영웅이 되는 것도 바라지만 결국은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행복했던 감독으로 남고 싶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뒤 박지성, 이영표를 에인트호벤으로 데려가 유럽 스타로 키워냈다. 혹 어느 경우에 클럽 감독이 될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만들고 싶은 선수들이 있는가? “내 선수들은 어느 누구 빼놓지 않고 다 소중하다. 만약 그런일이 생기게 된다면 어쨌든 월드컵 끝난 이후에나 생각해볼 일이다. 생각 같아선 통째로 데려가고 싶을 거다. 왜냐? 축구는 한명이 하는게 아닌, 한 팀이 하는 거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승승 장구로 전국민이 들떠있다. 종목은 다르지만 대표팀 감독이라는 입장에서 기분은 어떤가? “먼저 대단하다는 찬사를 전한다. 야구에서 올린 성적처럼 축구에서도 성과를 올릴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대회 시작전에 이렇게 좋은 결과를 올릴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수들이 해냈다. 우리도 자신을 가지고 긍정적이 돼야 한다. 경기가 끝났을 때 ‘우리도 할수 있다’는 것을 자랑할 순간이 올 것이다.” ―한국 축구의 앞날에 대해 한마디 “젊은 선수들에게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다. 한국엔 예상보다 젊고 재능있는 자원이 풍부하다. 지금도 새싹들이 어디선가 자라날 것이다. 이들이 나중에 K리그와 유럽 리그를 통해 더 많은 경험을 먹고 자라난다면 한국은 분명한 축구 강국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미래는 밝다.” <프랑크푸르트=최보윤 특파원 > ■ 딕 아드보카트(Dick Advocaat) ▲ 1947년 9월 27일 네덜란드 덴하그 출생 ▲ 별명:리틀 제너럴(작은 장군) ▲ 가족관계:부인과 아들, 딸 각 1명 ▲ 경력: 1992~1994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1995~1998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 감독 1998~2002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레인저스 감독 2002~2004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2004~2005 독일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감독 2005.10~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 주요 성적: 94 미국월드컵 8강·유로2004 4강 PSV에인트호벤 네덜란드리그 우승(1997) 글래스고 레인저스 스코틀랜드리그 우승(1999,2000)
  • (edaily리포트)`럼스펠드 일병` 구하기
  • [edaily 조용만기자]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다시 한번 곤경을 벗어났습니다. 최근 전사자 애도편지 서명 파문으로 비난여론이 빗발쳤는 데 부시 대통령이 강력한 지지입장으로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죠.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두 사람은 끈끈한 전우애를 과시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는 않습니다. 국제부 조용만 기자가 내막을 전합니다. 실감나는 전투신으로 유명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장에서 3명의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1944년 2차 대전 막바지, 편지를 통해 전사자들의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던 한 타이피스트가 우연히 성이 같은 사망자들의 편지가 한 주소로 발송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곧이어 4형제를 전장에 보낸 라이언 부인이 하루아침에 3형제의 사망소식을 접해야 하고, 적진 깊숙히 투입된 막내 아들마저 목숨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미국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샬은 미군 특공대를 최전방으로 보내 라이언 일병을 구해오도록 지시하고, 이 과정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부하들에게 읽어줍니다.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이 아들 5형제를 잃은 한 어머니에게 보낸 친필서명 애도편지였습니다. 이같은 비극이 반복돼서는 안되며, 막내 라이언을 꼭 구출해야 한다는 의지를 이렇게 전달한 것이죠. 60년이 지나 미국에서는 전사자에 대한 애도편지가 논란거리로 떠 올랐습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이라크 전쟁 전사자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친필서명을 하지 않고 서명 기계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한 칼럼니스트의 글에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이들에 대해 국가가 최상의 예우를 갖춰 조의를 표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럼스펠드는 이번 일로 국방장관의 신성한 책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은 물론 `기본이 안된 사람`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문제가 커지자 그는 부랴부랴 성명을 내고 진화에 나섰는데 럼스펠드가 친필서명을 하지 않은 변명은 궁색합니다. 1000명이 넘는 전사자 유족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슬픔에 젖은 유족들에 신속히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일일이 서명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사망자가 많다보니 친필로 서명할 만큼 여유가 없더라는 얘기입니다. 여론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고 공화당내에서도 퇴진압박이 잇따랐습니다. CNN의 여론조사에서는 미국민 52%가 럼스펠드가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처리 지연과 사망자 확대, 포로확대 파문 등으로 곤경을 극복하고 집권2기 행정부에서 당당히 유임됐던 럼스펠드는 최대의 위기를 맞습니다. 십자포화에 노출된 럼스펠드를 구해낸 것은 부시 대통령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20일 백악관 송년기자회견에서 럼스펠드장관이 "정말로 일을 잘했다(doing a really fine job). 그가 유임요청에 동의했을 때 매우 기뻤다(very pleased)"면서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럼스펠드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이라크 전쟁 수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 기본이 됐건 안됐건, 실책이 있건 없건, 전쟁중에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 용장(勇將)의 소신을 지킨 것이죠. 럼스펠드에 힘을 실어주기 전날 이라크에서는 60명이상이 죽고, 200여명이 부상하는 연쇄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했고,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 전사자는 1300명을 넘어섰습니다. 미국인들의 절반이상은 가장 걱정하는 문제로 이라크전쟁을 꼽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럼스펠드 구하기에 나선 것은 이처럼 복잡한 상황을 감안한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부시 대통령의 용인술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 없지만, 계속되는 럼스펠드 싸고 돌기에 대해서는 비난여론이 비등합니다. 이라크 전쟁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었던 영국의 유명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자 사설에서 서명파문 등 각종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럼스펠드 장관은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FT는 럼스펠드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중에서 최악은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노선을 수정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라며 일종의 `확신범` 취급을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소신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전쟁중 지휘관을 바꾸지 앉는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넌센스`라고 꼬집었습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인 링컨은 남북전쟁중 총사령관을 교체했고 윌슨과 루즈벨트 대통령도 장군들을 교체했는데 무슨 소리냐는 것이죠. 부시 대통령은 전날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두번이나 선정된 부시 대통령이 막강한 영향력과 자신의 소신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 자못 궁금합니다.
2004.12.21 I 조용만 기자
  • 김희선 부친은 만주국 경찰 특무-월간조선
  • [조선일보 제공] 자신을 독립군의 딸이라고 주장해온 열린우리당 김희선(金希宣ㆍ61)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金一鍊)씨가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유하경찰서에서 독립군을 잡는 특무(特務)로 근무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17일 발매된 월간조선 11월호가 보도했다. 김희선 의원은 지금까지 일제시대 자신의 부친이 일본 괴뢰정권 만주국의 경찰로 근무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줄곧 부인해 왔었다. 월간조선은 지난 10월8일부터 10월13일까지 만주 길림성(吉林省)의 성도(省都) 장춘시(長春市)와 통화시(通化市) 유하현(柳河縣) 등지의 현지 취재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중국 유하현 공안국(公安局·유하경찰서)은 자체 문서고에서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가네야마 에이이치(金山英一· 김일련씨가 창씨개명한 이름)의 기록을 확인한 후 그가 재직했음을 증명하는 공문서를 발급했다. 유하현 공안국 명의의 재직 증명서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본 유하현(柳河縣) 공안국에 보존돼 있는 문건을 세밀히 조사해 본 바, 다음과 같음: 金山英一은 남자로서, 1919년 출생한 자이다. 이 사람은 1945년 광복 전까지 위만(僞滿ㆍ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란 뜻) 시대 유하현 공안국 경무과 특무계에서 특무로 근무하였음. 위와 같이 증명함.(證明: 經査我局 案査實: 金山英一, 男, 1919年生. 1945年前系柳河僞警務科特務股特務.此證明)> 조선총독부는 1939년 11월 조선민사령을 개정하고 창씨개명에 관한 조문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1940년 2월부터 조선과 만주국 등 일제 통치하에 있는 조선족을 상대로 창씨개명 작업이 진행됐다. 김희선 의원은 지금까지 ‘시베리아 벨호얀스크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던 독립운동가 아버지가 1954년에 보냈다’는 한 장의 엽서를 근거로 자신이 ‘독립군 가계(家系)’임을 주장해 왔다. 이 엽서 봉투에 적힌 발신인의 이름이 ‘오영일’이다. 김 의원은 “아버지 김일련의 가명이 오영일”이라고 밝혔다. 김일련씨(김희선 의원의 아버지)의 둘째 아우인 김일건(金一鍵)씨는 지난 9월23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일련씨가 ‘오영일’이라는 가명을 쓴 이유에 대해 “(김일련의) 창씨개명한 이름이 가네야마 에이이치(金山英一)”라고 설명했다. “(이름을 바꿔서 쓴) 고건 이제 왜정시대의 일입니다. 영일이라고 그 당시에 (시베리아)형무소에 가 가지고 편지할 쩍에 진명을 쓰게 되면 무슨 우언이 될 것 같아서 그게 가명해서 편지 보낸 거라...오(吳)는 어머님 이름이고 어머님 성이고 영일이는 금산영일(金山英一)이거든. 창시명(창씨개명)할 때” 김일련씨가 어머니 이름(오병희·吳炳熙)에서 ‘오’를 따고, 창씨개명한 이름(금산영일)에서 ‘영일’을 따서 ‘오영일’이라는 가명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1992년에 발간된 의성김씨 대동보에 따르면,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씨는 기미년(己未年)에 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기미년은 1919년이다. 유하현에 살고 있는 최모(77)씨는 유하국민우급학교 재학시절,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가네야마 에이이치를 보았다고 했다. 그의 증언이다. “유하현에는 당시 4~5명의 조선인 경찰이 있었는데, ‘가네야마’라고 하는 조선인 경찰이 한 명 있었다. 그의 가족은 서쪽 포대(砲臺)에 살았다. 가네야마 에이이치는 가끔 경찰 정복에 칼을 차고 다녔다. 견장에는 별이 달려있었다.” ‘경찰 전사(戰史)’의 저자인 김광섭(金光燮ㆍ77)씨는 “만주국 경찰의 특무(特務)라면 일제 강점기의 일본 비밀경찰인 특별고등경찰(特高)과 같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만주국은 일본 관동군이 주도적으로 만든 국가이기 때문에 경찰ㆍ군대 시스템을 일본과 조선의 것으로 그대로 적용했다”며 “비밀 정치경찰, 고등경찰 등을 약칭해서 특고(特高)라고 불렀고, 이들은 독립운동가와 사상범에 대한 잔학한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말했다. 김희선 의원은 월간조선이 지난 10월호에서 부친 김일련씨의 ‘만주국 경찰 근무’ 의혹을 제기하자 지난 9월17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친척 10여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월간조선 보도를 부인했었다. 김 의원은 당시 “선친(김일련)은 1936년 할아버지(김성범)가 돌아가시자 작은할아버지 김학규 장군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다 광복 후에 한독당(韓獨黨) 비밀당원으로 작은할아버지와 함께 활동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김학규 장군의 막내딸 김은순(金恩順ㆍ75)씨는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갖고, “아버지(김학규장군)와 우리 집안의 본관을 마음대로 바꾼 김희선 의원은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 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체 피해온 金씨는 지난 10월12일 조선일보 기자를 만나, “할머니(선우순씨)가 안동김씨 집안에 재가(再嫁)해서 나은 첫 아들은 일찍 죽고, 다음에 아버지(김학규 장군)가 태어났다”고 확인했다. 김희선 의원은 지금까지 “할머니(선우순씨)가 의성김씨 집안에서 우리 할아버지(김성범)와 김학규 장군을 낳아서 안동김씨 집안에 재가를 했고, 나이가 어린 김학규 장군만 안동김씨 호적에 올렸다”고 주장해 왔다. 김학규 장군의 딸 김은순씨는 ‘김희선 의원은 김학규 장군이 의성김씨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는 얘기에 대해 “걔들이 미쳤어. 걔들이 이상해”라고 말했다. 김씨의 딸 최모씨는 “(한국에서) 외할아버지(김학규 장군)의 본관이 논란이 된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어머니가 한참을 오열했다”며 “큰외삼촌(김학규 장군의 장남으로, 한국전쟁 때 육군 대위로 전사한 金一鉉씨)이 살아 계셨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김학규 장군의 딸인 김은순씨의 증언 외에도 의성김씨 족보, 김학규 장군의 호적과 자서전을 통해 김희선 의원의 할아버지(김성범)와 김학규 장군은 이부(異父) 동복형제임이 확인된다. 김희선 의원은 족보상으로 김학규 장군과는 남남이다. 자신을 김학규 장군의 손녀 또는 종손녀라고 부를 근거가 없다.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가 일제하 만주국 경찰이었다는 증언은 김학규 장군의 며느리 전봉애 여사, 김학규 장군의 딸 김은순씨에게서 나왔다. 현지에서 만난 유하현 주민도 같은 증언을 했다. 이 증언들이 유하현 공안국의 공식 문서로 입증된 것이다. 이로써 김희선 의원이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독립군의 후손’이라는 근거로 내세워온 ‘김학규 장군의 손녀’, ‘독립군의 딸’이라는 두 가지 주장은 모두 부정됐다.
  • 월간조선·김희선의원 "가계의혹" 공방
  • [조선일보 제공]열린우리당 김희선(金希宣) 의원과 친척들은 17일 기자회견에서 김 의원 부친 김일련(金一鍊)씨가 만주국의 경찰이었고, 독립군 3지대장인 김학규(金學奎) 장군과는 족보상 남남이라는 월간조선 보도를 반박했다. 다음은 김 의원측 주장 요약. "부친, 해방직후 한독당서 활동" 김장군·아들 의성김씨 돌림자 써 ◆"김 장군 규자는 의성 김씨가 쓰는 별 奎" 김 의원측은 김학규 장군이 쓰는 ‘별 규(奎)’자는 의성 김씨 가문에서 사용되는 것이며, 김성범씨의 아들들과 김 장군의 아들들이 모두 이름에 일(一)자를 쓴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김성범 일가가 만주로 갈 때 김 장군이 따라간 것은 두 사람이 친형제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 장군은 1900년생이 아니라 1897년생" 김 의원측은 큰 고모인 일신씨의 회고록에 따르면, 할아버지 일가가 만주로 이동한 1910년 김 장군이 13세로 기록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장군도 자서전에서 ‘형님과 15년 터울’이라고 밝혔는데, 의성김씨 족보에 김성범씨가 1882년생으로 돼 있어 1897년생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김 의원 부친은 만주 한독당 대표단에서 활동" 자신을 광복군 출신으로 소개한 김은석(85)씨는 “광복 후인 1946~47년께 중국 봉천 주화(駐華)대표단에 김일련씨가 왔는데 가명이 김평우였다. 김 장군의 비서장이던 이시찬 선생이 ‘백파 선생의 조카니 기탄없이 일하라’고 했다. 독립투사가 아니면 주화대표단에 파견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삼촌인 일건씨는 “일련 형님이 부친 뒤를 이어 김 장군을 뒷바라지했다”며 “광복 후 일련씨는 한독당의 특명으로 상인을 가장해 중국땅을 내왕하며 정보수집을 하다 소련군에 체포됐다”고도 했다. 김 의원의 숙모인 이경실씨는 “당시 일련씨가 집에 있는 소까지 팔아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김 장군 자서전 "나는 1900년생" 월간조선은 “김학규 장군이 1900년생인 것이 확정되면, 김성범씨와 김 장군은 아버지가 달라 친형제가 될 수 없다”며 “그런데 김 의원이 기자회견장에서 배포한 ‘김학규 장군의 호적’을 보면 김 장군의 생일은 ‘1900년 11월 24일’로,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명시돼 있다”고 반박했다. 월간조선은 또 “김 의원은 김 장군 자서전 속의 ‘김성범씨와 15살 터울이었다’는 부분을 1897년생이라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떠 있는 김 장군 자서전엔 ‘나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1900년 11월 24일…출생하였다’고 명시돼 있다. 김 장군 본인보다 자신의 생년월일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다. ◆"김 의원 부친 광복 전 행적은?" 월간조선은 “김 의원이 부친인 김일련씨의 독립운동가 경력을 입증하기 위해 이날 기자회견장에 모셔온 분들은 모두 ‘광복 이후’의 행적을 얘기했다. 일제 말기에 김일련이 만주 어느 독립군 부대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는지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독립운동가 김은석옹이 “광복 후 봉천에서 김일련을 만났다”고 밝힌 것을 비롯, 10여명에 가까운 증인들 중 ‘김일련이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김 의원은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행적을 입증하고,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 결정적 자료를 이번 기자회견에서 공개하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은 왜 김일련을 구속했을까? 김일련이 러시아 군에 구속된 것이 그의 일제 말 행적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의혹에 대한 해명 역시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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