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 개헌은 꼭 필요하지만 불가능하다

87년 체제 이후 우리사회 격변…현행 헌법 이미 수명 다해
개헌, 당위성은 ‘100%’…실현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
文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서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 천명
개헌 저지선 확보 보수야당 반대할 경우 개헌 불투명
  • 등록 2018-01-17 오후 12:00:00

    수정 2018-01-17 오후 1:41:46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 중에서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사전에 질문과 질문자를 정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모두가 동의하지만 개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그래도 개헌이 가능할까요?”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이미 수명을 다했습니다. 서른 살이 넘었으니 손볼 데가 한둘이 아닙니다. 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상전벽해를 경험해왔습니다.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이 사라졌습니다. 5년 마다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만들어왔습니다. ‘촛불혁명’이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룩했습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도 남북 체제경쟁에서도 완승을 거뒀습니다. 인구폭발은 옛이야기이고 이제 저출산고령화가 최대 난제입니다. 게다가 교통·통신·사회 분야의 변화는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지경입니다. 한마디로 몸은 엄청나게 커졌는데 옷은 그대로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개헌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굳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묻고 싶습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이뤄질까요?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개헌 저지선을 확보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대입니다. 한마디로 개헌은 불가능합니다. 다음으로 30년만의 골든타임인 만큼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개헌이 이뤄져야 하는 점이 난제입니다. 온갖 이슈가 속출하는 블랙홀 상황에서 여야가 이를 감당할 선진적 정치문화를 갖췄는지 의문입니다. 만일 지방선거 국면에서 개헌이 무산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연말 개헌이나 임기내 개헌을 추진할까요? 이 또한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외교안보나 경제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임기 내내 개헌문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여야 정치권의 낮은 도덕성과 적대적 대립관계로 볼 때 ‘개헌’이라는 옥동자를 탄생시킬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한국당이 반대하면 무용지물…개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 필요

현행 헌법 128조에는 개헌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개헌 발의는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 동안 이를 공고하고 국회는 개헌안 공고 이후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합니다. 국회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국회에서 의결되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6월 13일 지방선거를 기준으로 역산해보면 늦어도 3월초를 전후로 여야 합의 개헌안이 마련돼야 합니다. 또 3월 말까지는 국회에서 개헌안이 통과돼야 합니다. 앞서 여야 모두 지난 19대 대선과정에서 6월 지방선거 국면 개헌을 공약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개헌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당이 6월 지방선거 개헌에 반대하는 만큼 여야 합의안 마련조차 불가능합니다. 특히 한국당은 이미 대선공약 파기라는 비판은 물론 장외투쟁까지 선택한 마당에 여론에 굴복해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사실상 6월 지방선거 국면에서 개헌은 이미 물건너 갔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야의 상반된 태도입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론까지 나왔습니다. 당시 보수야당에서는 비문 개헌연대를 기치로 대선 전 분권형 개헌을 주장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문 대통령은 개헌에 가장 소극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우회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헌은 국민적 합의가 중요한 사안입니다. 야당의 반대에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지는 미지수입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개헌 발의를 압박했지만 결국 접은 바 있습니다. 다만 6월 지방선거 국면을 놓치면 개헌이 힘들다는 전략적 판단 아래 전격적인 발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앞서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1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여야 합의가 없을 경우 정부 주도의 개헌도 언급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맞장구를 친 바 있습니다. 정세균 의장은 지난 1일 신년기자단 오찬에서 “국회가 개헌을 성공시킬 능력이 없으면 헌법상 대통령도 개헌을 발의할 권한을 부여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가능성도 열어놓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해도 한국당이 반대하면 개헌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100% 부결입니다. 물론 한국당의 딜레마도 없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압도적일 경우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역풍과 유사한 후폭풍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6월 지방선거는 해보나마나입니다. 역으로 개헌안이 부결될 경우 대통령의 리더십도 손상이 되기 때문에 청와대 역시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은 어디로 갔나?” 권력구조 개편에 눈 독 들이는 여야

개헌은 나라의 틀과 패러다임을 뒤바꾸는 거대한 작업입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개헌은 권력구조 개편과 동의어처럼 이해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은 밀실합의나 졸속개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한민국의 개헌 역사는 국민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채 장기집권을 위한 ‘졸속 날림’ 개헌이었습니다. 발췌개헌·사사오입·3선 개헌·유신 등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권력연장이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국민의 의사가 그나마 반영된 것은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을 탄생시킨 내각제 개헌과 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 정도였습니다. 현행 헌법 역시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차례대로 대통령을 하기 위해 5년 단임제와 소선구제에 손쉽게 합의했다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실제 역사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의 순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김종필의 경우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 시절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렸습니다. 소선거구제 역시 대선 패배시 이후 정치적 권토중래를 위한 1노3김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둔 개헌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여야의 정략적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사실 고쳐야 할 곳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대한민국 사회가 급속도로 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기본권 조항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반대로 개헌 논의의 실무적 주체인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권력구조 개편에 쏠려있습니다. 실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개헌의 역사는 곧 권력구조 개편과 동의어였습니다. 우선 지지율 고공행진을 정국 주도권을 장악한 여권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차기 대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다만 대선 이후 영향력이 확 쪼그라든 야당에서는 권력분점을 골자로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의견이 우세한 편입니다. 여야의 유불리가 너무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에 합의 가능성은 없습니다. 권력구조 개편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대선과 총선의 불일치 문제입니다. 대통령 임기 5년과 국회의원 임기 4년 조정은 너무나 민감한 사안입니다. 2020년 21대 총선과 2022년 20대 대선의 불일치 문제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여야 국회의원 둘 중 어느 한쪽이 임기 축소를 수용해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개헌과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연동돼 있다는 점도 걸림돌입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승자 독식과 지역주의 심화라는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고쳐야 합니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간의 불일치를 조정해야 합니다. 다만 세부 각론으로 들어갈 경우 중대 선거구제 도입 여부, 지역구와 비례대표 배분,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여부 등에 대한 합의는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헌법 전문 수정에 영토조항 변경·행정수도 명시가 과연 가능할까?

한걸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권력구조 개편에 여야가 합의한다 해도 헌법 전문 개정부터 첩첩산중입니다. 문 대통령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강조해왔습니다. 6월 항쟁과 촛불혁명의 헌법 전문 포함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매년 광복절마다 되풀이되는 건국절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헌법 전문에 건국 시점을 명시하는 것도 변수입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현존 여야 정당의 뿌리는 물론 정체성을 구분짓는 매우 중대한 사안입니다. 보수·진보세력간 합의가 과연 가능할까요? 의문입니다.

통일시대를 대비해 영토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헌법적 지위를 규정한 영토조항은 너무나 민감한 부분입니다. 북한은 우리 헌법에서 평화통일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국가단체입니다. 헌법 제1조 3항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규정 때문입니다. 영토조항에 따르면 북한은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을 점령한 반국가단체입니다. 영토조항을 수정해 북한을 실체적으로 인정할 경우 엄청난 논란이 불가피합니다. 당장 통일을 포기하고 분단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불필요한 이념공방만 증폭될 수도 있습니다. 행정수도 논란도 갈등의 불씨입니다.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해 행정수도를 명문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휘발성이 매우 짙은 사안입니다. 보수정당은 과거 참여정부가 신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할 때부터 이를 반대해왔습니다. 여야 합의는 난망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기존 고정관념과 가치를 뿌리째 뒤흔드는 불씨도 적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해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1조의 평등권 조항도 논란입니다. 기본권 확대 차원에서 인종, 장애, 성소수자 차별금지로 확대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동성애 또는 동성결혼 인정 여부는 종교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합니다. 또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119조 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강화도 필수적입니다. 다만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항의 명시나 부동산문제 해결과 주거복지 강화 차원에서 토지공개념 조항이 신설될 경우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됩니다.

이밖에 대통령이 사법적 판결을 무력화시키는 제79조 사면조항이나 국회의원 특권의 상징으로 헌법에서 명문화돼 있는 44조 회기 중 불체포특권과 45조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의 폐지도 시급하지만 이 역시 뜨거운 감자입니다. 더구나 개헌 논의 자체는 블랙홀입니다. 개헌이 현실화될 경우 온갖 쟁점과 이슈들이 봇물처럼 쏟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행 헌법에서 다소 부족하게 서술된 지방분권 조항은 물론 국민 기본권인 생명권, 안전권, 건강권, 보건권 등의 강화도 필수적입니다. 이에 따라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거부 조항도 논란이 불가피합니다. 더 유치하게 이야기하면 대선 출마 자격을 만 40세로 규정한 것도 폐지 대상입니다.

文대통령, 6월 개헌 물 건너 가면 이후에도 개헌 추진할까?

여야는 늘 싸웁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특징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효율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의회정치의 생산성은 대단히 낮습니다. 개별 상임위에서 합의한 사안들마저 여야 대치로 본회의 처리에 발목이 묶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법안 처리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른바 ‘게임의 룰’로 불리는 선거구 조정입니다. 역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조정을 늘 전쟁이었습니다. 물리적 충돌도 다반사였고 결국 기형적인 ‘게리멘더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선거구 조정보다 더 어려운 건 개헌입니다. 현 상황에서 권력구조 개편과 주요 핵심적 이슈에 대한 여야 합의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권력구조 개편 과제는 차기 총선이나 대선 때의 과제로 남겨두고 기본권 강화라는 원포인트 개헌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차 개헌론도 이상에 가깝습니다. 야당은 여전히 개헌의 내용, 주체, 절차가 합의되지 않으면 6월 개헌투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사족으로 붙인다면 지방선거 국면에서 개헌이 무산되면 어떻게 될까요? 야당의 주장대로 연말 개헌 국면이 열리거나 문재인정부 임기 내에 또다시 개헌이 국가적 과제로 추진될 수 있을까요? 의문스럽습니다. 문재인정부가 개헌에만 매달릴 수는 없습니다. 외교안보 현안과제도 챙겨야 하고 집권 중반 이후에는 부동산 등 경제문제에도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개헌을 집권 중반에 처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문재인정부 임기말이나 돼야 또다시 개헌 문제가 거론될 것입니다. 이마저도 차기 대선 때 차기주자들이 반대하면 불투명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6월 지방선거 국면 개헌은 30여년만의 골든타임입니다. 야당의 주요 반대 이유는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실시되면 문재인정부 심판론이라는 이슈가 희석화된다는 것입니다. 물어보고 싶습니다.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만 없으면 정권심판론 이슈가 부각돼 야당이 대승을 거둘 수 있을까요? 정말 그렇게 믿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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