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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지역 공약은 지금부터 하나하나 다듬어 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답을 피한 것이다.
비슷한 상황은 일주일 뒤인 8월 25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내년 예산안 브리핑에서도 벌어졌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천문학적 돈이 드는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사업이 대다수인 지역 공약 이행으로 인해 향후 해당 예산이 급증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 물음에 침묵했다.
정부가 ‘사람 중심 투자’, ‘복지 확대’ 등을 내걸고 내년 SOC 예산을 역대 최대 폭으로 줄이기로 했지만, 새 정부 SOC 예산이 다시 크게 늘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이 대선 당시 지방 유세를 다니며 약속한 100개 넘는 지역 공약의 사업비 ‘청구서’가 조만간 날아들 것이어서다.
1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문 대통령 대선 공약 이행 비용으로 정부가 추산한 임기 5년간 178조원에는 지역 공약 사업비가 한 푼도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주요 복지·일자리 공약 등의 경우 100대 국정 과제로 선정해 사업별 소요 재원을 따져보고 별도의 재원 대책을 마련했다. 이 금액이 5년간 178조원이다. 오는 2021년까지 정부가 쓸 돈과 들어올 돈을 어림잡은 중기 재정 운용 계획도 이런 틀 속에서 짰다.
문 대통령 지역 공약은 17개 시·도 공약 130개, 시·도 간 상생 공약 13개 등 총 143개에 이른다. 총사업비 5조원 규모 달빛내륙철도(동서내륙철도) 등 막대한 정부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SOC 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부가 지난 1일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도 새만금 사업 등 현재 추진 중인 일부 계속 사업을 제외하면 지역 공약 추진을 위한 신규 사업비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국가 균형 발전 전략을 먼저 세우고 이에 따라 공약 옥석을 다시 가리겠다며 사업 추진을 일단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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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역 공약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면 정부 SOC 지출도 대폭 늘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돈 나올 구석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한 번 늘린 복지 예산은 줄이기 어렵고, 그렇다고 SOC 사업 추진을 위해 정부 빚을 늘리기도 쉽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지역 공약 이행을 임기 중·후반으로 미루다가 본격적인 비용은 다음 정부로 넘기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도로·철도 등 SOC는 사업 계획에서 준공까지 평균 9년 정도가 걸리는데, 설계 등을 하는 사업 초기에는 돈이 적게 들다가 착공 후부터 공사비가 많이 드는 구조다.
국토부에서 SOC 예산을 담당하는 한 관료는 “내년 SOC 예산이 올해보다 많이 줄어든 것은 매년 다 쓰지 못하고 이듬해로 넘어가는 이월 예산이 내년에만 약 2조 8000억원으로 적지 않고, 김해 신공항·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등 수조 원대 사업이 시작 단계여서 당장은 사업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형 사업이 착공하고 지역 공약 중 신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19년부터는 SOC 예산이 다시 큰 폭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