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갈등 '기술패권' 전쟁으로 비화…뚜렷해진 '新냉전'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코로나19 책임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기술 패권’ 전쟁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미국이 화웨이가 더는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이 집적된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게 하는 ‘수출 규정’ 제한에 나서자, 중국이 애플과 퀄컴, 보잉 등 미국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제재에 가하겠다면 보복을 천명하면서다. 코로나19 국면 이후 양국 간 신(新) 냉전 체제 구도가 더욱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美 ‘화웨이 죽이기’ 中 ‘애플로 보복’

강펀치를 먼저 날린 건 미국이다. 미 상무부는 15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미국의 기술이 반영된 반도체를 화웨이가 취득하는 것을 전면 봉쇄하는 수출 규정 개정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간 미국에서 지난해 화웨이 및 114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명단에 추가, 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화웨이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왔다. 그러나 화웨이가 파운드리(위탁생산)에 생산을 맡기는 방식으로 미국 기술 기반의 반도체를 계속 공급받아오자, 더는 가만두지 않겠다며 초강수를 둔 셈이다. 앞으로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 반도체 기업이 화웨이에 특정 반도체를 공급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화웨이도 미국의 특정 소프트웨어나 기술과 관련된 반도체를 구입하거나 반도체 설계를 활용할 경우 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 조치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미국행(行)이 발표한 지 불과 수 시간 만에 나왔다. 앞서 TSMC는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미 애리조나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측의 지원금은 약 120억달러(약 14조7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이날 성명에서 “미 현지 공장 신설은 미국 내에서 생산된 반도체로 첨단 제품을 만들겠다는 미국 기업들의 전략적 의미가 담겼다”며 이번 결정에 미 정부의 강한 압박이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관영매체인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에서 중국은 미국이 TSMC 등을 통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추가로 방해하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인 바, 중국은 미국 기업을 중국의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려 제재할 수 있다고 썼다. 미 매체의 편집장인 후시진은 트위터를 통해 “블랙리스트에는 애플과 퀄컴, 시스코시스템즈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조사 착수와 제재 조치는 물론 보잉의 항공기 구매 중단도 포함돼 있다”고 적었다. 만약 이들 미국 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 지정이 현실화하면 중국은 대외무역법과 반독점법·국가안전법 등을 통해 구매중단 등의 제재를 취할 수 있게 된다.

新냉전 더욱 뚜렷…디커플링 가속화

코로나19 국면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때리기’ 강도는 점차 세지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전날(14일) 폭스 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고 초강경 대중(對中) 대응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제2의 무역전쟁과 금융전쟁, 기술패권 전쟁으로까지 비화하는 양국 간 갈등은 과거 미·소련 냉전에 버금가는 ‘코로나19발(發)’ 미·중 신냉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양국의 결별(디커플링·decoupling)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코로나19 사태로 “양국이 대결별(the Great Decoupling)에 돌입했다”고 규정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파상공세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만만찮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를 배출, 늑장대응 비판에 직면한 만큼, 이를 통해 수세에 몰린 코로나19 정국을 타개하려는 전략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