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주영 전 명예회장 경영 하이라이트

  • 등록 2001-03-21 오후 11:11:48

    수정 2001-03-21 오후 11:11:48

[edaily]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입지전적인 이력이 보여주듯 현대그룹을 일구는 과정에서도 적지않은 파문과 기록들을 낳았다. 정 명예회장이 일궈놓은 경영 하이라이트 기록들을 정리해본다. ◇국내 최초 해외 건설시장 진출(1965) 정주영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을 길은 수출뿐이다”라며 1965년 국내 최초로 해외진출을 시도했다. 정주영이 태국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에 응찰했을 때만 해도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고 격려조차 없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강인한 추진력으로 마침내 1965년 해외 건설시장 개척을 위해 태국으로 진출, 해외시장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 정주영의 해외진출은 현대의 수출주도형 산업구조와 세계화 전략의 밑거름이 되었다. ◇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건설된 경부고속도로(1970) 정주영은 6.25 동란 이후 전후복구공사를 주도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시설이 확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주영은 1968년 12월 각계의 반대 속에서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인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했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공사 현장을 방문했고, 정주영은 한국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질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현장 직원들에게 국가적 사명감을 심어 주며 일을 진행했다. 드디어 1969년 9월 11일 착공한 지 290일 만인 1970년 7월에 경부고속도로 428km가 개통됐다. 정주영의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최단기간에 건설된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실현시킨 것이다. ◇조선소 건설과 동시에 배를 진수시킨 세계 최대의 현대조선소(1973) 현대조선소의 창업 당시의 일화는 유명하다. 정주영이 조선업에 진출하고자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정주영은 강인한 추진력으로 몇몇 국가와 끈질긴 협상 끝에 마침내 영국과 스위스에서 1억 달러의 차관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 금융권에서 수주실적을 요구하자 정주영은 거북선이 새겨진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만 들고 그리스로 날아가 리바노스 회장에게 260만 톤급 유조선 2척을 수주 받았다. 그후 정주영은 2년 3개월 만인 1973년 울산조선소를 완공했고, 그 완공식은 당시 수주 받은 배 2척의 명명식과 함께 거행되어 조선소 건설과 동시에 배를 진수시킨, 세계 조선사에 전무후무한 일을 만들었다. ◇20세기 최대의 역사, 사우디 주베일산업항 공사(1976) 20세기 최대의 대역사로 불리는 사우디 주베일산업항. 9억 3천만 달러라는 공사 금액은 계약을 한 1976년 당시 환율로 4천 6백억 원이었는데 이는 그 해 우리나라 예산의 절반에 해당되는 큰 금액이었다. 세계적인 10개의 건설업체들이 각축을 벌였지만 일주일 동안 씻지도 않고 견적서를 써서 드라마틱하게 현대가 공사를 따냈다. 주변에서는 현대가 객기를 부리다 사우디 앞바다에 침몰할 것이라고 했지만 정주영은 끝내 해냈다. ◇올림픽 유치 및 올림픽 성공적 개최(1988) 지난 1981년 민간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정주영에게 올림픽 유치위원장직이 맡겨졌을 때의 국내 분위기는 일본의 나고야가 압도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에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올림픽 유치 위원장을 맡은 정주영은 각국 올림픽 위원들의 성향을 파악하여 적극적인 개별 로비와 정성이 담긴 꽃바구니 선물을 통해 한국인의 강인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여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낸다. 결국 88올림픽 개최지는 서울로 결정됐고, 그후 정주영은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소떼몰이 방북(1998) 1989년 민간기업인으로서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정주영은 약 9년 만인 지난 1998년 6월에 통일소 5백 마리와 함께 남북 긴장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을 방문했다. 정주영의 ‘소떼몰이 방북’은 19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래 사회주의 국가의 얼어붙은 빗장을 연 세계적인 빅 이벤트로 국내외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정주영의 ‘소떼몰이 방북’은 남북 화해와 평화ㆍ협력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 등 대북사업(1998~) 정주영은 필생의 사업을 ‘금강산 관광사업’이라고 여겼다. 84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998년 10월 북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사업을 성사시켜 1998년 11월 18일 분단 반세기 만에 남측의 국민들이 금강산을 방문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됐다. 남북간 대규모 물적ㆍ인적교류의 밑거름이 된 금강산 관광사업 이후에 정주영은 남북한 교환 통일농구대회, 북측의 교예공연 등을 선보여 남북경협 차원을 뛰어 넘어 남북 체육ㆍ문화교류에까지 확대, 발전시켰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우리 엄마 맞아?
  • 토마토에 파묻혀
  • 개더워..고마워요, 주인님!
  • 공중부양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