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환의 크레딧스토리)또 하나의 평가실패

  • 등록 2006-12-05 오후 2:07:40

    수정 2006-12-05 오후 2:07:40

[이데일리 윤영환 칼럼니스트] 칼럼을 처음 시작할 때 다루었던 주제 "실패에서 배운다"를 오랜만에 다시 꺼내 들었다. 회사채시장이 당면한 결코 작지않은 규모의 신용사건 때문이다. 아직 통증도 가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다시 실패로부터 가르침을 찾아야 한다. 어차피 모든 신용분석 논리는 실패의 교훈으로 쌓아 올린 일종의 촉루탑(&39633;&39631;塔)이 아니던가?

간단한 논리 몇 가지로 기업의 성쇠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똑같은 역사가 없듯이 실패도 매번 조금씩 모습을 달리한다. 통상적으로 반복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이번 실패에서 새로이 부각된 신용평가의 이슈를 중심으로 살펴 보려 한다.

이번의 두 가지 실패, `비오이하이디스의 법정관리`와 `팬택 계열의 투기등급 추락`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투자등급(BBB-)에서 투기등급으로의 하락이 기업 동향에 대한 평가사의 분석이 아니라 회계감사(또는 분기검토) 결과를 계기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내부적 관찰이 아니라 외부 신호가 등급 조정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또, 두 회사 모두 2005년 2분기에 회사채를 집중 발행하였고 대부분 증권사 리테일 창구를 통해 중소 서민금융기관(신협과 금고)이 소화했다. 그리고 이를 대부분 신용분석 전문인력이 없는 증권사가 취급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신용평가의 타당성을 살필 때는 결과론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서 보아야 한다. 결과론에 너무 천착하는 것은 자칫 객관성을 잃을 수도 있고 공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BBB-는 워낙 논란이 많은 신용등급이다. 투자/투기의 경계선에서 작은 차이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도 모 기업의 회사채발행을 추진하면서 이들과 비교하여 푸념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전혀 잘못된 신용등급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신용도 판단은 주관적이고, 또 범주에서 아주 벗어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경계선의 신용도에 변동성이 큰 사업성격을 감안하면 리스크 수용능력이 취약한 중소 서민금융기관의 투자상품으로는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다는 정도였다.

비오이하이디스와 관련한 쟁점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현금흐름 약화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TFT-LCD 공급과잉과 세대 진화 중단에 따른 사업경쟁력 약화 가능성은 이미 신용평가에 반영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사가 BBB-를 부여한 것은 BOE그룹 사업모델의 안정성과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제고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또 평가사는 사업양수도 관련 신디케이티드 론(Syndicated Loan)의 재무약정(Covenant) 내용과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채권금융기관의 지속적인 감시감독으로 관리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영업환경 악화는 생각보다 심했으며 BOE계열의 지원은 없었다. 합리적 예측 범위 이상의 급격한 환경변화를 두고 평가실패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응능력에 대한 판단은 다르다. BOE그룹의 재무적 기반이 강고하지 못하다는 점은 지적되었지만, 해외사업장에 대한 지원의지를 평가할 때 기본이 되는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평가가 미흡했던 점은 아쉽다. 전략적 허브보다는 전술적 전초에 가까운 비오이하이디스의 낮은 위상이 BOE그룹이 지원을 포기한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디케이티드 론의 재무약정에 대한 평가사의 판단은 대체로 적절했다. 비록 제대로 관리되지는 않았지만 재무약정조항의 권리포기(Waiver)로 유동성 경색이 초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권리포기가 2005년 8월 공시된 반기검토보고서에 명기되었을 때 평가사가 투자자에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던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2006년 2월에야 비로소 신용등급전망을 변경(Negative)했고 4월에는 투기등급(BB+)으로 낮췄다. 신용평가는 불친절했다.

엔론사태 이후 글로벌 신용평가가 심사숙고를 거쳐 도출한 논리적 귀결이 바로 유동성리스크에 대한 대응능력 분석 강화였다. 그리고 그 핵심은 변동성 리스크에 대비한 재무적 방어능력의 확보 여부와 회사채 투자자의 상환가능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종 재무약정에 대한 분석이다. 비오이하이디스의 사례는 유동성리스크 분석에 미온적인 우리 신용평가의 현주소를 보여준 셈이다. 한편으로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글로벌 기업 네트워크에 대한 평가기준 재정립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팬택 계열의 신용이슈는 아직 진행형이다. 2006년 11월 회계법인이 팬택앤큐리텔의 사채발행계약서 조항에 의한 기한의 이익 상실 가능성을 이유로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틀 뒤에 평가사들은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의 신용등급을 BB+로 낮췄다.

현실적으로 기한이익상실의 이슈가 작동하는 것은 결산 감사보고서가 발표되는 내년 3월이다. 약간의 시간과 숙제가 함께 남겨진 것이고 아직은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신용평가는 또 한번 면목을 잃었다. 신용평가가 놓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2005년 11월 평가사들은 팬택앤큐리텔의 신용등급을 BBB0에서 BBB-로 하향조정했다. 스카이텔레텍 인수에 따른 재무안정성 저하가 이유였다. 2005년말 실적은 이미 부채비율이 기한이익상실 조건인 600%에 불과 24% 모자란 수준이었다. 2006년 7월 동종업체인 브이케이(VK)가 부도처리 되었고, 이즈음 자금 악화설이 시장에 돌았다. 그런데도 평가사는 회계법인이 문제를 제기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동종업체의 부도와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금흐름 창출능력의 급격한 위축을 놓친 것도 문제지만,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지난 연말(실질적으로는 금년 3월말) 이미 기한이익상실의 목전에 이르렀는데도 평가사 보고서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다.

기한이익상실 조건을 포함한 사채발행계약 내용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대로 공시되지 않고 있다. 신용평가에서도 그다지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급한 시스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난번 엔론사태 때 미국 평가사들은 이러한 자동격발(Trigger) 조항이 급격한 신용도 하락, 소위 Credit cliff(또는 Rating cliff)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한 바 있었다.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도 매우 놀랐다고 한다. 부채비율 뿐만 아니라 등급하락이 기한이익상실의 작동기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후 사채발행계약은 신용평가의 필수적인 검토사항으로 못 박고 있다.

참으로 글쓰기가 어렵다. 아직 사안이 모두 종료된 것도 아니고 이해 당사자들의 딱한 입장도 못내 마음에 걸린다. 지난날 직접 겪었던 실패의 순간들이 자꾸 겹쳐 떠오르는 것도 심히 괴롭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하나라도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윤영환/굿모닝신한증권/Credit analy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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