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①'안전한' 전기차 '불난' ESS…문제는 구조·제조사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안전마진 두고 활용한 車업체
정작 배터리 몰랐던 제조사…ESS 화불러
  • 등록 2020-02-21 오전 6:11:10

    수정 2020-02-21 오전 6:11:10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배터리(2차 전지) 제조사가 오만했습니다. 전기차 내 배터리가 문제 없는 이유는 배터리를 100% 사용하면 불안정하다는 것을 완성차업체가 인지하고 배터리 일정 부분을 ‘안전 마진’으로 두고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배터리 제조사는 이를 알지 못한 채 에너지저장장치(ESS) 업체에 팔았고 용량 100%를 충전하도록 해 결국 ESS 화재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2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ESS 화재 28건은 전지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남을 수 있다”면서 이같이 강하게 비판했다. 배터리가 극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을 고민하지 않고 인증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잇단 ESS 화재로 연결됐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산업자원부가 지정한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 센터장, 차세대전지성장동력사업단 총괄간사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전지학회·탄소학회 이사로도 지낸 배터리 분야 전문가다. 앞선 LG전자 노트북 배터리 폭발과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사고 때도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신재생 에너지와 연계된 ESS의 경우 안전에 더욱 유의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양광과 연계한 ESS는 해가 떠있는 낮에 충전했다가 밤에 전기를 공급해 ‘충전 후 방전(사용)’이라는 1사이클이 하루 안에 이뤄진다. 3년을 꼬박 사용하면 ESS 내 배터리는 1000여사이클이 돌아간다. 한 번 충전하면 400㎞가량을 달리는 전기차 내 배터리가 1000사이클을 돌려면 1년에 2만㎞ 주행 기준으로 20년이 걸린다. ESS가 전기차에 비해 배터리를 더 가혹하게 쓰는 셈이다.

박 교수는 “상업용 전기차가 1년에 2만㎞ 넘게 주행하지만 배터리 용량이 100%면 ‘안전 마진’을 위·아래로 두고 60~80%만 사용하기에 안전하다”며 “이에 비해 ESS 설치·운영업체는 배터리 제조사를 믿고 용량 100% 모두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2차 전지 산업 내 산·학·연 구조도 비효율적이고 잘못 구성돼있어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계도 지난해 발족한 ‘ESS 생태계 육성 통합협의회’를 대정부 창구로 삼아 활발하게 소통하고 배터리 단전지뿐 아니라 모듈·팩까지 실증 평가할 수 있는 센터 설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가 서울 중구 순화동 이데일리 사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ESS 사고의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국내 2차 전지 산업은 산·학·연 구조 자체가 엉성하다. 통상 정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땐 상황을 파악하려 기업 혹은 산업계를 대표하는 협회에 연락을 취한다. ESS 사업장 화재와 관련해 1차 조사단은 배터리와 설치·운영 등으로 구성된 ESS 가운데 일부인 배터리와 관련된 한국전지연구조합과 한국전지산업협회에 연락했다. ESS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업체가 배제됐다. ESS를 대표하는 조직 없이 산업 생태계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학계도 ESS 화재가 발생하는 동안 관련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간 산·학·연은 하고 싶은 일만 했을 뿐 해야 했고 할 수 있는 일이 부족했다.

-정부의 1차 조사단 발표 이후 한국전기산업진흥회 산하에 ESS 생태계 육성 통합협의회가 발족했다. 이들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먼저 ESS 산업에 참여하는 업체의 대정부 창구 역할이 절실하다. 핵심 부품인 배터리부터 기술, 설비 분야 업체까지 ESS 사업자이자 산업 일부로 인식하고 산업계 내부적으로도 공급자와 사용자 간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산업에 꼭 필요한 기술 개발부터 기반 구축, ESS 배터리 재사용·재활용을 비롯한 자원 효율, 전문인력 육성까지도 담당해야 한다. 배터리 단위인 셀이 아닌 모듈, 팩 등을 실증평가할 수 있는 센터 설립도 고민할 부분이다.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가 아닌가.

△일류긴 하지만 1등이라고 보긴 어렵다. 배터리 안전마진을 가장 먼저 쓸 정도로 배터리를 잘 아는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는 지난해까지 파나소닉에서만 배터리를 공급 받았다. 긴 역사를 지닌 전자기업인 파나소닉은 배터리 분야에서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산요전기를 인수하면서 기술 면에서 앞서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1위인 중국 CATL은 생산능력(CAPA)이 다른 업체에 비해 두세 배에 달하지만 정상적으로 수주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LG화학이 테슬라에 배터리를 납품하기로 하면서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지만 최근 폴란드 공장에서의 수율 문제로 공급에 차질을 빚는다는 소식도 나온다.

-한·중·일 배터리 업체 간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나.

△이젠 산업 평준화 시대다. 전지 관련 장비·소재업체는 나름의 기반이 닦였다. 한 업체가 배터리를 제조하겠다고 했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할 필요 없이 장비와 소재를 납품할 업체가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차고 넘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재 우리나라 기술력은 2·3위에 머물러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연구개발(R&D)로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현재 2차 전지의 주류를 차지하는 리튬이온 배터리(LIB·양극에 리튬을, 음극에 탄소재를 각각 사용하는 전지)의 차세대 역시 리튬이온일 수밖에 없다. 이를 대체할 배터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유럽은 양·음극 모두에 리튬을 사용해 안전한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고집하다가 대량 소비에 적합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내놓은 일본에 밀렸다. 현재 각 배터리 제조사는 수십GWh에 이르는 증설·신설에 나서고 있다. 이는 차세대 배터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향후 10년여 먹거리로 리튬이온 배터리에 베팅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휘는(flexible) 배터리, 전고체 전지 등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음극까지 금속을 쓴 전고체 전지의 경우 토요타가 가장 많이 앞서있다지만 그 수준은 아직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고체 전지는 에너지 밀도도 낮고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불붙었을 때 취약하다. 휘는 배터리는 단락을 유발할 수 있다. 종이처럼 얇아 휘는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접는다면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느 분야에 더 집중 투자해야 하는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더욱 잘 만들어야 한다. 비정상 조건에서도 배터리가 잘 버티는지, 셀이 아닌 모듈·팩으로 엮었을 때 배터리 성능이 어떤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 연구 결과에 따라 배터리 제조 공정을 고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초과학을 단단하게 닦을 필요가 있다. 기초과학에 강한 일본과 중국은 각각 파나소닉과 CATL을 키워냈다. 그래야 산업 평준화 시대를 넘어 고도화 시대를 열 수 있다.

ESS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한 때 공급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전력을 저장하고 내보내는 배터리와 △전기의 교류를 직류와 바꿔주는 전환장치인 PCS △수천 개가 들어가있는 배터리 셀을 하나처럼 움직이도록 하고 전압·전류·온도 이상을 감지하는 시스템인 BMS △전기량을 모니터링하는 EMS 등으로 구성된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

△1971년생 △서울대 공과대학 공업화학과 학·석·박사 △산업자원부 지정 차세대전지 이노베이션 센터장 △한국전지학회 이사 △한국탄소학회 이사 △차세대전지 성장동력 사업단 총괄 간사 및 기획·운영책임(선임부단장급) △전자부품연구원 차세대전지 연구센터장 △미국 드렉슬 대학교 기계공학과 초빙 조교수 △미래형 자동차 성장동력 사업단 ‘하이브리드 자동차’ 분과 기획위원 △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할기관 자체평가 상임 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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