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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신흥국 및 소규모 개방경제에 대한 교훈’이라는 논문을 통해 “신흥국들은 앞으로 시나리오 기반의 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와 같은 보다 정교한 정책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논문은 이 총재가 더글러스 랙스턴 박사와 함께 작성한 것이다.
신흥국이나 소규모 개방 경제에선 대외 불확실성이 주는 영향이 큰 만큼 과거 미국 등 선진국처럼 ‘2015년 중반까지는 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거나 ‘실업률 6.5% 이상으로 유지하는 한 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식의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를 제시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는 특정시기나 임계치에 기반한 포워드 가이던스를 의미한다.
이 총재는 “비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가 바람직하지 않다면 그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복수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 즉 시나리오에 기반한 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는 거시경제 전망치와 함께 중앙은행 목표에 부합하는 내생적 금리 경로를 제시하는 개념이다. 비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처럼 명확하게 특정 지표나 시기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 총재에 따르면 작년 여름 전 세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적인지 아니면 단기에 그칠지 매우 불확실성이 높았는데 이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면 저물가에서 고물가로 전환되는 국면에서 정책 대응을 유연하게 가져갔을 것이란 평가다. 즉,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강력한 금리 인상을 하고 인플레 압력이 일시적이라면 통화 정책을 완화적으로 가져가겠다고 정책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미국, 중국 등 대외 경제에 크게 영향을 받는 데다 고령화가 심각해 구조적 장기 침체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에선 양적완화와 포워드 가이던스 등 비전통적 정책수단들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시나리오를 전제로 포워드 가이던스를 주는 방식이 유효할 수 있다는 평가다. 논문 작성에 참여한 이아랑 한은 경제연구원 차장은 “시나리오 전제의 포워드 가이던스가 중앙은행에 정책 유연성을 확보해줄 뿐 아니라 정책 전환에 따른 시장 충격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실제로 8월 기자회견에서도 “내년 물가가 예상 이상으로 더 크게 지속되면 인상 기조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 반면에 예상보다 경기가 훨씬 나쁘면 당연히 물가도 낮아지고 그렇게 되면 다른 새로운 기조가 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8월 기자회견에선 시장이 예상하지 못했던 내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둠에 따라 채권금리는 20bp(1bp=0.01%포인트) 넘게 급등하는 등 시장 충격이 커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